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에는 두 개의 ‘제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호남제일루’란 명성을 자랑하는 남원의 ‘광한루’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제일이 있다. 바로 정읍시 태인에 자리한 ‘피향정’이다. 피향정은 ‘호남제일정’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주변의 경관을 느끼면서 피서를 하고자 지은 피향정은, 호남지방에서는 으뜸가는 정자로 꼽힌다.

몇 년 전인가 이곳을 지나다가 피향정을 들렸다. 그 때는 봄이었는데, 겨울의 경치는 어떠할까? 그것이 궁금하여 정읍시 태안에 있는 피향정을 찾아갔다. 피향정은 보물 제289호이다. 예전에는 피향정의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름답던 경관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정읍시 태인면에 소재하는 보물 제289호인 피향정

통일신라시대에 기인하는 피향정

피향정이 언제 지어졌는가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지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태산군수로 있던 최치원이 이곳의 연지가를 소일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전하는 것을 버면, 피향정은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뒤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현재의 피향정의 모습은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에 현감 유근이 넓혔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보수를 하였으며, 정면 5칸에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이 피향정은 주심포계 건물로 지어졌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는 새 부리가 삐져나온 것과 같이 꾸몄다.



피향정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위) 현판에는 '호남제일정'이라 적혀있다(가운데) 난간은 화려하지 않게 꾸며졌다. 

피향정은 사면이 모두 뚫려 있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난간은 짧은 기둥을 조각하여 주변을 촘촘히 두르고 있다. 건물 안쪽의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지만, 천장 일부를 가리기 위해 건물 좌우 사이를 우물천장으로 꾸민 점이 눈길을 끈다. 피향정의 동편으로는 ‘피향정(披香亭)’이라 쓴 편액이 걸려있고, 많은 시인묵객들의 글이 남아있다.

누마루 밑의 돌기둥, 정말로 말문이 막혀

아직 마당에는 눈이 쌓여있다. 몇 년 사이에 피향정은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다. 안으로도 흙 담을 두르고, 일각문을 내었다. 일각문을 지나 정자 가까이 다가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있다. 바로 누마루 밑에 세운 돌기둥들이다. 이 기둥 돌들은 아래가 약간 넓고 위가 좁은 방추형으로 조성을 하였는데, 일정하지가 않다.



피향정의 멋은 누마루를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이다. 여러 개의 돌을 쌓아 만든 기둥도 있다(위) 정자를 오르는 계단은 장대석을 여려 겹 포개놓아 만들었다(가운데) 정자 안에는 많은 시인묵객들의 글이 걸려있다(아래) 

몇 개의 기둥은 여러 개의 돌을 포개 기둥을 삼았다. 밑으로 줄지어 선 돌기둥들은 위에 잇는 기둥과 일직선이 되게 조성을 하였다. 이렇게 돌기둥을 사용해 누마루를 받치고 있는 형태는, 피향정이 아니면 보기가 힘들다. 정자 위로 오르는 계단은 장대석을 한 층부터 여러 층을 포개 놓으면서 자연적인 층계가 되게 하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

피향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자 중 하나이다.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정자는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남원 광한루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는 피향정. 누군가 ‘호남제일정’이란 명칭을 붙였을까? 그런 안목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철이라 조금은 황량하게 보이겠지만,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명성이 헛되이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남제일정이라는 것에 절로 수긍이 간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길 것인지. 정자를 뒤로하면서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애를 태운다.


솔직히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날을 고민을 했다. ‘블로거 대상’ 이라는 명예를 안겨주는 것인데, 과연 누구를 써야할 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블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한분 한분이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왜 이런 문제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을 하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과 답을 해보기도 한다.

참 너무나 많다. 추천을 해야 마땅한 분들이. 그래서 ‘추천포기’ 라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다가 어제인가 ‘다음뷰’ 의 추천 난을 보니 알음알음으로 방에 들어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이미 추천을 받으셨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 많은 블로거님들 중 그래도 300분을 소개하라면, 아마 기분좋게 며칠 만에 다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분을 선정하라는 것은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꼭 추천을 하고 싶은 분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할지.

왜 나는 ‘파르르님’을 추천하리라 마음을 먹었을까?

고민은 고민을 낳는다고 했던가? 그 길지 않은 고민 중에서 ‘파르르님’ 을 떠올렸다. 내가 ‘파르르님’을 떠 올린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저 편한 이웃이 쓰는 글 같지만, 답사를 다니는 나로서는 ‘파르르님’의 글 속에서 고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국을 다니면서 글을 쓸 문화재를 찾아낸다. 하지만 ‘파르르님’은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글 소재를 찾아야만 한다.

그러다가 보면 글의 소재가 막막할 때가 있다. 만일 한 곳을 들어가 글을 몇 년간 계속 쓰리고 한다면, 나 같으면 벌써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 ‘파르르’님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냄새가 나는 글

‘파르르님’의 글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그것도 가끔은 ‘퀴퀴’한 냄새도 난다. 그 토장을 닮은 글이 좋다. 만들지 않고 써내려가는 글. 그런 글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가끔은 글을 쓰다가 보면 글이 막히는 수가 있다. 금방 보고 온 곳인데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경우 참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파르르님’의 글을 읽어보면 막힘이 없다. 그것은 만들지를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저 본인이 보고 느낀 그대로를 담담히 펼쳐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 안에는 언제나 사람의 냄새가 난다고 표현을 한다. ‘글이 재미있다’ ‘글이 좋다’ 이런 표현은 굳이 사용하고 싶지가 않다. 그 안에는 그저 편안함과 인간다움이 있다. 그래서 좋아한다.

파르르님의 제주사랑은 끝이 없다.

제주사랑, 그침이 없는 분수

제주의 곳곳을 누비면서 제주를 알리는 ‘파르르님’. 그 글 안에는 본인만의 특별한 제주사랑이 있다. 굳이 어느 것 하나를 꼬집어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카테고리를 보면 그 안에 ‘파르르님’의 제주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좁은 제주 안에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다.

오늘도 카메라와 배낭 하나를 메고 제주의 산천을 누비고 계실 ‘파르르님’. 좋은 이웃을 두었다는 것은 늘 행복하다. 그 이웃을 이렇게 소개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행복이다. 오늘 ‘파르르님’의 추천 글을 쓰면서, 많은 이웃님들에게 죄스런 마음도 감출 수가 없다.

 http://jejuin.tistory.com <== 파르르님 블로그

“왜 답사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세요?"
“어렵죠, 날도 안 좋은데. 가만히 앉아서도 글은 쓸 수 있잖아요?”
“저는 앉아서 쓰는 그런 글을 쓸 줄 몰라요”
“아니 한 때는 방송국에서 일도 하셨다면서요?”
“예, 그러기는 했죠. 그래서 더욱 더 방송에 대한 글은 쓸 수가 없어요.”

아는 분이 전화를 하셨다. 늘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분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남들처럼 약지 못하다고 퉁명스레 이야기를 한다. 남들처럼 약은 짓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홍성군 홍주성 안에 소재한 여하정

난 내 길을 가렵니다. 그냥 놓아두세요.

언젠가도 그랬다. 죽어라하고 발품을 팔고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서 글을 쓰면, 이건 만날 저 꽁다리에서 허우적거리기가 일쑤다. 하루 종일 방문객이라고 해보았자. 고작 100명 안팎이다. 슬그머니 열도 뻗치고 성질 급한 내가 참기도 어려워, 가끔은 불쾌한 이야기를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지 않은가?

배운 것이 무엇이라고,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판단은 그것을 운영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한 사람이 들어와도 좋단 생각이다. 그저 꼼꼼히 글을 읽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더 해줄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여기저기 광고를 붙이는 것도, 다 부질없음을 알고 있다. 어차피 방문객도 저조한 블로그에 무슨 딱 부러진 수입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원주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석장승. 눈이 쌓여도 답사는 계속된다.

푸념은 늘 즐겁답니다.

난 가끔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마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한다면, 열이 뻗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재나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참으로 남의 것을 들여다보듯 한다. 그런데 비해 드라마나 연예인의 이야기에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보니 그런 기사를 메인에 띠우고. 그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영업이다. 영업은 당사자들의 고유권한이다. 이러쿵저러쿵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연예기사는 TV만 보고도 쓸 수 있잖아요?”
“아뇨. 그것도 무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머리도 아프고요”
“그래도 그런 것을 쓰셔야 득이 될 텐데요.?”
“그 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눈길에서 죽을 뻔한 일도 수 십차례이다.

물론 그 득이란 수입을 말하는 것인 줄도 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잘 다듬어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책을 쓴 것이 20여권이 넘는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것은 단 한 권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문화재란 우리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오늘도 그 줄을 놓지 않으려는 혼자만의 아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나이길 바란다.

이번 답사에도 비가 오네요!

답사를 하는 날이 다 좋을 수많은 없다. 어떤 날은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강행군을 해야만 한다. 때로는 태풍이 오는 날 답사를 나갔다가 길까지 잃은 적도 있다. 눈이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 있어도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길이 사라진 곳도 있다. 그래도 들어간다, 그것이 답사의 어려움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로 들어가는 길. 한 겨울이라고 답사를 멈추면 무슨 글을 써야할까?

이번 답사에도 비를 만났다. 이 계절이면 늘 만나는 비다. 이젠 그 비도 반갑다. 함께 동행을 할 수가 있으니. 차라리 비가 내리는 날이 더운 날 몸에서 쉰내가 나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그렇게 답사를 하고 정리를 해서 글을 쓴다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런 행복이 있어 남들이 들려주질 않아도 답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갓 찌어낸 찐빵처럼 따끈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

송강 정철이 속미인곡을 집필했다는 담양 송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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