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칸의 대갓집. 그러나 후손들이 관리를 하기가 어렵다고 신흥재벌에게 사랑채와 행랑채를 팔았다고 한다. 원래는 99칸의 커다란 대갓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은 집으로만 보아도 그 규모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가 있다. 도대체 이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에 소재한 경기도 기념물 제12호 '김좌근 고택'을 찾아갔다.


이 김좌근 고택은 벌써 올들어 두번이나 찾아가보았다. 갈 때마다 복원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7월 23일 그 무더운 더위를 피해 찾아간 백사면 내촌리. 아직 주변은 정리가 끝나지 않았지만, 반듯하게 복원이 끝나가는 집은 그 규모가 엄청났음을 알 수가 있다.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위해 지은집


김좌근 고택은 이천 백사면 내촌리 소일마을 상단인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얕은 산자락을 배산으로 남향으로 지어진 이 집은, 전통 한옥으로 지은 99칸의 집이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있는 집의 치목이나 석재를 사용한 것을 보아도, 이 집의 과거 위세를 알 수가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담장과 행랑채는 사라지고 안채와 별채인 사랑채만 남아있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위한 별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솟을대문과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남아있었다는 김좌근 고택은 사랑채와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싸안고 있는 규모있는 대갓집의 모습을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 집이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만이 남아있다.

 






관리가 힘들어 팔아버린 집


집이 워낙  크고 관리가 힘들어지자, 후손들이 신흥재벌하게 이 집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랑채 등을 옮겨가는 도중에 그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나마 이건을 중단하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의 많은 고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원래 김좌근 고택은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가 되었다. 안채는 ㄷ자 형으로 중문과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으며, 바깥문은 대문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 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인 사랑채가 안채로 통하는 중문과 안채의 담으로 가로막혀 두 동의 건물이 서로 독립된 형태로 서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두 개의 건물 사이에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으며, 뒤편으로는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내어 서로 왕래를 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회라잉 없어졌으나, 과거에는 이 회랑을 이용해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이동을 할 수 있는 동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닥터 진'의 김병기가 지은 집, 옛 풍취는 그대로 남아


복원 공사를 마친 집을 돌아본다. 사랑채의 한편을 잘 다듬은 장초석으로 주초를 삼고, 그 위에 누마루를 올려 누정을 삼았다. 집은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으로 마련하고, 치목과 치석이 모두 제대로 된 장인의 솜씨를 마련한 듯하다.

 





꽃담을 아름답게 조성한 안채는 지금 난 중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가 있다. 아직은 주변 정리가 끝나지 않아 잡초가 수북히 쌓여있기는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문에 붙여 방을 드렸다. T 자 형으로 조성한 안채는 툇마루를 길게 놓았다. 이 안채가 특이한 것은 중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곳이 앞쪽이지만, 그 뒤편의 형태도 똑 같이 조성을 했다는 것이다.


안채는 서쪽으로 부터 다락과 3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이다. 부엌은 세칸 규모로 문을 들어서면 토를 달아 내었다. 그 오른쪽에도 다락을 드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만 보아도 당시 이 집의 위세를 알만하다. 일부가 사라져버려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제대로 모습을 갖추었다면 그 어느 집보다 뒤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좌근 고택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세상을 배운다. 요즈음 드라마 '닥터 진'에서 보이는 김씨들의 세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졌음을. 하기에 영원한 세도는 없는 것인가 보다. 하긴 닥터진에서 대원군과 권력다툼을 하는 좌의정 김병기의 구성은 역사와는 많이 다르게 표현이 되었지만 말이다. 

  1. *저녁노을* 2012.07.28 06:20 신고

    99칸....관리가 잘 되고 있나 봅니다.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예또보 2012.07.28 07:06 신고

    오 대단한 집이네요 ㅎ
    덕분에 너무 잘보고 갑니다

  3. 귀여운걸 2012.07.28 07:23 신고

    요즘 닥터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요..
    여기가 바로 엄청난 세도가 김병기가 지은 집이군요ㅎㅎ
    김좌근 고택을 보고 있으니 정말 영원한 세도는 없는거 같네요^^;;

  4. landbank 2012.07.28 07:46 신고

    아 그렇군요
    덕분에 너무 잘보고갑니다

  5. 신기한별 2012.07.28 11:23 신고

    관리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6. Hansik's Drink 2012.07.28 11:49 신고

    방이 정말 많군요 ㅎㅎ
    헷갈리겠는데요~

  7. 미스터브랜드 2012.07.28 19:55 신고

    안타깝습니다. 이런 문화유산은 잘 지키고 보존해야할텐데요.^^

한국민속촌 양반가 안초당과 사당

수원 남창동에서 민속촌으로 이건 복원을 한 99칸 양반집. 중부지방 양반집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이 집은, 한 마디로 입이 벌어진다고 밖에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2월 18일 찾아갔던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둘러본 집이다. 이 집의 답사기 중 다섯 번째로 안초당과 사당을 소개한다.

99칸, 그렇게 어마어마한 집인 줄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99칸이라고 소개를 하는 전북 정읍의 김동수 가옥 등을 둘러보았으나, 이 남창동 양반가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남창동 가옥은, 앞으로도 이 만한 집을 만나기가 힘이 들 것이란 생각이다.


 



시집을 가기위한 수업을 하는 안초당

‘안초당’이라는 이름은 양반가의 안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지붕을 초가로 엮어 안초당이라고 부른다. 안초당은 내당을 바라보고 좌측에 낸 작은 문을 들어서면 초가로 된 집이다. 안초당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된 작은 건물이다. 안초당을 바라보고 좌측 한 칸은 방이고, 남은 두 칸은 마루방이다.

그러나 이 한 칸은 앞뒤로 구분을 하여 두 개의 방을 드리고, 남은 두 칸을 마루를 깔았다. 이 안초당은 시집을 가기 전의 집안의 딸들이 거처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서예, 자수 등을 배우면서 시집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모든 집들이 와가인데 비해, 왜 안초당을 초가로 꾸몄을까? 안초당 뒤편에는 연못을 마련하고, 마당은 비교적 너르게 배치를 하였다. 집은 겨우 세 칸 밖에는 안 되지만, 한 마디로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꾸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고래 등 같은 집에서 겨우 세 칸의 초가로 엮은 안초당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만 같다.


집의 맨 위에 자리한 사당

사당은 어느 집이나 규격이 비슷하다. 대개는 정면 세 칸에 측면 한 칸으로 마련한다. 이 사당은 집의 크기와 관계없이 이런 구조로 나타난다. 양반집의 사당도 예외는 아니다. 99칸 양반집의 사당은 초당을 끼고 좌측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협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자리한다. 대개의 사당은 정침인 안방의 후원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당은 조상의 신위를 모셔놓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하기에 집안에서 가장 조용하고 신령스러운 곳을 선택한다. 양반집의 사당은 바닥을 모두 마루방으로 처리를 하였으며, 앞으로 세 짝의 문을 달아냈다. 안에는 항상 제물을 차려놓아 이곳이 제를 지내는 사당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99칸 양반집을 돌아보고

모두 다섯 번에 걸쳐 양반집을 소개했다. 고택답사를 하면서 웬만큼 큰 집도 한 번에 끝냈는데, 이 남창동 99칸 집은 그런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선 줄행랑이나 회랑, 안초당, 내별당, 외별당 등, 딴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각들의 명칭도 다양하다. 그만큼 이 집의 넓이나 전각들이 대단하다.



수원 팔달산 기슭에 있었다는 중부지방 양반가. 어찌되었거나 수원으로서는 대단한 문화재 하나를 잃은 셈이다. 이 양반가가 있었던 자리에 다시 재현을 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명물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양반가를 돌아 나오면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이 집이 팔달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함이다.

  1. 여강여호 2012.03.04 14:05 신고

    문화재란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옛것을 복원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팔달산 기슭에 양반가를 복원한다면 수원의 명물이 될 듯 합니다.

    바람이 많은 일요일인데도 그렇게 한기는 느껴지지 않네요.
    즐거운 오후 시간 보내십시오.

  2. 주리니 2012.03.04 15:51

    그러면 정말 의미 깊겠죠?
    이리 민손촉에서 보는 것도 두리번거리며 놀란 마음이 되는데 말예요^^

  3. 돈재미 2012.03.05 04:27 신고

    팔달산 근처의 남창동 양반집이
    대단 하였던 모양이군요.
    온누리 님이 대단해 하는 것을 보니 말이죠.
    본문에 나왔듯이 원래 있었던 자리에 그대로
    유지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를
    생각해 봅니다.
    덕분에 99칸의 양반집을 잘 구경 하였습니다.

여인들의 공간인 '내당'과 '내별당'

99칸 양반집의 특별함은 바로 내, 외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줄행랑과 바깥사랑채. 그리고 그 사이에 난 작은 문을 통해서 뒤편으로 나가면 만나게 되는 큰사랑채와, 담 너머에 있는 외별당까지가 바로 남자들만의 공간이다.

그와는 달리 중문을 들어서면 안행랑채와 안채인 내당, 그리고 내당 뒤에 자리한 내별당과 안초당은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2월 18일 찾아간 한국민속촌의 22호집인 99칸 양반집. 그 네 번째로 여성들만의 공간인 안채인 ‘내당’과 내당 뒤편에 초가로 마련한 ‘내별당’을 둘러본다.


여러 개의 방을 드린 내당

99칸 양반집의 내당은 한 마디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택의 안채와는 차이가 난다. 일일이 돌아보기에도 꽤 시간을 필요한 건물이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고, 높직하니 올라앉아 안행랑과 구별을 하였다. ㄱ 자로 지어진 내당은 벽면에 십장생을 조각할 정도로 공을 들인 집이다.

이 내당은 안주인은 물론, 여성들만의 생활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안주인은 손님들(여성)을 맞이하거나, 여가활동 등을 즐기던 곳이다. 한 마디로 여성들만의 가정사와 문화적인 면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이 99칸 양반집의 내당은 중부지방의 특징을 잘 보이고 있으면서, 안방 뒤편에 위방을 달아낸 형태이다. 집은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큰 안방과 여러 개의 위방을 두고 있다. 서편에는 방을 두고 다음에 대청을 두었으며, 꺾인 부분에 큰 안방을 놓았다. 안방의 남쪽으로는 건넌방과 부엌을 달아냈다.



이 내당의 특징은 바로 안방 뒤편에 마련한 방들이다. 뒤편을 돌출시켜 모두 세 개의 작은 방을 꾸며 놓았다. 그리고 안사랑채에서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이곳 내당의 뒤편으로 연결이 되도록 하였다.



각별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안별당

안채인 내당의 뒤로 돌아가면 계단을 쌓고 조금 높게 협문을 내어 놓았다. 그 협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내별당. 99칸 양반집에서 모정을 제외하고는, 이 내별당과 안초당만이 초가지붕이다. 내별당은 모두 다섯 칸으로 꾸몄으며, 두 칸씩의 방과 동편에 한 칸의 마루방이 있다.


내별당은 내당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은밀하다. 이 내별당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당의 뒤편으로 돌거나, 아니면 안사랑의 회랑을 통해 다시 땅을 밟아야만 한다. 이곳은 내당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곳으로, 내당 마님이나 귀한 손들을 맞이하고는 하던 곳이라고 한다.



외별당이 연희를 하거나 각별한 남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곳이라면, 이 내별당은 안당마님의 특별한 공간으로 사용이 되었을 것이다. 담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외별당이, 북쪽으로는 내별당이 자리하고 있는 수원 신풍동 99칸 양반집. 이 내당과 내별당에서 그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다.
  1. 클라우드 2012.03.02 14:20

    99칸...상상이 가옵니다.^^
    비오는 금욜오후도 평안하시고 행복하세요.^^

  2. ★안다★ 2012.03.02 16:58 신고

    내단과 내별당에서 정말 그 대단함을 새삼 깨달아 봅니다~!
    99칸의 명가...참으로 부러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고택입니다~^^

  3. 광제 2012.03.03 15:33 신고

    99칸....구경꾼 다 돌아보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겠습니다..ㅎ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지요..

안사랑 및 안행랑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살았던 것일까? 용인 한국민속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중부지방 양반가인 99칸 수원 남창동 집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점점 더 이 집의 크기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대문채인 행랑채를 들어서 바깥마당을 가로질러 중문에 들어서려면, 그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문을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중문채라고 한다. 원래 이 중문채에는 집의 살림을 맡아하는 마름이나 부엌살림 등을 하는 여인들이 묵는다. 이 99칸 집의 중문채를 들어서면 좌우로 길게 안행랑이 늘어서 있다.



대단한 세도가임을 알 수 있는 안사랑과 안행랑

이 집의 주인이 당시 얼마나 세도를 부렸는가는, 이 안행랑과 안사랑에서 알 수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펼쳐진 방과 광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좌측 초당을 들어가는 문 입구에는 장독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측으로는 ㄱ 자로 꺾어 안사랑을 달아냈다. 안행랑과 이어진 안사랑은 살림을 물려준 노모나 자녀들이 묵는 곳이다.

워낙 큰살림인지라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이 99칸 양반집에서는 남자들은 안행랑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주인과 가족들이야 드나들었겠지만. 이곳 안행랑에는 유모나 찬모, 침모 등이 묵었다고 한다. 집의 넓이로 보아 한 두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광과 늘어선 방들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이 안행랑은 안채와 연결이 되어 - 자로 늘어서 있다. 방과 광들을 드렸으며, 많은 곡식과 물건 등을 쌓아두었던 곳이다. 안사랑은 노모가 자리를 하고, 자녀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안행랑의 앞에는 툇마루를 두지 않았다. 안사랑은 행랑과 붙어있으나, 툇마루가 놓인 것들이 구별이 지게 하였다.

회랑을 통해 내당으로 갈 수 있어

안사랑의 북쪽에 보면 회랑이 보인다. 이 회랑은 복도를 통해 내당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땅을 밟지 않고 안사랑에서 내당을 드나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 회랑은 이 집에서 두 곳에나 설치가 되어있다. 그만큼 대단한 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랑은 중간까지 벽을 쌓아 막았으며, 위로는 개방이 되어있다.




안사랑은 회랑과 연결이 된 곳에 방을 두고, 두 칸의 대청을 두고 있다. 그리고 방과 부엌을 드렸는데, 이 부엌의 형태도 특이하다. 문을 내달아 놓고, 그 안에 또 다시 문을 달아냈다. 그리고 툇마루를 둔, 방을 다시 드렸다. 안행랑채와 연결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그 구조가 전혀 다르다.

안행랑은 광과 방을 적당히 연결을 하고, 중간에 부엌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이 안사랑과 안행랑이 안채를 감싸고 있어, 중문을 통하지 않고는 안채로 드나들 수가 없는 집이다. 99칸 대 저택의 위용을 볼 수 있는 안사랑과 안행랑. 여인들만의 공간인 이곳은, 그래서 더 은밀하다.

  1. 소인배닷컴 2012.03.01 12:33 신고

    보기만 해도 집이 엄청 넓어 보이네요...
    엄청납니다.....

우리는 흔히 큰 대궐 같은 집을 ‘99칸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99칸이란 궁을 뺀 일반 가옥에서는 가장 큰 집으로, 이런 큰 집을 가졌다는 것은 집 주인의 세도를 알만한 것이다. 한국민속촌 안에 가면 흔히 ‘중부지방 양반가’라는 22호 집이 있다. 이 집이 바로 99칸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집이다.

‘99칸 집’이라고 부르는 이 가옥은 철종 12년인 1867년에 유학자인 이병진 선생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수원 화성내에 팔달산 아래 지은 이집은 (현 수원시 남창동 95번지 일대) 1973년에 원형 그대로 민속촌으로 옮겨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사당 앞에서 바라다 본 한국민속촌의 99칸 양반집



중부지방의 양반가옥을 대표해

이 99칸 집은 당시 중부지역 민간에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전통 양반가옥을 대표하는 남창동 가옥은, 1910년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근택(1865~1919)이 사용했던 집이기도 하다. 이 가옥의 사랑채는 지난 1950년 한국동란 때 9, 28 서울을 수복 후에는, 수원지방법원 지방검찰청의 임시 청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여인천하' '대장금' '다모' 등 역사 드라마물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으며, 민속촌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꼭 들리고는 하는 집이다. 남창동가옥을 보면 솟을대문을 둔 대문채, 줄행랑채, 바깥사랑채, 안행랑채, 안사랑채, 내당, 초당, 내별당, 큰사랑채, 외별당, 정각, 사당, 전통정원 등 큰 집 살림에 필요한 모든 공간이 규모 있게 갖추어진 전형적 대가이다.


22호 집인 수원 남창동 99칸 집의 솟을대문(위) 와 행랑채 앞마당


건물 전체에는 마루공간이 많이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굴뚝을 건물에서 떨어져 설치하여 난방의 효율과 함께 조형미를 살린 점은 전형적인 중부 상류층 가옥의 형식이다. 2월 18일 찾아간 이 99칸 집을 한 번에 소개하기는 어렵다. 모든 건물은 각각 독립건물로 구성되어 있어 몇 회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자 한다.

바깥사랑과 행랑으로도 규모에 놀라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줄행랑이 좌우로 펼쳐진다. 우측의 행랑과 바깥사랑채 사이에는 후원인 뒤편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ㄷ 자로 된 줄행랑은 모두 19칸이며, 그 안에는 마굿간을 비롯하여 마부방, 측간, 하인방과 부엌, 곳간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 대문과 연결이 된 줄행랑만 보아도 이 집의 규모가 짐작이 간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ㄷ 자로 꺾인 행랑채가 있다. 이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어 '줄행랑'이라고 부른다. 맨 아래는 큰 사랑이 있는 후원으로 나가는 문이다. 


바깥사랑은 이 집을 찾아 온 손님들이 머물거나 유숙을 하는 곳이다. 사랑채가 공간이 부족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는 이 바깥사랑은 다섯 칸으로 지어져 있으며, 후원으로 나가는 문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와 연결이 된다. 하지만 이 바깥사랑은 엄연히 독립된 공간으로, 행랑채와 구별이 되게 하였다.



바깥사랑채. 행랑채와 문을 사이로 이어져 있으며 손님들이 유숙하는 곳이다.



바깥사랑은 사랑을 바라보면서 좌측 두 칸은 방을 드리고, 두 칸은 대청마루이다. 그리고 우측 한 칸 역시 방을 드려 손님들이 유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바깥사랑과 줄행랑의 앞으로는 너른 바깥마당이 있으며, 중문채를 가기에도 거리가 상당하다.

양반집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수원 남창동 99칸 집. 독립적인 전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우리 고택의 전형적인 미를 갖추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동영상 제작은 한국민속촌 답사에 동행한 '수원 씨티넷'의 김홍범 부장이 제작했다
  1. 옥이(김진옥) 2012.02.23 06:32 신고

    민속촌은 여러번 가봤는데요..
    늘 볼것이 많은것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해바라기 2012.02.23 06:32

    99칸의 집 잘 돌아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여세요.^^

  3. 주리니 2012.02.23 07:10

    보는데도 한참 걸리겠죠?
    민속촌이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 합니당^^

  4. 굴뚝 토끼 2012.02.23 08:19 신고

    저도 민속촌에서 둘러보던 기억이 나네요.
    같은 한옥이지만 지역별로 가옥구조를 조금씩 다르게 지어졌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5. 아빠소 2012.02.23 09:13 신고

    이정도 집이면 엄청난 권문세도가나 정승 집이었을것 같은데요~
    이병진 선생이란 분은 생소하네요~

  6. 사랑해MJ♥ 2012.02.23 09:21 신고

    99칸집;;
    식구가 많았을까요;;
    암튼 대단한 집안이였나보네요 ㅎㅎㅎ

  7. 비바리 2012.02.23 10:14 신고

    99칸..
    말로만 들어보고 실제 정말 어떻게 살고
    관리들을 하였을까 궁금해집니다.
    건강하시지요?
    모처럼 들려봅니다.

  8. 심평원 2012.02.23 10:24

    정말 큰 한옥집일것이라 예상이 되네요. 수원에 이런 유적지가 있는지 몰랐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9. 뽀키 2012.02.23 11:27 신고

    말로만 듣던 99칸 짜리 집이군요.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10. 또웃음 2012.02.23 15:15 신고

    왜 제가 같던 민속촌과 온누리님이 가신 민속촌이 다르게 보일까요?
    분명히 같은 곳인데...T.T

  11. 코기맘 2012.02.23 15:35

    민속촌 너무 오래동안 가질않아 가물가물했어요..
    시간내서 꼭 다시 가고싶어져요..
    온누리님 남은하루도..건강하고 즐거운시간되세요 ^^

  12. 주테카 2012.02.23 19:25 신고

    조선시대 가옥제한의 최대치에 달하는 집이군요. ㅎㅎ

  13. 빠리불어 2012.02.23 20:04

    아 옛날에 저기서 사셨던 분들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네여 ㅎㅎ
    행복한 하루 되세여, 오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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