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이불이요 땅은 돗자리이며 산은 베개로다
달이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인데 바다 물은 술통이로다
크게 취하여 벌떡 일어나 너울너울 춤을 추는데
문득 긴 소매 자락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스럽네.

진묵스님(1562~1633)의 글이다. 스님이 대둔산 자락 개태사에서 지으신 글이라고 한다. 술을 좋아해 ‘곡차’라고 이름을 붙여 술을 드셨다는 진묵스님은, 모악산 대원사와 봉서사에 가장 오래 묵으셨다고 한다. 일설에는 모악산 대원사에 계실 때 이 곡차라는 말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한국불교사상 가장 큰 기인으로 일컬어지는 진묵스님은 초의선사의 『진묵조사유적고』에 기록된 내용으로만 추측을 할 수가 있다.



전주한옥마을 안에 자리한 ‘술 박물관’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있다. 전주에 이렇게 술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이곳이 진묵스님께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신 지역이기 때문이다. 진묵스님은 전라북도 일대와 충청남도 일대에 그 행적이 보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일화를 남기셨으며, 많은 절을 중창하기도 하셨다.

스님의 고장답게 전주에서는 이번 10월 22일과 23일 한옥마을 술 박물관 일원에서 ‘만추만취’라는 부제로 <제2회 전주전통주대향연>이 펼쳐진다. 이 때 전주에서는 발효식품축제와 비빔밥 축제가 함께 베풀어져,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칠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발효식품인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길을 나선다면, 아마 전주의 온 거리에 ‘만추만취’가 되지 않을까?





다양한 행사도 이루어져

21일부터 준비를 하는 전통주대형연은 술 박물관을 비롯하여, 주변의 승광재와 소리문화관 등에서 열린다. 또한 이때는 24일(일)까지 술 박물관을 가면 도자기로 만든 예쁜 술잔을 구입할 수도 있다. 술도 마시고 각종 공연에 잔까지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뿐이 아니다. 국선생 선발대회도 마련되어 있다.

술은 마시고 취하라고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막걸리 한 잔 죽 들이키고 절로 흥에 겨워 어깨춤이라도 덩실 춘다면, 그 또한 진묵스님의 마음을 따를 수 있지 않을까? 박물관 안에 적힌 글귀에서 또 한 차례 오감체험을 한다. 눈으로 먹고, 마음으로 느끼고, 입으로 그 맛을 논한다는 술의 축제가 아니던가?



스님의 행적을 따라 길을 가다

전통주향연에 오면 이런 길을 걸어보고 싶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막걸리 한 통과 술잔 두어 개를 산 뒤, 모악산을 오르고 싶다. 모악산 산사에 모셔진 진묵스님 영정에 술 한 잔 가득 부어 올리고, 심검당 마루에 앉아 수백 년 노송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밝은 달이 얼굴을 보여주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은 없겠지만, 행여 가을 짙은 구름이라도 있다면 그 또한 반갑지 않을쏜가.

그저 한 잔 술에 취해 좋고,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은 날. 전주로 길을 떠나보자. 술이 있고, 친구가 있고, 바람과 달 또한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10월이 되면 온 나라가 축제중이다. 어디를 가나 축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게 많은 축제를 하면서도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축제란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독창적인 진행이 되어야, 많은 사람들로 부터 호응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같은 형태에, 같은 물품이 나열되는 것을 보면 정말 축제다운 축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주말에 전주 한옥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거리가 미어질 정도라고 하면 과정된 표현일까? 적어도 한옥마을 길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축제기간이 이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한옥마을이란 특성상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펼펴지는 각종 공연에, 추억을 떠올라개 하는 작은 거리점포들. 그런 것들이 한옥마을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댄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전주 한옥마을 거리

한옥마을은 흥겨움이 넘쳐난다.

주말과 휴일 한옥마을에 가면 볼거리가 있다. 경기전 앞과 이목대 밑 무대에서 하루 종일 공연이 펼쳐진다. 전주답게 구성진 노랫가락도 들을 수 있고, 어린이들의 사물놀이도 흥겨움을 더한다. 그런가하면 한편에는 추억의 아코디언 연주서 부터,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연주하는 추억의 가요도 들을 수가 있다. 한편에서는 젊음이 넘치는 퓨전국악도 흥겨움을 더해준다.

이렇게 한옥마을 어디를 가도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 한옥마을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한다. 사람들은 볼것이 많아 즐겁고, 먹을 것이 많아 즐겁다고 한다. 한옥마을 안에는 술박물관, 자수박불관 등 옛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과 각종 체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옥에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민박이 준비되어 있기도 하다. 전통 한옥에서 밤을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각종 공연이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펼쳐진다.

다양한 공연과 함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저기서 직접 참여도 하고 만들기도 하며, 또 자신이 만든 것을 먹을 수도 있다. 이러한 관광의 삼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전주한옥마을의 장점이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행사가 한옥마을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별다른 축제가 아닌데도 이렇게 주말과 휴일에 사람들을 위한 행사를, 여기저기 펼쳐 놓는다는 것이 좋으니까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공연장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오고 싶은 곳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한옥마을의 다양한 행사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들이 많다. 전시행정적인 행사가 아니라, 마음 편하게 모고 먹고 즐기는 행사들이다. 그러면서도 참가자 스스로 행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각종 체험은 물론 자신이 만든 것을 먹어볼 수도 있다.

전주 한옥마을.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시간대별로 펼쳐지는 각종 공연과 그저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리기만 해도 즐거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한옥마을에 빠져든다. 민박집 앞에는 하루를 묵어가기 위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느라 돌아다닌다. 사람마다 자신들이 묵을 수 있는 집을 찾아보는 것이다. 

신바람이 나는 곳. 전주 한옥마을. 한편에서는 추억의 뽑기를 하느라 소란하다. 젊은이들이 서로 좋은 것을 해보겠다고 뺏고는 한다. 또 한 곳에선 새내기 부부인지, 연인인지 궁중체험을 한다. 왕과 왕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다. 멋적게 웃어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을 입고는 즐거워 한다.




이번 주말과 휴일에는 비빔밥 축제와 막걸리 축제, 그리고 여러가지 행사가 한옥마을에서 열린다. 이렇게 다양한 축제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각종 공연 등이 마련되어 있다. 가을철은 여행의 계절이라 했던가. 도심에서 묵은 때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곳. 전주한옥마을을 찾아가 보자. 우리 옛것의 아름다움과 현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푹 빠질 수가 있다. 

승광재. 조선의 황손인 이석씨가 사는 곳이다. 한옥마을 최명희 문학관 인근에 있는 승광재는 2004년 8월 경에 지어진 집이다. 이곳은 조선황실의 마지막 황손이라는 이석씨가 거주를 하고 있으며,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설예원과 함께 있다. 현재 전라북도 도지사인 김완주 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직시 이 승광재를 지어 이석씨를 머물게 했다는 것이다.

승광재는 한옥마을의 한편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긴 흙담 사이로 난 골목 안에 일각문이 보이고, 그 문 위에는 ‘승광재’라는 현판을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는 설예원이 있고, 우측으로는 ㄷ 자로 꾸며진 승광재가 자리한다. 승광재는 ㄱ 자 집 두 채를 연결해 ㄷ 자로 꾸민 집이다. 승광재에는 황실 사람들의 사진과 황실에 관련된 내용들이 진열이 되어있다.




지난 해 명성황후 생가에서 만나보다.

내가 황손 이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8일 명성황후 생가에서이다. 명성황후의 추모제를 마치고 그 자리에 참석한 마지막 황손인 이석씨(본명 이해석)를 생가 마루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올해로 벌써 70세인 이석 씨는 한 때 가수로도 활동을 했으며, 터전을 잡지 못해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종 황제의 손이고 아버지는 의친왕이다. 하기에 명성황후는 이석 씨의 할머니가 된다.


지난 해 명성황후 생가에서 만나 황손 이석씨. 그리고 현재 한옥마을의 승광재

황손 이석 씨는 1941년 음력 8월 3일 사동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사동궁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결국 궁에서 나오게 되고,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1979년까지는 그나마 전 박정희 대통령의 안배로 서울 궁정동 청와대 옆, 칠궁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도 쫓겨나 1년이면 12번도 더 이사를 다녔단다.

중앙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국수장사, 자장면 장사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는 황손 이석 씨였다. 한 낮에 찾아 든 승광재에는 문이 닫힌 채 나그네들만 왁자하니 집안을 돌아보고, 예절을 배우러 온 아이들인지 소리를 치면서 뛰어다닌다.

요즈음 한창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있는 사극을 보면서, 만일 일본과의 그런 개탄스런 과거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승광재가 조금은 남다른 집일 것만 같다. 오래된 고옥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조용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시끄럽게 만든다. 그 한편에 숨을 죽이듯 엎드려 있는 승광재를 보면서, 세월의 무심함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승광재와 설예원(아래)

오늘 황손의 집은 낯이 설다. 언제나 그렇듯 이곳도 결코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이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고맙다는 황손의 말을 되새겨본다. 글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한옥마을 한 끄트머리에서 만난 황손의 집에서, 가슴 한편이 싸한 느낌이다.


위는 영조의 가계도, 아래는 고종황제의 가계도(전단지 전사)

길은 어디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한다. 지금이야 차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차를 타고 휑하니 달려가 볼일을 보고는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걷거나 말을 타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니던 길이 이제는 나름대로 멋진 이름을 붙여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길을 걷는 재미에 빠지면, 길이 다시 보인다.

전주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살던 곳이다. 시조인 이한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으로, 조선개국을 칭송한 「용비어천가」에 이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는 군선 5백 척을 진포(군산)에 대놓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우왕은 수군을 총지휘하던 최영에게 명하여 이를 무찌르게 하였는데, 패전한 왜군은 퇴로를 찾아 남원으로 내려왔다. 이성계는 이들을 맞아 운봉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오목대에서 개선 잔치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조선개국의 뜻을 품은 길

한옥마을에서 오목대를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조성을 하였다. 오목대길은 가끔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 곳이지만, 하필 가장 찜통이라는 날을 골랐다. 그래도 나선 길이니 어찌하랴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서 돌아보니, 한옥마을의 지붕들이 줄을 지어 보인다. 사람들은 연신 한옥마을을 촬영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마을을 찍기 좋은 장소를 골라,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따듯하다.




이목대로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이다. 위로 오르면 한옥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한옥마을이 옛날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낮은 야산이지만 숲이 좋은 길이다. 여기저기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았다. 오목대로 오른다. 그 옛날 이성계가 운봉으로 출동하여 황산에 진을 치고 적과 싸우다가, 왜장 ‘아지발도’를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이성계는 승전을 하고 귀경 도중 전주에 있는 종친들을 모시고 승전축하연을 이 오목대에서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이 자리에서 한고조가 불렀다는 ‘대풍가’를 불렀다. 대풍가는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고향에서 종친을 모시고 읊은 시가 아니던가. 바로 한나라를 세우겠다는 마음을 은연중 내비친 시이다.

오목대를 비켜서면 이목대가 있다. 보호책을 둘러놓은 이목대 전각 양편으로는 배롱나무 두 그루가 문지기라도 된 양 꽃을 피우고 있다. 전각 안에 비석은 바로 고종황제가 친필로 썼다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쓰여 있다. 결국 이곳 이목대와 오목대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가 출발하는데 있어, 그 뜻이 모인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는 이성계가 승전을 하고 잔치를 벌인 곳이며,
이목대는 이곳이 이씨들이 살던 곳임을 알려주는 표지이다.

매미소리 시원한 당산 길

이목대를 지나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시원한 숲길에서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아마 마지막 더위를 아쉬워하는 듯하다. 내리막길에 커다란 당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500년 동안 전주 한옥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온 나무이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이곳에서 정결하게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는 당산나무

다시 한옥마을 들어가기 전에 양산재 길로 향한다. 여기저기 목책의자들이 정겹게 놓여있다. 이 찜통더위에 잠시라도 숨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 않는다. 여기도 역시 낙서는 빠지지 않는다. ‘윤진아 사랑해 - 남편’이란 글이 시야에 가득찬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데 낙서를 하면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일까? 괜한 헛웃음만 허공에 날리고 있는데, 더위에 날기를 지친 나비 한 마리 나뭇잎에 숨을 고른다.



쉴수 있도록 마련된 나무의자. 이 길에는 나무의자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 한 낙서와 따라오던 나비 한 마리가 같이 날개를 쉰다.


요즈음 사람들은 길을 걷기를 좋아한다. 길은 어디나 있다. 하지만 길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위한 길도 있지만, 역사와 문화적인 뜻을 가진 길도 있다. 그런가 하면 경치가 아름다운 곳도 있고, 때로는 걷기조차 마음이 편치 않은 길도 있을 수가 있다.

그 많은 길 중에서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길은 역시 경치도 좋고, 역사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길이라면 더욱 좋다. 난 길을 걸을 때마다 생각을 한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건강과 문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길을 두고, 악다구니 같이 답답한 도심으로 몰려드는지 모르겠다고.


꼬부랑 소나무와 고깔바위들이 널린 길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 9-1에 소재한 견훤왕궁지는, 전주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306m의 승암산 동편에 있는 동고산성에 위치해 있다. 이 왕궁터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길을 만날 수가 있다.

꼬부랑 소나무길. 아마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곳이다. 높이 10m 정도의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꼬부라졌다. 흡사 춤을 추듯 제멋대로 휘어진 소나무들은 200여 평 정도에 멋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다. 왜 이곳의 소나무들만 이렇게 휘어진 것일까? 나야 나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왜 이런 나무들이 집단으로 서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50여m 떨어진 곳이 후백제 견훤의 왕궁지가 있고 보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 것만 같다.


요술할매가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소나무들이 모두 휘어져 있다.

꼬부랑 소나무 길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 길을 걸으면 나무계단이 나온다. 이 산 꼭대기에 무슨 나무계단이냐고 투덜거려보지만, 위로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조금 앞으로 보이는 바위들과,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주 시가지 때문이다.

마치 중이 고깔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승암산. 높지 않은 산이지만, 승암산에는 역사와 슬픔이 함께 한다. 동고사를 비롯해 동고산성과 세계 유일한 동정부부 순교자가 묻혔다는 치명자천주교성지 등이 있다. 그래서 이산의 명칭은 승암산이지만 중바위산, 치명자산이라고도 한다. 치명자성지로 인해 치명자산이라고 한다지만, 그보다는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 이름 또한 이유가 있어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바위 꽃이 아름다운 중바위

정상에 오르면 마치 고깔을 엎어놓은 듯한 바위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산마루에 칼끝처럼 뾰족한 바위들이 등성이를 따라 솟아나 있다. 바위에는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한 문양이 돋아나 있다. ‘석화(石花)’라고 한다는 바위 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하나하나가 꽃처럼 아름답다.


중바위에 피어난 석화가 아름다운 문양을 자랑한다.

중바위의 앞으로는 전주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한 눈에 전주 시가지와 전주천, 한옥마을 등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땀을 흘리면서 이곳까지 걸었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즐거운 것은 이런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에 있는 아름다운 길 중 가장 걷고 싶은 길이다.

무더위로 인해 흐른 땀을 산봉우리에 부는 바람에 식히며 다시 길을 걷는다. 동고사 방향으로 길을 내려가면, 가파르기는 해도 운치가 있다. 흡사 예전 꿈속에서나 보던 숲속의 요정이 다니던 길과 같은 곳을 지나야 한다. 조금은 미끄럽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즐겁다. 산이 높지가 않아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승암산길.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하지만, 난 길이 있어 길을 걷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주 시가지와 견훤왕궁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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