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났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도대체 정월 초하루부터 이렇게 머리를 쓸 일이 많이 생기면,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우리의 속설에는 정월 초하루는 조상님께 차례를 모신 후, 근신을 하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이튿날은 귀신 날이라고 해서, 여자들은 문밖출입도 삼가야한다.

 

정월 초사흘이 되면 하늘에서 평신(坪神 = 터주신, 혹은 대지의신)이 내려온다고 하여서, 마을마다 지신밟기가 시작이 된다. 모든 마을에서는 풍장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면서 일 년의 안과태평을 축원해 준다. 그런 날이니 집에서 있어야 마땅하지만, 갈 곳이 있어 카메라를 메고 나들이를 했다.

 

 

몰린 인파들 저마다 즐기고 있어

 

설날에는 모든 고궁과 능묘, 그리도 박물관 등도 무료로 입장을 할 수가 있다. 수원 화성 행궁도 예외는 아니다. 설날 오후 행궁은 어떤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까? 마침 날씨도 좋아 사람들이 몰려나왔을 것만 같다. 행궁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20분 정도. 가는 길에 화성을 보니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줄 지어 가는 모습도 보인다.

 

행궁 앞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부모님들이 연날리기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만 같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꼬마들이 아버지가 날리고 있는 연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모습도 보인다. 행궁 앞 한편에 마련한 썰매 장에는 아이들 썰매를 끌고 다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정겹다. 어머니들은 그런 모습을 연신 휴대폰에 담아낸다.

 

 

아침 일찍 차례를 모신 후 이곳으로 나왔어요. 어차피 집으로 가려면 길이 막힐 것 같아 수원에서 놀다가 저녁 늦게 출발하려고요.”

대전에서 부모님 댁에 다니러왔다는 김아무개(, 42)는 연신 얼레를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는 연신 그 연을 달라고 조르고 있고. 광장에는 이제 걸음마를 갓 땠을 꼬마도 종종거리고 엄마와 함께 즐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 행궁

 

행궁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듯하다. 명절 차례를 마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소원지 쓰기, 투호놀이 등 전통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수원 화성 행궁의 북군영 입구에는 수령이 6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신령한 나무라도 해서 영목이나 신목이라고 부른다.

 

이 나무에 소원지를 써서 걸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나무 밖에는 새로 쓴 소원지들이 걸려있다.

오늘 소원지를 쓰러 이곳으로 왔어요. 용인 한국민속촌을 가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유산도 가르칠 겸 해서 왔는데, 소원지가 한 장도 없어요. 사람도 없고요. 이런 날은 준비를 좀 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용인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원지를 쓰러 왔다는 신정희(, 39)씨는 소원지가 떨어져서 조금은 기분이 상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조의 모친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봉수당 앞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곳이 이 화성을 축성한 정조 임금님의 어머님이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곳이다. 아까 저쪽에서 진찬연 그림을 보았지? 그 연희를 한 곳이 바로 여기야

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이야기다. 아이들도 사뭇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설명을 하는 내용으로 보아도 행궁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 공부를 하고 왔어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이런 것을 잘 알려주면,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스스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이정희(, 37)씨는 젊은 어머니답지 않게 속이 깊은 듯하다. 설날 한 낮에 찾아간 수원 화성 행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우리 명절은 모든 이들의 잔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이 가슴이 아리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 그런 날이 과연 올 수는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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