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란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리나라에는 단품의 명소가 많다. 설악의 붉은 단풍, 내장산의 아름다운 가을, 구룡령의 은은한 멋을 풍기는 가을, 그리고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 길 등, 곳곳에 단풍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수원 화성의 단풍을 보았는가? 이번 주말이 절경이라고 하는 화성의 단풍은 요란하지 않다. 그리고 먼 길을 힘들여 가지 않아도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곳이다.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화성을 축성할 것을 명했다.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화성은 장용외영의 무예24기와 함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성 한 바퀴, 곳곳에서 즐기는 즐거움이 달라

 

화성은 평산성이다. 평산성이란 산과 평지를 연결해 쌓은 성을 말한다. 높지 않은 수원의 팔달산과 그 아래 너른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상 안으로는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어, 성 안 백성들이 가뭄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마련해, 성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축조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그 화성에 가을이 깊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팔달산은 온통 물감을 뿌린 듯하다. 울긋불긋한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란 은행나무도 제 빛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는 억새 또한 화성의 성벽과 더불어 묘한 감흥을 이끌어낸다. 무엇하러 고생하며 먼 길을 나설 것인가? 그저 눈앞에 펼쳐진 화성만으로도 가을은 이미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걷는다. 까치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그 소리도 정겨운 곳이 소나무가 우거진 길이다. 소나무 가지들은 성벽을 넘나든다. 그 안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심호흡을 한 번 해본다. 눈에 보이는 색색들이 사람의 발길을 재촉한다. 어쩌면 느슨하게 마음을 먹었다가 절경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인가 보다.

 

펼쳐진 억새밭으로 연인들이 숨어들어

 

수원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가을철에 걷기 좋은 곳으로 지정을 했다. 팔달산 회주도로, 연무대 성 밖 길 등이다.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걸이다. 소나무 향에 취해 서장대 외곽을 지나 화서문으로 향한다. 그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어르신은, 땀을 흘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나에게 넌지시 한 마디 건넨다.

 

 

어딜 그리 바삐 가오. 가을은 그저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라는데. 아까운 이 경치를 그렇게 걷다보면 어떻게 감상을 하려고

 

걸음을 늦춘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는 듯해서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니 화성을 돌아보는 화성열차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억새밭이 펼쳐진다. 그 안으로 젊은 연인들이 숨어든다. 사진을 찍는다고 들어간 억새밭에는 길이 나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억새밭으로 숨어들은 것일까?

 

 

천년 그리움이

달빛으로

피어오른다

 

화홍문 흐르는

수원천

푸른 물소리

가슴을 적시면

 

세월도

쉬어가는

방화수류정

 

그리운 사람아,

용지 호심에 떠오른 팔각정이

오늘 더욱 유정하다

 

 

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인 임병호 시인이 노래한 방화수류정이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걸어 온 화성의 가을을 잠시 쉬어본다. 봄철이면 용암에 가득 핀 철쭉에 마음을 뺐기고, 한 여름철이면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다. 이 가을에는 용연 주변에 잎을 떠군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깊었음을 느낀다.

 

정조대왕도 이런 풍광 때문에 이곳에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어머니 한 사람, 아이를 달랠 생각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일까? 그곳에 가을이 깊게 내려앉은 화성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그녀의 목소리가 길거리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에 젖어들었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 마치 어느 시골의 밀밭에 부쩍 자란 밀들이 바람에 날리는 그런 목가적인 풍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20세의 어린 소녀 허인순은 뭇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는 그런 노래를 하는 가수였다.

 

밀밭 길 울타리 사이로

조그만 오솔길 있네.

지금은 내 곁을 떠나간

너와의 사랑의 자리

 

그 길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알알이 새겨진 길

그 길은 너와 나의 추억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길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의 밀밭 길 추억1980MBC 라디오 드라마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주제가였다. 허인순은 이 노래로 당시 대한민국 1세대 포크 가수 은희와 최안순으로 시작된 한국 여성 포크 사의 새로운 장을 펼쳐나갈 가수로 평가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음반 15만 장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최다 방송 출연과 신인가수 후보에 오르는 등 당시 한국 가요계의 혜성 같은 존재였다.

 

돌연 은퇴를 한 가수 허인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런 차세대 가수로 각광을 받던 그녀가 돌연 은퇴를 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35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3일 오후 수원 팔달문 앞 영동시장 2층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허인순. 마침 화성 동남각루 아래 가을을 알리는 억새가 바람에 날리던 날 그녀를 만났다.

 

 

당시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결혼도 하고요. 하지만 노래를 그만 둔 것은 아니었어요. 광주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노래자랑 등에 심사를 하기도 했고요. 부산으로 가서 학원을 차리고 사람들에게 음치교정 등과 노래를 학습시키며 살았어요. 늘 가슴 한편에 열망하는 것이 있었지만, 무대에 선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았어요.”

 

광주와 부산 등 지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주부 노래지도와 방송출연, 정신요양원 등 위문공연을 끊임없이 이어갔지만, 더는 음반 발표도 무대에 서지도 않았다고. 그녀는 무대에 서기보다는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는 봉사에서 노래하는 보람을 삼았다고 한다.

 

가수 허인순. 35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 온 그녀는 이미 55세의 중년이 되어있었다. 한 때 수원 지동에서 서울로 다니면서 노래공부를 했다고 하는 그녀는, 가을빛이 물든 화성의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옛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노래교실의 시범 노래강사

 

3 때인 197610, 그녀는 YWCA와 지구 레코드 공사 공동주최 신인 가요제에서 잊으리를 불러 대상수상을 하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1978년 지구레코드사에서 김수호 작사곡 1믿을래요를 출반하고, 연이어 1979 오아시스레코드사에 픽업 된 뒤 신대성 작사곡의 보고 싶을까2집을 발표했다. 비록 무대는 떠났지만 노래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지방에서 노래를 계속하던 그녀는 노래교실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부산에 있을 때 주민센터 등에 노래교실을 운영한다면서 저에게 6개월을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라고 했어요. 반응이 좋으면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요. 그런데 2개월 만에 많은 사람들이 노래교실로 모여들게 되었고, 그 다음에 각 지자체마다 노래교실을 운영하게 되었죠.”

 

 

차도녀로 돌아온 가수 허인순

 

4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라는 박철현 작사, 김현우 작곡의 노래로 우리 곁으로 35년 만에 돌아온 가수 허인순. 7080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만나고 싶어 하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려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진해군항제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몇 번을 청을 했지만 사양을 했는데, 너무 그러는 것도 예의라 아니란 생각이 들어 무대에 올랐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끼가 발동을 한 것이죠. 어차피 무대에 올랐으니 이젠 무대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자고 작정을 했어요.”

 

35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가수 허인순. 대담을 끝내고 돌아서면서 그녀가 건네준 음반속의 목소리는 35년 전과 다름없는 맑은 목소리였다. 다만 숱한 세월을 지나면서 더 농익은 소리로 변했을 뿐이다.

전하, 저곳에 저수지를 만들면 족히 1만 명은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러면 저곳에 저수지를 만들라

 

1795년 능행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안문에 오른 정조대왕과 화성유수 조심태가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만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저수지를 조성하기를 상소한 조심태. 그리고 그 때 조성한 저수지가 바로 만석거이다. 정조는 이 외에도 화성 주변에 만석거와 축만제, 만년제 등을 조성해 치수를 통한 과학적인 농경을 실시한다.

 

현재의 수원을 농업도시 수원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수원이 어떻게 농업도시가 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수원이야말로 과거 정조시대부터 지금까지 농업개혁의 도시이자 농업연구의 도시이다.

 

정조는 정조 17년인 1793년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오랜 시간 구상해 왔던 개혁을 시도하였다. 도시의 규모와 위상을 한양의 도성과 버금가도록 만들고 최고의 축성기술을 이용하여 공격과 수비에 용이한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이 외에도 한양 육의전 외에 화성에도 시전을 설치하여 상업발전을 도모하였으며, 농업기반시설을 조성하여 농업 진흥을 이루도록 독려하였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이상도시를 모범적으로 만든 뒤 이 모델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곳 수원화성은 정조가 만들고 싶었던 조선의 축소판이며 1794년은 그 첫발을 디딘 기념비적인 해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특별기획전을 준비하였다. 농업도시 수원의 전통을 재조명하고 수원시와 농림축산식품부가 함께 준비 중인 농어업역사문화전시체험관 건립에 내실을 기하고자,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으로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특별기획전시를 마련하였다.

 

 

정조대왕이 꿈꾼 나라는 강한 국가였다.

 

조선조 제22대 국왕으로 등극한 정조는 정조 2년인 17786, 당시 사회가 마치 병든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병든 사회를 타개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개혁과제를 대내외에 천명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경장대고(更張大誥)’이다. 백성이 풍요롭게 살고, 인재를 키워 나라를 살찌우며, 군사제도를 강화하여 국방력을 키우고, 재물의 씀씀이를 다져 재정이 튼튼한 나라. 정조가 꿈꾼 나라는 이 네 가지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농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국가의 재정수입도 그 해 농사의 풍흉에 달려 있었다. 정조는 어느 임금보다 농업 생산성을 안정시키고 증대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갔다.

 

매년 정월에 권농교(勸農敎)와 권농윤음(勸農綸音)을 반포하여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농사지을 것을 권하고, 지방관들에게는 이에 대한 행정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당대의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종합하기 위해 전국의 선비들이 정리하여 올린 응지농서(應旨農書)’를 바탕으로 농서대전農書大全편찬을 추진하였다.

 

 

만석거부터 조성하기 시작

 

정조는 1794년 화성성역을 일시 중지하고 대신 둔전을 만들고 화성유수 조심태가 간한 만석거(萬石渠)’라는 수리시설을 축조하도록 명령하였다. 만석거 축조로 인해 화성 장안문 밖의 드넓으면서도 척박했던 대유평은 수전지대로 변했으며 극심한 가뭄도 무사히 극복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화성에서 1798만년제(萬年堤)’, 1799년에는 축만제(祝萬堤)’가 연이어 축조되었으며, 수리시설 축조와 더불어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소출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정조대 서둔동 일대에 조성된 농업기반시설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권업모범장과 농림학교가 들어섰으며,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이 설립됨으로써 수원은 농업연구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30일 오후 3시게 개막식을 갖고 201521일까지 특별기획전으로 전시가 되는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전에는 수원화성의 수리시설과 둔전에 관한 자료는 물론 3D 영상물을 제작하여 척박했던 땅을 개간하여 둔전을 만들고, 수리시설을 통해 풍작을 이루는 모습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냈다.

 

특히 영상제작을 위하여 일제강점기 지적도 등을 검토하여 수원의 옛 지형과 물길을 고증하였다. 수리관개와 관련된 농기구와 함께 연출하여 보다 입체적인 상영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홍재전서><응지농서>, 5.6m에 달하는 윤음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농학자로, 1836년 화성유수로 부임하여 농업개혁가로서 변모를 실현한 사유구의 관련유물 등이 전시된다.

 

27, 전날 저녁에 비가 조금 내리더니 날이 쌀쌀하다. 하지만 아직은 걷기에 좋은 계절이라, 오후에 팔달문을 거쳐 팔달산으로 올랐다. 가을철에 되면 팔달산 단풍도 한 몫을 한다. 그런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사람들은 이 계절이 되면 멀리 단풍구경을 하기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멀리 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수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찾아다니면서 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소개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생각이다. 그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 오른 팔달산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낙엽도 여기저기 쌓여간다.

 

 

단풍이 아름다운 팔달산 회주도로

 

팔달문을 지나 로데오거리에서 팔달산으로 올랐다. 팔달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바로 회주도로이다. 이곳 회주도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길이다. 그래서 걷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팔달산의 가을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다.

 

이곳은 단풍이 아름다운 도로이다. 천천히 길을 걸어 북측으로 난 성벽이 터진 곳을 빠져나가면 억새가 반긴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에 한 낮의 햇볕이 떨어져 온통 은색으로 빛을 발한다. 거기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천천히 성벽을 끼고 걸어본다. 저만큼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보인다.

 

 

화성을 품고 있는 팔달산은 가을이 아름답다. 왕벚나무와 단풍나무들이 곱게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면 이곳은 온통 걷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팔달산. 단풍과 푸른 소나무들이 함께 사람을 반기는 곳이다. 도심 한 복판에 팔달산이 있어 즐거운 이유이다.

 

 

수원은 단풍이 아름다운 고장

 

수원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 상당히 많다. 산이 있고 숲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아름답다. 하지만 수원은 산과 물, 그리고 많은 숲길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산길과 숲길, 그리고 물길까지 갖추고 있는 곳은 그리 흔치가 않다. 그것도 한 두 곳이 아니다. 어딜 가나 그런 가을을 느낄 만한 곳이 많다.

 

만석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 이곳은 또 다른 가을을 만날 수가 있다. 벌써 잎이 져가고 있는 노란 은행잎들과 단풍잎들을 밟으며 몇 마리의 까치들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숲은 인간만이 즐기는 곳이 아니다. 모든 생명들은 숲에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과 짐승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수원의 단풍 이번 주부터 절정

 

수원의 단풍은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이번 주부터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광교산을 비롯해 칠보산과 팔달산, 그리고 광교저수지 목책길과 수변길, 광교호수공원 둘레길, 생태교통길과 네 곳의 하천길. 곳곳에 아름다운 길이 널려있다. 굳이 복잡한 도로를 이용해 멀리가지 않아도 지척에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곳곳에 많은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가을에 내 고장에서 즐길거리를 찾아보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겠는가? 남의 고장을 돌아보는 것도 좋지은 일이다. 하지만 내 고장의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고장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생각이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흐른다. 수원천의 의미는 일반 하천과는 남다르다. 수원천은 그냥 흐르는 개울이 아니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광교저수지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흘러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성으로 유입된다. 일부의 물줄기는 방화수류정 앞에 조성한 용연으로 흘러든다.

 

7간 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성으로 유입된 수원천은 수많은 생명을 잉태시키며 흐른다. 주변으로는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가지를 적시면서 물에는 많은 생명들이 유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행궁 앞에 놓였던 매향교 밑을 지나 9간 수문인 남수문을 지나 성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 앞에는 정조가 내탕금을 내주어 개설을 한 시장이 서 있다.

 

 

수원천이 화성을 가로지르면 흐르는 동안, 그 안에는 숱한 이야기꺼리를 만든다. 그리고 많은 생명들이 그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다. 수원천가에 산책로를 걸으면서 보면 팔뚝만한 고기들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끔은 조용한 물에서 그렇게 튀어 올라 지나는 사람을 놀라게도 한다.

 

수원천이 지척에 있어 늘 즐겁다

 

수원천과 화성이 지척에 있어 늘 즐거운 사람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저 언제나 편하게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곁에 있으면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은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곁에 있어 늘 소중하다. 20일 장안문에 인천 아시안게임 성화가 도착을 한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화성에 일이 있으면 바로 성으로 달려가 걷기 시작한다.

 

 

가까이 있는 화성이 고마운 것은 그 안에 수원천이 흐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안문을 향하면서 창룡문을 거쳐 연무대 앞을 지나 동암문, 그리고 방화수류정과 화홍문(북수문)을 지난다. 그런데 화홍문 7간 수문 앞에 무엇인가 작은 것들이 돌아다닌다. 오리새끼들이다. 어미와 함께 8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잡아먹고 있다.

 

수원천은 생명의 하천이다. 일부 구간이 복개가 되어있던 것을 들어내고 그동안 썩은 물이 흐르던 구간을 정화했다. 남수문을 90년 만에 다시 복원하고 나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변했다.

 

 

생명의 하천 수원천에서 만난 오리새끼들

 

지난해에도 6월인가 세끼들을 수원천에서 만났다. 그때보다는 조금 큰 녀석들은 20일에 화홍문 앞에서 만난 것이다. 8마리나 되는 새끼 오리들이 어미 주위를 떠나지 않은 체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한 관람객은

 

정말로 수원천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네요. 저런 세끼 오리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 녀석들이 수원천에서 태어났다는 소리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도대체 그 추운 겨울동안 어디서 어떻게 키워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라고 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새롭게 태어난 생명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기쁨을 누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수원천에서 태어난 새끼오리들. 몇 년간 계속해서 지켜 본 수원천은 해마다 더 많은 오리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있다. 그만큼 수원천이 살아있는 하천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새삼 가까이에 수원천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