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여기저기 꽃으로 도배를 한 듯 온 산천에 피어난 봄꽃으로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런 꽃 구경을 떠나느라 길은 온통 넘치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런 계절에 때아닌 눈이 내렸다. 속초 청초호 인근에서 바라다보는 설악산은 하얗게 옷을 갈아입었다.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도 함께 꽁꽁 얼었다. 4월 19일 오전 하얗게 변해버린 설악산은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념탐 뒤로 보이는 솔악산의 골짜기에는 눈이 모여 더 하얗다. 하늘은 잔득 흐려있는데, 4월의 눈이 내린 설악산의 모습은 봄에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남원시 주생면 낙동리 산15-6번지. 좁은 마을 길 도로변 밑에 석불 입상 한 기가 서 있다. 이정표 하나 서 있지를 않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찾을 수조차 없을 것만 같다. 마침 선원사 최인술 봉사단장이 이곳을 선원사 운천 주지스님과 함께 찾아와 보았다면서 안내를 하는 바람에 만날 수 있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인 이 석불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무릎아래가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근래에 받침부가 노출됨으로써 불상으로서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전체 높이는 240cm이며, 입상과 광배가 조ㅘ를 이루고 있다. 언필 보면 떨어진 듯도 하지만, 광배를 다듬고 그 앞에 석불입상을 부조한 것만 같다.


낙동리 석조여래입상의 앞과 뒤

심하게 훼손이 된 안면

숲 속 길도 없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길 가에는 이곳에 문화재가 서 있다는 안내판도 보이지를 않는다. 보호 철책을 친 안으로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뒤편에 세운 광배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깨어진 곳도 없다. 그러나 정작 석불의 안면은 심하게 훼손이 되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만 볼이 두툼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듯해, 상당히 세심한 조각수법을 보였던 것만 같다. 어깨선이 유려한 것이나 발 밑까지 흘러내린 법의의 옷 주름이 부드러운 U자형으로 퍼진 것 등을 볼 때 상당히 수준 높은 석조여래입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이런 곳에 외롭게 서 있엇을까?




석조여래입상의 뒤편에 세운 광배는 온전하다. 빛을 묘사한 광배에는 꽃과 불꽃 무늬가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광배의 뒷면을 잘 다듬은 것이나, 광배의 조각들로 보아 이 석조여래입상이 수준작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다.

옛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워

석조여래입상을 찬찬히 훑어본다. 얼굴의 윤곽은 알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균형이 알맞게 표현되었다. 두상의 크기와 알맞게 조형된 귀, 그리고 둥글게 형태를 지닌 얼굴. 오른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왼손은 배 가까이 갖다 대고 있다. 그러나 손은 다 마멸이 되어 보이지가 않는다.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보이고, 법의를 걸친 어깨선은 부드럽게 표현이 되었다. 법의의 주름은 넓게 퍼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발목 부분부터는 주름을 잡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이라면 만복사지 석불입상과 같은 수준의 조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심하게 마멸이 되어 알아볼 수 없는 안면, 잘려나간 손 등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숲 속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남원 덕동리 석조여래입상. 아마 이 곳에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는 모르나,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벌써 천년 세월을 이곳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곳 인근에 절터라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저 알 수 없는 지난날과, 분간이 안되는 모습을 보면서 괜한 한숨만 토해낸다.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가 바로 한숨을 토해내는 것이라니.

범종은 절에서 쓰는 종을 말한다. 범종의 ‘범(梵)’이란 범어에서 ‘브라만(brahman)’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청정’이라는 뜻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인경’이라고 하는 범종은 은은하게 울려 우리의 마음속에 잇는 모든 번뇌를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범종의 소리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울려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고, 몸과 마음을 부처님에게로 이도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종을 울리는 이유는 지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함이기도 하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가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이 된 마애종이 있다. 마애종이란 바위에 종을 치는 모습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다. 이 마애종은 쇠줄로 달아 매단 종을, 스님이 치는 모습을 묘사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애종이다. 이 종을 자세히 보면 유두와 유곽 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형태로 보아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에 작품으로 보인다.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안양 석수동 소재 마애종(2004, 2, 26 답사)

범종은 왜 울리는가?

절에서 종을 칠 때는 그저 치는 것이 아니다. 새벽예불 때는 28번, 저녁예불 때는 33번을 친다. 새벽에 28번을 치는 것은 ‘욕계(慾界)’의 6천과 ‘색계(色界)’의 18천, ‘무색계(無色界)’의 4천을 합한 것이다. 즉 온 세상에 범종 소리가 울려 중생들의 번뇌를 가시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저녁에 33번을 울리는 것은 도솔천 내의 모든 곳에 종소리를 울린다는 뜻이다. 지옥까지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절이나 범종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 종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그 종소리를 듣고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지옥에서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기에 안성 청룡사의 종에는 ‘파옥지진언(破獄地眞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옥을 깨트릴 수 있는 범종의 소리. 그 소리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보물 제11-3호인 사인비구가 제작한 안성 청룡사 동종(2008, 12, 31 답사)

아름다운 범종, 그 세계에 빠져들다.

전국의 사찰을 답사를 하면서 종에 빠져 든 것은, 그 종의 문양이나 조각 때문이기도 하다. 종이야 함부로 칠 수가 없으니, 그 소리야 많이는 듣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 종에 새겨진 각종 문양 등은 가히 불교미술의 꽃이라고 표현을 할 수 있다. 쇠에다가 그려 넣은 문양 하나하나가 어찌 그렇게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있을 수가 있을까?

누군가 상원사 종을 들여다보다가 흐르는 눈물을 닦지를 않았더니, 나에게 신이 왔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절마다 있는 흔한 범종을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흘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종에 새겨진 각종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 종을 만든 장인의 예술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어찌 쇠붙이에 저런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가 있을까? 만든 장인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예술혼은 청동도 녹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던가.


보물 제11-4호인 홍천 수타사의 사인비구가 제작한 범종과 용뉴(2009, 6, 12 답사)

불교금속미술의 꽃, 숨이 막히다

조선조 현종 11년인 1670년에 사인비구가 제작한 보물 제11-3호인 수타사 동종은, 그 종을 붙들고 있는 용뉴가 힘이 있다. 그보다 4년 뒤인 1674년에 사인비구가 만든 안성 쳥룡사 동종(보물 제11-4호)는 종 표면에 ‘파옥지진언’ 이라고 적어, 이 종으로 인해 지옥에 빠진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염원을 그려냈다.

같은 보물 제11호인 청계사 동종에는 보살상이 표면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보살상의 표정까지도 완벽하게 표현을 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쇠붙이에 표정까지 그려낼 수가 있었을까? 국보로 지정된 범종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인 신라 성덕왕 24년인 725년에 제작된,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을 보면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표현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인이 금방이라도 살아서 나올 것만 같다. 또 위에 달린 용뉴는 어떠한가?


보물 제11호 청계산 청계사의 동종(2004, 11, 6 답사)

어찌 쇠를 녹여 만드는 범종에 이렇게 세세한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공구를 갖고 하는 것도 아니다. 거푸집 하나를 갖고 만든 종들이다. 그 아름다움의 끝은 화성 용주사의 국보 제120호 범종에 새겨진 비천인이다. 복대를 하늘로 날리며 내려앉는 비천상. 이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범종. 지금이야 더 아름다운 범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종들이 이렇듯 생명이 있을까?


국보 제36호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때 제작된 상원사 동종(2006, 5, 18 답사)

딱딱하고 찬 쇠붙이에서 받는 느낌이 이리도 따스할 줄이야. 이 어찌 마음의 수양이 없이 만들 수가 있을 것인가? 아마 이 종 하나를 만들면서 많은 중생을 번뇌에서 구하고자 하는 수행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종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나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범종소리. 오늘 전국에서 일제히 울린다면, 이 답답함이 가시려나 모르겠다.

국보 제120호인 화성 용주사 동종의 비천상(2004, 5, 21 답사)

도시는 삭막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말도 맞지를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그만큼 건물이나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곳은 아무래도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없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외부치장에 돈을 투자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투자를 해보아도 그만큼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전주시 중앙동 일대에는 '웨딩거리'라는 거리가 있다. 말 그대로 결혼에 대한 모든 것을 이곳에서 준비를 할 수가 있다. 결혼식, 예복, 사진, 여행까지 이 거리에 있는 많은 사업장들이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거리는 요즈음 몸살을 않는다. 그나마 한편은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고, 남들보다 색다르게 꾸며 혼기에 찬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삭막한 도시 건물에 걸린 전깃줄을 타고 오르는 수세미

삭막한 건물

그러나 한편은 삭막하다. 건물 앞에는 비어있음을 알리는 쪽지가 걸려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낡고 퇴락했다. 한 때는 전주의 상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삭막한 도시에는 여기저기 꽃이라도 가꿔보지만, 그렇다고 회색빛 건물이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런데 정말 몰랐다. 그 삭막한 회색빛 벽을 타고 오르는 초록빛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이집과 저집을 연결한 전깃줄을 타고 건넌 수세미 덩쿨. 그곳에는 커다란 수세미와 작은 것 몇개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한편에는 샛노란 꽃이 피어, 삭막한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커다란 수세미 한 개가 힘겹게 벽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길을 건너는 줄기에도 몇 개의 작은 수세미들이 매달려 있었다.



건너편 붉은 벽돌에는 줄기가 타고 오르며 꽃을 피웠다. 노랑색으로 물든 꽃 몇 송이가 붉은 담벼락과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수세미 한 줄기는 열매를 달고 꽃을 피우면서, 삭막한 잿빛 도시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저쪽 붉은벽돌 담벼락에도 작은 수세미 하나를 매단체.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 날이 되면 모악산 중턱 대원사 일원에는 세 가지의 꽃이 핀다고 한다. 첫째는 대원사 주변에 피는 산벚꽃과 진달래 등이요. 둘째는 찹쌀을 이용해 진달래꽃을 더해 기름에 부치는 화전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마치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시기적으로 벚꽃은 피지를 않아 조금은 서운하지만, 대원사 주변의 진달래는 만개를 해서, 진달래 화전축제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몰려드는 사람들, 산길을 메워

 

▲ 축제장으로 오르는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축제 시작 시간이 되면서 축제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산길은 온통 가득 찬다. 미리 산행을 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하산을 하는 사람들은,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내려가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한다. 9시가 넘기 시작하면서 축제장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로 길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다. 10시가 넘으면 길은 사람들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차는 것이 화전축제의 또 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9시를 넘기면서 여기저기 부모님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은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한다. 글짓기 등의 접수대에는 접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이 점차 많아진다. 10시 30분에 축제가 시작이 될 때쯤이면, 대원사 앞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찬다.

 

전통과 젊음이 어우러지는 축제

 

▲ 점차 많아진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도 북적이기 시작한다

 

모악산 진달래화전축제는 젊음과 전통이 어우러지는 축제이다. 봄날 진달래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경향의 유생들은 들이나 냇가로 나가, 화전을 부치고 화면을 먹고는 했다. 이것을 '화류놀이' 또는 '화전놀이'라고 하는데,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는 이러한 화전을 부치면서 하루를 보내는 축제이다.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에는 전북 등지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의 공연이 하루 종일 이루어진다. 팝핀을 비롯한 재즈댄스, 사물놀이를 비롯해, 각종 공연이 이루어져 참가한 학생들이 마음껏 젊음을 발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하루 종일 베풀어지는 각종 공연은 축제장에 모여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공연을 하는 학생들이나, 관람을 하는 관객이나 모두가 주인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즐거워하고, 박수를 치고 함께 소리를 지르며 축제장을 열기 속으로 끌어간다. 그래서 화전축제는 모두가 주인이 되는 축제라고 한다.

 

국민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축제

 

▲ 줄을 선 학생들 글짓기 그림그리기 등을 신청하기 위해 접수대에 줄을 선 학생들과 학부모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는 전시적인 축제가 아니다. 하루 종일 즐겁게 지내도 피로한 줄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최대한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대원사 일원에서 벗어나지 않고 모든 공연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장 짧은 동선으로 움직일 수가 있다. 그것이 모악산 화전축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누구나 축제의 주인이 되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축제.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로 들어찬다. 그리고 모두가 흥겨움에 젖어 하루를 보낸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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