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구분은 흔히 ‘제(制)’로 구분한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판소리의 대가닥을 중고제(中高制),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로 구분하고 있다. 이 판소리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멍든 가슴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어 급속히 확산이 되었다. 판소리는 조선조 숙종 때 처음으로 독립된 예술형태로 발전이 되었다. 그 후 정조와 순조대에는 이미 전기 8명창이 배출되어 전국의 소리판을 누볐다.

명창은 어떻게 배출이 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는 명창마다 ‘득음(得音)’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폭포에서, 누구는 동굴에서, 또 누구는 산중에서 각각 그 소리를 얻는 과정이 다르다. 이런 힘든 수 년 간의 과정을 거쳐 소리를 얻게 되면, 이른바 소리판으로 나서게 된다.


정응민 명창의 ‘득음 길’이 위험하다

보성에서 연락이 왔다. 정응민 명창이 득음을 얻었다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 소재한 길지 않은 이 길 끝에는, 최근에 지은 득음정(得音亭)이란 정자가 서 있다. 그 옆으로는 작은 폭포가 있어, 소리공부를 하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지금도 철이되면 소리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정응민 명창은 박유전 명창의 제자로 소리가 탁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고향인 이곳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 마을로 돌아와 소리에만 전념하면서 제자들을 배출했다. 정응민 명창의 보성소리를 잇는 명창으로는 성우향, 조상현, 성창순 등이 있다.



영천리의 소리 길은 마을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거리가 100m 정도, 그리고 득음정까지의 거리가 230m 정도의 비포장 길이다. 그 뒤로는 아름다운 산길이 있어,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는 곳이다. 주민 한 분이 이런 내용을 제보를 해오셨다. 12월 3일, 한 달음에 달려간 득음 길은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이 길을 보성군에서 포장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 주민들이 ‘불가’를 이야기했지만, 보성군에서는 비가오거나 하면 걷기에 어려움이 있어, 포장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 득음 길을 포장한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보성군에서는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좋은 방법을 찾도록 노력을 하자고 제의를 해왔다.

회천면 영천리 373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이성래(남, 43세)는

“득음 길은 소리의 역사를 잇는 길입니다. 꼭 이 길을 포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길 자체만으로도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비포장 길이고 조금 걷기에 불편하다고 해서, 이런 길을 포장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생각입니다”

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보성군에서는, 이외로 주민들의 의사를 100% 받아드렸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포장하겠지만, 자연친화적인 득음 길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역시 ‘소리’는 마음을 열어주는 것

‘보성소리’의 본고장답게 사람들의 마음은 시원하게 열려있었다. 포장을 하겠다는 보성군에서도, 주민들의 의사를 100% 반영하여 계획을 바꾸었다. 즉 주차장까지 100m는 잔디블럭으로 교체하고, 주차장부터 득음정까지의 득음 길은 자연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 것.

주차장까지 포장을 하는 이유는 농사를 지을 때 농기구들이 이동을 하다가 보면, 자칫 논두렁으로 빠지기도 하고 길이 무너져 내리기도 해 불편을 겪어왔다. 그곳을 잔디블럭으로 조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 주차장서부터 득음정까지의 길은 공유공간으로, 자연친화적인 길 그대로를 살리겠다고 가닥을 잡았다.

다만 중간에 물이 나는 곳은 자연적인 배수시설을 조성해, 인위적인 것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보성군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렇게 빠른 결정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보성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데 제격이란 생각입니다. 득음 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자연친화적인 이 길을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과가 좋다며 환하게 웃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닫히고 응어리진 마음을 소리로 풀어주던 명창들의 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이 자연을 부른다.’고 했던가? 자연의 소리는 자연의 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며칠 간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소나무 숲길도 걷고, 바닷바람도 쏘여가면서. 그제(11월 14일) 오후 4시가 넘어 바닷길로 나갔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라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을 보기 위해. 속초 외옹치와 영금정 일대를 돌아보면, 파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치면 영금정엔 폭포가 생긴다.

속초 영금정을 가 보신분들은 한 번 정도는 보았을 장면입니다. 바로 영금정 앞에 놓인 바위를 타고넘는 파도들이 마치 폭포처럼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모습을. 난 늘 그것을 '영금정 폭포'라고 말을 합니다. 각양각색으로 폭포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내는 파도. 이런 다른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것 역시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들입니다.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 달려가는 곳 영금정. 14일엔 파도가 그리 높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 부었다. ‘비가 왔다’는 말은 이제는 옛 이야기이다. 이제는 ‘왔다’ 혹은 ‘내렸다’ 보다는 ‘쏟아 부었다’라는 말이 맞을 듯하다. 단 2~3일 만에 반년 동안 올 비가 왔다는 것이다. 기상이변이라고 애써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속으로는 별별 생각을 다 했을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인지를.

그렇게 한 편에서 쏟아 붓고 있는데, 한 편에선 이마가 까질 정도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참 이 좁은 나라에서도 이젠 점점 이변이 생기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 쏟은 후에는 불볕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세상을 ‘감(感)’ 으로 아신다. 올 여름은 더위가 예년보다 길 것이란 것을.


여름피서, 폭포를 찾아가는 보았나?

여름철에 만나는 폭포. 아마 이런 폭포보다 더 좋은 피서지는 없을 듯하다. 우선 폭포라는 곳을 가면, 물이 떨어지는 그 소리 하나 만으로도 압권이다. 벌써 그 물소리가 다르다. 그리고 물이 떨어지면서 주변으로 튀는 물방울들이 사람을 속 시원히 만든다. 세상에서 찌든 몸과 마음의 때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하다.

그래서 여름피서는 복잡하지 않아 좋고, 시끄럽지 않아 좋은 폭포가 제격이란 생각이다. 전국에는 수많은 폭포가 있지만, 그 중 힘들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폭포를 소개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더욱 좋다.

소금강
강릉 소금강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소금강을 따라 오르다가 보면 수도 없이 많은 크고작은 무명의 폭포들이 줄 지어 있다. 물 맑기로 유명한 소금강. 아이들과 함께 찾아 폭포를 세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태백 미인폭포
폭포가 마치 미인의 몸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미인폭포가 보인다. 까마득한 폭포 주변으로는 괴이한 돌이 붙은 바위들이 널려있다.

구례 수락폭포
도착하면 금방이라도 판소리 한 바탕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이 되면 명창이 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폭포독공에 힘을 쓰는 곳. 피서도 하고 소리도 듣고.

지리산 구룡폭포
남원에 있는 구룡폭포. 길 밑에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만날 수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가 있는 곳이다.

양구 팔랑폭포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한 팔랑폭포. 작은 폭포가 아기자기 하다. 앞으로는 소가 있고, 주변에 나무 숲길이 있어 좋다.

양산 홍룡폭포
양산 홍룡폭포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만한 곳이다. '척판구중'의 일화가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찾으면 고사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줄 수가 있다.

영주 희방폭포
희방사를 오르다가 만나게 되는 폭포이다. 폭포 옆으로 희방사를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폭포의 멋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완주 위봉폭포
위봉폭포 주변으로는 위봉산성과 위봉사, 그리고 폭포를 가기 전 송광사 등이 있는 곳이다. 위봉폭포를 찾아들어가다가 만나는 아름다운 길은 시골 길의 듬뿍 느낄 수가 있다.

폭포는 많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근접하기 좋은 곳으로 소개를 한다. 올 여름은 폭포에서 더위를 피해보자. 이보다 더 좋은 피서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남겨 줄 수가 있으니까

남원은 관광명소가 많기도 유명한 곳이다. 비록 제대로 그 기능을 다 살리지를 못하고 있는 듯해 아쉽기도 하지만, 광한루원을 비롯하여 요천과 지리산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명소가 있다. 그 중 남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리는 곳은, 역시 지리산 둘레길 마을과 광한루 원이다.

광한루원은 요천을 끼고 조성이 되었다. 요천을 흐르는 물은 맑기도 하지만, 주변 절경을 만들면서 흐르고 있기도 하다. 이중 가장 눈여겨 볼만했던 것은 역시 광한루 원과 마주하고 있었던, ‘수임정’이라는 정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름 그대로 ‘물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뜻이다. 요천가에 있던 수임정,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지만 아마도 요천가의 절경에 자리했을 것만 같다.





선녀들이 놀던 곳 승월대

‘승월대’는 말 그대로 ‘달로 오르는 누대’라는 뜻이다. 음력 정월 보름이 되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하강을 해 요천가로 내려왔다. 그리고 밤새도록 비파를 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곁들여 즐기다가 새벽녘 닭이 울기 전에 하늘로 올라갔다. 이 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갈 때는 요천에서 하늘로 솟아오른 금빛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 전설이 얽힌 곳이 바로 승월대이며, 승월대에는 현재 인공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승월대 인공폭포는 남원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승월대 인공폭포에 와서 사진도 찍고 시원한 물소리도 듣는다.




겨울 얼음이 어는 계절이 아니고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철이 되면, 이 승월대 인공폭포가 가동이 된다. 자연 암반을 재현한 폭포에는 여기저기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평일에는 오전 11:00 ~ 13:00시와, 16:00 ~ 18:00시 사이에 두 차례 가동이 된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10 ~ 18:00시 까지 연속적으로 폭포가 흘러내리지만, 45분 동안 흐른 후에는 15분간은 멈추게 된다.

여름철 피서를 하기 알맞은 곳

승월대 인공폭포 안으로는 길이 나 있다. 물이 앞으로 흘러 튀어들어 노면이 미끄럽기는 하지만, 뛰지 않으면 그렇게 큰 위험은 없다. 양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어, 폭포 뒤편으로 한 바퀴 돌 수가 있다.



그길로 들어서면 폭포 소리가 시원하다. 동굴안벽으로 흐르는 폭포도 있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그 앞으로도 폭포가 흘러 떨어진다. 마치 판소리의 명창이 되기 위해 동굴독공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날이 찌는 듯 무더운 날은 이곳을 찾아간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10여 분만 앉아 있어도 서늘한 기운이 든다. 인공폭포라고는 하지만, 폭포의 기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7월 23일 오후에 들린 승월대 인공폭포. 남원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인 듯한 젊은이 두 사람이 교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동굴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8월 보름에 요천가에 내려왔던 천상의 선녀들도, 저렇게 폭포와 같은 금빛 물줄기를 타고 오른 것이 아니었을까? 승월대 인공폭포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 낮의 더위를 이겨본다.

벌써 현장을 돌아다닌지가 햇수로 30년은 되었나보다. 그 동안 전국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남들은 이런 나를 두고 '미쳤다'고도 이야기를 한다. 누구말마따나 처음부터 시작을 한 것이 참 묘하게도 굿판이었다. 무용음악을 작곡의뢰를 받아 작곡을 하다가, 우리 민초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굿판이었다. 왜 굿판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벌떼처럼 달려들고는 했을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세월이 벌써 30년이나 지났다. 물론 처음에는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으는 것이 지금처럼 블로그를 하고,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각 지자체 등에서 의뢰를 받은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한 곳에 들어가면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답사를 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기위해 수많은 시간을 현장답사를 다녀야만 했으니 말이다.

어제 박살이 나버린 렌즈. 배터리는 물속에 빠져버렸다.

답사 최악의 날이 되다.

때로는  산속에서 길을 잃어 밤을 새우는 날도 있었고, 빗길에 몸이 모두 젖어 물에 빠진 새앙쥐꼴이 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눈길을 걷다가 숨이 차고 손발이 얼어들어,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 수많은 날들을 현장에서 가장 소중하게 챙기고 다니는 것은 역시 장비였다. 동영상을 많이 촬영하던 나로서는 그동안 동영상에 필요한 장비만 해도 수십번은 갈아 치웠을 것이다.

요즘에는 문화재를 많이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를 주로 사용을 한다. 산으로 들로 돌아치기 때문에 늘 장비를 신경을 써서 다루어도, 가끔은 고장을 내고는 한다. 오늘 오후 카메라를 챙겨들고 느즈막하게 모악산을 올랐다. 비가 오고나면 모악산 계곡에는 많은 폭포들이 생겨난다. 그 아름다운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리라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모악산 게곡을 따라 조금 오르다가 보면 '선녀폭포'가 나온다.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 찍기 위해 가까이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앗뿔싸 그만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바위 위에 이끼들이 물이 찼다가 빠지면 기름칠을 한 것보다 더 미끄럽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두 다리는 허공으로 나르고 몸은 바위 위로 나가 떨어졌다. 

렌즈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재생불능이라고. 휴대폰으로 찍었다.

아픈 것은 둘째치고 카메라가 손에서 미끌어지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놀라서 먼저 카메라를 들여다보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렌즈는 박살이 나고 배터리는 저만큼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배터리를 찾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또 미끌어졌다. 이번에는 된통 바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등산로에 사람들이 다니지만 창피한 것보다, 먼저 카메라가 박살이 난 것이 마음이 아파 어쩔줄을 모르겠다.

답사 30년만에 넘어지고 미끌어지기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박살이 날 정도로 넘어져 본적은 없었다. 남들은 답사를 다니는 나를보고 부럽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장답사는 늘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거기다가 많은 문화재는 높은 곳에 자리를 한다. 때로는 몇 시간을 산을 올라야만 할 때도 있다. 그것이 바로 문화재의 현장답사다.

오늘 최악의 답사를 하면서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어디 부러진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어떻게 하나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올것만 같다. 부서진 렌즈를 앞에놓고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다. 몇 시간 째. 참 그동안 많이도 나를 도와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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