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은 맹인이 산통 대신 손에 대추알을 잡고 흔든다. 점을 보아준다는 것이다. 굿판에 아닌 대문간에 앉아 장고잽이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담이 일품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책 한권은 넉넉히 나올 것만 같다.

“이보 오늘 점이나 한 번 보시려우”
“점은 머 할라고 봐요. 눈도 못 보는 양반이 점인들 잘 볼 수 있겠수”
“이보셔, 내가 이래도 장안에 제일가는 점바치여“
“그걸 누가 안답디까?”


경기도 안택굿의 뒷전은 해학의 극치

경기도 안택굿에서 뒷전은 재담의 극치를 보인다. 뒷전은 굿판에 모여든 각종 잡귀들을 잘 대접해서 보내는 굿거리이다. 굿판에는 항상 무속신을 따라 다니는 많은 잡귀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잡귀들은 신령들을 다 돌려보낸 후에도 굿청에 남아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기에 이 뒷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많은 잡귀들을 한바탕 흥겹게 놀고 보내지 않으면 집안에 탈이 난다고 한다.



경기도 안택굿의 '뒷전거리'는 타 지역의 굿에서는 볼 수 없는 재담과 해학이 넘친다. 무격이 지팡이를 들고 온다. 맹인굿을 하는 광경이다.


과거에는 밤새 굿을 하고나면 뒷전무당이 아침에 장고재이를 데리고 굿판에 나타난다. 뒷전무당은 각 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뒷전만 맡아하기 때문이다. 이 뒷전무당의 존재는 그 굿판을 좌우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일부러 뒷전무당에게 줄 돈을 쓰지 않고 간수를 할 정도였다고 하니, 뒷전 무당의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알만하다. 뒷전무당은 굿청이 아닌 대문간에 마련한 뒷전 상 앞에서 굿을 한다. 평복에 지팡이를 들고 하기도 하고, 고작해야 무구라는 것은 부채와 방울을 사용 할뿐이다. 뒷전무당이 맹인 굿을 할 때쯤 되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뒷전을 하는 곳으로 몰려든다. 맹인 굿에서 산통 대신 성냥 통을 흔들어대며 주는 점사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담이 뛰어난 안택굿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안택굿판에는 누구나 다 들어갈 수가 있고,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점 한 자리 봐 주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뒷전을 하는 무격을 바라보다가 배를 잡는다. 하는 표정과 재담이 어느 코미디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굿판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더하다보니 사람들이 발길을 떼지 못한다.

“나도 점 한 자리 봐 주소”

굿판 구경을 하던 구경꾼이 한 수 거둔다.

“점은 무엇하러 보시려고 하슈. 봐 봤자 뻔한 것을”
“무엇이 뻔하다는 것이요”
‘뻔하잖우. 당신이 남자인데 그걸 제대로 하겠수, 아니면 돈을 잘 벌어다 주겠수. 그저 이것도 저것도 다 부족한데 점괘라고 잘 나오겠수“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우”
“떡 하면 삼천리라고, 복채도 안내고 점을 보자는 양반인데 먼 재주가 있겠우”


맹인 굿을 하는 고성주씨가 산통 대신 대추를 손에 잡고 흔들며 점을 본다.(위) 맹인 굿을 마치고 난 뒤 끝으로 수비영산을 노는 모습. 수비 영산은 못 먹고 헐벗은 잡귀들이다.


사람들이 ‘맞다’를 연발하면서 웃는다. 점을 보아 다라라는 사람도 떠날 갈 듯 웃어댄다. 그저 재미로 하는 농지꺼리들이다. 이렇게 밤을 새운 굿판이다. 밤새 웃고, 떠들고, 마시고, 소리하고. 그런 굿판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다.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의 장’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뒷전거리’ 하나만 갖고도 예술적인 가치를 보이는 경기도 안택굿판. 언제쯤 다시 볼 수가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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