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도(飛天圖). 손목에 묶은 ‘표대’(혹은 복대라고도 한다)를 바람에 날리며, 그 표대로 하늘을 날면서 바람의 방향과 이동하는 방향을 알 수 있게 만든다. 생명에 없는 차디 찬 돌에 새겨진 비천도로 인해, 돌이 생명을 얻는다. 아마 비천인들은 그린 많은 화공이나 조각을 하는 장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하늘을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천도는 범종에 많이 장식되지만, 법당의 천정이나 석등, 부도, 불단, 또는 전각의 외부 단청 등에도 나타난다. 비천은 ‘불국(佛國)’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때로는 두 손에 공양물을 받쳐 들기도 하고, 꽃을 뿌려 부처님을 공양을 찬탄한다.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며 허공에 떠 있는 비천상은, 도교 설화 속의 선녀를 연상케 한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에 새겨진 비천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 온 비천상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인 허균의 글에 따르면(2005, 1, 14 불교신문) 2000여 년 전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전래될 때 비천도도 그 뒤를 따랐다. 불교의 중국 전래의 통로였던 돈황 막고굴 벽에 그려진 비천은, 인도신화의 건달바나 긴나라의 괴이한 모습이 아닌 도교의 여신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상반신은 배꼽을 드러낸 나체이고, 하반신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속옷 차림이다. 표정 또한 요염하고, 손동작은 유연하고 섬세하다.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신한 비천상이, 4세기 말경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에 불교와 함께 전해졌다. 불교미술에 수용이 된 비천상은 약간의 양식적 변천을 거치며 한국적 비천상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이후 한국 불교의 모든 곳에서는 비천상이 불교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름대로 변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화성 용주사 보물 범종에 새진잰 비천인

비천상은 나름대로 중요한 우리 미술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느 절을 찾아가도 비천도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화 중의 하나다. 이 비천도가 요즈음에는 현대적인 것과 우리 전통예술과 접목이 되면서 나날이 변화를 하고 있다. 요즈음에 그려지는 비천도는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동종에 새겨진 비천도를 보고 반해

아름다운 천인을 그려내는 비천도는 불교미술에서는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야 미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니, 어디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이야 있겠는가? 그저 보고 느낀 바를 적는 것이다. 내가 비천도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상원사 동종 등 사인비구가 제작한 보물 제11호 동종에 나타나는 비천도를 보고나서 부터이다.

작가 김선옥의 그림 비천인(2007년 작)

그 다음 절마다 찾아다니며 비천도를 유심히 보고 사진에 담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인가 절집에 들리면 먼저 벽화며 탱화에 그려진 비천도를 찾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그것은 비천도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나 자신이 천인이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음악을 전공한 나로서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천인상이라는 비천도가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요즈음 현실적으로 많이 발전한 비천도를 보면, 비파를 타거나 횡적을 불거나 아니면 춤을 추는 비천도도 있다. 심지어는 무당춤을 추는 비천도까지 그려질 정도니, 나날이 변화를 해가는 천인상인 비천도는 이제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장르로 발전을 하는 것인 아닌지 모르겠다.


비천도를 보며 마음은 불국토를 향해

비천도 그 자체만 보면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저 표대를 바람에 날리며 때로는 앉아있기도 하고, 때로는 날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그 비천상이 주는 느낌은 볼 때마다 달라진다. 어느 때는 그 비천상을 바라보며 함께 하늘을 날기도 하고, 어느 때는 비천인과 함께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 비천상을 만날 때마다 달라지는 기분은, 스스로의 마음이다. 비천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당시의 느낌이 바로 나란 생각이다. 불교의 교리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전각에 들어서면 절로 머리를 조아리고 참례를 한다. 그리고 비천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기가 일쑤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그 비천인의 모습에서, 굳이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불국토가 따로 있겠는가? 그 비천상을 따르는 마음 하나가 불국토가 아닐는지. 오늘도 마음 한 자락 허공에 띄워 비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세속의 답답함을 훌훌 떨쳐내고, 어디론가 가을바람에 실려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려니.(위 사진은 고기와에 그려진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인/ 김선옥 작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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