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라수흥)이 오늘부터 는 화성행궁 내 봉수당에서 이야기가 있는 행궁음악회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이 공연은 6월부터 10월까지(혹서기 7~8월 제외)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장수를 위해 지었다는 화성행궁 봉수당을 배경으로 ()’, ‘()’, ‘()’의 세 가지 테마를 주제로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하는 색다른 음악회로 열린다.

 

행궁에서 열리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는 수원만의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과 어우러지는 국악공연 뿐만 아니라 전통춤과 성악곡 등 1795년 이 곳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모티브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다.

 

 

퓨전국악과 처용무 등 선보여

 

11일 오후 2, 30여 명의 관객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음악회는 정조와 송충이의 일화로 진행되는 첫 번째 공연이다. 사화자의 소개로 수원부사 조심태의 곤장 한 대’, 퉁소바위에 전해져 오는 부부의 깊은 사랑 이야기까지 다양한 스토리가 음악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관객들은 간간히 빗방울이 뿌리는데도 불구하고 봉수당 전각 안과 앞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면서 큰 박수로 격려를 하였다. 이날 공연은 수원전통문화국악단과 한국전통문화연구원 무용단 등이 30분 정도 관객들에게 전통음익괴 처용무, 퓨전 국악 등을 보여주었다.

 

 

공연 때마다 다른 주제를 설정해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로 진행이 될 행궁음악회는 한국전통문화연구원 무용단과 소프라노 이영숙, 수원전통문화국악단 등이 출연하여 퓨전국악과 전통무용,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 뮤지컬의 주제가 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무대 등 고려해서 배치했어야

 

11일 첫 공연은 한 마디로 조금은 실망스러운 무대였다. 수요일 낮 시간에 하늘까지 온통 비구름으로 덮여있어서인지 관객들도 많지 않은데다, 출연을 한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해 구경꾼들의 눈길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평이다. 처음 나팔과 소라를 들고 나온 4명이 소리를 내어 음악회가 시작됨을 알렸다.

 

 

이어서 관현악곡의 연주가 있었는데 대금, 피리, 해금, 장고 등 4명이 연주를 담당했다. 너른 봉수당 안에서 배치를 하다 보니 연주자들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어 집중력이 부족했다. 이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인 차용무의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나 좁은 무대 탓인지 동서남북 중앙을 상징하는 색의 옷을 입고 5명이 추어야 하는 처용무를 2명이 나와 대무를 하는 것으로 그쳤다.

 

처용무란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오방처용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 때 살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후기까지는 한 사람이 춤을 추었으나,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다섯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성종 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노래의 가사나 음악을 바꾸어가면서 전승되어 왔다.

 

봉수당 안에는 갖가지 기물들이 나영되어 있어 공연자들의 운신의 폭도 좁은데다 관객들도 비를 피하느라 멀리 떨어져 있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차라리 봉수당이 아닌 낙남헌에서 공연을 했다면 트인 시야와 주변에서 관람을 할 수 있어 오히려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계속될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지만, 여기서의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정가와 대비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 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긴잡가라 함은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말한다. 경기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판소리의 한 대목을 끌어 낸 경기긴잡가 중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일부 사설을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경기긴잡가의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경기긴잡가의 특징은 경기도 특유의 율조로, 대개는 서정적인 긴사설로 구성되었으며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게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우리가 흔히 경기민요라 하는 것은, 긴잡가 외에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민요들을 총 망라하여 경기민요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민요를 감칠맛 나게 표현한 음반이 출시가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민요와 화려한 관현악의 어울림 시도

 

경기민요 소리꾼 최영자씨가 소리와 관현악이 어우러진 경기민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를 신나라뮤직에서 17일 출반했다. 그동안 경기소리의 멋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온 소리꾼 최영자씨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명창 이은주, 이춘희 선생에게 사사했다.

 

이번에 새로 출반한 음반은 특별한 재주나 기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소박한 경기민요를 화려한 국악 관현악 반주를 통하여 감칠맛 나는 소리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풍부한 음향을 위해 33인이 동원된 국악 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춘 특색 있는 연출은, 경기민요를 민중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요를 부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1장의 CD로 구성돼 있으며, 경기소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금강산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궁초댕기’, ‘뱃노래’, ‘잦은 뱃노래등 총 14곡이 수록돼 있다.

 

 

인고의 고통으로 점철 된 지나 온 세월

 

우리 소리에 내재하는 흥과 멋과 한을 충실히 표현해온 최영자씨의 목소리와, 관현악의 웅장한 음향이 최적의 조화를 이룬 경기소리라는 점에서 출반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리꾼 최영자씨는 이번 음반 발표를 계기로 소리꾼으로 사는 삶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리를 배우면서 고통을 엄청 받았어요. 소리를 늦게도 시작했지만 소리가 될 만하니까 신병이 왔어요. 20여 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척추가 아파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병원을 찾아가도 의사는 아무런 병도 없다고 하고, 고통만 더 심해지고요. 나중에는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설사를 3년이나 계속하고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제발 나 좀 죽여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다는 것. 그러다가 내림은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북한산 문수사 등을 찾아가 3천배를 올리기 시작했단다. 3천배를 하면서도 제발 나를 좀 데리고 가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고통을 참아가면서 살아왔다. 남들에게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소리를 해도 기운이 없어 제대로 성음을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저요, 무대에 올라가서 가사도 까먹고는 했어요. 그것도 큰 무대에서요. 선생님과 선배들의 나무람은 그렇다 치고라도, 후배들까지 무시를 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죠. 그렇게 고통 속에 살다가 찾아 간 곳이 김혜란 선생님이예요. 거기 가서 서울굿을 선생님께 배우면서 조금씩 소리가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죠.”

 

최영자씨는 삶의 고통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피하고 싶은 현실, 그리고 남들에게 말 못할 고통. 하지만 소리가 있어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앞으로 소리공양을 하고 살아갈 것

 

김혜란 선생님께 제가 이제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음반을 내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선생님께서 녹음실에 와서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요. 선생님께는 지금도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어요. 관현악에 맞추어 소리를 하다가 보니 민요의 굴곡진 맛을 제대로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마음속에 서원을 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죠.”

 

무대에 오르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소리를 하면 굿판처럼 신명이 난단다. 그런 만큼 그녀 자신의 소리가 단 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리꾼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소리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를 바라고 있다.

 

제 음반을 절 종무소에 갖다드리고, 그것을 팔아 기금으로 사용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서원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요. 그동안 남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으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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