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가작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오수천을 바라보며 한 소리꾼이 춘향가 한 대목을 불러 젖히고 있다.

자시에 생천(生天)하니 불언행사시(不言行四時) 유유창창(悠悠蒼蒼) 하늘 천(天)
축시에 생지(生地)하여 금목수화를 맡었으니 양생만물(養生萬物) 따 지(地)
유현미묘(幽玄微妙) 흑적색(黑赤色) 북방현무(北方玄武) 검을 현(玄)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 동서남북 중앙토색 누루 황(黃)
천지사방이 몇 만리 하루광활(廈樓廣闊) 집 우(宇)
연대국조(年代國祖) 흥망성쇠 왕고래금(往古來今) 집 주(宙)
우치홍수(禹治洪水) 기자추연(箕子推衍) 홍범구주(洪範九疇) 넓을 홍(洪)
제제군생(濟濟群生) 수역중(壽域中)에 화급팔황 (化及八荒) 거칠 황(荒)

(생략)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박대(薄待) 못하느니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법중율(法重律) 춘향과 나와 단 둘이 앉어 법중 여(呂)자로 놀아보자. 이리 한참 읽어가더니마는,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춘향 보고지고 추천하든 그 맵시를 어서어서 보고지고."


조선 후기에 8명창 중 한 사람인 김세종(1835 ~ 1906)은 순창군 동계면 가작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소리꾼의 내력이 있었다고 전하며, 김세종은 송우룡 등과 함께 고창의 신재효에게 판소리의 이론을 익혀, 신재효의 소리를 가장 충실하게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세종의 이론은 소리꾼의 지침

김세종이 언제부터 소리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지 않는다. 다만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를 통해서 본 김세종의 판소리에 대한 이론은, 오늘날까지 소리의 정형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 이론을 보면


가작마을 안내비와 마을 안길(아래) 우측으로 김세종 명창의 생가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첫째, 판소리 발림을 극적인 내용과 같게 해야 하며, 얼굴 표정과 몸의 모든 동작이 극적인 내용 및 절주가 같아야 한다.
둘째, 음악은 사설의 극적인 내용과 융합되어야 한다.
셋째, 장면이 긴박하지 않은 곳에서는 느린 장단을 쓰고, 긴박한 장면에는 빠른 장단으로 몰아야 한다.
넷째, 슬픈 장면에는 계면조를 쓰고 웅장한 장면에는 우조로 소리를 해, 조와 장단이 판소리 사설의 극적인 내용과 어울러야 하며 가사의 뜻에 따라 선율 또한 일치되어야 한다.
다섯째, 가사는 짧게 붙이고, 소리는 길게 부르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의 이치에 맞아야 한다. 등이다.

김세종의 자취를 찾아 가작리를 가다

흥선대원군조차 그 소리에 반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김세종 명창. 그 자취를 찾아 순창군 동계면 가작리를 찾았다. 면 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이지만 찾기는 수월치가 않았다. 마을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매실나무들이 빼곡 차 있다. 그 한편에 ‘김세종 명창 생가 터’라는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마침 밭에서 일을 하고 나오는 마을 분들을 만났다.

“김세종 명창 생가 터가 이 안내판이 서 있는 곳인가요?”
“아닙니다. 그걸 왜 거기 세워 놓았나 모르겠네요. 저 안에 보이는 저 집이 명창이 살던 집 터라고 하는데”
“저기 길가에 집 말인가요?”
“예, 거기가면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그 앞 집이예요. 며칠 전에도 버스로 사람들이 한 차가 와서 둘러보고 갔는데, 그 양반이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마을에서조차 이젠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명창의 일생이다. 마음 한 편이 허전해진다. 소릿광대 쯤으로 여김을 받던 세월을,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던 명창의 대우가 씁쓰레해서이다. 괜히 생가 터 안내판만 보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돌아설 뻔 했다.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우측으로 공동 우물이 보인다.


그 앞에 앞마당이 너른 집이 있다. 바로 김세종 명창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라고 한다. 지금의 집이 당시의 집은 아니다. 그러나 그 주변을 돌아보니 명창이 나옴직도 하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집 앞으로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잠시 그길로 걸음을 옮겨본다. 조금 나아가니 잡풀이 우거져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아마도 명창은 이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며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까?

장자백, 이동백, 유성준, 이선유 등 당대를 울린 명창들을 제자로 둔 김세종 명창. 대문 앞에 놓인 풍구에서 옛 흔적을 찾아본다. 괜히 부질없음을 알고 멋쩍은 웃음을 남기며 뒤로 돌아선다. 어디선가 천자뒤풀이 한 대목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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