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만 있는 에누리

 

덤 좀 주세요.”

아따 그 양반 많이 드렸구먼.”

그래도 조금 더 주세요.”

자 옛수

 

시장바닥에 나가면 늘 듣는 소리이다. 장사꾼과 물건을 사는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다. 늘 그렇게 더 달라고 하고, 한편은 마지못해 주는 듯 더 집어준다. 하기에 됫박 등으로 담아 파는 물건이야 덤을 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 것이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마음이다.

 

조금만 깎아주세요

안돼요.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닌데

그래도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조금만 깎아주세요

거 참 그 양반 알았우. 그럼 9000원만 내슈

 

10000원짜리 물건을 10%나 깎아준다. 대형할인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는 감히 들어볼 수도 없는 말들이다. 이런 대화는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통시장은 덤으로 인해 정을 키운다.

 

이란 물건을 팔고 살 때,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물건을 조금 더 얹어 주고받음을 말한다. ‘에누리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실제 가격보다 값을 더 높여 부르는 일이나, 물건을 사는 사람이 물건 값을 깎는 일을 말한다. 전통시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행태는 역시 덤과 에누리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일부러 먼 길을 찾아다닌다. 왜 주변에 대형 할인점들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협소하고 대형마트보다 환경이 좋지 않은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정 때문이다. 투박한 손으로 크게 한줌을 더 집어주는 덤과, 큰 인심 쓰듯 조금 깎아주는 에누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우린 남는 것이 없어요.”

 

그 말이 정말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역시 전통시장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대물림 고객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의 손을 잡고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장에서 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 떨이 판매합니다. 지금부터 딱 5분간만 반값에 드립니다.”

대형 할인점에서 잘 찾는 말이다. 갑자기 시작하는 이런 판매방법도, 알고 보면 전통시장에서 배운 방법이다. 하지만 ‘5분간만 반값남는 것이 없어요.’는 전혀 다르다. 5분간만 판매가격의 반값으로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는 것이 없어요.’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남는 것이 없다는 말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바로 전통시장에 있는 정 때문이다.

 

 

왜 전통시장에는 정이 있을까?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는 정이 없다. 모든 것은 정찰제 판매라고 해서 가격표를 붙여놓고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산출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다르다. 덤이 있고 에누리가 있다. 물론 전통시장도 정찰제를 한다. 가격표가 붙어있는 상품들도 있다. 물건을 흥정하다가 그냥 돌아서면, 대개는 깎아줄게 오세요.’라거나, ‘더 드릴께 이리와요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이것이 바로 덤과 에누리의 미학이다.

 

전통시장은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누구하나 무엇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둘러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언제 찾아가도 반갑게 맞이하면서 무엇을 사러 왔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단골이 찾는 물건을 미리 알아서 듬뿍 담아주는 곳. 그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갑오년 설날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대목장보기가 시작이 되었다. 가까운 전통시장을 찾아가 덤도 듬뿍 받아오고, 에누리도 많이하면서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까지 한 아름 받아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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