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다. 누구는 만믈이 소생하는 봄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좋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순백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겨울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 그 중에도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난 나름대로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유는 우선은 답사를 하기에 적당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또 어떤 모습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지. 나름대로 난 가을을 이런 것들에게서 느낀다.


가을은 낙엽에서 온다. 단풍이 들고 그것이 떨어져 있을 때 정말 가을이라는 것을 느낀다.



널어 놓은 호박꼬지며 처마 밑에 달려 있는 옥수수.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은 느낄 수가 있다.



장독대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와 초가 지붕 위에 달린 덩치가 큰 호박. 결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 그리고 절반은 떨어져 나무 아래를 노랗게 칠을 하고 있는 낙엽.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이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장독대 위에 놓인 감이 연시로 익어가고, 멍석에 놓인 감이 점점 연하게 변하고 있는 모습에서 정말 가을이네 라는 것을 느낀다.

단종임금이 숙부에게 쫒겨나 멀리 강원도 땅으로 가다가 목이 말라 마셨다는 샘 '어수정' 그 맑은 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가을임을 이야기 한다.

문화재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정말로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그러다가 가끔은 수지를 맞기도 한다. 수지를 맞았다니까, 무슨 재물을 얻은 것으로 아는 분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이야 세상 사람들 생각에 아름답게 사는 모습이라고 하면, 멋진 집에 좋은 환경. 그리고 멋진 차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드라마틱한 모습들을 연상하겠지만, 내가 사는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한 마디로 지난 세월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내에 세워둔 석등. 자연스언 바위 위에 얹은 간주석. 그리고 투구처럼 생긴 돌과 그 안에 들어있는 등잔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자연스러움은 어디에나 있다

‘자연스럽다’ 과연 이 말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 말을 다음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형용사 : 자연(自然)스럽다.

1.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어색함이 없다.
2. 무리가 없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되다

이런 정도의 설명이다. 우리말이 상당히 표현력이 좋은 것에 비해서, 설명은 참 간단하게 표현을 하고 있다. 하기에 자연스러운 것을 복잡하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세상. 물론 많은 것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좋아진 것이 살기에 편해졌다는 것이지. 정말로 자연적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8월 13일 촬영을 위한 답사를 하면서, 산청에서 만난 그리운 모습. 그것이야 말로 정말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가 있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점점 잊혀가고 있는 그리운 모습들

사람들은 옛 기억을 가끔 해내고는 한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별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지난 세월을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연히 만난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어릴 적 참 많이도 보았던 모습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에 동내 앞으로 큰 개울이 흘렀다. 당시는 물이 맑아 개울에서 피라미도 잡고, 물장구도 치고 놀았다. 그런 물이었으니 어머니들이 나와 빨래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답사를 하다가 문화재를 찾아 들어간 마을. 그곳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아련한 추억이다. 물론 시골에 사는 분들이야 지금도 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도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아련한 기억 속에 남은 정경일 수밖에 없다.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과, 집앞에서 콩대를 정리하는 할머니.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이었다.

자연은 그 모습만으로도 아름답다

그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자연이었다. 조금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집 앞에서 콩을 뽑아 정리를 하고 계신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그저 열심히 콩대를 가지런히 추스르고 계시다. 그 모습 또한 자연이다.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해온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잊혀 가고 있는 모습들. 그것이 바로 자연이었다.

또 한 마을을 들어가니 바위 위에 정자를 얹고, 그 정자에 앉아 붉은 고추를 자르고 있는 어머니도 보인다. 아주 까마득히 오랜 지난 시간에,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든다. 그 모습을 농치기 싫어서이다. 그 안에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정자에 앉아 붉은 고추를 자르고 있는 모습.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간만이 자연스러움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은 편해야 한다. 오랜 시간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감이 가야한다. 그런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답사. 그것이 바로 길을 나서게 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나도 자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식사는 제때 하세요?”
“먹을 것은 있나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세요?”

참으로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남들이 들으면 난 매일 굶는 사람 인줄로만 알 것 같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먹는 재미를 빼놓으면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왜 남자가 혼자 살면, 먹는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답사를 자주하는 나로서는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지겨울 정도이다. 사먹는 것이 배가 부른지는 몰라도, 무엇하나 입맛에 제대로 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식당 음식이야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니, 그것 때문에도 제대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먹고사는 밥상
 
잘 먹고 잘 살기

아침마다 다음 뷰에 들어가 글을 읽다가 보면, 수많은 블로거들의 요리가 눈길을 끈다. 그 많은 요리들은 항상 입 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하기에 집에 있을 때는 조금 귀찮기는 해도, 밥을 해먹는 편이다. 물론 나 혼자 있을 때를 말한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밥을 해먹는다는 것이, 별로 보기가 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받는 질문이 ‘무엇을 먹고 사는가?’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골이 난 사람인데, 언제까지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나 이렇게 먹고 삽니다’라고 발표를 해버리는 것이다.

집안에 있는 음식은 정말로 우렁각시가 해 놓은 것이다. 왜 우렁각시의 전설을 무시하는 것인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우렁각시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없으리라는 것은 억지이다. 나도 우렁각시는 있다고 늘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묻는다. 그것이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잘 보면 알 수가 있다. 난 이렇게 먹고 산다. 우선은 압력밥솥에 늘 밥을 해먹는다. 압력밥솥에 밥을 하는 것은, 이제는 전문가다. 쌀을 씻고 적당히 불려 두었다가 밥을 한다. 항상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만, 밥을 잘한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면 이젠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부터 ‘난 이렇게 먹고 산다’를 밝히련다.

나 이렇게 먹고 산다.

맨 위는 전체밥상이다. 반찬은 채소류가 주를 이루고 있다. 평상시에도 채소와 생선을 잘 먹는 편이다. 육류도 먹지만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그저 먹게 되면 먹는 그런 수준이다. 그러다가 보니 상은 채소밭을 연상케 한다.


우선 이 찌개가 문제다. 묵은지에 참치를 넣고, 된장을 가미한 찌개다. 혼자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일체의 조미료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음식이라는 것이 별것인가?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다음의 음식은 바로 내가 즐겨하는 것들이다. 위에는 황새기를 양념에 무친 젓갈이다. 잘 곰삭아 맛깔스럽다. 입맛을 돋우는 데는 그만이다. 그리고 아래 좌측은 산초이다. 간장에 절인 산초로 향이 그만이다. 남원 선원사에서 주신 것이다. 항아리로 한 단지나 되니, 올해는 충분히 넘길만한 양이다. 그리고 그 옆은 고추와 멸치를 볶은 것이다. 이것 역시 입안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맛이 있다.


김치종류이다. 김장김치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니, 별도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 갓김치와 파김치. 그리고 오이무침이다. 이런 채소류를 많이 먹어야 피가 깨끗해진단다. 피가 맑아야 머리가 잘 돌아 간다나 머라나. 이런 김치종류는 늘 입맛을 잃지 않게 준다.


그리고 영양식이다. 하루에 계란 프라이 두 개와, 그 옆에는 김을 설탕에 튀긴 것이다. 이것 역시 즐겨 먹는 것들이다. 이 정도면 영양식단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재래시장에서 들기름을 발라 구워낸 파래 김과 김장김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상당히 호사스런 상차림이다. ‘이렇게 잘 먹고 살아요?’ 그렇다. 이렇게 잘 먹고 산다. 열심히 산을 타려면, 이렇게라도 먹어야 한다.

이제는 제발 ‘무엇을 먹고 사세요?’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 이렇게 잘 먹고 잘 산다. 이렇게 내 밥상을 소개를 하면 누군가 이런 말을 반드시 할 것이다. “저도 그런 밥상 받고 싶어요”라고. 그러나 난 남에게 줄 밥상은 없다. 그러니 아예 그런 말씀들은 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나저나 설거지는 정말로 하기 싫다. 우렁각시는 설거지는 절대로 해주지 않는다.

참 친절한 이웃 덕분에 눈물을 쏟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늘 아침 이웃이 전 모둠을 한 접시 들고 오셨다. 마침 출출하던 차라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드린 다음,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디서 좀 상한 음식 냄새가 난다. 요즈음처럼 날씨가 무더울 때는, 그저 어떤 음식이던 간에 조심을 하는 것이 좋다.

전 모둠을 들어보니 약간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방금 해왔다고 하고, 아직도 따듯한 온기가 있는데. 설마 이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싶다. 하던 일을 마치고 출출하던 차에 전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다.

이웃집에서 가져 온 전 모둠. 보기만해도 먹음직스럽다.

접시에는 이것저것 많이도 있다. 송이버섯이며 동태전, 꼬치에 고추.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았지만 별 이상이 없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냄새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런데 딴 것은 다 외형만 보고도 알겠는데, 한 가지가 영 무엇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작은 생선을 통째로 전을 만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걱정을 오래하는 성미가 아닌지라. 먹어보면 될 것을.

출출하던 차에 정말로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이름 모를 전을 입에 집어넣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웩”하고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잘 삭힌 홍어전이다. 세상에 난 전을 먹다가 홍어전을 다 먹어보게 될 줄은. 목은 따갑고, 입안에는 호어 특유의 냄새로 가득하고. 누군가 정말 잘 삭힌 홍어를 먹으면 ‘코가 뻥 뚫린다’고 했다. 정말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다.

요것의 정체는 영 모르겠다. 약간 맛이 간듯도 하고. 그래서 덜썩 한입

그리고 보니 언제인가 어느 기사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아주 잘 삭힌 홍어는 전으로 부쳐 먹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이 홍어였던 것이다.

세상에 잘 삭은 홍어전이다. 내 생전 처음 먹어 본. 눈물서 부터 시작해 온갖 곳에서....

이웃의 따스함에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고, 그 전 모둠 안에 홍어전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나. 이렇게까지 감동을 하게 만들다니’라는 속없는 말을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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