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부터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고성주(, 60)씨의 집 앞에는 화환이 즐비하게 놓였다. 그리고 연신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간다. 이 날은 매년 음력 3월과 107일에 행하는 진적굿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진적굿이란 맞이굿이라고도 부르며, 단골이 자신을 따르는 수양 부리들을 위해 안녕을 기원하는 굿이다. 봄에는 꽃맞이, 가을에는 단풍맞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진적굿이 계절에 따라 그만큼 큰굿이기 때문이다.

 

굿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무격들에게 있어서는 이 진적굿이 가장 장엄하고 큰 굿이다. 경기도 안택굿 보존회 고성주 회장의 전안(신령을 모셔놓은 신당)은 우리나라의 무격들의 집 가운데서도 가장 넓다고 한다. 그만큼 신령들을 위한 곳을 하기 위해 차려놓은 재물도 만만치가 않다. 진적굿을 올리기 며칠 전부터 직접 다식과 약과들을 직접 만든다.

 

 

널려놓은 굿 상만도 몇 개

 

신령들의 화분을 걸어놓은 앞에 상을 진설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외에도 산거리 상, 제석상, 천궁맞이 상과 뒷전 상까지 차려놓았다. 고성주 회장은 경기도의 전통 안택굿을 지켜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다. 진적굿을 할 때마다 이 집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4대를 이어오면서 경기도의 굿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한 신문기사와 방송 등에 출연을 했지만, 정작 아직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고성주 회장의 굿을 아는 학자들은 늘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이제 4대째 집안으로 대물림을 한 경기도의 전통 안택굿이, 고회장이 제대로 전수를 시킬 수가 없으면 그 대가 끊어지질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문전 앞 지신밟기로 굿을 시작해

 

과거 경기도에서는 안택굿을 하기 전에 풍물패들이 문 앞에서 한바탕 마당굿을 펼쳤다. 이는 사람들에게 굿을 한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도 있지만, 그보다는 풍물을 울려 신령들에게 감응을 해주십사 하는 의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문 앞에서 풍물을 치던 일행은 마당 안으로 들어가 천궁맞이 상 앞에서 한바탕 울리고 난 뒤 절을 하고 물러선다.

 

전안에서는 무녀 임영복(, 54)의 앉은부정이 시작되었다. 앉은부정은 무녀가 장구를 치면서 집안의 모든 부정과 사람들의 부정을 풀어내는 부정풀이 무가를 구송한다. 그리고 중간에 굿상의 부정을 가시기 위해 향물과 고춧가루를 푼물로 둘러낸다. 뒤이어 소지에 불을 붙여 굿상을 한 바퀴 들러내는데, 이는 모두 부정을 가시게 하는 의식이다.

 

 

고성주 회장의 굿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도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재주면 재주, 춤이면 춤, 소리면 소리, 그 어느 것 하나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18세에 내림을 받고 벌써 43년이라는 세월을 굿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 경기도의 전통굿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하였다.

 

굿은 축제이다. 특히 경기도의 굿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굿판에는 악사 4명과 무녀 5명이 동참을 했다. 그리고 많은 신도들이 모여 굿판을 함께 즐긴다. 안택굿이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기 위한 굿이기 때문이다. 굿을 열린축제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모두가 빈부의 구별이나 노소의 구별이 없이 함께 웃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고성주의 질펀한 대감굿

 

바깥마당에서 하는 천궁맞이는 모든 신령들을 굿판으로 청하는 굿거리이다. 이때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의 옷을 차례로 입어가면서 축원을 한다. 대신할머니 거리에서는 자신의 점상을 펼쳐놓고 사람들을 점을 보아주기도 한다. 이래저래 굿이 재미있어 진다. 이 집의 수양 부리들이 대물림 신도가 되는 것도, 이렇게 지극히 정성을 다해 봄가을로 진적굿을 열기 때문이다. 남들이 1년에 한 번 하는 것도 버거워 하기 때문이다.

 

안마당에서 천궁맞이를 마치고 난 다음, 진적굿을 하는 중간에 고성주의 문하생들이 추는 재인청 춤도 함께 곁들여졌다. 고성주 회장은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서 재인청 춤을 어릴 적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 춤 역시 굿판에서 꼭 함께 무대를 만들어주고는 한다.

 

 

고성주 회장의 진적굿의 백미는 대감거리이다. 대감거리를 할 때는 신도들에게 술잔을 나누어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각 신도들마다 대감시루를 받아간다. 진적굿을 하는 날이 되면 이른 새벽부터 각 신도들의 몸주대감(각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지키는 몸주가 있다고 한다)의 시루를 직접 찐다.

 

시루는 많은 때는 100여 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신도들은 모두 대감쾌자를 한 벌씩 준비를 해놓았다. 고성주 회장은 그 쾌자를 한 번씩 입어가면서 대감시루를 머리에 이고 놀린다. 그리도 그 시루를 신도들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신도들은 그 시루를 신주 모시듯 하는 것도, 자신의 몸주대감 시루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택굿을 지키고, 수양 부리들의 안녕을 위해 일 년에 봄가을로 두 차례씩 열리고 있는 고성주의 진적굿. 그 굿을 보고 있노라면 장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에 누가 이렇게 굿을 할 수 있을까? 굿판에 동참해 함께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것도, 아마 이 장엄함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장엄함은 고성주 회장만이 할 수 있는 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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