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은 예전에 아흔 아홉 구비 물길이 들어오던 곳이다. 이곳은 충남 아산지역이면서도 경기도 평택과 도계를 이루고 있어, 오히려 아산보다는 평택 쪽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는 둔포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다고 하는 포구에는 아가씨는 둔 색주가가 100집이 넘었다고 하는 곳이다.

 

이 둔포면 신항리를 찾아가면, 마을에 고래 등 같은 한옥들이 몇 채 보인다. 그 중 가장 마을 안에 넓은 평지를 앞에 두고 한 가운데 집이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96호로 지정이 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가면 제일 먼저 느낌이 '거대하다'라는 생각이다. 물론 아흔아홉 칸 집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오히려 더 크다는 느낌이 든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자 형으로 꾸며진 대문채와 행랑채가 있다. - 자로 된 대문채와 꺾인 부분의 행랑채가 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행랑채와 연결된 담에는 중문이 있고, 중문은 담벼락이 행랑채와 연결이 되면서 다시 자의 광채와 중문채를 이루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행랑채와 중문채의 담장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중문채를 안사랑채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광채와 연결된 중문채라고 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집안의 남자들이 묵는 곳인데, 이 중문채에 연결된 방 등 공간은 집안에서 일을 하는 부녀자들이 기거를 하는 곳으로 안사랑채와는 다르다. 바깥쪽의 행랑채나 사랑채는 출입을 할 수가 있으나, 중문 안으로는 굳게 잠겨 있어 담 밖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안채는 중문채와 반대로 자 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담 밖에서 몇 바퀴를 돌아 안채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고택을 찾아가면, 이렇게 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려움이다. 안채는 모두 아홉 칸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 구성이다. 안채는 남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샛방, 윗방을 차례로 두고, 꺾인 곳에 두 칸의 대청과 두 칸의 건넌방, 맨 끝에 부엌을 배치하고 있다. 바깥사랑채와 안채사이에도 담장으로 구분을 하였다.

 

 

특이한 구조의 사랑채의 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윤 전 대통령의 선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에 자리한 사랑채는,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별도의 담을 둘러 일각문을 내었다. 사랑채의 누마루 아래에는 숨은 쪽문이 있어 사랑채의 뒤로해서 안채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동선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사랑채는 서쪽으로 누정과 같이 높은 네모뿔대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누마루방을 들여놓았다. 이곳에 오르면 앞뜰이 훤히 내다보일 것이다. 그리고 두 칸 큰사랑과 두 칸 대청, 건넌방을 두었다. 앞으로는 모두 유리문을 달아냈는데, 우리 전통 고택의 창호와는 다르다. 전체적으로 사랑채는 하나의 또 다른 공간 구성을 하면서 멋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담장에 낸 굴뚝, 궁궐과 같은 효과를 내

 

사랑채의 뒤로 난 담장에는 굴뚝이 높게 솟아있다. 굴뚝은 사랑채와 땅 밑으로 난 연도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의 뒤로해서 안채로 출입을 할 수 있는 동선인 일각문 옆에 자리한 굴뚝. 흔히 우리가 고궁을 관람하면서 볼 수 있는 형태로 꾸몄다. 고궁을 관람하다가 보며 이런 담장에 난 굴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굴뚝 하나가, 이 집이 이 마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자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아산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 비록 중간에 약간의 보수를 하였다고 하지만, 처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문을 넘어설 수 없어, 안채를 꼼꼼히 살필 수 없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많은 고택을 보았지만, 그 중에서는 단연 '고래등'이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큰 인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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