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거든 서산 상왕산 개심사로 가라왜 이런 말을 할까? 그것은 개심사의 가을은 일대 장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사찰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절은 계절별로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이 계절에 찾아갈 만한 곳을 여러 곳 있다. 모두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산 개심사를 비롯하여 경상도의 영주 부석사, 강원도의 고성 건봉사, 전라도 부안 내소사, 경기 한국민속촌 경내 금둔사 등이 가을에 더 아름다운 곳이다. 하긴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니 이렇게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은 주관적일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을이면 꼭 한 번씩 찾아가는 서산 개심사는 꼭 계절을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스님, 너무 곡차를 많이 드신 것은 아니셨는지?”

 

개심사는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5년과 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진덕여왕 5년은 651년이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으로 다른 해에 해당한다. 아마도 지역으로 보아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개심사의 대웅전 해체 수리 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성종 15년인 1484년에 대웅전을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는 개심사 대웅전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좌측으로는 요사로 사용하고 있던 심검당이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8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심검당을 만나면, 그야말로 파안대소가 터져 나온다. 심검당 좌측의 출입구 문을 보면 양편 기둥과 위에 놓은 들보가 모두 자연이다. 구부러진 나무를 치목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했다.

 

이 건물을 지으면서 스님들이 왜 치목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날 심하게 곡차라도 한 잔 하시고, 귀찮아 그냥 나무를 올린 것일까? 아니면 자연이 좋아 자연을 그냥 목재로 사용하신 것일까? 그런데 개심사에는 이런 기둥이 심검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양루 우측 일각문을 통해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무량수각의 뒤편에도 이런 기둥이 보인다.

 

 

가을에 개심사를 찾아간 까닭은?

 

9일 찾아간 상왕산 개심사. 이미 가을은 개심사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구부러지고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기둥들도 가을과 더불어 개심사를 또 다른 자연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안양루 앞에 조성한 종각기둥도 예외는 아니다. 이 절은 그저 모든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난 가을이면 개심사를 찾아간다.

 

명부전을 지나면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 산길 또한 자연이다. 누구하나 이 산길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려고 하지 않는다. 스님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를 사람들이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개심사에 가면 이 가을에 자연을 만난다.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아름답게 만들어진 자연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극치란 생각이 든다. 해우소 옆에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아직은 잎을 많이 달고 있지만, 날이 지나면 그 노랑 은행잎들이 모두 떨어져 해우소 지붕을 물들일 것이다.

 

가을이 되면 찾아가는 상왕산 개심사. 이곳은 모든 것이 자연이다. 나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자연이 되고 싶기 때문에 난 개심사를 찾아간다. 내년이 와도 난 또 이 계절에 개심사를 찾아 스스로 자연이 되기를 원한다.

 

불교나 무속에서는 윤달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절에서는 윤달이 들면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생전예수재를 열고, 무속에서는 윤달에 삼사순례를 한다., 삼사순례란 말 그대로 하루에 절 세 곳을 돌아오는 일이다. 절 세 곳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염원하는 바를 서원하는 것이다.

 

9일 오전 7.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려암 신도들이 버스에 올랐다. 45명 정원인 버스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지동을 오전 730분경에 출발해 서산 간월암과 예산 수덕사를 거쳐, 다시 서산 상왕산 개심사를 돌아오는 여정이다. 하루에 세 곳의 절을 돌아본다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은 여정이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서산 간월암에 도착한 시간이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런데 간월암부터 사람들이 많다. 무슨 일일까? 1113()이 수능일이다. 그래서 절마다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찾아들어 서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넓지 않은 간월암 대웅전에 사람들로 만원이다. 연신 나가고 또 들어오고. 아마도 윤달과 수능일이 겹치다보니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드리는 것은 아닌지.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소재한 간월암. 물이 만조가 되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 작은 암자는,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닦던 중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서 간월암이라는 암자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무학스님은 20세 때 이곳에 들어와 토굴을 짓고 열심히 수도를 하다가 달을 보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무학이라는 법호도 나옹스님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여 법호를 무학(無學)이라고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불타는 수덕사,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소재하는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 ~ 397) 때에 지명법사가 사비성 북부에 수덕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불교의 5대 총림의 한 곳인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때 지명법사가 창건을 하고, 고려 공민왕 때 중수를 하였다. 그리고 조선조 고종 2년인 1865년 만공스님이 중창을 하였다. 전설에는 세 번을 지은 것으로 전하고, 실제로 수덕사는 창건 이후 두 번을 중창을 해 세 번째 모습을 갖추었다.

 

수덕사 입구부터 사람들이 길을 빼곡하게 채웠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걷는 길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다. 3 자녀를 둔 부모들부터 올 단풍의 절정을 맛보려는 관광객들까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진을 어디서 찍어야 사람들을 피할 수가 없다.

 

 

문화재 사진촬영을 하고나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그야말로 수덕사에 불이 붙었다. 그동안 수십 차례나 찾아 온 수덕사다. 그런데 이렇게 단풍이 아름다운 절인 것을 알지 못했다. 문화재 하나를 사계절 다 찾아보아야 한다고 늘 생각을 했지만, 이 계절에 수덕사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형형색색의 단풍에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상왕산 개심사 여긴 또 왜 이래?

 

가을이면 상왕산 개심가로 가라고 했단다. 그동안 가을이면 빠트리지 않고 찾아왔던 서산 개심사. 그런데 예전의 그 화려했던 단풍이 아니다.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1-5에 소재한 개심사는, 아직도 백제 때의 기단이 남아있는 절이다. 개심사를 찾아가는 길을 굳이 가을을 고집했던 것은, 가을이 참 아름다운 절이기 때문이다.

 

 

개심사 명부전 앞 텃밭 가운데 있는 감나무 한 그루. 잎은 다 떨어지고 감만 주렁주렁 달려있다. 스님들이 이 감을 마다하고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것일까? 그 감을 바라다보다가 산신각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서 진정한 가을을 만난다. 붉은 단풍이 아닌 색이 바란 나뭇잎들이 떨어져 만든 가을. 개심사는 그렇게 조용히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 사람도 손잡고 가는데 우리도 손잡고 가요.”

 

일행 중 부부가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부부끼리 모두 손을 잡고 걷고 있다. 그럼 난 누구 손을 잡아? 괜히 퉁명스런 말 한마디 한다. “여자들 많이 있네요. 아무나 골라잡아요.”라는 대답에 갑자기 옆구리가 시리다. “그럴까라는 대답으로 말을 막는다. 하지만 이 가을에 불붙는 단풍을 보고도 쓸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옆구리는 왜 이리 시린 것이고.

개심사(開心寺). 말 그대로 ‘마음을 여는 절’이란 뜻이다. 이 절에 가면 절로 마음이 열릴까? 그렇다면 그 마음이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려 108배를 하면 마음이 열릴까? 아니면 도력 높은 스님의 법문으로 인해, 꽁꽁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릴까? 참 알 수 없는 절 이름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 절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전각들에게서, 그만 마음이 열리고 말았다. 괜히 넋 나간 인간처럼 비실거리고 웃다가 보니, 절로 마음이 열렸다. 충청남도에 있는 절집 중 4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개심사는, 처음에는 개원사였다고 한다.

 

백제 때의 기단이 남아 있어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1-5에 소재한 개심사는, 아직도 백제 때의 기단이 남아있는 절이다. 현대의 대웅전은 성종 6년인 1475년에 산불로 소실이 된 것을, 성종 15년인 1484년에 중건하였다. 1484년에 중건한 대웅전이 아직 보존이 되어있으니, 대웅전은 530년이라는 세월을 지키고 있는 전각이다.

 

대웅전의 기단은 백제 대 것이라고 

 

보물 제143호로 지정이 된 대웅전은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개심사 경내에는 보물인 대웅전 외에도 보물 제1264호로 지정된 영산회 괘불탱, 충남 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 충남 문화재자료 제358호인 심검당 및 아미타본존불, 관경변상도, 칠성탱화, 오층석탑, 경전 목판 등의 자료가 있다.

 

여름에 처음으로 만난 개심사

 

개심사는 벌써 4~5 차례나 찾았던 절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았을 때는 모두 가을이었다. 굳이 가을을 고집했던 것은, 가을이 참 아름다우 절이기 때문이다. 7월 28일(일), 이번에 처음으로 한 여름에 개원사를 찾은 셈이다. 개원사는 아름다운 절이다. 전에는 계단과 흙길로 오르막이었으나, 이번에 찾아가니 계단을 말끔히 정리하여 사람들의 보행에 편하게 해 놓았다.

 

해탈문서 부터 기둥이 틀어졌다(위). 종각 역시 마찬가지

 

절집을 찾아갈 때 바쁠 이유가 없다. 삼사순례로 찾아간 개원사였지만, 일행의 뒤에 쳐져 혼자 길을 걷는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고는 있지만, 빗방울 몇 방울 더 맞으면 어떠하랴. 계단을 오르다가 보니, 저만큼 개심사가 보인다. 계단 끝에는 아름드리 고목과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 자란 배롱나무는 꽃이 지고 있다.

 

개심사 경내로 접어든다. 대웅전과 안양루가 남북으로 배치가 되어있고, 심검당과 무량수각이 동서로 나뉘어져 자리하고 있다. 무량수각 뒤로 돌면 명부전이 있고, 그곳을 지나 산길로 오르면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나 이 절을 찾아가면 그리 마음이 느긋해진다.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까?

 

심검당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자연은 개심사 곳곳에 있다 

 

스님, 치목이 안 되었나 봅니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안양루 옆으로 작은 해탈문이 있다. 그 해탈문을 들어서다가 그만 웃고 만다. 괜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제 멋대로 구부러진 나무를 이용해 조성을 한 일각문. 스님이 치목을 하기 싫으셨을까? 아니면 그냥 제멋대로 갖다 맞추신 것일까? 일각문의 묘한 생김새가 사람을 즐겁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종각의 기둥들도 제멋대로다. 얼마나 자연스런 스님이 머물다 가셨기에, 자연 그대로를 이렇게 기둥으로 사용을 하셨을까? 심검당의 배흘림 기둥도 눈길을 끈다. 심검당 한 편으로 돌아가니 이 곳 기둥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면 그렇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생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틀어짐의 압권인 전각(위) 과 명부전도 틀어지기는 마찬가지

 

무량수각 앞에서 대웅전을 향해 합장을 하고 난 뒤, 무량수각을 지나 명부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예스런 전각 하나가 서있고 앞에는 사람들이 담소를 하고 있다. 이 전각의 기둥 역시 제멋대로이다. 개원사의 스님들은 나무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치목을 하지 않으셨을까?

 

산신각에 무슨 까치살창이 있어?

 

명부전 앞을 지나치려는데, 삼사순례를 도는 일행들이 명부전에서 나온다. 잠시 안을 향해 합장을 한다. 명부전 기둥 역시 뒤틀려 있다.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을 걷는다. 몇 해 전인가?, 가을에 이곳을 찾았을 때 단풍이 떨어져 만든 아름다운 관경이 눈에 선하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는데. 산신각 앞에도 무리가 지어 있다.

 

 

일행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돌아가려면, 어디를 들어가 제대로 108배 한 번 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답사를 다닐 때마다, 혼자 호젓하게 길을 떠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그저 108배를 하던지, 아니면 피곤한 다리를 쉬던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아서이다.

 

비바람에 산신각의 기왓장이라도 날아갈까 봐 그랬는가? 끈으로 묶어 놓았다. 산신각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전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산신각에 무슨 까치살창이 있지’. 이런 것은 부엌이나 광에나 사용을 하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개심사라는 이절, 하나도 정해진 틀이라는 것이 없다.

 


 2007년 11월 11일 단풍이들고 낙엽이 가득한 깊은 가을의 개심사 모습입니다


 

“스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하나같이 제멋대로입니까? 그래서 닫혔던 마음이 비틀어진 기둥사이에 난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빗장을 열어주었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이 절에서 스님 덕분에 마음을 열고 갑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단풍들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져 간다. 그런 단풍들이 아쉬워 연일 단풍을 보려는 사람들로, 단풍이 절경이라는 곳은 만원이란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자리한 상왕산 개심사. 가을 단풍이 그리운 사람들에게는 제몫을 다하고 있는 곳이다. 일주문에서 돌로 만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발밑을 간질이는 낙엽들과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단풍, 붉다고 단풍은 아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단풍이다. 개심사의 단풍은 바로 그런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개심사는 백제 때의 절이다.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개심사는, 대웅전 기단이 백제 때의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조 성종 6년인 1475년 소실이 된 것을, 성종 15년인 1484년에 중건한 것이다.


깔린 단풍을 밟고

일주문을 지나 상왕상 개심사로 가려면 10여 분을 걸어야 한다. 오르는 길에 만나는 돌계단을 밟으면 소리가 난다. 바로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때문이다. 지천으로 깔린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면서 발아래서 소리를 낸다.

주변은 온갖 색을 자랑하는 단풍들이 들어차 있다. 천천히 가을을 느끼며 오르다보면 어느새 입구에 들어선다. 연못 가운데로 난 길을 걸으면 별천지다. 그래서 가을에 개심사를 찾는 사람들은, 또 다시 다음을 약속하는가 보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이 된 대웅보전은 백제 때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주변의 단풍과 어우러져 또 다른 가을을 이야기한다



자연을 닮은 개심사


개심사가 좋은 것은 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심검당과 종각, 무량수각의 기둥들을 보면 제멋대로다. 굽어진 나무들을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하나도 뒤틀림이 없이 버티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자연의 조화다. 자연 그대로를 사용한 전각들이 있어 개심사의 가을이 더 아름답다


어디를 가도 낙엽이 그대로 쌓여있다. 치우지 않은 낙엽이 있어, 개심사의 가을이 더 풍성해 보인다. 명부전을 지나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에 보면 환상적인 낙엽 길을 걷게 된다. 누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둔한 머리로 표현을 할 것인가?



널브러진 나무가 하나 누워있어 마음이 편해진다. 만일 저 나무를 누군가 치웠다면 이리 아름다운 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을. 멋대로 놓아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치장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마음대로 놓여있는 것들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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