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기적으로 모여 밤을 새우며 즐기던 이들은 자칭 '달빛파'이다. 달이 뜨면 웃고 떠들면 마시기 시작해 달이 질 때까지 마시는 사람들이다. 5명 중 막내인 진주 동생이 사정이 생겨 해를 건너 산수유나무 아래서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화두는 단연 힐링이다. 할링이란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Heal)은 고치다, 낫다를 말하는데, 이를 동명사화하여 힐링(Healing)으로 사용한다. 즉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힐링 뮤직이나 힐링 댄스 등도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하거나 춤을 추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가 빠른 힐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힐링 뮤직이나 힐링 댄스를 추고, 자연 속에서 좋은 길을 걷는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상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힐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좋아해 스스로 자연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자연의 상을 마련했다. 상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땅두릅, 머우 등 각종 나물들이 푸짐하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바로 힐링

 

세상에 사람들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주변에 정말 신의가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의리가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하면, 그 사람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들의 관계가 정말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이고, 서로가 이해하는 그런 사이인가는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주변에 단 2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서로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돈 생고기가 숯불 위에 놓여졌다. 오랜만에 만난 막내에게 먹이기 위해 낮에 잡은 생고기를 공수한 것이다  


 

산수유가 노랗게 피는 날 만나기로 한 다섯 사람. 하지만 살다가 보면 각자가 하는 일이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날짜를 잡아 만나기가 수월치가 않다. 하지만 지난 12일 경남 진주와 강원도 고성, 그리고 수원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로 모였다. 산수유가 이미 퍼져버렸지만, 그래도 산수유 꽃이 지기 전에 약속대로 만난 것이다.

 

그저 세상이 즐거운 사람들.

 

이 다섯 사람은 여주에 사는 부부를 빼놓고는 모두 남남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호칭이 형, 동생, 혹은 오라버니, 누님이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느 누가 아파하면 다 같이 그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쁜 일도 있어도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를 해 줄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일 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각자가 모이기 전에 장을 보아온다는 것이다. 그 장보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들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보니 이들 모임은 항상 푸짐한 먹거리가 준비가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비싼 음식도 아니다. 서로가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구는 마트 등을 이용하지만, 집에 있는 것들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니 만날 때마다 많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대식가들도 아니지만 그저 만나면 즐거움이 넘친다. 별 이야기가 아닌 것을 갖고도 웃고 떠들면서 난리들을 친다. 남들은 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힌다. 그만큼 이들을 독특한 개성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서로간의 믿음이 있다.

 

 

술잔에 조팝나무 꽃을 따다가 넣어준다. 그리고 동동 띄운 얼음속에도 꽃이 숨어있다. 이들이 지연을 즐기는 방법이다. 


 

자연인들이 자연에서 자연을 만나다.

 

여주에 모일 때는 음식이 모두 자연이다.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들을 한 상 차려낸다. 시간이 되면 직접 산행을 해서 얻어 낸 음식도 준비한다. 그리고 각자가 갖고 온 맛있는 음식도 곁들인다. 상은 늘 푸짐하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힐링이 아닐까? 더구나 조금 쌀쌀하긴 해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공기 좋은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던가?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조팝나무 꽃 잎을 술잔에 넣어준다. 그리고 내온 얼음에도 꽃이 있다. 그 역시 자연이다. 좋은 자연의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음식. 최고의 힐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만나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 헤어질 때는 늘 서운함이 앞서지만, 또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들 한다. 진주에서 올라 온 막내가 오랜만에 자리를 함꼐 해 더 즐거운 만남의 자리. 자연에서 자연을 만난 자리이다.

 

'등공'

 

이란 육신이 살아있는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몸은 벗어버리고 영혼만 부처님의 연화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등공은 염불만일회에서 이루어진다. 염불만일회란 일념으로 염불을 목적으로, 살아서는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은 후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회를 말한다.

 

염불만일회의 시작은 신라 경덕왕 17(758, 무술년)에 발징화상께서 원각사를 중수하고 염불만일회를 베푸니, 이것이 한국불교 염불만일회의 효시이다. 이 때 발징화상이 정신, 양순 등 스님 31명과 염불을 드렸는데, 뜻을 같이하는 신도 1,820명이 환희심이 일어 자원을 하였다.

 

 

그 가운데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시주하여 주야로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는데, 신라 원성왕 3년인 787년 염불만일회에서 선행을 닦던 스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났으며, 시주를 하던 신도들도 모두 극락왕생을 하였다고 전한다.

 

건봉사 북쪽 금강산에 자리한 등공대

 

건봉사 북쪽에 위치한 등공대는 만일(275개월)동안 기도하시던 스님들이 원성왕 3년인 787년 회향을 할 때, 건봉사를 중심으로 사방 허공으로 몸이 그대로 떠올라 날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1.5km 정도를 날아오른 스님들은 육신의 허물은 그대로 땅에 떨어트리고, 맑고 밝은 정신만 등공을 한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900년인 광무4년에 들어, 스님들의 다비식을 거행한 곳을, 몸을 살랐다고 하여 <소신대(燒身臺)>라고 하였다. 소신대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 뜻을 기려 기도에 정진을 하였는데,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부서지고 허물어져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던 양씨 성을 가진 연대월 보살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백원을 희사하고, 기념탑을 세워 봉안할 것을 서원하였다. 이를 가상히 여긴 스님들과 신도들이 동참하매, 순식간에 모인 돈이 천원이 모였다. 갑인년(1914) 4월에 역사를 시작하여, 을묘년(1915) 5월에 역사를 마치고 등공탑을 세워 그 뜻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 후 소신대를 등공탑이 있다고 하여서 <등공대>라고 불렀다.

 

'휴거'는 건봉사에서 이루어졌다?

 

 

건봉사 등공대는 이렇게 31명의 스님들이 살아있는 몸을 그대로 허공으로 올랐다는 기록이 있어 유명하다. 신라 때부터 많은 스님들이 금강산 건봉사를 수행처로 삼은 점이나, 우리나라의 4대 사찰에 건봉사가 들어가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1915년 세워진 등공탑 비문에 보면(운고 김일우 지음) 절 북쪽 5리쯤에 아직도 몸을 불사른 대가 있는데, 오랜 세월을 겪다보니 꽃이피고 잎이지는 변천을 겪었다. 많은 시일을 보내자니 바람에 닳고 비에 씻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폐허에 돌을 포개놓고 구경하게 두매, 산도 이로 인해 무안해 하고, 물도 이 때문에 소리를 삼킬 지경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일(萬日)의 정진으로 인해 살아있는 육신 그대로 몸이 떠올라, 1.5km나 위로 올랐다는 기록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신라 때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 아직도 그 뜻을 기리는 건봉사. 그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도 한 때 이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오늘 등공대에서 합장을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항상 서로를 생각하는 친구 두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삶이라고 합니다. 늘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래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죠. 엊그제인가 강원도 고성에 거주하시는 지인 한 분이 수원으로 오셨습니다.

 

지인이 거주하는 곳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 인근인데, 이번에 눈이 2m나 내린 곳입니다. 그곳에서 거의 20일 간이나 외부와 소통을 하지 못한 체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는 하다가, 이번에 20여 일만에 포클레인으로 길을 내고 단숨에 수원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간을 따질 필요없어

 

사진을 찍어서 갖고 온 것을 보면 정말 쌓여있는 눈이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몇 년 전인가, 저도 속초에서 한 3년 정도를 산 적이 있습니다. 그 해도 2월에 눈이 내렸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1m가 넘는 눈이 쌓여, 아침에 난리를 피운 적이 있습니다. 그 뒤 며칠 후에 수원에 일을 보러 나왔더니 20cm인가, 눈이 왔는데 교통대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많은 눈을 보다가 보니 별로 쌓인 것도 아닌 눈에도, 사는 환경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영동지역 사람들은 그 정도 눈은 눈 취급도 하지 않는데 말이죠. 고성에 사는 지인은 수원으로 오다가 여주에 사는 동생과 동행을 했습니다. 늘 보고 싶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만나면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자들만의 모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통닭골목에 있는 집에서 만나 통닭 한 마리 시켜놓고 그저 술잔만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수원에 사는 동생까지 합세를 했습니다. 제가 늘 좋아하는 사람들 중 반은 모인 셈이죠. 그때부터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하면서 또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수원의 아우네 집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딱히 모여야 할 이유도 없지만, 이렇게 한 번 모여서 술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곁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

 

사람들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합니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죠. 이 날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비슷한 아픔을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아픔의 종류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당장에라도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고 나면, 더욱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소중해집니다. 그 소중함을 오래 간직한다는 것이 바로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먼 길을 눈을 헤치고 달려 온 지인. 불과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고 또 황망히 길을 떠났습니다. 고작 아침 한 그릇을 함께 나누고요.

 

 

하지만 그 하루가 남들의 몇 날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마음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몇 사람만 있다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단순히 사회에서 아는 사람, 혹은 직장의 동료나 친구.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내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침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고성에 사는 지인이 보내 준 눈 사진이 있습니다. 그 험한 눈길을 큰돈을 들여 포클레인으로 눈을 헤치고 달려온 길. 그리고 하루 만에 다시 돌아간 길. 그런 길을 함께 동행 할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한 날입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산136-11에 소재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4호인 고성화암사(高城禾岩寺)’는 신라 혜공왕 5년인 769년에, 법상종의 개조인 진표율사가 화엄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이 절은 조선 인조 1년인 1623년에 소실되었다가, 인조 3년인 1625년에 고쳐 짓는 등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그 뒤 고종 1년인 1864년에는 지금 있는 자리인 수바위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가 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다시 한 번 불에 타 모두 소실이 되었던 것을 훗날 법당만 다시 지었다. 화엄사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들은,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 준비를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화암사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화암사는 금강산 일반 이천봉 팔만 구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봉우리의 두 번째인 신선봉의 바로 아래 세워져 있다고 한다.

 

수바위에 얽힌 전설

 

속초에서 고성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보면 좌측으로 금강산 화암사라는 이졍표가 보인다. 또 한 곳은 속초에서 미시령 터널로 향하다가 미시령 옛 길로 접어들어도 같은 이정표가 보인다. 어느 방향을 택해도 화암사를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화암사경내를 향해 가다가 좌측에 보면 희게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바위를 수바위라고 부른다.

 

이 절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화암사라 부른 것은 1912년부터이다. 절 이름을 바꾸게 된 것도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우뚝 솟은 왕관 모양의 바위인, 이 수바위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화암사의 스님들은 모두 수바위 위에 편안히 앉을만한 곳을 찾아 좌선을 시작했다. 이 수바위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그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의 공양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주를 해오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행을 하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지팡이로 세 번만 두드리면 쌀이 나올 것이다. 그 공양미로 밥을 지어먹고 열심히 수행에만 힘쓰라고 사라졌다. 꿈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백발노인을 본 것을 이야기를 한 스님들은 백발노인의 말대로 했더니 정말 쌀이 나왔다.

 

 

지금도 이 수바위에서 기도를 한 스님이나 신도들이 밤에 꿈을 꾸면 이 백발노인이 나타나 미리 닥칠 일을 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회암사로 이름을 바꾸게 한 그 수바위의 쌀이 나오는 구멍은 어찌되었을까? 여기도 마찬가지로 욕심이 많은 한 사람에 의해 그 쌀이 나오는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전설은 그렇게 어디서나 똑 같이 마무리를 한다.

 

삼성각은 유명한 기도도량

 

봄이 금강산 줄기 아래 고성 땅에 꽃소식을 몰고 올 때 찾아갔던 회암사. 한편에서 봄을 알리는 벚꽃이 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삼성각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미 촬영을 다 마치고 여유롭게 삼성각을 합 바퀴 돌아보고 싶어서이다. 화암사 삼성각은 유명한 기도도량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서원이 이루어지려나?

 

 

삼성각 안 벽면에는 금강산 천신대, 상팔달, 세선봉, 삼신대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화암사가 금강산 화암사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긴 이 화암사에서 진표율사가 화엄경을 설하고 난 뒤 그의 제자 100명이 화엄경을 배우다가 그 중 31명이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69명은 무상대도를 얻었다고 하는 곳이다.

 

이런 이야기는 고성 끄트머리에 있는 절 건봉사에도 전한다. 건봉사에는 그렇게 많은 스님들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곳에 등공탑이 서 있어, 이곳보다 더 실제에 가깝게 느껴진다. 삼성각에서 참배를 하고 전각 밖으로 나온다. 수바위에서 불어온 바람 한 점이 108배에 흐른 땀을 식혀준다. 이런 행복함에 절을 찾는 것이다 아닌지.

지붕에 쌓인 눈의 높이가 150cm란다

 

연일 일기예보와 뉴스에서 강원도 북부지역의 눈 소식을 전한다. 미시령은 눈사태로 인해 통행이 금지되었고, 진부령에는 최고 120cm의 눈이 쌓였다고 한다. 중장비를 동원해 눈을 치우고는 있지만, 그것도 큰 도로뿐이지 골목이나 외떨어진 마을 등에는 아예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강원도 지역 여기저기에 벌써 고립된 마을들이 생겨나고, 구조요청을 하고 있기도 한단다. 5일 동안이나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눈은 이미 눈이 내린다는 감상적인 눈이 아니고, 그야말로 폭탄이라고들 한다. 단순한 눈사태가 아니라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올 것인지. 목요일에는 또 눈 소식이 있다고 하는데.

 

문을 열 수도 없을만큼 눈이 쌓여있고 밨으로는 나갈수도 없다고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더니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119번지에 소재한 정수암. 지난해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이곳에 인법당을 마련하셨다. 늘 찾아간다 하면서도 마음만 앞설 뿐, 자주 갈 수가 없는 것이 거리도 거리지만 도통 여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곳까지 다녀오려면 적어도 23일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불안하다. 진부령이면 양양과 고성의 경계인데 그곳에 120cm의 눈이 왔다면 스님이 계시는 곳은 그곳보다 더 북단인 화진포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었다.

 

스님 안녕하세요?”

, 눈이 너무 많이 왔어요.”

밖에 출입도 안 되시죠?”

출입은요. 겨우 공양간 다니는 길만 치웠어요. 지붕에 쌓인 눈을 재보니 150cm 정도 되네요.”

여기서는 제일 많이 온 곳이 120cm라고 하던데

넓은 지역을 일일이 잴 수가 없을 테니까요 신고는 했는데 여기까지 들어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큰 길도 아직 못치우고 있다는데.”

스님 불편하신 것은 없으세요.”

, 쌀 있고 땔 것 있으니 살 수 있죠. 동안거 한 번 제대로 하고 있네요.”

 

창문까지 내린 눈이 쌓여있다.(위) 아래는 길을 내고 찍은 사진에는 눈이 처마까지 쌓였다

 

스님의 밝은 웃음소리에 안심을 한다. 언제니 세상을 늘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물론 스님이라는 수행자의 신분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스님은 사람을 만나면 참 재미있게 만들어 주신다. 함께 자리를 하는 사람 모두가 웃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남에게 웃음을 준다.

 

보내온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스님과 통화를 마치고 잠시 뒤에 문자가 들어온다. 연이어 들어오는 문자를 열어보니 스님이 묵고 계신 곳을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여 보내셨다. 그 사진을 보다가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눈이 온 것이 아니고 눈 폭탄이라고 해야 옳다. 길을 겨우 냈는데 그 길이, 쌓인 눈이 무너져 내려 막혀버렸단다.

 

좌측에 세워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차를 눈이 덮어버렸다(위). 길을 내려고 치우다가 눈 사태를 만났다고

 

스님 이웃에 연세가 많으신 분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강원도에 사신 것이 5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눈 폭탄이 퍼부어서 비닐하우스며 축사 등에도 많은 피해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저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스님. 일기예보에는 강원도의 기온이 떨어져 눈이 그대로 얼어버렸다고 보도를 한다.

 

스님 건강하시고 몸조심하세요.”

그저 이런 문자 하나로 마음에 위안을 삼는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그저 안녕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새삼 자연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보았자, 결국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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