참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장작가마에서 구워낸 막사발이 한 점에 단 돈 만원이라니. 어디 그뿐인가, 종전에 커다란 막사발에 비해,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크기의 잔으로 탈바꿈을 했단다. 그러니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겠지만.

"여기 인사동인데 얼른와 도자기 그릇 하나가 만원이래"
"....."
"그래 다 팔리기 전에 얼른 나오라니까. 기다리고 있을께"

그쪽 말은 듣지를 못했으니 적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충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이야. 도자기 막사발 하나에 정말로 만원이야" 정도였을 것만 같다.


인사동 'K갤러리'에서 열리는 막걸리 막사발전

우리들은 막걸리를 마실 때는 찌그러진 양은 잔을 먼저 생각한다. 아니면 시골 논둑에서 일을 하다가 허기를 달래기 위해, 흰 보새기에 가득 담은 막거리를 마시고 '커어~' 하는 소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걸리가 다양화하면서 젊은충에 급속도록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잔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전국의 도공 30여명이 모여 막걸리 잔을 제작했다.

'2010 막걸리 막사발전'은 인사동에 있는 'K갤러리' 지하와 2층에서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한 작가가 100점씩을 들고 나왔다. 어떤 작품이거나 무조건 만원 한 장에 구할 수가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선물을 하기에 적당한 막사발을 5만원에 구매를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 한 점이 꽤 비싸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만 같다.




    
전국에 있는 도공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막사발이 즐비하다. 각자 개성이 있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가 있다. 손수 물레질을 하고 문양도 넣었다.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연신 비명을 지른다. 출장 길에 들린 막걸리 막사발 전은 근래에 보기 드문 전시회였다. 전시회를 주관한 김용문은

"이제는 막걸리를 우리 그릇인 막사발에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풍취를 제대로 느끼게 되죠. 이 막걸리 막사발 전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라고 한다. 전시회장 안에는 막걸리병이 즐비하다. 모인 사람들은 잔에 시음을 하면서 연신 '좋다'라고 한다. 역시 우리 막사발에 먹는 막걸리의 맛은 일품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과 개막을 하고 펼쳐진 막걸리 마시기.

막사발은 말 그대로 막 쓰는 사발이요. 막 만든 사발이다. 그것이 꼭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마음 편하게 사용을 하고, 손 쉽게 장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사발은 그 속에 우리 민족의 숱한 애환과 희열을 함께 히고 있다. 뒤풀이 장에서 만난 무세중선생은 막걸리를 외치며 작가들을 향해 큰절까지 하신다. 이제 막걸리를 막사발에 마시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자는 뜻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서구문물에 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저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로 변해버린 듯도 하다. 이런 시기에 막걸리 막사발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제는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


뒤풀이 장에 쫒아가 막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딸아 마셔본다. 느낌이 다르다. TV 광고 속에서 하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바로 그 맛이다. 찌그러진 양은 대접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인 막사발에 딸아 마시는 막걸리가 바로 제맛이다. 8월 24일까지 계속되는 막걸리 막사발전에 가면 다양한 작가들의 막사발을 구할 수가 있다. 그것도 정말 막걸리 한 잔 값으로 말이다.
 

도공이 그릇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요즈음은 세라믹이라는 그릇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조금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우리의 전통 장작가마에서 불을 때 만든 도자기에 대한 진가를 모르는 듯도 하다. 세라믹이란 고온에서 구워만든 비금속 무기질의 고체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생활자기라는 그릇들은 장작가마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며칠 휴가를 여주에서 보내면서, 찻사발과 다기를 만들고 있는 아우의 그릇만드는 과정을 볼 수가 있었다. 전에서 부터 자주 보아왔던 터라 신경을 쓰지 읺았는데, 며칠 눈여겨 보니 그 공정이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찌는 듯 더운 여름 날 불을 땐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진을 빼는 일인가도 느꼈다. 땀은 금방 옷을 적시고 어디든 흐를 수 있는 곳이라면 흘러내리는 데도 묵묵히 작업을 하는 아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형이 땀을 흘리는 것이 안스럽다고, 선풍기를 선뜻 갖다가 틀어주는 마음까지 갖고 있다. 바로 장인의 마음이다.

옷이 다 땀으로 젖었으면서도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여유는 무엇일까?

그 작업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면,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 모습은 어느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불현듯 자기 일에 빠져 이 찌는 듯한 더위에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 저리 멋진 모습 하나를 안 남겨놓으면 두고두고 후회 할 것만 같다.

"형은 하이에나 같아요"

"무슨 말이야"
"글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덤벼드니,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직업이 그래서 그런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아우의 그 모습이 그리 아름답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지우재'라는 아주 오래 묵은 한옥의 전시관을 갖고 있는 아우는, 미술을 전공했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로 내려와 벌써 17년이 지난 세월을 도자기와 씨름을 하고 있다. 고집스럼게 장작가마에서 불을 때기 때문에, 한번 가마에 불을 붙일 때마다 적지 않은 경비가 들어간다.   

아우의 작업하는 과정을 대충 사진으로 넘겨보자. 물론 이 작업이 다는 아니다. 아니 그 전 과정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업의 과정에서 흘리는 땀의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 것일까?


도자기를 빚을 점토가 보인다. 흙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요즈음은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것이 예전처럼 흙을 거르고 발로 밟지를 않는다. 


물레질을 하고나서 남은 흙이다. 하나하나 물레질을 하고 그것을 그릇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모형이 완성되면 그것을 말리는 공정을 거친다. 그것이 말라야 초볼구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벌구이는 대개 1,000도 정도의 불에서 구원낸다.

초벌구이는 전 과정의 20% 정도  

초벌구이를 마치면 그릇 하나씩을 일일이 손질을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유약을 묻혀 바람에 말린다음 다시 두벌구이를 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모두 세번을 구워내는 도자기의 공정은 불을 땔 때도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그릇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도자기. 그 공정에서 흘리는 땀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감히 잡히지가 않는다.


초벌구이를 한 찻그릇을 꺼내 정리를 하는 아우의 등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나하나 다듬고 닦아내면서 땀을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만큼 작업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릇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다. 그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은 자식을 키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초벌구이를 하고나서도 몇 번의 공정이 더 기다리고 있다. 땀을 흘리면서 그 땀으로 빚어지는 것이 도자기라고 한다. 그래서 생명을 얻게되는 것일까?

아우의 아픔이 널려있는 가마

초벌구이를 한 그릇을 손질하는 아우를 두고 가마로 향한다. 가마 주변에는 아우의 아픔이 널려있다. 땀과 불, 바람과 흙이 어우러져야 만들어진다는 도자기. 그러나 1,000도가 넘는 가마 안에서 생성되는 그릇을 알 수는 없다. 불을 끄고 하루, 이틀이 지나 가마 안에서 끄집어 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른다. 그 속에서 잘못된 그릇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바로 아우의 아픔이다.
 





수없이 많은 땀을 흘리고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있기 까지에는 장인의 고통이 함께 한다는 것을 모른다. 나 역시 며칠간 아우와 함께 편하게 휴가를 보내면서 새삼 느낀 것이니 말이다. 아우에게서 받은 마음의 선물인 도자 몇 점. 그것은 이제 나에게는 남다를 의미를 가진 그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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