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를 만나면 나는 한 없이 작아진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수령을 지니고 있는 나무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은행나무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여러 가지 약재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다. 또한 열매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나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우리나라 최고령의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를 다섯 번째인가 만난 것은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8월이었다. 용문사 진입로 앞에 차를 대놓고 천천히 빗길을 걸어 들어간다. 차로 들어가도 되겠지만, 용문사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다. 그저 걷기만 해도 주변 경관이 뛰어나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굳이 차로 가도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차로 이동을 한다면 죄스럽기 때문이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설에는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당상관 품계를 받은 은행나무
그밖에도 용문사 은행나무에 대한 설화는 많다. 누군가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며, 1907년에 일어난 정미의병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도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 때 정3품 벼슬인 당상관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졌다. 나무가 이렇게 벼슬아치가 된 것은 보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서 있는 정이품 소나무도 있다. 나무도 벼슬을 줄 수 있었던 우리의 선조들. 이런 것만 보아도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정리하면서 올해는 나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진설명 1. 비오는 날 만난 용문사 은행나무
2. 용문사 경내에서 바라 본 은행나무
3. 은행나무의 밑동
4. 중간 갈래로 뻗은 즐기
5. 가을철 단풍이 든 은행나무(문화재청 사진)
- 이전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