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이라고 하면 누구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끌벅적 한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된 5일장이 장사꾼 10여 명에, 찾는 사람도 한가하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런 5일장인 여주 대신장을 찾아갔다. 4일과 9일에 서는 대신장은 대신면사무소 앞에 선다. 고작 장사꾼 몇 사람과, 장을 찾는 이 몇 사람이 장터 안에 있는 모두이다. 다 합해보아야 20명 남짓하다. 5일장의 한가한 모습이다.

 

한 때 중단했던 대신장

 

장이라고 돌아볼 것도 없다.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장에서 만난 이창호(70·여주군 대신면 율촌1리) 어르신은 대신장이 한 때 중단 되었었다고 하신다.

 


 

"대신장은 중단 되었다가 다시 시작한 지가 한 60년 되었네. 내가 소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몇 년 장이 서지 않다가 다시 시작했지."

"그 때는 지금보다 장이 컸나요?"

"그 때도 지금보다 별로 크지 않았지. 그래도 5일장이라 살만한 것들은 다 나와."

 

장을 둘러보니 젓갈 등 찬을 파는 노점, 과일, 건어물, 옷, 채소, 양말 등을 파는 노점, 생선, 이불, 그리고 한 쪽에 뻥튀기가 다다. 5일장치고는 정말 규모가 작다.

 

"항상 이 정도였나요?"

"백중장은 꽤 크게 서지. 씨름판을 벌이기도 하니까. 그 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장사하시는 분들은 항상 오시는 분들인가요?"

"그럼, 이 인근에 사시는 분들이지. 양평, 양수리, 지평 등에 사시고."

 

장꾼들의 사는 곳까지 훤히 꿰고 계시다. 그만큼 작은 장이다. 한창 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 편에서 '뻥'소리와 함께 자욱한 김이 일어난다.

 

 

대를 이은 뻥튀기 아저씨

 

5일장에서 그래도 인기가 최고인 것은 뻥튀기다. 뻥튀기를 하는 장창근(49·양평군 지평면)씨는 대를 이어서 5일장마다 다니며 뻥튀기를 한단다. 딴 곳은 한가한데 비해, 뻥튀기를 하는 곳만 사람들이 늘어선다. 쌀이며 누룽지를 갖고 와 뻥튀기를 해가려는 것이다. 간식으로는 역시 튀밥이 최고라고 한다.

 

"얼마나 뻥튀기를 하셨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노는 날과 방학을 하면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했어요. 2대 째 하고 있죠."

"꽤 오래 하셨겠네요?"

"벌써 한 30년 넘게 했어요."

 

깡통에는 쌀과 누룽지를 담은 것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뻥튀기 기계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곳 대신장을 장날마다 오래 다니다가 보니, 주변 사람들과도 흉허물이 없이 지낸다. 맞은편에서 젓갈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한 마디 거든다. 장창근씨의 형님도 뻥튀기를 하는데, TV에도 나왔다는 것이다.


 

대를 이은 뻥튀기, 그래도 자랑스럽다

 

많이 튀길 때는 하루에 100번 정도 뻥튀기를 했다고도 한다. 그러던 것이 점차 줄었다가 한 4~5년 전부터 다시 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사 먹이는 과자가 믿음이 가질 않는다는 어머니들이, 튀밥으로 간식을 마련하기 때문이란다.

 

"기계가 오래 묵은 것 같아요."

"아버님이 쓰시던 것이죠. 이 기계는 처음 나온 것이라는데, 쇠가 지금 것들 하고는 달라요. 단단하고 좋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다는 것이 좋기도 하고요. 골동품이죠 이제는."

"장마다 매번 나오시나요?"

"아닙니다. 봄, 가을, 겨울에는 장에 나오고, 여름에는 덥기도 해서 건축 일을 하고 다니죠. 여름에는 뻥튀기도 잘 안되고요."

"몇 분에 한 번씩 튀기나요?"

"처음에 기계가 열을 받지 않으면 10분 정도 걸리고요. 그 다음에는 한 7~8분 정도 돌려요. 요즘에는 하루에 한 30~40번 튀기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뻥튀기를 하면서 5일장을 다니지만, 자랑스럽다고 한다. 주로 여주 대신장, 양평 지평장과 용문장을 다니면서 뻥튀기를 한다는 뻥튀기 아저씨 장창근씨. 장을 찾는 사람들은 참 근면한 사람이라고 칭찬들을 한다. 5일장마다 뻥튀기를 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뻥"하고 자욱한 흰 김을 내면서 튀밥이 나온다.

 

"저 사람은 남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지. 저렇게 튀겨서 부풀러 주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돈도 저 기계에 넣고 한번 튀겨보았으면 좋겠어."

 

너털웃음을 웃는 어르신들의 웃음이 있어, 더욱 좋은 5일장이다. 

양반들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조선조 말의 장시는 한 때 전국적으로 상당한 숫자가 개설되어 있었다. 『만기요람』에는 19세기 초 우리나라의 장시는 8도 327개 군, 현에 1,061개의 장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장시 숫자가 인구수에 비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장시의 숫자가 많은 것은, 지금처럼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장시를 이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원경제지』를 살펴보면 순조 30년인 1830년에는 전국에 1,052개의 장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장시가 조선조 말에 들어서는 단순히 장의 기능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물교환을 하던 조선조 말의 장시

 

조선조 말의 장시의 형태는 금전을 이용한 거래보다는 농민이나 수공업자들이 서로 물건을 갖고나와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는 물물교환의 형태로 거래가 되었다. 이 당시의 장시에는 비슷한 처지의 민초들이 모여서 양반들을 비판하거나, 나라의 정책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양반들의 수탈과 과도한 조세 등에 불만을 품던 민초들은 이러한 불만이 쌓이다가 보면 장날과 장터가 집회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즉 장시가 장의 기능 외에도 정치적 기능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장시는 집회의 장소와 정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발상지이다. 양반들의 무리한 조세포탈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 기념관에는 조선조 말의 장시를 소개하고 있다. 테마인형으로 처리한 이 장시의 모습은, 전시실 1층 <19세기 조선과 자각하는 농민들>이란 주제로 전시가 되어있다.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당시의 장터 모습이 재미있다. 한편에서는 삿갓을 쓴 사람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삿갓을 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양반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장시에서는 집회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유관순열사가 만세운동을 일으킨 아우내장(병천)도 있다.

 

 

 

이렇듯 장시의 기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서 그치지를 않았다. 물론 장이라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가 보니, 가장 손쉽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고를 알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시이다. 당시의 장시의 형태를 보면 민초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장시의 기능은 다양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시에서는 그 기능도 다양했다. 우선 장시의 기능은 ‘중매터’이기도 했다. 서로 5일마다 한 번씩 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 마을의 사람들을 소개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중매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대개는 이 장터의 중매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한 가지는 장시는 ‘정보통’이었다는 점이다. 장시를 떠도는 장돌뱅이나 보부상들에 의해 팔도의 정보가 장시로 흘러들게 된다. 큰 점포를 가진 대상들이 상대적으로 정보에 밝아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전국의 장시에 자신의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장시의 흐름에 빠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시는 이제는 ‘전통시장’ 혹은 ‘재래시장’이라는 명칭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이 전통 장시의 인심 하나는 그 어느 곳도 따를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세월 장시의 인심이기도 하다. 걸인들까지도 사람취급을 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장시였다. 동학농민기념관에서 만난 장시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며칠 안남은 추석이 주부들에게는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데다가, 올해는 각종 채소며 과일값 등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례를 안 지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경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석 차례상을 예년과 똑같이 지내면서도 경비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개 주부들이 대목을 맞아 장을 보는 것을 ‘대목장 보러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추어 서는 장을 ‘대목장’이라고 한다. 5일장 대목장은 대개 추석 바로 앞에 서는 장을 말한다. 그리고 상설시장의 경우에는 2~5일 전쯤에 장을 보는데, 이때를 대목장으로 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장은 추석 3~5일 전에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주 남부시장

차례상 경비를 줄이는 노하우

알뜰주부라고 하면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미리 품목을 정해놓고 장을 보러 나간다. 그런데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방법에 따라 20~30%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어떻게 하면 경비를 줄일 수가 있을까? 여주 5일장 책을 쓰느라 5일장과 재래시장을 9개월 넘게 답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대목장을 잘 보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1. 재래시장을 이용하라

역시 답은 재래시장이다. 요즈음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도 대목장을 겨냥해 세일을 하고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재래시장이나 5일장이 정답이다. 재래시장은 대형마트보다 20.6% 정도 물건 값이 싼 편이다.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2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면, 재래시장을 나갔을 경우 16만원 정도면 준비할 수가 있다.

5일장의 경우는 재래시장보다 7~8% 정도가 더 싸다, 그러나 5일장이라는 특성상 날짜를 맞추기가 힘이 들고, 거기다가 주변에 5일장에 서지 않으면,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다.

상품권을 이용할 경우 3~5% 정도 싼 가격에 구입하는 효과가 있다

2. 상품권을 이용하라

요즈음에는 재래시장에서 살 수 있는 상품권이 있다. 이 상품권은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3% 정도 할인이 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구입한다고 하면 23~25% 정도 재래시장이 가격이 싼 편이다.

3. 아침을 공략하라

오늘 아침 전주 남부시장을 나가보았다. 남부시장은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 앞에 개설된 장으로, 그 역사가 깊은 곳이다. 남부시장은 시장과 다리를 중심으로 장이 개설되는데, 새벽 4시면 장이 열린다. 이곳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장사꾼들과, 집에서 지은 농산물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러한 남부시장과 같은 경우 아침 일찍 장을 나가는 것이 좋다. 그것은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아침에는 장사꾼들이 값을 깎이지 않으려고 무리한 가격을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목장이라 간너편 하천변까지 장이 들어섰다
 
4. 교통편을 요구하라

만일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서 사시는 주부라면 이웃과 함께 공동구매를 하는 것이 좋다. 요즈음은 지자체 등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공동구매 날짜 등을 고려해 신청을 하면 버스가 시장까지 태워준다. 물론 집에 돌아올 때도 데려다 준다. 이렇게 함께 공동구매를 할 경우 5% 정도가 싸다. 결국 조금만 노력을 하면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30~35% 정도를 싸게 살 수가 있다.



조상의 덕을 이야기하고, 일 년간의 풍요로움을 감사하는 추석. 이번 추석은 물가가 만만치가 않다고 한다. 이럴 때 지혜 있게 장을 보는 것 또한 현명한 주부의 대목맞이 하기의 한 방법이다.


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 할머니의 난전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펴시고 장사를 하신다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 깻잎 덤으로 깻잎을 듬뿍 담아주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란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 작은 난전 여주 5일장 한편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하늘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1)

여주군에는 현재 5일장이 서는 곳이 세 곳이 있다. 여주읍의 하리 5일장과 가남면의 태평리 5일장이다. 또 한 곳은 대신면의 5일장인데, 대신면의 경우에는 5일장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작아 전국 5일장에는 끼지를 못한다. 현재 가남면 농협 앞쪽으로 서는 5일장을 '태평리장', 혹은 '선비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선비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지명 때문이다. 여주군 가서곡면에 속했던 마을인 섬비를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명동, 방아다리, 섬배, 신대동, 구장터를 병합하여, 큰 들이라는 뜻으로 태평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태평1리는 마구실, 방아다리라 부르고, 태평2, 4리는 섬배 또는 선비, 태평3리는 새터라고 불렀다. 이 태평2, 4리에 서는 장이라고 하여 '선비장', 혹은 태평리에 선다고 하여 '태평리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통칭 '가남장'이라고 부른다.

 

1일과 6일에 서는 가남장

 

▲ 가남장 그래도 한번도 장을 쉴 수는 없다. 가남장의 장꾼들은 대목 밑이라고 해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5일장을 연다고 한다.

 

가남장은 매달 1일과 6일에 선다. 한 달에 6번을 서는 5일장은 1일과 6일, 11일과 16일, 그리고 21일과 26일이 장날이다. 평소 같으면 50명이 넘는 장꾼들이 모여서 길게 장을 이룬다. 하지만 2월 16일 찾아간 가남장은 썰렁하다. 대목 밑에 선 5일장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를 않았다. 여기저기 10여개 남짓한 난장이 섰을 뿐이다.

 

가남장에 모이는 장꾼들은 주로 경기도 일대에서 물건을 싣고 와,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남양주, 양평, 이천, 성남 등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장을 이루고 있는데, 멀리 충북과 강원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5일장이라는 특수성이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모여서 장을 이루기 때문에, 전국 어디서나 모여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5일장은 장꾼들이 모이지를 않아, 몇 개의 난전이 자리를 펴고 있을 뿐이다.

 

'가남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 선비 같아요'

 

▲ 김광열 가남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모임인 상우회 김광열회장은 부부가 함께 30년 넘게 가남장에서 화장품을 팔고 있다

 

가남장에선 지역의 특산품인 쌀이나 고구마, 땅콩 등보다 더 유명한 것이 바로 건어물전이다. 아무래도 멀리 가서 구해야하는 건어물이다 보니, 이렇게 찾아드는 5일장의 사람들이 고마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5일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장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장사를 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곳은 '상우회'라고 하여, 난전을 하는 상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 대목 밑 장인데도 불구하고 상우회 김광열(남, 57세)회장이 화장품 난전을 펴고 있다. 남양주 금곡동에 거주하는 김광열 회장은 안성, 충주, 마석, 문산, 가남장을 돌면서 장사를 한단다. 이곳 가남장에서 장사를 한지가 벌써 3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김광열 회장은 5일장을 돌면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분이 어떻게 화장품을 파느냐고 물으니, 곁에 서 있는 여자 분이 부인이라는 것이다. 부인 최명숙(52세)씨와 함께 5일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

 

"힘들지는 않으세요?"

"힘들죠. 하지만 산다는 것이 어디 편할 것이 있나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장사를 하러다니니 저희들은 나은 편이죠"

"전에 비해 장사는 잘 되나요?"

"점점 힘들어요. 대형 할인점이 들어오면서 그쪽으로 손님들을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부인 최명숙씨가 선비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선비 같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니, 5일장을 다녀보아도 이곳처럼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곳 장을 찾는 분들은 물건 값을 깎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 시비가 붙지를 않죠. 딴 곳에 가면 덤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이곳 분들은 주는 대로 받아가요. 그래서 장사를 하는 분들이 항상 더 올려주고는 하죠. 그래서 선비장인가 봐요."

 

찾는 사람도 없이 썰렁한 장을 하루 종일 지킨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런 마음 때문에 5일장을 돌면서도 피곤을 이겨내는 것인지.   

        

봉사를 하는 5일장 사람들

 

▲ 기구 5일장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다. 그래서 5일장은 재미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전국에서 모이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난전상들이다. 어떻게 '상우회'라는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일까?

 

"저희가 이곳에 와서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는 것도, 다 물건을 사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번 장에 장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과 의논을 해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회원 50명이 넘는 상우회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단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 아니고, 봉사를 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한다.

 

"일 년에 두 번씩 봉사를 하죠. 6월 30일과 12월 30일, 두 차례 쌀을 여섯 가마쯤 어려운 분들에게 전해드리죠. 주로 가남면 지역에 사시는 어려운 분들에게요."

 

그래서인가 이 5일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물건 값을 흥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훈훈한 정이 있는 곳. 가남 5일장에는 마주만보아도 절로 웃음이 나는 부부가 있어 즐겁다. 5일장의 이야기가 즐거운 것도 이렇게 정이 넘치기 때문이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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