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고, 해가 설핏 넘어가는 시간을 이용해 생태교통 수원2013’의 시범지역인 행궁동을 돌아보기로 했다. 한 번 탈이 난 사람은 무엇을 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한 낮의 뙤약볕이 두렵기도 하다. 그보다는 땀을 워낙 많이 흘리는 체질이다 보니, 냄새로 인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가 넘어서 행궁동으로 향했다. 먼저 화성 행궁 앞에 마련하고 있는 국제 회의장 등으로 이용할 파빌리온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엊그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파빌리온 주변은 푸른 대나무들이 식재가 되고, 그 앞으로는 잔디와 화단으로 꾸며 놓았다.

 

아름다운 조형, 벌써 아이들이 찾아들어

 

요즈음은 생태교통 현장을 가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어린 꼬마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다. 파빌리온을 돌아보고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됨직한 여자아이 대여섯 명이 자전거를 타고 와 일대를 돌아보면서 재잘거린다. 생태교통의 무엇인가를 확실히는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그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일까?

 

 

앞으로는 화단에 잔디를 입힌 차가 한 대 서 있다. 조형물인 듯한데 아직은 설치가 마무리 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연못에는 연꽃의 싱싱한 잎이 하늘거린다. 이제 제법 아침저녁으로는 바람기도 있어, 가을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 그저 이런 모습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답답하고 음습하던 거리가 변한 것이다.

 

그렇게 반대를 하던 사람들도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변해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스스로 동참을 하지 않으면, 후에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 자체가 행궁동 주민들이 꽁꽁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변해도 너무 변한 헹궁동 마을

 

천천히 걸어서 생태교통 수원2013의 행사가 열리는, 주도로인 화서문로 쪽을 향한다. 지나는 갈에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벌써 근 40여일이나 이곳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 늘었다. 그저 인사 한 마디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낯빛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는 생각이다.

 

 

지나는 길에 골목 몇 곳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쌈지공원에 나와서 이야기들을 하는 모습들도 볼 수가 있다. 언제 이런 모습을 보기는 했을까? 간판 자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점포에 간판이 일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이 깨끗해졌으니, 집안도 좀 고쳐야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있다. 진즉에 이런 행사를 했으면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면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

 

화서문로 방향으로 가다가 생태교통 추진단 사람들을 만났다. 퇴근시간이 이미 지났는데도 마을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앞으로 10여일 밖에 남지 않은 개막일이다. 혹 공정이 마무리되지 않을까봐 걱정스러운 것일까? 화서문로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허공을 지나던 전깃줄들이 많이 사라졌다.

 

많이 깨끗해 졌죠?”

곁에서 말을 건넨다. 깨끗해진 정도가 아니다. 속이 다 후련하다. 21()일부터는 묵은 전신주를 뽑아내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면 얼마나 깨끗한 거리가 될까? 점포 앞에 사람들이 테이블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럴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는 것일까? 이곳을 찾아와 담소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도 부자연스럽지가 않다. 언제나 그랬다는 듯.

 

 

거리 곳곳을 돌아보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이 오래되고 답답했던 마을이 변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생태교통에 관한 기사를 보고 둘라보러 왔어요, 전에도 이곳을 지났는데 정말 많이 변했네요, 처음에는 어디 딴 나라에 온 것으로 착각이 들었어요.”

전선의 지중화 작업을 다 마치고나면, 얼마나 아름다운 거리가 될 것인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이곳에서 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태교통 수원2013’이 우리에게 어떤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가 벌써 기대가 된다.

 

정조대왕은 화성을 축성할 때, 직접 화성축성 장소까지 행차를 하기도 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보면 8일 간의 화성행차(1795년 윤 2월 9일 ~ 16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은 물론, 행차에 들어간 비용과 물품, 재료, 비용 등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적고 있다.

 

정조대왕은 사도세자를 모신 현릉원에 참배를 한 후, 8일간의 행차 중 넷째 날인 윤 2월 12일에 오후와 야간에 화성에서 두 차례 대단위 군사훈련을 한다. 이 군사훈련의 모습은 ‘성조(城操)’와 ‘야조(夜操)’라고 하여, 김홍도의 그림 ‘서장대 성조도’와, <화성성역의궤> ‘연거도’ 등에 자세히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연거도에 보면 횃불을 든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으며, 성안의 집집마다 등불을 밝힌 모습이다.

 

 

이산 정조의 꿈인 야조

 

정조대왕은 왜 두 차례에 걸쳐 화성에서 군사훈련을 강행하였을까? 정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무단히 노력을 한 군왕이었다. 그런 정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화성에 행차를 한 것도, 군사 훈련을 두 차례 실시한 것도 알고 보면 그 안에 내재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즉 친위부대인 장용영 외영의 1만 명이 넘는 군사의 막강한 군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은 팔달문 일대에 주둔하는 팔달위에 3,218명, 행궁 일대인 신풍위에 1,651명, 화서문 일대의 병력인 화서위에 3,028명, 장안문 일대인 장안위에 병력이 3,098명, 창룡문 일대의 병력인 창룡위에 2,906명이었다. 그 전체 병력이 자그마치 13,899명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군사훈련을 했다고 하면, 그 위세는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더욱 장용영의 군사들은 가장 무예가 뛰어난 군사들로 구성되었다고 하면, 그 훈련을 보면서 누구도 왕권에 대한 도전을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훈련자체가 실로 어마어마한 압박으로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제50회 화성문화재의 야조 이렇게 기대한다.

 

올해는 화성문화재가 반백년을 지난해이다. 그만큼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하기에 올해 화성문화재에서 선보일 ‘야조’는 그야말로 수원시민들이 참여를 하고, 정조대왕의 애민과 강한 국권을 상징 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포장을 한 야조가 아닌, 그야말로 내적인 면에 충실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조대왕의 뜻을 야조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야조를 제대로 꾸밀 수 있도록 ‘추진단’이 필요하단 생각이다. 정조의 뜻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야조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문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생태교통에 맞물려 열리게 되는 화성문화재에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들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어야

 

조선 후기에 사용되었던 진법 중에는 ‘원앙진(鴛鴦陣)’이 있었다. 원앙진은 12명이 한 조를 이뤄 짜인 진법으로 대장 1명, 등패수 2명, 낭선수 2명, 장창수 4명, 당파수 2명, 화병 1명으로 구성되었다. 원앙진은 한 쌍의 원앙은 암수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도 따라 죽는다고 한다.

 

원앙진은 만일 12명의 무사 중 한 명이라도 전사하여 패배를 할 경우, 남은 무사들도 모두 침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명나라 장수인 척계광이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 발명한 진법으로, 우리나라의 군제에서도 사용을 했다. 화성 행궁 앞에서 무예24기 시범단이 시범을 보일 때마다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원앙진이다.

 

장용외영의 무사들은 가장 강한 군제였다.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도 알고 보면 무예24기의 훌륭한 무술도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원앙진 등이 있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면서 진법을 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앙진이 대거 등장한다면 그도 놀랄만한 위용을 자랑할 것이다. ‘학익진’이 아닌 ‘원앙진’이 보여야 한다.

 

 

야조는 군사훈련이다.

 

‘정조의 꿈’이라는 야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뜬금없이 나타나는 도살풀이나 신칼대신무의 변형 춤이 나타난 지난 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춤들은 모두 사람이 죽고 난후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춤이다. 그런 춤들이 장용외영의 군사들의 잔치에 나타나다니, 실로 아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올해는 이런 화려한 포장보다는, 실질적으로 정조의 강한 국권을 상징하는 무예 24기에 중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상재와 검술 등의 강한 정조대왕의 국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지 않은가?

 

더불어 시민들이 참여를 하는 야조이기를 기대한다. 성 안 주변에 횃불을 들고 함께 동참을 했던 시민들이 야조를 보는 시각이 남달랐다고 한다. 흡사 자신도 장용외영의 군사가 된 기분이었다는 것. 그러나 외지에 빼앗겨 버린 정조의 꿈이 사라진 야조를 보면서, 의식 있는 시민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군부대를 동원한다고 해도 더 정조의 야조다운 야조를 연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화성문화재 50주년. 올해는 정말 ‘정조의 꿈’이 그대로 배어있는 강한 국권과 애민사랑이 깃든 그러한 ‘야조’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사진은 수원시청 정책홍보담당관실 이용창님의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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