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aum view입니다. 2011 view 블로거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1년 한 해 view로 송고하신 양질의 콘텐츠, 타 블로거와의 소통 능력, 네티즌 투표, 내부 심사 등을 거친 결과이며, 수상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음 뷰에서 이메일로 블로거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기 전에, 이미 많은 이웃 블러거님들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기뻐해야 하고, 소리라도 질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저 덤덤하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 참에 절친 블로거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생각대로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때서야 정말 수상을 하긴 하는가보다 라고 실감이 난다.


위는 문화재 답사를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 방안을 가득 메운 문화재 답사 자료인 3,000여 장의 CD입니다. 아래는 그 동안 썼던 20권이 넘는 책 중 일부입니다(좌측)  


나에게 문화재는 ‘살아있다는 존재감’

길고 긴 사간이었다. 물론 상을 받자고 한 것은 아니다. 다음 뷰의 전신인 <다음 뉴스>에 처음으로 송고를 한 것이, 2005년 10월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래닛을 하다가 다음 뉴스가 시작되면서 블로그를 시작을 했다. 그리고 티스토리로 자리를 옮겨 앉아 2007년 까지, 거의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썼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숱하게 상처도 받았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도 없었다. 한 때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바로 ‘존재감’ 때문이었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엄청난 자료. 그것을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자료는 늘어만 가고, 난 항상 문화재를 찾아다니느라 길 위에 서 있었다.




문화재 답사는 고통을 수반한다. 저렇게 가파른 절벽을 수도 없이 올라야 하고(맨 위) 그 위에 오르면 설악산 천불동이 눈 아래 보인다.(두 번째) 그런가하면 비가 오는 날도 답사는 쉴 수가 없다(세 번째)
그리고 눈이 발목을 덮어도 답사는 늘 계속된다. 하기에 문화재 답사는 늘 고통을 수반한다.


20년이 넘는 시간의 답사. 그리고 수없이 걸었던 길.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문화재들.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방에 놓여있다. 문화재 CD 3천 여 장. 자료를 위시한 책들이 2.000 여권. 그 책들을 두 곳에 나뉘어져 보관을 하고 있다. 난 이 집을 <자료실>이라고 늘 부른다. 생활공간이자, 모든 답사와 문화재에 대한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늘 답사를 하러 길을 나서는 나로서는, 가족들이 함께 하는 집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또 다시 길을 나선다. 2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길 위에 서 있었다. 그 20년 동안 숱한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했다. 그리고 또 힘이 들 즈음에 블로거 대상 중 ‘문화연예 부분 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 상은 나에게는 채찍질이란 생각이다. 나태해 져 가고 있는 나에게 ‘다음 뷰에서 주는 매’란 생각이다.


위에 사진은 현재 자료가 있는 방안 풍경이다. 아래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2,000 여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또 하나의 서재이다. 우측 위는 확대한 서책의 일부 모습이며, 우측 아래는 그동안 출간을 했던 문화에 대한 책들이다. 그리고 좌측 아래는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렸던 자료들이다. 지난 20여년, 오직 우리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기에, 집 한 칸도 없지만 후회는 없다.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

수상을 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내 힘이 자라는데 까지는 답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하나의 문화재라도 더 알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답사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일상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그런 일상이다. 길을 나서고,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고, 소개를 하는 것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많은 이웃님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그러나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문화와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날이, 진정한 보상이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상은 그날까지 쉬지 말고 계속하기 위한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될 것이다. 내일도 난 또 길 위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블로거 여러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죄송하기도 합니다. 더 열심을 내지 못했음이.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이 부족한 인사를 선정해 주신 다음 측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름다운 자태로 춤을 춘다. 음악이 무대에 흐른다. 무대 위의 춤꾼은 그 음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몸짓을 한다. 10월 28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염주종합체육관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바로 ‘천수관음춤’으로 유명한 유네스코 평화예술단의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 공연은 2011 남도문화축제의 첫날 기념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특별한 것은 출연자 모두가 청각 및 시각장애인, 혹은 두 팔을 모두 잃은 장애인들이라는 점이다. 이 중 ‘공작새 춤’이란 아름다운 춤을 춘 ‘타이리후와’ 역시 청각장애인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

이날 많은 공연이 있었지만 특별히 이 공작새 춤에 눈길이 간 것은 춤을 춘 무희가 바로 중국장애인예술단의 감독이라는 점이다. 타이리후와는 중국인들이 뽑은 ‘가장 대중적인 무용수’ 1위에 오를 만큼 아름다운 춤을 추는 무희이다.

타이리후와는 두 살에 청력을 잃었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몸으로 표현을 하는 춤을 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춤을 열렬히 사랑한 타이리후와는 비록 음악은 듣지 못하지만, 그녀는 마음으로 음악을 보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그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 마리 아름다운 공작이 되었다.




손가락 마디에서 표현되는 공작의 꿈

공작새 춤은 손가락의 마디로 이야기를 한다. 아름답게 표현되는 손가락 끝에서 공작새가 수도 없이 날아오른다. 공작새 춤은 타이리후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수단이다. 그리고 세상이 준 관심과 기회뿐만 아니라, 행운과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타이라후와는 지성과 상실함 때문에 뛰어난 무용수가 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무용수가 무대를 꽉 채우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손가락 마디마디로 수도 없는 공작새들을 무대에 날려 보낸다. 그 공작새들이 타이라후와의 분신이 되어 무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감동적인 무대, 그 무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주) 300m 렌즈를 갖고 삼층 위에서 촬영을 하다가 보니, 손가락을 크로즈 업 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도 타이리후와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전달될 것으로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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