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입구나 혹은 사찰 입구에 보면, 부릅뜬 눈에 왕방을 코, 그리고 삐져나온 날카로운 이빨. 어째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장승이라 부르는 이 신표는 지역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장승, 장성, 장신, 벅수, 벅시, 돌하루방. 수살이, 수살목, 수살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장승은 나무나 돌을 조형 해 만들어 세운다. 나무를 깎아 세우면 ‘목장승’이라 하고, 돌을 다듬어 세우면 ‘석장승’이라 한다. 장승만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솟대, 돌무더기, 서낭당, 신목, 선돌등과 함께 동제의 복합적인 형태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기록에 보인 장승

 

장승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아직 정확하지가 않다. 대개는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이나 토지의 ‘경계표지’ 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일설에는 솟대나 선돌, 서낭당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도 전해진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보물 제157호인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탑비’에, 장승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탑비의 내용에는 759년에 ‘장생표주(長生標柱)’가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했다. 그 외에 <용재총화>나 <해동가요> 등에도 장승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이로 보아 통일신라나 고려 때는 이미 장승이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경계표시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장승은 성문, 병영, 해창(海倉), 관로 등에 세운 공공장승이나, 마을입구에 세운 수호장승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하면서 민속신앙의 대상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까지도 마을에서는 장승을 신표의 대상물로 삼고 있는 곳이 상당수가 있으며, 옛 지명 중에 ‘장승백이’나 ‘수살목’ 등은 모두 장승이 서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는 장승

 

장승은 설화나 속담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럴 정도로 우리와는 친숙하다는 것이다. 장승을 잡아다가 치죄를 하여 도둑을 잡았다거나. 판소리 변강쇠타령 등에 보이는 장승에 대한 이야기는, 장승이 민초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척 장승같다’거나 ‘벅수같이 서 있다’ 등은 모두 장승의 형태를 빗대어 하는 속담 등이다.

 

 

장승의 기능은 경계표시장승, 로표장승과 비보장승 등으로 구분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장승의 기능은 대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경계표시 장승은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 잡귀들의 출입을 막고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로표장승은 길목에 세워, 길의 안내를 하는 기능을 갖는 장승을 말한다. 비보장승은 마을의 입구에 서서 마을로 드는 재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장승나라 청양, '장승무덤'도 있네.

 

청양군 대치면 장곡사 입구에는 장승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장승공원은 칠갑산 주변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10여 개 마을에서 지내오는 장승제로 인해, 1999년 칠갑산 장승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전국 최대의 장승공원이다. 칠갑산 주변에는 대치리 한터마을을 비롯하여, 이화리, 대치리, 농소리, 정산면 용두리, 송학리, 천장리, 해남리, 대박리, 운곡면 위라리, 신대리 등에서 장승제가 전해지고 있다.

 

 

장승공원 안에는 장승체험관을 비롯하여 전국 최대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청양 마을의 장승과 각 지역별 장승, 시대별 장승, 창작 장승, 외국의 장승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약 300기가 넘는 장승공원에 서 잇는 장승들은, 그 수명을 다해 쓰러지면 ‘장승무덤’에 갖다가 놓는다.

 

이 많은 장승들, 비오는 날 더 괴이하네.

 

7월 14일 비가 쏟아지는 장마에 장곡사를 둘러보고 난 후, 장승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들고 작은 카메라를 지참하고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비가 심하게 내리니 장승공원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서 있는 장승들을 만나본다.

 

 

왕방울 눈에 매부리 코, 듬성듬성한 이빨을 보이며 희죽이 웃고 있는 장승. 그런가하면 새치름한 표정으로 비가 싫다는 듯 눈썹이 치켜 올라간 장승도 보인다. 허리가 휘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장승이 있는가 하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웃음보를 터트릴 것만 같은 장승도 보인다.

 

장승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참으로 별별 장승이 다 있다. 그 많은 장승들이 하나같이 모습들이 다 다르다. 장승은 깎는 사람의 모습과 마음을 닮는다고 했던가? 아마도 이 장승을 조성한 작가들의 심성이란 생각이다. 우중에 돌아 본 청양의 장승공원. 속으로 되놰 본다.

“이 많은 장승들이 서 있는데 청양에 무슨 일이 있겠어?”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