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골목에 무슨 나무라도 심었다는 이야기일까? 남들은 그렇게 질문을 한다. 국내 최장 벽화골목을 갖고 있는 팔달구 지동에는 매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어 벽에 달라붙어 그림을 그린다. 그동안 지동을 찾은 자원봉사자만도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이 벽화골목의 화가인 셈이다.

 

지동 벽화골목의 특징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아마추어들이 이곳을 찾아와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혹은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다. 그저 몇 명씩 수원자원봉사센터를 이용하거나, 지동 벽화골목의 총괄작가인 유순혜 작가를 통해서 이곳을 찾아 온 것이다.

 

 

처음에는 5개년 계획으로 벽화길 조성을 시작했지만 이제 7년으로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올해 벽화골목의 주제는 한글, 벽화와 만나다라는 주제를 갖고 벽화골목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벽화골목이 이제 용마루 길과 만나는 곳까지 이어져 있죠. 그리고 시인의 벽과 연결되는 벽에는 희망의 나무를 조성 중에 있습니다.”

 

지동 창룡문로 56번 길에 희망의 나무가 자란다.

 

유순혜 작가는 지금까지 희망의 나무에 글을 쓴 봉사자들은 어림잡아 600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600개의 희망에 찬 글들이 지동 사람들과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전달 된 것이다. 지동 희망의 나무는 창룡문로 56번길 18호의 커다란 벽에 마련되었다. 이곳에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희망의 나무는 점점 더 자라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 나무는 앞으로도 계속 나뭇잎을 늘려갈 것입니다. 아마 이 벽 전체에 잎이 다 차려면 한 4,000명 정도의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런 벽화를 만날 수는 없죠. 이런 벽화가 가능 한 것은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지동 벽화골목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동 희망의 나무 벽화는 창룡문로 56번 길 18호와 맞은 편 담벼락, 그리고 시인의 벽과 연결이 되는 곳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현재 희망의 나무 반대편에는 나뭇잎과 열매 등이 벽에 달릴 것이라고.

 

 

7개년 계획이 다 끝나고 나면 벽화골목 길이만 3.4km

 

이곳과 건너편 그리고 저 아래 시인의 벽으로 연결하는 희망의 나무는 올해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우리 지동을 찾아오시는 자원봉사자와 관람객들이 나뭇잎을 만들어 주실 것이고요. 우리 지동의 벽화골목 안내 책자 뒤에 희망의 나뭇잎을 끼어서 관람객들이 글을 써 벽에 붙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희망의 나무가 지동의 새로운 벽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나뭇잎에 하나하나 적은 글귀들이 모여 지동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우리 지동 벽화골목은 7년 계획을 모두 마치면 장장 3.4km에 달하는 국내 최장의 벽화길이 됩니다. 그때는 정말 많은 분들이 이 벽화골목을 돌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있기 때문이죠.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이 희망의 나뭇잎을 달아주실 것이고요

 

커다란 벽에 초록 나뭇잎을 늘려가고 있는 희망의 나무. 그 나무 잎에 적힌 소망대로 모든 사람들이 잘 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아마도 정월 나혜석이 그랬는가 보다, 나혜석의 이름을 딴 거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물론 행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원 도심에서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이 거리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726일 오후에 찾아간 나혜석 거리는 마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정월 나혜석은 1896428일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는 수원 삼일여학교(현 수원 매향여고) 1회로 졸업하고, 191317세에 진명여자보통학교를 3회로 졸업했다. 진명여고를 졸업한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유학생으로 동경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나혜석은 21세인 1917년부터 정월이라는 호를 사용해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3세인 1919년에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소설인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그해 3,1독립운동 참가로 6개월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듬해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을 한 나혜석은 다음해 여성 최초의 시인 <인형의 집>을 발표한다.

 

 

수많은 최초를 기록한 나혜석

 

31세인 1927년에는 여성최초로 세계일주여행을 한다. 그리고 파리에서 미술수업을 받는다. 1929년에 귀국한 나혜석은 1931년에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고 남편인 김우영과 이혼을 한다. 1939년에는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1935년에는 현 팔달구 지동으로 귀향을 해 <반도 여성에게> 등 시와 수필을 발표한다.

 

그리고 수원에서 수원 서호, 화령전 작약 등 200여 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41세 때는 수덕사로 만공스님을 찾아간 나혜석은 본격적인 구도를 시작한다. 42세 때는 수덕사, 마곡사, 다솔사, 해인사 등을 오가며 마지막으로 집필한 <해인사 풍광>을 발표한 후, 1948121052세로 서울시립 자제원(현 용산구청 자리)에서 무연고자로 사망했다.

 

 

정월 나혜석에 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나혜석이라는 여인이 우리 문화사에 남긴 족적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나혜석을 기리고자 하는 거리인 나혜석거리. 수원시 권광로 188번 길은 항상 사람들로 만원이다.

 

나혜석거리 예술시장 많은 사람들 몰려

 

나혜석`거리에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 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바로 4월부터 10월까지 마지막째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이곳에서 예술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예술시장은 직접 작품을 만들어 이곳에 나와 구매자들애게 판매를 할 수 있다. 나혜석거리 예술시장 운영위원회가 주관을 하는 이 행사는 60여명이 넘는 작가들이 참여를 한단다.

 

 

많이 참여를 할 때는 엄청납니다. 아마 거의 100여명 정도 작가들이 참여를 하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들고 나오기 정말 좋은 작품들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나혜석거리 예술시장과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는 한 주부는 너무나 살 것이 많아 즐겁다고 하면서, 연신 무엇인가를 흥정하고 있다. 작품을 들고 나왔다는 한 사람은 시간이 5시부터 8시까지라 조금 아쉽다고 한다. 8시까지로 시간을 정한 것은 이 거리가 8시부터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좌판을 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혜석을 기리기 위한 거리. 그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4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작품들. 어린 학생들도 참여를 한 이 예술시장으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발길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듯하다.

 

수원시 팔달구는 집집마다 대문에 웬 그물망이 하나씩 걸려있다. 골목골목에는 어김없이 그물망이 걸려있고 그 안에는 내용물이 들어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얼기설기 망으로 된 이 자루는 팔달구에서 분리수거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주민들이 일일이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치운다는 것.

 

세상에 구청에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서 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주민편의를 생각했다는 것이니까요

 

주민 한 분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었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를 한다. 쓰레기분리수거는 사실 주민들에게도 조금은 불편한 일이다. 일일이 구분을 해서 내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 재활용품만 그물망에 넣어주세요

 

나일론 끈으로 짜인 그물망 위에는 설명서가 한 장 붙어있다.

잠깐! 재활용품만 넣어주세요

/금속류, 플라스틱류, 비닐류 등 그물망에 담아 배출

종이 · 박스 · 신문지 · 스티로폼 등 끈으로 묶어서 따로 배출

건전지 형광등은 별도 수거함에 배출

규격봉투에 배출되지 않은 무단투기 쓰레기는 수거하지 않음

 

위와 같은 내용을 적은 안내문구가 봉투에 부착되어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생활화 되어있는 아파트 등 집단주거 시설은 한편에 모아놓은 재활용품을 수거해가면 된다. 하지만 일반 주택가에서는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버려지는 재활용품이 줄어들 것

 

안내문에 쓰여 있는 대로 분리수거 망 안에는 캔과 금속류, 플라스틱 종류의 것들만 들어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비닐봉투에 한꺼번에 다 넣어서 쓰레기 적치장에 버리던 것을 이제는 하나하나 분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니 구청에서 수거를 해가기 전에 폐지 등을 줍는 분들이 먼저 와서 필요한 것을 수집해가기도 하네요. 그분들도 일일이 쓰레기 적치장을 다니면서 봉투를 하나하나 들춰가며 찾아보고는 했는데 그런 점은 많이 나아진 듯해요.”

 

주민들은 이렇게 분리수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망을 설치해 놓은 것이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집 대문에 망이 걸려있으니 그대그때 갖다가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분리수거를 위해 일부러 들이던 노력과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

 

 

이 재활용 수집망이 제대로 활용이 되고 정착이 되면 재활용품의 분리수거는 물론, 일반 쓰레기의 양도 많이 줄어들 듯합니다. 앞으로 주민들은 더 편하고, 재활용쓰레기의 양은 더 많게 만들어야죠. 제대로 시행만 된다면 쓰레기양을 줄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자의 말처럼 요즈음 대문마다 걸린 재활용 수거 망에는 가득가득 분리수거용 재활용품이 쌓여만 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주민들의 칭찬도 함께 쌓여가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 293에 새롭게 문을 여는 수원영상미디어센터.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지하 1층에 자리를 잡은 미디어센터가 27일 오전 10시에 개관식을 갖는다. 수원영상미디어센터는 수원시민과 함께 영상으로 즐기고 미디어로 소통하는 곳이다. 개관식을 앞둔 25일 오후 영상미디어센터를 찾았다.

 

마침 이곳에는 영상미디어센터 개관식을 앞두고 청소년문화센터 이사장을 비롯하여 수원시 공보관실 이 경우 공보관과 관계자들이 모여 개관식을 준비하는 회의를 열고 있었다. 수원영상미디어센터 안과 밖으로도 마지막으로 개관 준비를 하느라 물청소 등을 하는 등 개관에 차질이 없도록 모두가 분주한 모습이다.

 

 

시민 개개인의 역량을 미디어로 표출

 

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미디어라는 전달방식을 통해 표현하고 교류하며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사람이 따뜻한 사회와 도시를 꿈꾸며 그 한걸음에 보탬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원영상미디어센터에서 누구나 미디어를 배우고 창작하고, 미디어를 통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이다.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시민이 자기 표현력을 높일 수 있도록 영상미디어교육과 영상제작을 지원해 준다. 또한 시민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고 마을미디어 환경을 마련한단다. 외에도 시민을 위한 미디어도서관과 독립, 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상영관을 운영하며, 시청각장애인도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영화 상영과 제작도 지원할 계획이다.

 

 

수원영상미디어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 수원시의 지원으로 건립하였습니다. 주 이용층은 수원시민이면 누구나 다 할 수가 있지만 필요한 회원가입과 교육을 이수해야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청소년들이 기자재 등을 많이 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이 이미 미디어센터에서 많은 것들을 제작하고 공부하였기 때문에, 시민들 보다는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이죠.”

 

청소년문화센터 김충영 이사장의 말이다. 개관식을 마치고나면 정회원을 모집하고 일정 기간 교육을 수료한 후인 71일부터나 정규프로그램 및 시설과 장비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

 

다양한 시설과 특별강좌 마련되어 있어

 

미디어센터에는 교육실과 디지털교육실, 영상스튜디오, 영상조정실, 소리스튜디오, 소리조정실, 전문편집실, 라디오방송실, 기자재실, 미디어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방송기자재나 편집장비들도 모두 최고의 것으로 구비를 했다고 한다. 그동안 경기도에는 영상미디어센터가 3개 지자체에서 운영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수원에 문을 여는 영상미디어센터는 한층 업그레이드가 된 장비와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개관기념 특별강좌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미디어 문을 열다가 가족, 사진, 인문학(sns)과 함께 등 모두 6탄까지 마련되어 있으며, 개관기념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 ‘미드 나잇 인 파리등의 영화상영도 마련이 되어있다. 613일에는 수원의 소통 공간으로서의 미디어센터, 역할과 방향성을 위한 연린 토크도 마련되어 있다.

 

시민들 모두가 미디어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개관을 하는 수원영상미디어센터. 27일 오전 10시에 행해지는 개관식에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바란다.

 

지동길목

홀로 핀 봉숭아 꽃 너무 붉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탱글한 씨앗자루

꼬투리 투툭, 터지며

날아든 파편

내 가슴 한 켠에 박혀

새록새록 이듬해 핀다.

 

 

지난 1026일 오후 지동 벽화골목에 시인의 벽이 마련되었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었다. 시인의 벽은 시립지동어린이집 건너편 벽에 마련이 되었다.

 

 

눈 오는 날 벽에 시를 입히는 시인들

 

14일 오후, 이 지동 벽화 길에 또 다시 1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들었다. 가는 눈이 점차 함박눈으로 변해 내리지만, 벽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흡사 자신들이 마치 눈인 듯 벽에 시를 입힌다. 위 시는 정겸 시인의 봉숭아 꽃이라는 시이다. 눈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바람까지 분다. 1차 시인의 벽을 조성할 때 미처 찾아오지 못했던 시인들이다.

 

시인 윤민희는 지천명이라는 시를 적었다.

 

절반은 내가 가고

절반은 네가 와서

손잡고 갔으면 좋겠어

 

절반은 앞에서

절반은 뒤에서

나란히 갔으면 좋겠어

 

자정이 바라보는 정오

춘분 추분이 바라보는 해와 달

좌우 날개로 나는 새들처럼

중용을 잃지 않는

지천명이었으면 좋겠어

 

날이 춥다. 그 추운 날을 녹이는 것이 바로 시인의 벽이요 지동 벽화 시골목이다. 한참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시를 쓰고 있는데 골목의 한 집 대문이 열린다. 지동 창룡문로 60-3의 주소를 가진 집이다. 직접 커피를 끓여 시인들에게 대접을 한다. 집 주인과 따님이 내어주는 커피 한 잔에 차갑던 몸이 녹는다.

 

눈이 오는 날 지동을 찾아 시를 적는 시인들에게 따듯한 차 한 잔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마음 하나가 찬 눈이 쌓인 감나무 가지에 달린 까치밥과 같이 여유롭다. 그래서 지동은 살가운 동네라고들 한다. 인정이 넘치는 지동 벽화골목. 그곳에 마련된 시인의 벽과 골목.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포토죤이 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블록 담장위에 쌓인 눈에, 처마에 달린 마가목 씨앗 열매가 더 붉기만 하다. 정명희는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다고 풀씨와 자동차라는 시를 적었다.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은 마음

멀지 않은 그길

내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른 끔 하나 떨어트렸다

차마 내 뿜을 수 없는 열기

더 뜨거운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가 되었다

나뭇잎이 될게

꽃잎은 아주 많이

그래서 씨앗으로 바퀴를 만드는거야

어느 무공해의 도시

오랜 통증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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