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곱창전골이 왜 이렇게 쌉쌀한 맛이 돌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재료가 잘못 되었을까요

그런데 이게 무엇이죠? 무슨 뿌리 같은데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답사를 마치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기 때문이다. 밥이라도 잘 먹고 잠이라도 편하지가 않으면, 그 다음 날 답사를 배가 힘이 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잘 먹고 잘 자는 것에는 경비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곧 즐거운 답사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불편한 숙박, 잠자리 내내 불쾌해

 

대천은 관광단지이다. 많은 숙박업소들이 있어 저마다 입구에 커다랗게 광고를 붙이고 있다. 그 많은 광고들은 모두가 자기네 숙박업소가 최고라는 것이다. 이곳은 자주 들렸던 곳이다. 어디나 다 깨끗하고 안에 시설도 괜찮은 편이라, 아무 생각도 없이 한 집을 찾아 들어갔다. 비성수기인지라 숙박비가 4만원이라고 한다.

 

돈을 지불하고 방에 컴퓨터가 있느냐고 물으니, 이 곳에는 컴퓨터가 없단다. 대천 전체가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조금 의아스럽다. 이곳에는 숙박업소에 컴퓨터가 있는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벽에 환불불가라고 쪽지가 붙어있다. 무엇인가 이 집이 자꾸만 께름칙하다.

 

안에 들어가서야 환불불가의 이유를 알았다. 좁고 낡은 방과 벽지, 구형 TV(딴 집은 대형 벽걸이TV가 있다), 믈도 들어있지 않은 냉장고. 청소를 했는지 싶은 정수기 하나. 이런 집을 들어왔다는 것이 후회스럽지만, 돈까지 지불을 했으니 옮길 수도 없다. 그저 하루 마음 편하게 자고 나가자고 생각을 할 수밖에.

 

 

답사 먼저, 식사 먼저

 

보령을 거쳐 공부로 답사지를 옮기는 길에 국도를 택했다. 지방도나 국도로 다녀야 문화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령시 면지역을 돌았지만 마땅히 먹을 곳이 없다. 시골이다 보니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다. 청양군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 생각지도 않았던 고택을 만나 촬영을 했으니, 이런 횡재는 없는 듯하다.

 

청양군 화성면 면소재지를 몇 바퀴인가 돌았다. 벌써 시간이 10시가 넘어 허기가지기 때문이다. 한 집에 불이 커져있다. 불이 커져있다는 소리는 식당이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마침 한 사람이 안에 있어 영업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곱창전골 전문점이라고 되어있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곱창전골 소자가 18,000원이란다. 수원 지동시장의 곱창볶음이 1인분에 8,000원인데, 이 시골에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2인분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곱창전골에 인삼 몇 뿌리가 들어있어

 

잠시 후에 곱창전골이 나왔다. 밑반찬과 함께 나온 곱창전골이 팔팔 끓는다. 전골이 좀 오래 끓여야 제 맛이 난다. 하지만 허기진 배에서 요동을 치니 더 이상은 기다리기가 힘들 것 같다. 앞 접시에 떠보니 곱창이 반이다. 이렇게 많은 곱창을 넣어 주는 집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곱창을 먹다가 보니, 무엇인가 씁쓸한 맛이 난다.

 

맛이 이상해서 전골냄비를 국자로 뒤적여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인삼뿌리다. 잘못 들어간 것은 아닌지 해서 골라보았더니, 인삼을 썰어 넣은 편과 뿌리가 가득하다. 족히 몇 뿌리는 될 것만 같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곱창전골에 왜 인삼을 이렇게 푸짐하니 넣어주는지가.

 

 

결국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묻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태어나 인삼곱창전골을 먹어 보았으니, 할 말이 생긴 듯하다. 남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인삼곱창전골이라고 먹어는 보았나?” 

 

상호 / 소리삭당(곱창 전골 구이 전문점)

장소 / 충남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 190

전화 / (041)943-9190 / 010-3440-9190

업주 / 조화순

백년지 뒤로 구층석탑이 보인다

 

아무리 장마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퍼부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충남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바로 대치면에 있는 장곡사 때문이다. 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은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 곳이 있는 절이기 때문이다. 장곡사를 나와 칠갑산을 옛 길을 넘어 찾아간 정산면 서정리에 있는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멀리서도 도로 옆 벌판 한 가운데 서 있는 구층석탑이 보인다. 사실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면서는 딴 곳의 두 배가 더 힘들었다. 우선은 도로에 안내를 유도하는 안내판이 서 있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쏟아 붓는 듯한 장맛비로 인해서 찾아가는 길도 낯설고, 사진을 촬영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을 때 연꽃을 찍느라... 

 

주변에는 400년이 지난 백련지가 조성되어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6-2에 소재한 보물 제18호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은, 공주에서 청양 방향으로 23㎞ 정도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다. 이 탑이 있는 부근에 고려시대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이 구층석탑 주변에는 백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백련지는 조선 선조 20년인 1587년에 송담 송남수가 정산 현감으로 재임을 할 때, 정산현 좌측에 연못을 만들고 만향정이라는 정자를 세우면서 심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 내용으로 보면 이 백련지는 400년이 훨씬 지난 백련지이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구층석탑

 

정산면 서정리 구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한 면에 2개씩의 안상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에 양우주를 돋을새김 하였고,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인 탱주를 돋을새김 하였다.

 

기단의 위로는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개석으로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 구층석탑은 탑신의 1층이 지나치게 크다. 하지만 2층부터는 높이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넓이는 그리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덮개석인 지붕돌은 층급받침은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추켜 올라가 있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 구층석탑은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에는 한 면에 두개씩의 안상을 새겼다 

 

천년세월 그 자리에 서 있어 고맙다

 

몸돌인 탑신부는 몸돌과 덮개돌인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는 이 탑은,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 몸동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우아하게 체감되어 있다. 몸돌의 덮개석 역시 탑신에 따라 아름다운 체감비율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현재 모두 없어진 생태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석탑의 형식이 신라시대부터의 전형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상하의 비례가 아름답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형된 균형이 잘 잡혀간 거탑의 일종이다. 고려시대에는 석불이나 마애불, 탑 등을 이렇게 크게 조성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강한 국권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옥개석의 사방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나 있다

 

변 백련지에 핀 백련과 아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서정리 구층석탑. 천년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상륜부만 사라진 채 잘 보존이 되어있어 고맙기만 하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장맛비가 다시 ‘후두둑’하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한 가지라도 많은 문화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다음에 만나게 되는 문화재는 어떤 것일까? 기대를 하면서 빗길을 달린다.

 

미쳐도 이렇게 미치면 남들은 아예 포기를 할 것만 같다. 14일(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인천방향으로 가다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그리고 다시 당진 대전간 고소도로를 타고 가다가 예산을 거쳐 청양읍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40분. 관광안내도를 하나 받아들고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청양군까지 가기 전부터 난관에 봉착을 했다. 장마전선이 북으로 올라갔다는 말만 믿고 나선 답사 길이다. 하지만 평택에 들어서 서해안대교에 진입하자, 10m 앞도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붓는다. 그냥 들이붓는다는 말이 적당할 정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가는 날이 장날 맞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청양군청에서 멀지 않은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15-37에 소재한 석조여래삼존불상. 보물인 이 삼존불상을 보기 위해 좁을 길을 몇 번이나 돌아서 찾아갔지만, 보호각 공사 중이라고 삼존불을 아예 막아놓았다. 어떻게 비집고 들여다 볼 틈도 보이지가 않는다. ‘가는 날이 장날’, 정말 딱 맞는 말이다.

 

그리고 청양군 일대를 샅샅이 비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힘들게 문화재를 찾아다녔다. 일반적으로 어느 지자체나 문화재 안내판이 큰길가나, 아니면 가로 안내판 등에 적혀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양군 내의 거의 모든 문화재들은 길가에 안내판이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도로표지판에 나타나는 것은 장곡사 등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

 

 

비는 하루 종일 퍼붓고, 안내판은 찾아 볼 수 없고. 이런 답사라면 차라리 발길을 졸려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왕 나선 길이 아니던가? 그리고 얼마 만에 이렇게 1박 2일로 나선 답사인가? 도저히 뒤돌릴 수가 없어 빗길에 답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난 미친 문화재 답사가라네.

 

정말 그랬다. 어쩌다가 문화재를 찾다가 근처 주민들에게 문화재가 어디 있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웬 정신 나간 미친 인간이 이 장대비 속에서 문화재를 찾아왔느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칠 수가 있단 말인가? 조금은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고 해도, 하루 종일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답사를 계속하는 수밖에.

 

 

그렇게 몇 곳을 돌다가 보니 벌써 시간이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늦은 점심 한 그릇을 먹고 다시 답사를 시작했다. 향교, 고택, 석탑, 사찰, 그리고 연암 최익현 선생을 모신 ‘모덕사’까지. 거기다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 있는 길과, 옛 칠갑산 고갯길에 있는 ‘콩밭 매는 아낙네 상’까지 찾아보았다.

 

저녁 6시까지 그렇게 돌아본 청양군의 문화재 답사는, 악천후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상한 눈으로 본다. 도대체 제 정신이라면 이런 장대비 속에서 어찌 문화재 답사를 할 것인가? 장곡사를 들려 나오는 곳에 장승공원을 들렸다. 갖가지 표정의 장승들이 웃고 쳐다본다.

 

 

빗길에서 얻어 낸 짐 보따리, 이젠 풀어야지

 

1박 2일 동안 참 많이도 돌아쳤다. 자료만 해도 17곳을 뒤졌으니 정리를 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이 많은 자료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그것을 글로 옮긴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문화재답사. 그리고 그 답사를 빗길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괜히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고 만다. 언젠가 잘 아는 지인에게서 들은 소리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미친 문화재답사가 한 사람이 참 여럿 즐겁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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