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동안 블로그라는 것에 정신을 빼앗겨, 밥은 먹지 못해도 블로그를 하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지가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물론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이렇게 죽자사자 블로그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항상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답사를 다니고, 그것을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리고 또 틈이 나면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누빈다. 하지만 꼭 문화재만을 적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잡다한 이야기들도 적어 나간다.

 

 

블로그의 힘, 그것은 블로거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블로그는 그저 내가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블로그라는 것에 대한 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그저 단순한 글을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블로그를 시작한 뒤 그리 오래지 않아서이다.

 

어느 단체가 행사를 하는데 그것을 방해한 일이 있었다. 그저 그것을 보고 느낀 것을 블로그에 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음 메인에 오르고 나서, 정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터졌다. 단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조회 수는 순식간에 이십만이 넘었고, 댓글이 2,000개나 넘게 달렸다. 그런 블로그의 힘을 만나고 나니 글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문화재 블로거. 참 요즈음은 시쳇말로 인기 더럽게 없다. 난 인기블로거가 아니다. 그저 꾸준히 글을 쓰고, 그것을 위해 전국을 누빌 뿐이다. 그러다가 보니 이젠 문화블로거라는 이름까지 하나 덤으로 얻었다. 문화블로거! 돈 안된다. 찾아오는 이도 없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블로그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꾸준히 적고 있는 문화재와 주변의 잡다한 이야기. 그것이 우리 문화재와 주변의 것들을 바꾸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쓰기 싫어도 글을 적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블로그의 힘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블로그가 무슨 힘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물론 그 힘이라는 것은 블로거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 세 가지만 알아두면 된다.

 

첫째는 전문성이다. 한 가지 전문적인 것에 꾸준히 포스팅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 새 전문적인 블로거가 되어 있다. 그것이 힘을 갖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둘째는 지속성이다. 그저 쉬지말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것이 쌓였을 때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힘이 생기게 된다. 물론 그 힘이 보이지를 않기 때문에, 블로그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묻기도 하겠지만, 그 힘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글을 올렸는데도 바뀌지 않을 때는, 강도를 높여가며 글을 쓴다. 그 또한 지속적이어야 한다.

 

셋째는 현장성이다. 물론 블로그를 운영함에 있어 현장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문적인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저 꾸준히 현장을 찾아보고,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현장은 밖이 될 수도 있고, 안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는 전문적인 블로거로 인정을 받게되고, 그 블로그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힘이 있는 전문적인 글을 쓰는 블로거. 멋지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블로그의 힘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바꾸었는데?

 

그렇게 묻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블로그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블로그가 이렇게 큰 힘을 갖고 있음을 몰랐다. 강원도에 있는 문화재를 찾아갔는데 주변에 잡다하게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들이 쌓였다.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고, 다음 메인에 떴다. 그 다음에 그 문화재를 찾아갔을 때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주변은 깨끗이 정돈이 되어있고, 그 문화재에 상주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자주나는 길이 있다. 그것을 글로 적었다. 그랬더니 댓글이 달렸다. 해당 관철에서 예산을 세워 바로 조치를 취하겠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그 죽음의 교차로가 바뀌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지역의 의원들도 바꾸지 못한 것을, 일개 블로거의 글이 바꾼 것이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블로그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이유이다. 많은 문화재들을 찾아다니면서 소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다. 이 추운 날에도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서는 이유. 그것은 문화재를 찾는 이유도 있겠지만, 블로그의 힘이 필요한 곳이 어디 있을끼를 찾아보기 위함이다.(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요즈음 들어 여성으로만 구성 된 타악 그룹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타악 그룹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시원찮은 모임들도 간혹 눈에 띠기 때문이다. 물론 어릴 적 국악을 전공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리에는 꽤나 민감하기 때문이다.

 

123() 오후 4. 수원시청 별관 2층에 마련된 대강당에서는 ‘2012 마을 르네상스 공모사업 경연대회가 열렸다. 그 식전 행사로 수원시 권선구 곡선동에 거주하는 주부들로 구성된 소리파워라는 여성 타악 그룹이 무대에 올랐다. 처음에는 주부들로 구성된 타악그룹이라고 하기에 그저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그런 타악 동아리 정도로만 기대를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소리파워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른 소리파워 멤버들의 동작과 장단을 보다가 대강당 이층으로 올라갔다. 사진도 찍어야 하지만, 그곳에서 자세히 관람을 하고 싶어서이다. ‘소리파워라는 이름답게 힘이 넘치는 장단으로 객석을 사로잡는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주부들로 구성된 타악 그룹이라고 하는데, 조금만 더 다듬으면 어느 곳에 내어 놓아도 뒤처지지 않을만한 실력들이다.

 

현재 12명의 회원으로 운영을 하는 타악 그룹 소리파워는 2003년에 창단이 되었다. 올 해로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10년 세월동안 무단히 노력을 했음이 장단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온다. 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소리파워 용환순 단장(, 56)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미모를 지니고 있다. 이 타악그룹의 단원들의 연령이 38세에서 60세까지라고 하는데, 모두가 힘이 넘치고 젊게 보인다. 이렇게 땀이 흥건히 배어 나오도록 신명나는 장단을 두드리다 보니, 생활에도 활력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혹여 생활에서 받을 스트레스도 다 날려버릴 듯한 힘이 넘치는 두드림이니 말이다.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소리파워

 

소리파워는 일주일에 세 번 씩 모여 하루에 3시간 정도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더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작품을 받고, 사사를 하기도 한다고.

 

"수원시에서 하는 행사는 거의 참석을 해서 공연을 합니다. 한 달에 2~3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주로 10~11월에 몰려있어요. 일 년이면 30회 정도 공연을 하게 되니, 그동안 300회 정도 공연을 한 셈이네요.“

 

용환순 단장은 어디든지 불러만 주면 달려간다고. 물론 주부들로 이루어진 타악 그룹이다 보니 날마다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정해놓고 찾아가는 곳이 있다고. 청소년센터, 요양원, 복지관 등 수원시의 곳곳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라는 것.

 

 

의상도 직접 제작해 입어요.”

 

초청을 하는 곳에서 점심 값 정도 주는 사례와, 회원들이 월 회비로 걷는 돈을 이용해 의상을 제작한단다. 하지만 의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천을 떠다가 만든다는 것. 그렇게 공연복을 만들어 입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여성들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어떻게 악기 등을 운반하느냐고 물었다.

 

저희 단원 중에 손재주가 있는 분이 있어서, 천을 사다가 전부 직접 무대의상을 만들어 입어요. 그래서 큰돈은 들어가지 않죠. 그렇게 저희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어요. 대북이나 각종 악기 등을 운반할 때는 탑차를 부르기도 하고요. 센터 등에서 도움을 주기도 해요. 그래도 일일이 악기를 저희가 다 날라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뒤따르기는 하죠.”

 

프로가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러나 아마추어 타악 그룹이면서도 프로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는 소리파워는 그 정신도 프로에 가깝다.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한다는 것. 공연을 마치고 직접 악기를 나르고 있는 단원들.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다. 그래서 소리파워의 단원들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

 

소리파워는 수원시 평생학습동아리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을 한 후, 경기도주민자치센터 동아리경연대회에서도 우승을 한 저력이 있는 타악 그룹이다. 전국경연대회에 나가서는 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용환순 단장에게 활동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르신들은 타악 연주 등을 좋아하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찾아가면 일어나셔서 춤을 추시고는 해요. 그리고 잘 보았다고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부탁을 하시죠.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하죠,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단원을 좀 더 보강해, 더 수준 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주부 타악 그룹 소리파워’.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활력답게 인생의 길에서도 그렇게 힘과 행복이 넘쳐나기를 고대한다.

자장가에 숨은 힘

 

우리소리의 힘은 어디까지 일까? 그 해답은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예전 부모님들의 품안에서 자라난 시대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지금처럼 패륜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시대에 따른 불효야 있었겠지만, 그 불효라는 것이 지금의 패륜과는 차이가 있다. 왜 이렇게 세상이 각박하게 변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소리를 잃어버린 후다. 어머니의 살가운 정이 느껴지는 자장가를 잊고 난 후 아이들이 변한 것이다.

 

얼마 전인가 며칠 사이에 우리는 충격적인 뉴스를 연이어 접했다. 후배를 시켜 가족들을 죽인 사건. 강남에서 살고 싶어 어머니와 누나를 방화를 죽게 만들고, 본인은 그 시간 딴 곳에 놀라가 있었다는 얄팍한 머리를 쓴 사건이다. 더구나 출타 중이던 아버지를 범인으로 몰아가려고 했다는 이야기에 정말 어의가 없다. 며칠 후 술이 취해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또 발생 해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자장가를 잃은 세대, 정이 없어

 

그저 우리 것은 모두 불량품이나 골동품 정도로 알고 있는 사고, 외국의 것이라면 ‘개똥도 보약’이라는 문화적 사대주의가 이 나라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다. 남이야 잘못 되어도 관계없다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물론 가정교육이 잘못 된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인성을 제외하고 주입식 교육에 치중한 사회가, 이런 불행한 아이들을 양산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음악교과서에 우리 전통에 대한 내용은, 고작 몇 분의 일도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교육이 정체성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우리는 교육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놓고도, 자리배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필요로 할 것인가?

 

‘우리’라는 개념조차 알려주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국제화만 부르짖는 정책. 그리고 제나라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남의 나라 말부터 가르치는 정책. 이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어머니의 자장가에는 모든 교육이 들어있어

 

그 자손이 추울세라 덮은데 덮어주고,

발치발치 눌러주시며 왼팔 왼젖을 물려놓고

양인양친이 그 자손의 엉둥이 허릴 툭탁치며

사랑에 겨워서 하시는 말씀이

은자동아 금자동아 은이로구나 금이로구나,

만첩청산의 보배동아 순지건곤의 일월동아,

나라에는 충신동아 부모님전 효자동아,

동네방네 귀염동아 일가친척의 화목동아

둥글둥글 수박동아 오색비단의 채색동아

채색비단의 오색동아

은을주면 너를사고, 금을준들 너를 사랴

 

회심곡의 한 부분이다. 이런 소리를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를 재우면서, 또는 등에 업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불러주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 잘못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아이들은 잠재적으로 이 소리를 기억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충신이고 효자로, 동네방네 사랑을 받는 예의가 바른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리는 잠재적인 기억으로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잠재적인 기억이야말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따스한 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소리를 듣고 자란아이, 나쁘게 될 수 없어

 

소리는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검증이 되지 않은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다. 어느 누구는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슬프게 되어버렸다. 누구는 무명시절 ‘쨍하고’를 부르더니 그야말로 쨍하고 해가 떠버렸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힘이다. 알지도 모르는 말을 떠들어 대면서 연신 건들거리고 사는 아이들이, 과연 온전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오륜가를 들어보소. 부모 없는 자식 없고 임군 없는 신하 없다.

부모 공을 알려거든 제 자식을 길러보고, 군의신충 모르거든 효양부모 옮겨가리.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이면 임군에게 충성한다.

존장을 존대하고 친구 간에 신 지켜라. 부부간에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

이러고야 사람이지 저마다 사람이냐. 철모르는 짐승의 기특함을 들어보소.

 

오륜가(五倫歌)의 사설 중 일부분이다. 오륜가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갈 도리를 알려주는 소리다. 이런 좋은 소리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 나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힘이다. 알게 모르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 새를 보고 개구리를 보고도 그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바로 어머니의 따스한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다. 어머니의 자장가는 그저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부르는 소리다. 특별한 곡조도 없다. 아이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소리를 할 뿐이다. 그 소리 안에는 어린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러한 소리를 일어버린 요즈음의 아이들은 너무나도 황폐화 되어있다. TV에서는 선정, 폭력이 난무하고, 컴퓨터 게임에서는 살인과 폭력이 저질러진다. 이런 것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제는 모두 정신을 차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소리, 사랑의 소리, 어머니의 가슴에서 울려지는 살가운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피부로 맞닿는 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이들은 그 따스함을 온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이 가뭄으로 인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모처럼 집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밀려있던 CD 정리 작업부터, 여기저기 쌓였던 먼지도 털어내고. 참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답사를 다니고 신문에 올릴 기사를 정리하다가 보니 늘어나는 것은 짐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료들이 나중에 다 우리의 문화 한 쪽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작은 도움이나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리만 하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듯싶습니다.

 

모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방안에는 많은 것들 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꼭 필요한 것만정리합니다. CD와 책 뿐입니다. 3,000여장의 CD와 700권 정도의 책이 벽을 차지합니다. 책은 3,000권 정도가 되지만 삶터가 비좁은 관계로 나머지는 아우의 서재에 남아있습니다


 

블로거의 역할과 존재가치

 

세상에서 블로거라는 존재들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그 힘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블로거 한 사람은, 이 시대에 매우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각 지자체마다 블로거들을 초청해 지역의 사안을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로거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론사 혹은 대학 강단에도 블로거들이 당당하게 올라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블로거들의 존재가치는 돈으로 환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3,000장 정도의 CD입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전국을 다니면서 찍어 온 자료들이죠. 이 CD들이 가끔은 잘못 된 세상을 바로 잡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블로거의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웃 블로거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독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상당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분들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야 또한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블로거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한 것일 테고요.

 

세상이 블로거를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한 것이 한 7년 정도 되었나봅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접지 않고 계속했다면, 아마 현재 활동을 하는 블로거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 될 것입니다. 2005년 다음에 플래닛이 없어지고 블로그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의 블로거로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실은 3,000개 이상의 들을 썼습니다. 중간에 막무가내로 블로그를 접을 때,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이미 2,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1,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으니, 그 자료만 해도 참 엄청난 자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들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갖고 왔습니다. 좌측 밑에 통나무 찻상 보이시나요? 150년 정도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것을 3년간 비 바람 눈에 젖고 마르고 했던 것을 찻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기억을 떠 올려봅니다. 당시는 다음 메인창에 시사, 문화, 정치 등이 곧잘 올라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예, 요리 등등이 주가 되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문재점을 이야기를 하면, 며칠 안에 말끔히 정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신호체계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면 바로 신호체계를 바로 잡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횡단보도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틀이 안가 횡당보도가 올바르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하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합니다. 다만 그 블로거들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가끔은 곤욕을 치렀다고 이야기를 하는 블로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블로거들의 글 하나하나를 세상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공간입니다. 남은 한 면은 창이죠. 오래된 TV(그래도 나올 것은 다 나옵니다)와 오래 된 컴퓨터. 방 하나에 있는 모든 물건의 전체입니다. 물론 딴 방이 하나 더 있고 주방겸 거실도 있습니다.이 안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글을 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블러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행여 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글이 아니라, 대안까지 치밀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블로거.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로거이기 때문입니다.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과 휴양, 혹은 능원 등에 참배를 하기 위해, 정궁을 벗어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행궁은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 등이 있다. 왕의 병의 치료를 위해서 다니던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다. 기록에 의하면 온양행궁은 조선 세종 이래 역대 왕이 즐겨 찾던 곳이다.



남군영의 건물과 신풍루에서 바라다본 남군영의 지붕(뒤편 좌측), 그리고 신풍루에서 바라다 본 북군영의 지붕(뒤편 우측. 맨 아래)


능원의 참배와 정조의 힘을 보이기 위한 곳

화성 행궁은 왕이 지방의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다. 화성 행궁은 단지 능원의 참배뿐이 아니라, 정조대왕이 양위를 하고 난 후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직접 살기 위해 지은 별궁이다. 그만큼 딴 행궁에 비해 정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궁과는 그 규모와 격이 달랐다고 볼 수 있다.

화성행궁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명당 중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한남정맥의 중조산인 광교산과 백운산의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남진하여, 광교저수지에 모이게 된다. 이 물은 다시 화성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수원천으로 남진해 서해로 흘러든다.


남군영의 행각. 장용외영의 기마병들이 묵는 곳으로 방과 광(무기고, 식량창고 등), 100명의 장용외영의 기마부대가 묵었던 곳이다.


산과 물이 일체가 되어 있는, 그 기가 모이는 곳에 행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조는 화성 행궁을 지으면서, 진남루라는 행궁 정문의 이름을 ‘신풍’으로 바꾸어 달게 하였다. '신풍'이란 명칭은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제2의 고향으로 화성을 마음속에 둔 것이다.

정조의 위엄은 군영에 있었다.

정조대왕이 화산으로 행차를 할 때보면, 장용외영의 군사들의 위엄을 느낄 수가 있다. 아마도 정조는 강력한 군주가 되길 원했다. 정조는 자신의 금군이었던 장용외영을 화성에 주둔시켰다는 것만 보아도, 정조가 생각한 화성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장용영은 정조의 즉위 초에 설치된 숙위소를 혁파 한 후, 정조 9년인 1785년에 설치된 금군 조직이다.


남군영의 현판과 남군영 대청에 전시가 되어있는 당시의 갑주들


정조는 호위친병 장용위(壯勇衛)를 확대, 발전시킨 군영을 조직하여, 막강한 군사조직으로 편제를 조성했다. 이 장용영은 내영과 외영으로 구성되며, 외영을 위주로 하였다. 이 장용외영이 바로 화성에 주둔하였다. 화성 행궁의 정문이었던 신풍루 좌우에는 군영이 자리하고 있다. 신풍루를 바라보고 좌, 우측에 자리한 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이다.

원래 이 군영은 정조 13년인 1789년에 처음으로 지었으며, 정조 18년인 1794년에는 좌우에 익량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정조 22년인 1798년에는 장용외영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좌, 우열은 파하고, 1, 2, 3번의 입번 순서를 정하여 매년 각 100명씩 양 군영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정조가 이렇게 친위부대인 장용외영의 기마부대를, 화성과 행궁을 위주로 주둔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화성을 거점으로 한 강력한 군주상을 세우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정조가 세우고자 했던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무엇보다 먼저 충직하고 강력한 군권만이, 강한 군주를 만들기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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