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대구시 달성군 달성읍 하리에 있는 <대구광역시 교륙첯 논공학생야영장>에 양영을 들어 온 파라미타 청소년 160명에게 '스님짜장'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비가 오는데도 길을 나섰다. 비가 온다고 가질 않으면 160명이 점심을 굶을 판이다.

빗길에 달려 야영장에 도착하여 뒤로 돌아가니, 이게 왠놈들이야. 졸망한 녀석들이 인기척에 놀란 어미가 짖어대나 다들 쫒아나온다. 이런 횡재가 어디있담? 비를 맞으면 녀석들을 담기에 바쁘다. 어미는 계속 으르렁 대고 있다. "얌마 시끄러워, 누가 애들 들고간데냐 그래" 혼잣말을 해대면서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좌측에 목줄을 한 녀석이 어미이다. 새끼는 7마리 같은데 이건 머 다 다르다. 아비가 도대체 누구여?





참으로 생긴 모습들이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그 중 한 녀석 점박이란 놈이 덩치가 가장 크다. 녀석이 맏이일까? 그런데 이 녀석이 어지간히 요상하게 군다. 월담을 하겠다는 것이지.


 
이 녀석들이 낯선 사람을 마치 외계인 보듯 한다. 자리를 바꿔가면서 쳐다보는 폼들이 무엇인가 좀 수상한 사람을 보듯.... 나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그런데 이 점박이 표정을 보라. 무엇인가 형제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귀를 기울이는 누렁이 녀석 표정도 그렇고. "야, 내가 저 인간이 위험한지 아닌지 좀 보고 올께. 아무래도 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아. 우리 중 누군가를 잡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 그치" 흡사 요런 표정이다. 이 표정에 죽는 줄 알았다.


이 점박이 드디어 월담을. 아무도 시도를 안하는데, 녀석은 낑낑대며 담을 넘는다.




딴 녀석들이 궁금한지 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물어본다. "형아, 어떻게 넘어갔어?" "형이 원래 좀 담을 잘 넘잖아. 너희도 형처럼 할 수 있어" "그런데 저 인간은 괜찮은 거여?" "머 별거 아닌거 같아. 아무래도 나한테 기가 죽었나봐"


점박이 녀석이 담을 넘어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정말 부럽게 바라보고 있는 깜돌이. 아마 이 녀석이 막내인 듯.


개집 전경이다. 따로 묶인 뒤편에 녀석이 애비인 듯하다. 그리고 점박이 혼자 담 밖에서 잘난체를 하고 있다. "야, 저 인간 별거아녀. 겁 먹지말고 나처럼 담 넘어 봐" 오늘의 강아지 일기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인 485년에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팔공산 자락의 절 중에서도 그 역사가 가장 깊다고 하는 북지장사의 임시 대웅전에는, 삼존불 곁에 석불좌상 한 기가 있다. 이 불상은 북지장사 대웅전 뒤쪽 땅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 불상은 발견될 당시에 광배와 연화좌는 없었으며, 화강암으로 조성한 좌불상 한 기만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좌불상은 현재 북지장사의 대웅전은 복원 공사로 인해, 임시 대웅전에 모셔두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석불좌상은, 지장보살 좌상으로 보인다.

온화한 얼굴의 통일신라 말기의 좌상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의 얼굴은 온화한 인상이다. 그저 옛 석불답지 않게 말끔하게 조각이 되어, 언뜻 보면 요즈음의 석조미술품으로 볼 수도 있는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단정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한 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옷은 주름의 조각선이 가늘고 약하게 형식화되어 시대가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의 형태나 손에 든 보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자태와 온화한 인상 등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미소를 띤 듯 노한 듯, 마음가짐이려니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얼핏 보아서는 그리 오래된 석불 같지가 않다. 문화재에 깊이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요즈음에 조성한 것으로 착각할 듯. 그렇게 고풍스럽지 않고 너무 말끔하단 생각이다. 그러나 그 연대가 신라 말이라고 하면, 이미 천년을 훌쩍 지났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아마도 이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만든 장인이, 얼마나 오랜 시간 그 표면을 닦고 또 갈아낸 것일까? 이런 정도로 곱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 세월 또한 만만치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내판의 설명을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도 그냥 지나쳤을 판이니 말이다.




곱게 표면을 갈아놓은 석불의 얼굴에는 미소를 띤 듯도 하고, 노여움을 가진 듯도 하다.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미소로도, 아니면 노한 듯도 보이는 대구 팔공산 자락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그것 하나가 바로 옛 석불에서 만나는 신비로움이 아닐는지. 마음을 열고 석불을 바라다본다.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미소를 찾아낸다.



부처님 앞에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삼배를 하고 난 후, 고개를 든다. 한 낮의 햇볕을 받은 석조지장보살좌상. 지장보살은 이 사바세계에서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악몽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한다.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전한다. 지장보살은 전생에 브라만 집안의 딸로 태어나 석가모니에게 헌신적으로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사악한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 지장보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 역시 이곳에서 서원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기운이 자라는 데 까지, 내 나라에 있는 문화재를 돌아보다가 명을 걷을 수 있기를. 그것이 10월 7일 팔공산 기슭 옛 고찰 북지장사에서 나의 서원이다.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띤 지장보살 앞에 내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는다. 그 서원을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대구 동구 도학동 620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북지장사. 신라 소지왕 7년인 485년에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벌서 처음으로 절이 창건된 지가 1,526년이나 지난 고찰이다. 북지장사는 팔공산 인근에 자리한 고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절로, 같은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동화사보다도 8년이나 앞선다.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은 보물 제805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조선 인조 원년인 1623년에 지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망자의 천도를 염원하는 극락전 또는 지장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정면 한 칸의 작은 전각

현재 대웅전은 보수 공사 중이다. 단청을 마쳤으며, 전각 안을 공사 중이라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 규모이지만, 정면 한 칸 사이에 사각형의 사잇기둥을 세워, 세 칸처럼 독특한 양식을 띠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이 북지장사 대웅전은 여러 곳에서 특이하다. 이러한 전각은 우리나라 전역을 보아도 몇 채 되지 않는다. 순천 송광사의 약사전과 영산전, 그리고 여주 신륵사의 조사전 등이 이와 같은 건축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대웅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러한 형태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북지장사 대웅전의 세부 처리는 조선 중기 수법을 따르고 있다. 지붕 각 모서리에는 무게를 받칠 수 있는 추녀 끝에 얇은 기둥인 활주를 대었다고 하는데, 보수 공사를 하느라 활주는 임시로 제거하였다고 한다.

공포 끝에 용머리 조각이 돋보여

10월 8일 팔공산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돌아보고 찾아간 북지장사.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대웅전이 보물이라는 말에 1.5km를 걸어 찾아들었다. 복원공사 중인 대웅전은 새 건물처럼 보인다. 이미 단청까지 마친 상태라 옛 고풍스런 멋은 사라졌으나, 말끔한 모습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 든다.




북지장사에는 원래 대웅전이 있었으나, 불에 타 소실되는 바람에 이곳을 대웅전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북지장사의 대웅전은 측면도 한 칸이나 퇴칸을 달아냈다. 그리고 뒤편 퇴칸에 출입문을 낸 특이한 구성이다. 공포는 내, 외 4출목으로, 공포 위에 설치한 용머리 조각 등은 조선 후기 수법을 따르고 있다.

건물의 안쪽은 특이하게 정자에서 쓰는 건축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공사 중이라 안을 볼 수 없음이 아쉽다. 불전의 건축기법으로는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 전각은,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을 몇 바퀴를 돌아본다. 공포 끝마다 작은 용두(龍頭)를 조각한 연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이 건물이 지장전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건물 자체를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반야용선을 상징한 것은 아니었을까? 대웅전 앞에 놓여있는 석물은 석등의 받침돌로 보인다. 아마도 지장전 앞을 장식했던 석물이었을 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북지장사 대웅전. 결코 아무것이나 보물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기품을 지니고 있다. 작아서 더 아름다운 전각. 내년에는 안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봄이 되면 다시 한 번 대구 올레 길을 걸어야 할 듯하다.

대구시 동구  도학동 620번지. 요즈음 한창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대구 올레길 제1코스에 있는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인 485년에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팔공산을 끼고 있는 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찰로 전해지고 있다. 아침 일찍 남원을 출발하여 팔공산 갓바위를 거쳐, 북지장사로 향했다. 숲길 1.5km를 걸어 도착한 북지장사. 

그동안 몸살 감기로 10여일 이상을 끙끙대는 바람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겨우 진땀을 흘리며 갓바위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또 1.5km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북지장사 안에 보물이 있다고 하니, 죽어도 갈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문화재가 없었다고 하면 일찍 포기를 했을 테지만.

명품견이라는 호피견의 굴욕. 야 녀석아 그게 먼 자세냐 그래

북지장사에서 만난 견공들

북지장사 대웅전 앞에 선 문을 들어서는데,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땅에 누워있다. 가서보니 호피견이다. 이 녀석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도 요동도 하지 않는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니 옆에 황구 한 마리와 호피견이 또 한 마리가 있다. 사람들이 절 안에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도, 세 녀석 모두 나몰라라 하고 누눠있다. 남은 힘들게 땀께나 빼고 왔는데.

그런데 이녀석들. 정말 웃기는 놈들이다. 낮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짖지도 않고, 이리저리 사람들 틈으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해만 떨어지면 조그만 인기척에도 짖어댄다니. 역시 명품 견공들인지라 무엇이 달라도 다른가 보다.    



 

문을 들어서는데 가운데 누워있는 호피견. 카메라를 들이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땅에 붙은 듯이...

인상은 참 험하게 생긴 녀석이 그리 순둥이처럼 가만히 있다. 그러나 눈초리를 보면 명견답다


녀석뿐인지 알았더니 황구 한 녀석과 호피견 한 녀석이 또 있다

걷는 자세에서 명품견의 포스가 느껴진다. 이 녀석들 싸움을 하면 절대로 지지 않는 녀석들이다.



얼굴을 보면 날카로움이 배어있다. 그러나 녀석들 틈만 나면 땅에 누워버린다. 해가 있으면 늘 이렇게 아무 곳에나 눕는다고....


녀석의 죽이는 자세에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스님께서 북지장사에 대한 설명을 하시자, 앞으로 들어와 경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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