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성혼이라는 것을 하면 ‘시집살이’가 시작이 된다. 그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었는지는, ‘시집살이 노래’의 사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오죽하면 ‘시집살이 개집살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데 말이다, 요즈음 이 말이 실감이 난다고 한다. 정말 개만도 못한 세상살이를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리를 취재하러 일 년 간을 경기도 지방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신문에 연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때 어느 분께서 “요즈음은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 시집살이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 시집살이란 그야말로 시어머니와 시누이 때문에 하던 시집살이였다.

한국민속촌에서 베짜기 시연. 이 기사와 관계없음

바뀐 세상풍속도, 이젠 살만한가?

성님성님 사촌성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동생동생 말도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시집살이 삼년만에 삼단같은 머리채는
짚덤불이 되었구나 곱디고은 내손일랑
두껍잔등 되었구나

시집살이 소리를 들어보면 과거의 우리 어머니들이 얼마나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가 알 수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소여물을 쑤고 밥을 해서 가족들을 먹이고 나면, 텃밭으로 나가 일을 한다. 그런 다음 밭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참을 준비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빨래 등 집 안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는 점심준비에 또 일을 해야 하는 하루의 일.

오후가 되면 또 계속되는 일이 있다. 저녁이 되면 밥을 준비해야 하고,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바느질이며 길쌈을 해야만 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모자라는 시간. 새벽녘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들어 발을 뻗을 수가 있었다. 이런 시집살이를 해 온 것이 바로 우리네의 어머니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심한 일상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 이 시대에 또 다시 시집살이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일까?

“예전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를 했는데, 이젠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를 해”

그렇단다. 세상이 바뀌어서 조금은 편안해 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며느리 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모든 시어머니들이 다 그런 것이야 아닐 것이다.


개보다 못한 시어머니의 처지

아침에 나가면 밤늦게나 들어오는 것이 요즈음의 하루 일과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글 하나 쓰는 것도 시간에 쫒기면서 살아간다. 이런 나날이니 어디 마음 놓고 운동이나 제대로 할까? 모처럼 일요일에 잠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오랜만에 한 낮에 천천히 걷는 길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느껴본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저들도 나처럼 길을 걸으면 여유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두 사람을 보니 고부이인 듯하다. 속으로 참 사이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란 생각을 한다. 갑자기 바람도 불고 날도 쌀쌀해진 날이다. 그런데 노인의 옷이 이런 날씨에 좀 추울 것 같은 차림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니 젊은 여인은 옷을 참 따듯하게도 입었다. 그리고 품 안에는 애완견 한 마리가 안겨있다.

“어머니, 빨리 좀 걸으세요. 우리 아이가 춥데요”
“아이고, 숨차니 먼저들 어여 가”
“얘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해요”

감이 온다. 시어미니와 며느리가 개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날이 추우니 걸음을 빨리 못 걷는 시어머니를 재촉을 하는 것이다. 그 감기가 걸리겠다고 걱정하는 아이라는 것이 바로 품 안에 안고 있는 애완견을 말하는 것이다. 품 안에 안고 옷으로 감싼 개가 감기가 걸린다고, 시어미니를 닦달하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의 톤이 부드럽지가 않다.

추운 날 철에 안 맞는 얇은 옷을 입고 계신 시어머니. 거기다가 연세가 많으시니 걸음 도 늦다. 그런 시어머니를 보살피지는 못할망정, 개가 감기가 든다고 나무라는 며느리. 자신은 두툼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어째 어른은 저렇게 챙겨드렸을까? 집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을 간수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뻔한 젊은 며느리의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 씀씀이다. 어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개가 감기가 걸린다고 시어머니를 재촉하는 이 며느리. 이것이 요즈음 신 풍속도란다.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 숱한 세월을 고통으로 살아오신 분들이다. 이제 그 분들이 개만도 못할 대우를 받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묻고 싶다.

“혹 당신의 집에는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시어머니가 계시지는 않은지?”


얼마 전 유기견에 대한 글을 올렸다.(버려진 녀석을 걱정하다 의 글) 많은 분들이 그 작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사연을 남겨주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다행하게도 동물병원에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다리에 있던 철사라고 생각했던 것도 나무가지였다는 것이다. 주인을 잃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녀석이, 자꾸만 눈에 밟혀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의견을 남겨주신 분 중에는 자신이 키우겠다고 연락처까지 남겨 놓은 분들도 계시다. 오늘 아침 여주에 있는 아우에게 그 녀석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더라는 것이다.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메시지글에 키우겠다는 분이 계시니,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연락이 올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구조를 하기 전 버려진 곳의 풀밭에 힘없이 있는 녀석입니다

동물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에

오후 8시가 다되어 가는데 연락이 왔다. 녀석을 키우겠다는 분과 통화를 하고 난 후, 여주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디?”
그냥 차에 태우니까 바로 난리를 치데요. 창문을 발로 긁고

왜 그랬지

아마 집으로 가는 줄 알고 그랬나 봐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더니

말도 말아요. 동물병원에 가서도 그렇게 활달하게 돌아다녀요


얼마나 그곳에서 오랜 떠돌이 생활을 한 것일까? 그런 춥고 배고픈 것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서일까? 동물병원에 가서는 언제 그렇게 풀죽은 모습으로 있었냐는 듯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더라는 것이다. 아마 이제 주인이 곧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개를 키우겠다는 분이 곧 데려갈 테니, 녀석의 건강을 좀 챙겨보라는 부탁가지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한시름 놓았다.

녀석은 나이가 꽤 먹었다고 한다. 그런 녀석이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만 보아도 목을 움츠리고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은, 그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았는지도 모르다. 녀석을 길가에서 만난 날도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키지 않는다고 빵빵거리면서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웠다.


집으로 데려 와 먹이를 먹고 있는 사진입니다

두 가지 주인이 있다.

녀석은 아마도 그곳 어디를 다니는 사람이 유기를 한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추운 길에서 자신을 버리고 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올 겨울처럼 추운 날을 버티기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보듬고 키우겠다는 분이 나타난 것만 해도 녀석의 복이란 생각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 마음이 따듯하고 정말 동물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또 한 가지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다. 바로 이렇게 키우던 개를 유기하는 사람들이다. 키우다가 못 키워 내다 버릴 것이라면, 아예 집안에 들이지를 말아야 한다. 그동안 방송 등을 통해 수 없이 길가에 내버려진 유기견들을 보면서, 참 마음 속으로 안쓰러워했다. 좋을 때는 내새끼’ ‘내딸이라는 표현을 일삼으며 너스레를 떨다가, 어떻게 그렇게 길가에 버릴 수가 있는 것인지.


동물 병원으로 옮겨진 후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이 엄마라고 부르면서 키우던 사람들. 자식과 같다고 말만 번지르르 하는 사람들. 가족이라고 떠들어 대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식을 버리고 가족을 버렸다. 그렇게 하고도 스스로가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개보다 못한 인간이 아닐까?

이번에 만난 녀석으로 인해 생각을 한다. 그래도 세상에는 마음이 따듯한 분들이 계시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 녀석. 앞으로는 정말 행복한 날이길 기원한다. 끝으로 녀석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걱정을 함께 해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동물병원으로 옮기게 해주신 분, 고맙습니다. 그런 아픈 사연이 있어 녀석과의 인연이 생긴 것이나 아닌가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을 보내주신 상교리 지우재의 지우선생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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