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에서 주관하는 수원의 전통시장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을 필진들이 찾아 나섰다. 넘어오는 원고를 보면서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안녕한가에 대해 묻고 싶은 생각이다. 한 마디로 수원의 일부 전통시장들은 초비상이 걸린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전혀 안녕하지 못한 전통시장들이다.

 

그 안녕치 못한 이유는 바로 수원역 뒤편에 7만여 평이나 되는 대형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L그룹에서 쇼핑몰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올 추석을 전후해 개장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몇 년 전인가 수원역에 A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도,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일부 전통시장은 초비상사태

 

아무래도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그곳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전통시장들로서는 안녕할 수가 없다. 넓은 주차장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고, 거기다가 개점 특별할인 행사 등을 하면서 손님들을 끌어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쇼핑몰 측과 수원시 상인연합회 측이 회동을 가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은 없는 상태인 듯하다.

 

한 대학에 연구조사를 의뢰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전통시장이 닥칠 위기가 살아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기업에 맞서서 싸움을 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통시장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한다. 쇼핑몰과는 취급하는 물품이 다르다는 이유란다. 또는 거리가 멀어 직접적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시장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은 쇼핑몰이라는 곳이 어차피 모든 상품들을 골고루 판매를 할 것이다. 농축산품은 물론, 의류, 전자기기, 문구, 화장품 등에서부터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취급을 할 것이다. 그래야 쇼핑몰로서의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리가 조금 떨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은 장을 보러갈 때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차를 이용하는데, 전통시장들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자연 주차시설이 좋은 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상생의 해결방법 찾아야

 

전통시장의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상인회장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한 상인회는 A백화점이 개관을 한 후 200여개에 가까운 점포 중에 40개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백화점 입점업체와 동일한 메이커를 파는 점포들이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백화점 입점 업체들이 메이커 본사 측에 주문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동네 구멍가게를 노리고 빵집이며 심지어는 순대까지 손을 댔다가 여론의 질타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 적이 있다. 그런 양상으로 볼 때 상도덕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은 어려운 가운데도 살아남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전통시장은 민초들의 삶의 근원이다. 이러한 전통시장이 또 다시 피해를 본다면, 그러한 아픔은 그대로 민초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서로가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녹녹치가 않은 모양이다. 풍문에는 자신들의 상가가 더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에 보상을 더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과연 온전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정조대왕의 정신 잊지 말아야

 

수원은 딴 지역과는 다르다. 수원의 상권은 화성을 축성한 후 정조대왕이 직접 내탕금을 주어 마련한 장시이다. 하기에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대왕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장시이다. 일찍 정조는 팔달산 아래로 읍치를 이전하였고, 이에 따라 수원장도 함께 이전되어 왔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새로운 개혁도시 수원을 꿈꾸었다.

 

 

정조는 서울 도성의 육의전을 본떠 화성 안에 시전을 열도록 하였다. 수원의 경우 포목전과 미곡전, 어물전 등 시전을 화성행궁 십자대로 주변에 개설되었다. 그리고 성 밖에 또 다른 장시를 개설했는데, 북문 밖 영화동과 남문 밖 구천동이었다. 북문 밖 장시는 오래지 않아 소멸하여 남문 밖 구천동의 성밖 장이 수원을 대표하는 장시가 되었다. 바로 지금의 팔달문 밖 전통시장들이다.

 

한 마디로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장시이다. 장사는 상도덕이 있어야 한다. 상도덕이란 상부상조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도덕을 무시한다면 정조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수원의 전통시장. “오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라는 대답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시 팔달구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 자리한 전통시장인 ‘영동시장’.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 이층 문화공간 아트포라

 

영동시장은 그동안 시장을 살리고, 주변 대형매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동시장 이층에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이곳은 ‘문화예술 종합공간 아트포라’라고 명칭을 붙여, 10여 개의 공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아트포라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오직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임대료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모두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포라의 작가들의 공방 맞은편인 좌측에는, 커피숍과 미장원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전시공간과 뒤편에 대강당이 자리한다. 워낙 넓은 공간을 이용하다가 보니 전시 공간 앞이 휑하니 비어있어서, 조금은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에 영동시장 아트포라를 찾았다. 그런데 2층에 비어있던 공간이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30%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몇 분이 한 공방에 모여 있다. 평소 안면이 있어 더위도 피할 겸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네요. 그동안 휑한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그 전시물들이 모두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의자랍니다. 그저 아무나 이곳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편히 쉬어갈 수가 있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2013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리던 행궁 광장에서 본 것들도 있네요.”

“예, 원래는 이곳 아트포라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 마련한 것인데, 국제연극제에 먼저 선을 보인 것이죠. 그곳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고요. 앞으로 이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요”

 

 

학생들과 함께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를 한 김춘홍 작가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행궁 광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차이가 나게 만든 의자며, 여행용 가방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만든 의자. 그리고 그저 여기저기 놓인 것들이 다 앉을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된 것이다.

 

“어디 아까워서 사람들이 앉을 수나 있겠어요?”

“앞에다가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 적어 놓아야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의자. 한 곳에 앉아본다. 작품 위에 앉았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의자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아트포라가 입주를 한 뒤, 달라지고 있는 영동시장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영동시장 상인회 이정관 회장의 말마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흔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이 가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온누리님은 글을 써도 베스트에 걸리지도 않고, 조회수도, 추천수도 높지 않은데 그렇게 순위를 버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솔직히 블로거 짓 7년차 정도되면 산전수전 다 격었다고 보아야한다. 나도 인간인데 그런 것에 어찌 연연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나 역시 그런 것에 과민반응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참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남들처럼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날마다 수만명이 찾아오는 블로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일 올리는 글마다 빨간 마크를 다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나도 내가 이렇게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고 나름대로 판단을 한다면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주제를 정해라


난 스스로 '문화블로거'임을 강조한다. 주로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올린다. 그 글은 현장성이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데 조금 가산점을 주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한다. 또한 주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문화면'에 글이 오르게 된다, 그런 것이 쌓이는 것인가보다. 하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블로거들에게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글을 쓰라'고 권유를 하고 싶다.

일례로 글을 문화면에 보내지 않고 딴 곳으로 보낸 글이(물론 문화적인 글도 아니다) 하루에 다음 메인에 걸리는 바람에 조회수 6만 명을 상회하고, 추천수가 600을 넘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순위는 10계단이나 떨어지는 이해안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런 것을 보아도 주제를 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끈기를 갖고 글을 써라


난 하루에 한 개 이상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아주 많이 바쁘다고 해도 미리 송고를 해 놓는다. 많이 쓸 때는 주제에 맞는 글을 두 개씩 쓸 때가 많다.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가산점을 받는 듯하다. 난 알고리즘이나 어떤 열린편집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하다. 솔직히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답사를 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정리해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난 추천도 높지 않고, 조회수도 적다. 15일동안 베스트 하나가 없다. 그런데도 순위가 오른다. 그것은 꾸준히 한 주제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또 베스트나 조회수, 혹은 추천수와도 무관하단 생각이다. 예를 들어 9월 1일에 내 순위는 103였다. 하루에 두 개씩 꾸준히 글을 썼다. 9월 들어 그 많은 글들이 베스트에 걸린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루에 한 단계씩 꾸준히 올라 오늘 89에 있다. 결국 꾸준한 글 쓰기가 점수를 얻었다는 결론이다.

순위에 연연하지 말아라


누구나 다 순위가 높아지면 좋다고 한다. 나 역시 순위가 앞에 있으면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다음뷰 나름의 정해진 룰이 있다면 그도 따라야 한다. 그 룰을 이렇고 저렇고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하기 위해서라면 순위에 연연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칫 그런 순위경쟁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되고, 그 다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글쓰기를 소홀히 대하게 된다.


파워블로거들의 글을 보고 배워라

파워블로거한 블러거들. 그 명성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요즘 다음 뷰의 흐름이 연예나 연애 등에 중점적으로 많은 글을 올려주고는 있지만, 그도 시류의 흐름이다. 자신이 꿋꿋하게 글을 써 간다고 하면, 언제간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되고, 그 때부터 파워블로거에 도전을 하면 된다. 파워블로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오력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말미) 나도 조회수 적고, 추천수 적고, 베스트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 간다면, 언제가는 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블로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부터 주제를 정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리고 좋은 블러거들에게 배우는 마음을 가져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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