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는 고담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 뒤편에는 화강암 바위를 그대로 깎아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거대마애불이다. 이런 거대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 마애불 역시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왜 이렇게 거대한 마애불을 조성했을까? 아마 그것은 국운의 융성함과 더불어, 고려라는 나라의 국권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물 제375호로 지정된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바위 면을 다듬어 조각한, 전체 높이 6.4m에 불상 높이가 5.8m나 되는 거대한 마애여래불이다.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고담사 뒤편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375호 마애여래입상

염주와 화염의 문양으로 돌린 두광

고담사 뒤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훼손이 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 풍광에도 아름답게 보존이 되고 있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 마애불의 특징은 바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 모양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까지 모두 볼록하게 조각을 하였다.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돌려 조각을 한 마애불은 보기에도 화려하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연꽃 봉우리처럼 조각을 한 상좌가 있고, 그 밑에는 탑의 기단부와 같은 모습으로 하대로 구분이 되어있다. 특히 하대에는 석탑에서 보이는 우주와 탱화가 표현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탑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표현을 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받침에는 상좌와 하대가 표현이 되어있다. 하대에는 석탑의 기단부와 같이 우주와 탱주, 안상 등이 나타난다. 두광와 신광은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조각해 화려하다.

조금은 균형이 안맞는 덜 세련된 조각수법

길고 큰 전신에 비해 나발과 육계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가늘게 감은 듯한 눈과 두툼한 꼭 다문 입등은 강력한 인상을 풍긴다. 적당히 표현된 코와,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은 위엄스러움을 담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넓은 어깨에는 대의를 걸쳤는데, 가슴에서 한 번 꼬여 양편으로 늘어진 것이 망토와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도에서 시작이 되어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시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체적인 형태의 조각기법에서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이 통일신라의 마애불 조각기법을 따른,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보는 이유다. 발은 크고 두툼한데 비해 손은 작은 편이다. 그런데 손을 조각한 수법이 색다르다. 몸에 비해 도드라지게 조각이 되어 있다. 아마 손이 작게 조각이 된 것도 저렇게 위로 도드라지게 조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금은 비례가 맞지 않는 손과 발

덕전리 마애불 앞에서 세상을 위해 참배를 하다.

전국 이곳저곳을 답사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화재들. 이렇게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을 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들. 그리고 훼손되고 도난당한 문화재들. 이런 아픔을 위한 반성의 참배다.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은 이 산 중 깊은 곳에서 천년 세월을 꿋꿋하게 지켜졌다면, 무엇인가 신비스런 힘이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 굳게 다문 눈이며 입이, 그리고 왼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모습이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뒤돌아 산을 내려오면서도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되는 마애불. 아픔을 당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기원을 해본다. 이제는 제발 몇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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