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550-83에 소재한 애기씨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최남수(, 35). 작은 체구에 귀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최남수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의 전수생이다. 10일 오전부터 시작한 맞이굿혹은 진적굿은 신령을 모시는 무속인이 자신들의 단골들을 위해 신령께 기원을 하는 굿이다.

 

굿은 먼저 최남수의 스승이기도 한 승경숙(, 58)씨가 앉은부정으로 굿판을 열었다. 앉은부정이란 부정무가를 불러 굿판을 정화시키고,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부정한 것을 물리쳐 굿이 더 신성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굿판에서는 한상 제일 먼저 부정으로 시작을 하는 것고, 모든 나쁜 기운을 가시게 하기 위함이다.

 

 

천궁맞이로 최남수의 굿이 시작하다.

 

이날 진적굿을 연 최남수는 이제 내림을 받은 지 고작 4년 정도가 되었다. 대개 맞이굿은 굿을 하는 당주인 무속인과, 함께 굿을 이끌어갈 초대된 무속인들이 함께 진행을 한다. 처음에 천궁맞이라고 하여서 집 밖에 천궁상을 차려놓고 그 곳에서 당주인 최남수가 시작을 한다. 이때는 용사슬이라고 하여서 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서 도약을 한다.

 

용사슬을 직접 본인이 사는 이유는, 자신 스스로기 제물이 되어 신령들께 많은 재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뜻이다. 더불어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온전하게 신령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용사슬을 마친 최남수는 굿판 안으로 들어가 차레대로 신복을 갈아입으면서 굿을 진행한다.

 

 

오후 6시까지 9시간 정도 계속 된 이날 진적굿을 화보로 감상해 본다.

 

 

수원시 팔달구 팔달문로 4번길 19에 소재한 시민상가시장.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백화점으로 등록이 된 시장이다. 지금도 건물의 외벽에는 시민상가가 아닌 시민백화점이라는 명패가 걸려있다. 공식명칭은 시민상가시장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민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대야 알아듣는다.

 

2005614일 수원시 인정시장 1호로 등록이 된 시민상가시장은, 점포수 54개소에 종업원수 70명 정도로, 매장면적은 1,034부지면적 1,084이다. 이 시장은 사실 수원시에서 백화점으로 지어 임대사업을 한 시장이다. 벌써 상가를 지은 지가 57년이나 되었다. 1957년도에 수원시에서 시민백화점으로 지어 임대를 하였던 것을, 1969년도에 점포를 모두 상인들에게 매매를 하였다.

 

3대 째 대물림하는 명동양행

 

시민상가시장은 점포수는 54개에 불과하지만, 입점업주들 100%가 모두 상인회 회원들이다. 시에서 매매를 할 때 주주들이 구성되어 있어, 규모는 작지만 가장 내실이 있는 상인회다. 이 시민백화점에서 3대 째 남성복만을 취급하면서 40년을 이어 온 점포가 있다. 40년 전 할아버지는 시민백화점의 관리를 맡아하셨다.

 

 

그 후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점포를 한 칸 얻어 옷장사를 시작했고, 3년 뒤 큰아버지는 딴 업종으로 옮겼다. 현재는 아버지 안태식씨와 아들인 안석효(34)씨가 함께 명동양행을 운영하고 있다.

 

할아버님께서는 처음에 이곳에서 관리를 맡아 하셨대요. 그러다가 큰아버님과 아버님이 점포를 한 칸 얻어 남성복 장사를 시작하셨죠. 40년 동안 한 칸씩 늘려나간 것이 지금은 6칸으로 늘어났어요. 팔달문 앞 시장 중에서 남성복 전문매장으로는 저희가 가장 큰 매장을 갖고 있는 셈이죠.”

 

안석효씨는 고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결혼을 한 후 이곳에 나와 아버지를 도와 점포운영을 하고 있단다.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로 가게 일을 돕기도 하고, 대학교를 다닐 때도 딴 곳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부친이 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 단골손님들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저희 집의 단골들은 대개 대물린 단골들이 많아요. 저희가 중 장년층 옷을 취급하기 때문에 50~60대 분들이 주 고객이죠. 그리고 그런 분들은 대개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점포를 함께 보실 때 이곳을 드리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소개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형제나 다름없이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죠.”

 

 

중국여행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이곳 팔달문 앞의 시장들은 대개 중국의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주로 이용을 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매상의 30% 정도를 이들이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곳에 밀집된 전통시장들은 이들에 따라서 매상이 좌우될 정도라고 한다.

 

저는 중국에서 1년 넘게 살았어요. 여행을 워낙 좋아해 중국의 많은 곳을 여행을 했는데 지금 그런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죠. 대개 이곳에 옷을 사러 오는 분들이 한족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우리말을 잘 못하니까 제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그들 고향을 이야기하다보면 저절로 단골이 되죠. 그 분들이 또 딴 분 소개를 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에, 저희 집은 한 40% 정도는 한족이나 조선족이라고 보아야죠.”

 

그래서 남들이 다 어렵다고 할 때도 크게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건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안석효씨는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생산된 옷을 절대로 사지 않기 때문에, 자연 좋은 상품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니 품질도 좋기 때문에 단골 확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희는 아버님과 어머님(류승희)이 점포를 함께 보시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있어요. 예전에는 점원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함께 하니까 인건비도 안 들어가고요. 앞으로도 고객관리를 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꾸준한 고객관리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

 

부모는 단골들을 관리하고 아들은 운영과 회계를 관리한다는 40년 전통의 영동양행. 중장년층의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는 이집이 유명한 것은, 바로 고객들에게 대한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문을 닫는 날에도 사전에 미리 예약이 된 손님들이나, 물건을 교환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문을 열어놓는다고.

 

이곳도 방송이나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면 저희 집을 꼭 찾아와요. 3대가 시민상가에서 생활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남성복 전문점으로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손님들이 오자 어서오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안내를 하는 안석효씨. 그런 행동을 보면서 3대를 이 시장에서 대물림을 하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한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친절이 최고라는 안석효씨의 신념 때문이다.

수원은 예부터 무자(巫子)들이 많던 곳이다. 아무래도 화성이 건립된 전후로 팔달문 앞에 장이 형성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권이 형성되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재물이 풍부했다는 이야기이다. 하기에 도성에서 쫓겨난 많은 무격(巫覡)들이 수원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 이 되면, 무자의 집에서는 일 년의 액을 막는 ‘홍수맥이’를 시작한다. ‘홍수’란 ‘횡수(橫數)’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나쁜 일이 닥치는 운세를 ‘횡래지액(橫來之厄)’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홍수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홍수막이는 전문적인 무격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무격의 힘을 빌려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일 년 간의 나쁜 수를 막아내는 것이다. ‘홍수를 막는다.’ 라는 뜻을 지닌 홍수막이를 사람들은 ‘홍수맥이’라고 한다.


홍수막이를 정월 초사흘부터 정월 보름까지 하는 것도, 지신밟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날 시작해서 같은 날 끝나는 것을 보면, 이 두 가지가 모드 일 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정월에 이루어지는 우리네의 모습. 이런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네 마음까지 달라진다고 해서야. 지킬 것은 지켜가는 것이 도리란 생각이다.

줄을 이어 기다리는 사람들

홍수막이를 하는 현장은 늘 분주하다. 남들보다 먼저 축원을 해야 더 좋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심성 때문이다. 쌀말에 초를 꽂고 축원을 하는 동안,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기원을 한다. 자손들이 한 해 동안 탈 없이 잘 자라고, 집안에 흉사가 없도록 비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한결 같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 고성주(남. 56세)는 벌써 신내림을 받고 이 길로 들어선지 40년 가까이 되었다.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정초만 되면 신자들을 위한 축원을 하느라 목이 쉰다. 그래도 남들처럼 커다란 물질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신을 모시고 있는 무자로써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정월 초사흘에 시작하는 홍수막이는 보름이 되어야 끝이 난다.

대물림으로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서울에서 왔다는 이모씨(여, 46세)는 “이렇게 정초에 홍수막이를 하고나면, 일 년 동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딴 곳처럼 큰 돈 안 부르고 일 년 간의 축원을 해주는 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희는 지금 대물림 단골이에요. 아이들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정초가 되면 와서 축원을 받을 테죠”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의 신자들은 모두 대물림 단골들이다. 할머니가 다니던 집을 며느리가 다닌다. 그리고 벌써 그 다음대가 물려받기 시작한은 집들도 있다. 전안(신을 모신 신당)에 반드시 앉아 징을 치면서 축원을 하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축원을 하는 고성주나, 하루 종일 자신의 순서를 가다리는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이다. 이 한 해도 오직 편안하게 지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대째 전통방법으로 진행하는 홍수막이

고성주의 홍수막이는 벌써 4대 째 내려오는 무가(巫家)의 독특한 방법으로 진행을 한다. 할머니에 이어 고모와 고모의 신딸인 최씨, 그리고 고성주로 이어지는 무가의 전래집안이다. 지금의 단골들도 내개 3~4대를 이어오는 단골들이라, 집안 내력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처음 이집을 찾는 사람들은 혼란이 오기도 한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모두가 ‘아범’이나 ‘어멈’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신도들은 고성주를 나이에 관계없이 ‘아버지’라고 호칭을 한다. 모두가 신과 인간의 고리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옛날 ‘단골네’들의 유풍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딴 곳 같았으면 벌써 문화재로 지정을 하고도 남을법한 전통이다.

정월에 이루어지는 홍수막이. 일 년을 편안하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축원을 마치고 오방신장기를 뽑게 해 일년의 공수(신탁)를 준다. 아마 홍수막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이 공수대목을 일 것이다. 어느 달에 조심을 하라고 일일이 일러주고 난 후, 홍수막이를 하고 나오는 시림들의 얼굴에는 안도감 때문인지, 엷은 웃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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