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산 2-1에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된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둔덕의 윗부분 노송 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정자는, 조선조 세조 2년인 1456년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이다. 정자 이름을 ‘귀래정’이라고 불렀는데 이 정자 명칭은 바로 신말주의 호이기도 하다.

신말주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이곳은 신말주의 부인인 설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신말주는 이곳으로 내려와 뜻이 통하는 노인 열 명과 ‘십노계’를 결성하고, 이 귀래정에 올라 자연을 벗 삼아 세월을 보냈다.


정자 주변에는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어

서거정, 강희맹 등의 귀래정기와 시문 등이 즐비하게 걸려있는 귀래정. 현재의 간물은 1974년에 고쳐지은 것이라고 한다. 귀래정을 오르는 길에는 신말주의 후손들이 살았단 유지가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설씨부인의 ‘권선문’과 신경준의 ‘고지도’ 등을 보관하고 있는 ‘유장각’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이 신말주의 세거지는 다시 한 번 거론하기로 한다. 노송이 높게 자란 언덕길을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인 곳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세거지를 지나쳐 숲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다 보니, 각종 새들이 여기저기서 푸득이며 날아간다. 아마도 저 새들도 이 노송 숲길이 꽤나 좋은가 보다. 정자는 그저 바람을 맞으며 앉아 글 한 수 읊조리기 좋게 지어졌다. 정자 곁에는 고목이 되어버린 고사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옛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귀래정’ 아마도 신말주는 세조가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처가인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아픔의 역사로 뒤돌아 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흐르는 띰을 닦아낸다. 노송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6월 18일의 후텁지근한 날씨에 절어버린 나그네를 반긴다.



주추만 보고도 반해버린 정자

정자를 찬찬히 둘러본다. 정자의 중앙에는 한 칸 방을 뒤편으로 몰아 들였다. 누마루를 깐 사방은 난간 하나 장식하지 않은 단출한 정자이다. 기둥은 원형기둥을 이용했는데, 주추를 보니 꽤나 아람답다. 주추를 보면서 혼자 빙긋 웃어본다. 주추 하나에도 사람이 반할 수가 있는 모양이다.

밑은 넓고 배가 튀어나오게 둥글게 만들고, 위는 조금 역시 둥글지만 배가 튀어나오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그 주추 가운데를 파 목재를 고정시켰다. 이런 주추를 만난 것도 처음이지만, 그 주추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렇게 주추 하나를 조형한 것도 귀래정 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그저 화려하지 않은 정자 귀래정. 그 누마루에 걸터앉아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처음 정자가 지어진지 벌써 550년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신말주 선생은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일까? 천천히 정자를 내려와 세거지로 향한다. 세거지 곁 마을 집에서 백구 한 마리가 짖어대며 낯선 나그네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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