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만개한 후 피어있는 기간이 불과 3~5일 정도이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수원 팔달산의 벚꽃도 이제는 그 명을 다해 꽃잎을 떨어트려, 벚나무 밑이 온통 하얗다. 팔달산뿐이 아니다. 광교산의 벚꽃도, 광교저수지 목책 길의 벚꽃도, 농촌진흥청의 벚꽃도 이제는 그 명을 다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그 꽃을 이용해 봄이 되어 산과 들에 진달래가 피는 계절이면, 화류놀이와 화전을 즐기고는 했다. 그만큼 꽃을 이용한 음식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꽃을 이용한 음식을 접하다가 보면, 사람의 마음도 함께 행복해진다고 한다. 유채꽃이나 제비꽃을 이용한 샐러드나, 장미, 카네이션, 민들레, 데이지 등도 요리에 이용한다.

 

 

꽃구경 멀리가야 해?

 

우리나라의 꽃구경을 할 수 있는 명소는 여기저기 상당히 많은 곳이 있다. 제주도의 유채꽃을 비롯해, 벚꽃이 만개할 때면, 진해, 경주 보문단지, 전주군산의 100리 벚꽃 길, 제천 청풍호반, 강릉 경포대, 공주 계룡산, 부안 내소사 벚꽃터널, 영암 월출산 도갑사, 완주 송광사, 정읍 내장로, 진안 마이산, 사천 선진리 성, 하동 화개장터, 제주 왕벚꽃 등이 유명하다.

 

이렇게 벚꽃이 필 계절이 죄면, 사람들은 꽃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길을 나선다. 봄을 만끽하려는 상춘객들은 이곳저곳 벚꽃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간다. 대개는 벚꽃이 아름다운 곳은, 봄 축제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도 함께 해결할 수가 있다. 꽃구경을 하기 위해 먼길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봄을 즐긴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화성이 꽃으로 옷을 입는다.

 

화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을 닮은 성곽이다. 화성이 우리나라의 많은 성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하는 것은, 그 성이 자연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성을 바라보면서 늘 감탄하고는 한다. ‘자연을 벗어나지 않은 축조물이면서, 자연과 가장 잘 조화를 이룬 축조물이라는 것이다.

 

그 화성은 계절에 따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사계절 화성을 돌아보다가 보면, 철따라 달라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생명이 없는 돌로 쌓은 성곽이지만, 화성은 늘 온기가 있는 자연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화성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화성예찬론자가 된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늘 일 년에 몇 번이고 돌아보는 화성. 계절에 따라 전혀 딴 곳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화성 주변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영산홍 때문이다. 흔히 진달래나 철쭉과 같은 원예품종 중 붉은 꽃들을 이르는 영산홍은, 일본에서 들여와 관상용으로 식재하는 같은 속의 식물을 총칭한다. 꽃의 색은 붉은 계통이 대부분이지만 노란색이나 흰색도 있고, 꽃잎의 모양도 겹잎인 것, 길게 갈라진 것, 쭈글쭈글한 것 등 아주 다양하다.

 

꽃과 어우러진 화성은 절경

 

봄이 되면 사진작가들이 화성으로 몰려온다. 그것은 화성의 주변에 심어놓은 영산홍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화성의 주변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는 영산홍이 만개하면, 화성은 그야말로 꽃으로 옷을 입은 듯하다. 벌써부터 마음 급한 사진작가들은 화성 주변을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화성의 주변에 심어놓은 영산홍이 다음부에는 만개할 듯하다. 426() 오후에 돌아본 화성의 주변에는 영산홍의 꽃이 개화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는 물 한 병 들고 화성을 돌아보아야겠다. 아름다운 영산홍과 화성의 모습을 담아내야겠다. 늘 화성을 돌아보지만 그 모습 또한 장관이기 때문이다.

화성은 거대한 축조물이다. 하지만 화성은 자연과 닮았다. 사람들이 화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화성이 자연과 동화되었다는 점이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한 곳도 자연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거대하면서도 자연과 닮아있는 화성은, 4월이 되면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것은 화성 주변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꽃과 함께 어우러진 화성을 돌다가 보면, 어찌 이리도 자연과 어울리게 축성을 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411() 화성 창룡문(동문)을 들어서 남수문까지, 안과 밖으로 화성을 돌아보았다. 아직은 만개가 되지 않은 꽃들이지만, 그래도 화성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꽃과 함께 어우러진 화성의 일부분을 돌아본다. 이 봄에 남은 구간을 4번으로 나누어 돌아 볼 생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계신 방에 들어가면, 벽에 온각 색으로 꽃이며 나비, 해와 달 등 각종 채색으로 이름이며 가훈 등을 쓴 액자나 족자를 볼 수 있었다. ‘혁필화’라고 하는 이 그림과 글씨는, 납작한 가죽을 이용해, 여러 빛깔의 색을 내는 것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혁필화 생각이 났다. 가끔 이렇게 오래전에 본 것들이 갑자기 생각이 나고는 한다. 아마 천상 이런 버릇에서 못 벗어날 것만 같다. 처음 혁필화 사진을 찍은 것이 2003년도였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한국민속촌 장터 안에서 본 기억이 나 민속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혁필화를 그리는 분이 민속촌을 떠난지 꽤 오래 되었다는 대답이다.

 

 2003년 한국민속촌에 가서 혁필화를 그리시는 어르신을 만나뵈었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집집마다 한 점씩은 벽에 걸렸던 그림

 

예전에는 집집마다 방문을 하거나, 혹은 장거리 등에서 가끔 물감을 꺼내놓고 혁필화를 그리는 화가를 볼 수가 있었다. 혁필화는 조선조 초기인 1,600년경에 유덕공 선생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많은 혁필화가들이 활동을 하였다.

 

일설에는 18세기 유득공이 버드나무 가지로 쓴 비백서에서 기인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혁필화가 언제부터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혁필화가들은 1930년대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혁필로 쓴 이름이나, 가훈, 상호, 고사성어 등을 집집마다 한두 장 지니고 있었다. 혁필화가들이 적은 수로 그 명맥을 유지했던 것은 대우문제에도 있다. 같은 그림을 그리지만 정상적인 화가들에 대해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화가들에게서도 냉대를 받아

 

또한 화가들 중에서는 혁필화가들은 화가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아마 그들을 장거리로 내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혁필화는 빠른 시간에 그려내야 한다. 가죽이라는 특성상 물감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이 있다. 한 장이라도 더 그려야 먹고 살수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화가들처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싼값에 그려야하는 혁필화가들로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빠른 작업만이 살길이었을 것이다. 1960년대부터 사양길에 들어선 혁필화는 이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혁필화에 대한 올바른 가치가 정립이 안되었기 때문에, 혁필화를 그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사동에나 가 보아야 가끔 만나볼 수가 있는 혁필화. 재빠른 손놀림으로 화려하게 그려내는 혁필화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혁필의 끝에서 뿜어져 그려대는 나비며, 꽃이며 각종 나무들이 온갖 색을 만들며 화선지 위에 춤을 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려낸 혁필화. 그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화가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는 이들은 그저 탄성만 흘려낼 뿐이다.

 

그 당시 어르신이 쓴 혁필화가 지동 고성주 전안의 벽에 걸려있다

 

참 이제 와서 생각을 하면, 그동안 내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면서도 참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 당시에 혁필화를 그리시는 분의 존함조차도 물어보지 못했는지. 오늘 10년 전 같이 민속촌에 가서 쓴 혁필화 글씨를 전안에 곱게 모셔놓고 있는 아우의 집에 가서, 새삼 옛 기억을 더듬어본다. 하나씩 사라져가고만 있는 우리의 소중한 풍물이 오늘따라 마음이 아프다.

참 사람이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박달나무라는 이야기만 듣고, 천연기념물을 찾아나섰다. 안내판이 서 있는 주변에 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꽤 많은데, 어떤 것이 천연기념물인지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해당 지자체에 안내를 부탁한다고 연락을 취했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천연기념물 가침박달나무.

 

전북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 산37에는 천연기념물 제387호 임실 덕천리 가침박달군락과, 제388호 임실 덕천리 산개나리군락이 있다. 군락이라고 했으니 많은 나무들이 서 있을 텐데,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 어찌 찾아내랴. 결국은 해당지자체 담당자에게서 따끔하게 일침을 당하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실을 ‘감치다’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가침박달나무

 

산길을 따라 울타리쪽을 장식하고 있는 임실 가침박달나무는, 산기슭 및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4~5월 경에 꽃이 피며, 가지는 적갈색으로 털이 없다. 원래 ‘가침박달’의 ‘가침’이란느 말의 어원은 ‘실로 감아 꿰맨다’는 ‘감치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침박달나무의 열매를 보면 씨방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고, 각 칸은 실이나 끈으로 꿰맨 것처럼 되어 있다. 또한 나무의 질이 단단한 박달나무에서 ‘박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가침박달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가침박달나무와 꽃(꽃 사진은 문화재청 자료) 

 

천연기념물인 임실의 가침박달나무 군락은, 직선거리 500m 내에 약 280그루 정도가 분포하고 있고, 3㎞ 내에 다시 300그루 정도의 무리를 이루고 있어 그 분포지의 넓이가 상당히 넓은 편이다. 나무의 높이는 대부분 2∼3m 정도이며, 가침박달나무는 한국에서 1종 1변이종이 자라고 있다. 주로 중부 이북에 분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남부지방인 임실군 관촌은 가침박달나무 분포의 남쪽한계선으로 밝혀졌다.

 

연한 황색 꽃을 피우는 산개나리

 

가침박달나무의 생김새를 몰랐다고 하지만, 산개나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일반적으로 많이 자라고 있는 개나리처럼 생겼거니 하고 찾아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높이 1~2m 정도인 산개나리는 키가 작고 줄기가 분명하지 않다. 산개나리 역시 담당 공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산개나리의 어린 가지는 자주빛이 나며 털이 없고 2년쯤 자라면 회갈색을 띤다. 잎은 2∼6㎝로 넓고 큰데, 앞면은 녹색으로 털이 없으나,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잔털이 있다. 꽃은 연한 황색으로 3∼4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가칭박달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곳 한편으로 이 산개나리 군락이 있는데, 이곳에는 약 230그루가 산개나리가 분포하고 있다. 산개나리는 북한산, 관악산 및 수원 화산에서 주로 자랐는데, 현재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소수만 남아있다. 임실 관촌 지역이 남부에 속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중북부지방에 분포하는 산개나리가 자생하고 있는 것은 이곳의 기후가 중부지방과 비슷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개나리와 꽃(꽃은 문화재청 자료)

 

요즈음은 이 가침박달나무와 산개나리를 몰래 캐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저 소중한 것을 제자리에 놓고 즐길 줄 모르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천연기념물이 훼손당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언제나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려는지.

화단에는 무엇을 심을까요? 물론 꽃을 심습니다. 요즈음은 각 지자체마다 여러 가지 조성된 화단에 꽃으로 아름답게 가꾸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국에서 이렇게 계절별로 꽃을 가꾸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만 해도 엄청날 듯합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그 많은 꽃들에게 사용하는 비용을 지역에 거주하는 어려운 분들을 위한 복지기금으로 사용한다면, 조금은 더 따듯한 사회가 될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화단에는 꽃만 심는 것이 아니다.

 

수원시 권선구 권선시장 인근에 가면 이상한 화단이 하나 있습니다. 분명 그 규모로 보아 개인이 만든 화단은 아닌 듯한데. 그 화단에는 꽃이 아닌 상추가 심겨져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고 갑니다.

 

“그 상추 참 맛있게 보인다. 조금 뜯어갔으면 좋겠구만.”

“너무 맛있게 생겼네요”

 

 

하지만 아무도 손을 대는 사람은 없습니다. 좁지 않은 화단에 심어진 상추. 아직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누군가 정성을 들여 키우는 듯합니다. 자라는 생육상태를 보니, 누군가 간수를 하는 듯합니다. 도심 한 복판 상가의 앞 높다란 화단에 조성해 놓은 상추화단. 그 무엇보다 새롭고 신선합니다. 이 상추는 이 곳의 상가관리소장이 직접 파종을 하고 키우는 것이라는 것.

 

세상 참. 화단에 심겨져 있는 상추. 이 상추가 다 자랄 때쯤이면, 이곳에서 삼겹살 파티라도 열어야 할 듯합니다. 갑자기 이 상추화단을 보면서, 꽃을 심은 화단보다 훨씬 정겹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보기는 좋아도 시들어버리면 그만인 꽃을 심는 일과, 나중에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상추 등을 심어 놓는 것,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상추화단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이참에 비싼 세금 퍼부어 꽃을 심을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상추나 쑥갓, 방울토마토 등을 화단에 심는 것도 바람직하단 생각입니다. 상추화단 참 좋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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