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차가운 날씨가 무색한 경연무대였다. 7일 오후 2시부터 시장통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다문화 가요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열렸다. 팔달문시장과 함께하는 글로벌 뮤직 페스티벌인 다문화가요제는 40명이 넘는 인원이 예선전을 치룬 후 그중 15명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박요한의 MC로 진행된 이 날 다문화가요제는 처음부터 뜨거웠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본선무대에 앞서 오전 11시부터 팔달문 문화센터의 회원들이 고전무용과 민요, 사물놀이 등으로 차가운 날씨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후, 다문화 특별공연으로 지역가수와 세계전통무용 등이 무대를 장식했다.

 

 

전통시장은 다문화 가족들을 위할 것

 

본선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오른 팔달문시장 조정호 상인회장은

우리 전통시장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장이다. 이제 전통시장을 찾아오는 많은 외국인들과 다문화 가족들이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또한 이곳을 고향의 시장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분위기 또한 개선을 할 것이다. 오늘 출연자 모두가 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초대가수로 무대에 오른 김민교는 마지막 승부, 불놀이야 등을 불렀고, 예선전의 영상이 소개되기도 했다. 3시가 가까운 시간에 시작한 본선은,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하는 참가자들로 인해 무대는 후끈 달아올랐다. MC 박요한의 주문에 따라 자신의 특기들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제일먼저 무대에 오른 스리링카의 차미는 박정식의 멋진인생을 불렀고,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중국의 박춘선은 예선전에서는 이미자의 섬마을선생님을 불렀으나, 본선에서는 장윤정의 애가타를 불렀다. 3번 란잔은 스리랑카 출신으로 전철의 해운대 연가를 불러 동상을 거머쥐기도.

 

 

차가운 날씨도 뜨거운 열기 막지 못해

 

며칠 전부터 눈이 내리고 기온이 떨어졌다. 한 낮이라고 해도 쌀쌀한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뜨거운 다문화 가족들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500여명의 관객들이 몰려든 본선 특설무대 앞 객석에는 응원을 나온 가족들과 다문화 식구들이 많이 자리를 하고 앉았다.

 

오늘 이렇게 팔달문 시장에서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수원처럼 다문화 가정을 위한 행사를 하는 지자체가 많지가 않습니다. 오늘 본선에 오른 모든 분들이 모두 상을 받아가셨으면 합니다. 물론 상이야 6명이 받는 것이지만요.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이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입니다.”

 

한국에 나온 지 6년이 지났다는 중국인 김수향(36)씨는 지인이 본선에 올라 응원을 하러 나왔다고 하면서, 상을 못 타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중간 중간 초대가수 양혜승과 방대한 등이 출연해 뿐이고, 비빔밥, 결혼은 미친짓이야, 화려한 싱글 등을 불러 많은 박수를 받기도.

 

15명의 본선 진출자가 무대공연을 다 마친 시간은 오후 430분 정도였다. 이날 출연자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으며, 나름 한국생활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고 한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에게는 푸짐한 경품도 주어졌다.

 

 

15명의 출연자 중 영예의 대상은 이승철의 소리쳐를 부른 중국의 양호진(, 22)이 상금 80만원을 받았다. 양호진은 언더가수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다문화 가수라고. 금상은 몽골의 바야르마가 마야의 나를 외치다를 불러 수상했으며, 은상은 중국의 정도향이 김미도의 또찍고를 불렀다.

 

이 외에 동상은 스리랑카의 란잔이 받았으며, 인기상은 몽골의 뭉크가 받았다. 중국의 양준강은 박현빈의 샤방샤방을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수상을 못한 본선 진출자들에게도 참가상이 주어졌다. 3시간 가까이 열띤 경연을 벌인 다문화가요제. 사람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대를 떠났지만, 이런 행사로 인해 다문화 가족들이 전통시장과 더 가까워 질 수 있기를 바란다.

 

9일은 한글날로 법정공휴일이다. ‘51회 수원화성문화제2일차인 9, 수원 행궁동과 장안문로 일대에는 역대 화성문화제 축제 기간 중 최대인파가 모여들었다. 공휴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화성문화제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가장 명성을 얻고 있는 문화관광형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습이다.

 

아침부터 주 행사장인 화성 행궁 일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1시 경에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정조대왕 능행차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이에서 능행차와 시민 퍼레이드를 보기 위함이다.

 

지난해 구경을 하려고 나왔는데 좋은 자리를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일찌감치 나와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먹을 것도 싸왔으니 오늘은 제대로 구경을 한 번 해보아야죠.”

 

 

매탄동에서 능행차 구경을 하러 나왔다는 조아무개(, 54)씨는 행궁동 입구 커피숍 앞에 자리를 하고 앉았다. 이곳이 가장 구경하기가 좋은 몫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행궁 광장과 음식문화 축제장 등도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이다.

 

역대 화성문화제 최고의 인파

 

‘2014 수원음식문화축제장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길게 줄이 늘어선 곳이 여기저기 보인다. 중식과 일식을 판매하는 곳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음식을 먹는 부스 안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 수원갈비를 파는 곳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마찬가지.

 

저는 팔달문 앞에서 시민퍼레이드 구경을 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거든요. 어제(8)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화성문화제 역대에 최고 인듯해요.”

 

 

수원의 먹거리 길인 통닭거리도 예외는 아니다. 몰려 든 사람들로 인해 길을 비켜가기도 힘들 정도.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통닭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자리 없어요.‘라는 말만 돌아온다. 몇 집을 찾아가도 마찬가지이다.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받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화성문화제는 전국 최고의 문화관광 축제

 

수원화성문화제를 찾아 온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들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김아무개(, 39)는 다니기가 버거울 정도라고 하면서

정말이지 화성문화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인 줄은 몰랐어요. 물론 51회라는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정조대왕의 능행차 때문인 듯합니다. 오늘 정말 좋은 축제를 구경하고 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한다.

 

수원시 공보관실 SNS팀에서 주관한 파워블로거 팸투어에 참가를 한 블로거 한 사람은

전국의 축제에 초청을 받아 다니지만, 수원이 그 중 최고입니다. 수원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사 내용도 가장 내실있는 듯하고, 여기저기 볼 것이 너무 많아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아마 먹거리도 수원만큼 다양한 곳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화성문화재는 정말 최고의 축제입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는 51회 수원화성문화제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끝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온통 거리가 인파로 뒤덮였다. 축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먹고, 즐기는 곳이다. 그런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축제가 바로 화성문화제이다. 앞으로 남은 12일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기대가 된다.

 

수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의 양편에는 적대라는 구조물이 있다. 이 적대는 장안문을 지키기 위한 시설로 적대에는 홍이포를 설치하였다. ‘홍이포(紅夷砲)’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유래된 대포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네덜란드를 홍이(紅夷)라고 불렀기 때문에 홍이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홍이포는 남만대포(男蠻大砲)’라고도 부른다. 조선 영조 때 2문이 주조되었으며, 홍이포는 길이 215cm, 중량 1.8t, 구경 12cm, 최대사정거리2 ~ 5km 유효사정거리는 700m 인 전장포이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 사건 때 사용되었다

 

 

강화부의 화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홍이포

 

홍이포가 처음 기록에 보이는 것은 1664년이다. 당시 강도어사 민유중이 병자호란 이후, 강화부의 미곡과 화기에 대한 보유 상황을 조사하는데, 그 목록에 남만대포라는 화기가 등장한다. 당시 강화부의 화기류는 현종개수실록현종56월 계축조에 의하면, 진천뢰 140, 대완구·대포·중포가 65, 소완구 30, 호준포 37, 각 보에는 대포 179, 진천뢰 63, 남만대포 12, 불랑기 244좌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남만대포 12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남만대포인 홍이포는 12좌로 다른 화기보다 수가 적기는 하였지만, 남만대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기술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전래한 서양포에 대해 일반적으로 불랑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불랑기는 임진왜란 시기에 해당되는 1593년 정월 이후, 명에 의한 평양성 공격을 계기로 본격적인 도입이 모색되었다. 그 당시는 서양 기술이 도입된 대포의 호칭에 대해서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던 게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만대포와 불랑기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불랑기와 홍이포는 다른 종류의 대포임을 알 수 있다.

 

화성의 홍이포는 영조 때 우리가 만들었다

 

홍이포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이는 붉은 오랑캐라는 말로 머리털이 붉은 네덜란드인을 뜻한다. 16세기 네덜란드 선교사들에 중국 명에 전해진 서양대포를 말한다고 했고, 17세기 초 정두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받아 조선으로 전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조실록영조79월 신사조에 기록된 훈련도감의 보고 기록에는

본국(훈련도감)에서 새로 마련한 동포(銅砲)50이고, 홍이포가 둘인데, 그것을 싣는 수레는 52폭입니다. 동포의 탄환거리는 2천여보이며, 홍이포의 탄환거리는 10여리나 되니, 이는 실로 위급한 시기에 사용할 만한 것입니다. 홍이포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예람하시도록 올리니 강동한 자들의 노고를 기록해 주소서.라는 내용이 보이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홍이포는 박연이나 하멜이 갖고 온 것이지만, 조선 영조 이후에는 홍이포를 직접 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화성에 진설된 홍이포는 순수한 우리기슬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있다. 홍이포는 포탄이 여러 조각으로 폭발하는 산발식이 아니라 둥그런 철환 덩어리들이 목표물을 부수는 형식의 대포이다. 하기에 최대사정거리는 2~5km에 이르는 홍이포가 유호사정거리 700m에서 그 철환들이 갖는 위력은 놀랄 만 할 것으로 보인다.

 

장안문과 팔달문 양편에 적대를 만들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적대에 놓인 홍이포.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한 홍이포가 아닌 영조 때 우리기술로 만든 홍이포. 사정거리가 700m에 이르는 이 홍이포의 위력이야말로 화성을 지켜내는 화기 중 가장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수원시 팔달구 팔달문로 4번길 19에 소재한 시민상가시장.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백화점으로 등록이 된 시장이다. 지금도 건물의 외벽에는 시민상가가 아닌 시민백화점이라는 명패가 걸려있다. 공식명칭은 시민상가시장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민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대야 알아듣는다.

 

2005614일 수원시 인정시장 1호로 등록이 된 시민상가시장은, 점포수 54개소에 종업원수 70명 정도로, 매장면적은 1,034부지면적 1,084이다. 이 시장은 사실 수원시에서 백화점으로 지어 임대사업을 한 시장이다. 벌써 상가를 지은 지가 57년이나 되었다. 1957년도에 수원시에서 시민백화점으로 지어 임대를 하였던 것을, 1969년도에 점포를 모두 상인들에게 매매를 하였다.

 

3대 째 대물림하는 명동양행

 

시민상가시장은 점포수는 54개에 불과하지만, 입점업주들 100%가 모두 상인회 회원들이다. 시에서 매매를 할 때 주주들이 구성되어 있어, 규모는 작지만 가장 내실이 있는 상인회다. 이 시민백화점에서 3대 째 남성복만을 취급하면서 40년을 이어 온 점포가 있다. 40년 전 할아버지는 시민백화점의 관리를 맡아하셨다.

 

 

그 후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점포를 한 칸 얻어 옷장사를 시작했고, 3년 뒤 큰아버지는 딴 업종으로 옮겼다. 현재는 아버지 안태식씨와 아들인 안석효(34)씨가 함께 명동양행을 운영하고 있다.

 

할아버님께서는 처음에 이곳에서 관리를 맡아 하셨대요. 그러다가 큰아버님과 아버님이 점포를 한 칸 얻어 남성복 장사를 시작하셨죠. 40년 동안 한 칸씩 늘려나간 것이 지금은 6칸으로 늘어났어요. 팔달문 앞 시장 중에서 남성복 전문매장으로는 저희가 가장 큰 매장을 갖고 있는 셈이죠.”

 

안석효씨는 고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결혼을 한 후 이곳에 나와 아버지를 도와 점포운영을 하고 있단다.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로 가게 일을 돕기도 하고, 대학교를 다닐 때도 딴 곳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부친이 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 단골손님들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저희 집의 단골들은 대개 대물린 단골들이 많아요. 저희가 중 장년층 옷을 취급하기 때문에 50~60대 분들이 주 고객이죠. 그리고 그런 분들은 대개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점포를 함께 보실 때 이곳을 드리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소개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형제나 다름없이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죠.”

 

 

중국여행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이곳 팔달문 앞의 시장들은 대개 중국의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주로 이용을 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매상의 30% 정도를 이들이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곳에 밀집된 전통시장들은 이들에 따라서 매상이 좌우될 정도라고 한다.

 

저는 중국에서 1년 넘게 살았어요. 여행을 워낙 좋아해 중국의 많은 곳을 여행을 했는데 지금 그런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죠. 대개 이곳에 옷을 사러 오는 분들이 한족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우리말을 잘 못하니까 제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그들 고향을 이야기하다보면 저절로 단골이 되죠. 그 분들이 또 딴 분 소개를 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에, 저희 집은 한 40% 정도는 한족이나 조선족이라고 보아야죠.”

 

그래서 남들이 다 어렵다고 할 때도 크게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건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안석효씨는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생산된 옷을 절대로 사지 않기 때문에, 자연 좋은 상품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니 품질도 좋기 때문에 단골 확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희는 아버님과 어머님(류승희)이 점포를 함께 보시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있어요. 예전에는 점원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함께 하니까 인건비도 안 들어가고요. 앞으로도 고객관리를 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꾸준한 고객관리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

 

부모는 단골들을 관리하고 아들은 운영과 회계를 관리한다는 40년 전통의 영동양행. 중장년층의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는 이집이 유명한 것은, 바로 고객들에게 대한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문을 닫는 날에도 사전에 미리 예약이 된 손님들이나, 물건을 교환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문을 열어놓는다고.

 

이곳도 방송이나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면 저희 집을 꼭 찾아와요. 3대가 시민상가에서 생활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남성복 전문점으로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손님들이 오자 어서오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안내를 하는 안석효씨. 그런 행동을 보면서 3대를 이 시장에서 대물림을 하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한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친절이 최고라는 안석효씨의 신념 때문이다.

 

팔달문 앞에 인정시장(인정시장은 흔히 전통시장이라고 하며 상인회의 가입된 점포수가 50개 이상인 시장을 말한다.)은 모두 9개 시장이 있다.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남문 패선1번가, 시민상가,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등 7개 시장과, 도로를 사이에 둔 남문로데오상가와 구천동 공구상가 등이다. 이 중 도로를 건너는 2곳의 시장을 제외한 7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흔히 명절 대목장이라고 하는 장날 아닌 장날인 셈이다.

 

평소 이 7개 시장을 이용하는 인원은 하루에 4만 여명 정도가 될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대목장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20만 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팔달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의 말이다. 이곳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이지만, 29일 오후는 단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평소보다 세 배 정도 팔았어요.”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서부터 지동교 바향으로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리저리 피하기도 수월치가 않다. 팔달문 시장 거리와 영동시장, 그리고 패션 1번가와 시민백화점 등을 돌아보았다. 어림잡아도 주말에 모이는 인파의 두 배는 넘을 듯하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빠졌어요. 오전에는 정말 발 디딜 팀도 없었어요. 예년보다 올해가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패션 1번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예년보다 사람들이 더 몰린 듯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 그동안 꾸준히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해오기도 했지만, 방송 등에서 전통시장을 이용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고.

 

 

오늘은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저희들도 오늘 평소 때보다 세 배는 더 판 것 같아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미나리광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바쁘다고 빨리 가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온통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 못골시장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사람들에게 밀려 장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말 밀려서 그냥 물건 흥정도 제대로 못할 지경예요. 저희는 수지에서 왔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엄청나네요. 전통시장을 사람들이 이렇게 선호할 줄은 몰랐습니다.”

수지에서 장을 보러 왔다는 이아무개(, 43)는 제대로 장이나 보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 바퀴 더 돌아보아야겠다고 한다.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해야

 

오늘따라 노점상들까지 모여들어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말이죠. 이렇게 전통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면서, 흡사 과거 우리네 모습을 찾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지동시장 정육점 앞에서 적거리를 사고 있던 한 시민은 차례는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를 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좋은 상품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도리이다. 이곳 전통시장을 늘 이용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형마트 등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도 다 준비가 되어있다. 굳이 딴 곳을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전통시장이 살아나야 지역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다.

 

갑오년 정월 초하루를 맞이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우리고유의 명절인 설날’. 전통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민족의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대목장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 들어가 그저 인파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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