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24기는 정조임금이 실전에 맞게 집대성한 것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되어 있는 무예를 말한다. ‘무예24(武藝二十四技)’는 조선시대 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의 무예로, ‘무예이십사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무예도보통지 속에는 무예이십사기로 기록되어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각종 외침을 겪었던 조선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무예 중 정수만을 집대성한 실전무예지이다. 더욱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무기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무기들까지도 그 동작 등을 실어 실전의 교범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가히 당대 최고의 무예지라고 볼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전하는 무예 24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본국검 2. 예도 3. 제독검 4. 쌍수도 5. 쌍검 6. 마상쌍검

7. 등패 8. 왜검 9. 왜검교전 10. 월도 11. 마상월도 12. 협도

13. 장창 14. 기창(騎槍) 15. 죽장창 16. 기창(旗槍) 17. 당파 18. 낭선

19. 권법 20. 곤봉 21. 편곤 22. 마상편곤 23. 격구 24. 마상재 등이다.

 

창룡문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시연

 

15일 오후 3시 수원 화성의 창룡문 안 잔디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무예24기 시범이 보일 시간이 되자 창룡문과 인근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침부터 차비를 하고 창룡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좀 안되어서이다.

 

 

 

 

 

날이 뜨겁다. 한 여름 날씨보다는 많이 시원해졌다고 해도, 아직도 한 낮의 기온은 30도에 육박한다. 자리를 잘 차지하고 앉았으니 비울 수도 없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딴 사람들이 앉아버리기 때문이다. 흐르는 땀을 닦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먼저 창과 검 등을 들고 시범을 보인 후 마상무예가 시작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을 탄 무예24기 시범단이 말을 달려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환호를 하면서 박수를 친다.

 

그러던 중 잠시 소란이 인다. 말을 달려 나오기 시작하는 곳에서 단원을 태운 말이 쓰러져버렸다. 무슨 일일까? 다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말을 타고 시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말 위에서 떨어진 단원은 보이지를 않는다.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다시 말을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많은 사람들 환호로 격려 하지만 마음은 아파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무예24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시범단에게 격려를 한다. 한 사람은 저렇게 기술을 연마하기 까지 상당한 노력을 했을 텐데, 도대체 저런 단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봉급을 주어야 하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마음이 아프다, 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무예24기 시범과 화성을 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화성이 유형의 자산이라면 무예24기는 무형의 자산이다. 하지만 아직도 무예24기 단원들은 일당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 어느 지자체가 자신들의 상징인 기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당제로 고용을 하고 있을까?

 

 

 

 

 

시범을 보이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치료야 보험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시범을 보이지 못하면 당장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것이 시범단원들이다. 수원을 가장 남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수원스런 것이 바로 무예24기 시범단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땀을 흘리며 시범을 보이고 있는 무에24기 시범단원들을 보면서 하루빨리 이들이 마음 편하게 시범을 보이고, 무예24기의 온전한 전승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눈이 시린 화성의 야경이야기. 그 두 번째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부터이다. 성 안에서 밖으로 본 창룡문은 참으로 아름답다. 조명으로 인해 은은한 빛을 발하는 성돌이 마치 살아있는 따스함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펼치는 마상무예를 수원문화재단 소속의 무예24기 시범단이 보여주었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면서 보여준 활쏘기, 창검술, 그리고 쌍칼을 휘두르면서 지쳐나가면서 순식간에 베어버린 짚단들. 허공을 가르며 날리는 짚단들이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얼마나 정예화 된 군 조직이었는가는 알게 해준다. 그런 무사들이 지키고 있던 창룡문을 바라보면서 늦은 밤에 홀로 사색에 잠긴다.

 

창룡문을 나서 남수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동일포루이다. 화성에는 포를 쏘는 포루와 적을 감시하고 지휘를 맡아하는 포루가 있다. 포를 쏘는 포루는 외장을 벽돌로 쎃아올렸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동일포루는 중간의 지휘소 역할을 하면서 병사들이 쉴 수도 있는 공간이다.

 

저만큼 동일치가 보인다. 치란 꿩을 뜻한다. 꿩은 숲으로 잘 숨어든다. 치는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이 되어있다. 이 치성은 성벽으로 기어로르려는 적들을 향해 뒤체서 공격을 할 수가 있는 시설이다. 치와 포루 등이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가 되어있는 화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동포루, 포루란 포를 쏘는 곳이다. 강력한 화기인 포는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블랑기포부터 다양하였다. 포루는 안으로 들어가면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위에는 포장이 버티고 있는 1층과 1층은 병사들이 들어가 있다. 포루는 주변의 중요한 구조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화력을 갖고 적을 공격하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동이치. 동포루와 봉돈 사이에는 동이치가 자리한다. 화성의 시설을 보면 참 과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화성의 동남쪽은 너른 평지와 깊은 현재의 창룡문로, 그리고 그 조금 위에는 흡사 외성과 같은 용마룻길이 나 있다. 이곳에 조형물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성벽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시설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이치를 지나면 성벽으로 돌출된 봉돈이 있다. 마치 어느 서양의 고성같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본돈. 봉돈은 본화를 피워 신허를 하는 곳이다. 평상이에는 봉화 하나를 올리지만, 적과 접전이 벌어지면 다섯개의 화구가 일제히 연기를 올린다. 봉화는 산 정상부근에 있지만, 화성의 봉돈은 평지에 있는 거소 남다르다. 

 

동삼치. 중요 시설물과 치가 하나씩 건너있는 곳이 바로 이곳의 지형이 딴 곳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은 어니었을까? 창룡문으로 부터 남수문까지를 걷다가 보면 유난히 구조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치와 포루, 봉돈 등을 보호하기 위해 중간마다 치를 놓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동삼치를 지나면 성벽 안으로 들어간 동남각루의 처마가 보인다. 대개의 구조물들이 치성위에 놓았는데, 동남각루는 치성을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이층 루로 지어진 크지 않은 전각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래에는 반칸짜리 온돌방이 있다. 장용외영의 군사들을 사랑하는 정조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남수문은 두 번이나 유실이 되었던 곳이다. 다시 복원을 한 남수문은 구간수문으로 밤에 조명이 아름답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이 북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성으로 유입이 되어, 남수문에서 다시 밖으로 흐른다. 수문 위에는 벽돌로 여장을 쌓았다.

 

지금은 일부 유실이 된 남공심돈과 남암문도 이 남수문과 팔달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성안에 물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기에, 그만큼 남수문의 용도도 중요하다. 늦은 시간이지만 남수문을 들라거리며 수원천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화성의 야경이야기 두 번째를 남수문에서 접는다. 

 

동쪽 옹성의 제도는 고제에서 한 쪽만을 연다는 뜻을 취하여 옹성을 쌓았다. 성문의 왼쪽에 이르러서는 원성과 연결되지 않고 외문을 설치하지 않아서 경성의 흥인문 옹성의 제도와 같게 하였다. 옹의 형태는 문의 오른쪽 63척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의 왼쪽 6 3척 되는 곳에서 끝난다. 성과 이어지지 않는 곳은 그 사이가 41척이다.

 

옹의 높이는 96촌이고 내 면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7척이고 정문과 거리는 28척이다. 외면은 벽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1척이고 아래 두께는 115촌이며 위의 두께는 줄어서 105촌이다. 내면은 벽돌로 된 누조[각각 직경 5] 4개를 설치하였다. 평평한 여장으로 둘렀는데 높이는 3척 두께는 25촌이다. 바깥 면은 현안[각각 길이 85촌 직경 1] 셋을 뚫었다. 여장 4첩을 설치하였는데 높이는 45촌이고 원총안과 근총안[매 첩마다 3개의 구멍 또 북쪽 끝 가로 첩에는 2개의 구멍] 14기를 뚫었다.

 

 

밤에 돌아 본 옹성, 이게 웬일이지

 

위에 설명은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되어 있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의 옹성 설명이다. 19일 밤 8시부터 두 시간여 동안 화성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 장안문에서 창룡문을 거쳐 남수문까지 걸었다. 장안문에서 화홍문까지는 성 밖으로, 그리고 화홍문에서 창룡문까지는 성 안으로 돌았다.

 

그리고 창룡문에서 다시 성 밖으로 나와 남수문까지 걸었다. 그런데 창룡문을 촬영하고 옹성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벽돌이 깨어져 나갔다. 밤이라 음영이 생겨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다. 옹성에서 성벽으로 오르는 적들을 위해 끓는물과 기름을 붓던 현안은 벽돌이 파여져 나가고, 오물까지 쌓인 곳도 있다.

 

지난 해 10월에 이곳을 돌았을 때보다 더 많이 쪼개져 나간 듯하다. 겨울동안 얼어 있던 것이 날이 풀리면서 벽돌이 쪼개져 나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벽돌에 밤이 되어 음영이 생기면서 더욱 심각해 보인다. 이제 곧 많은 사람들이 화성을 찾아올 텐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할까?

 

 

봉돈의 외벽 벽돌도 훼손돼

 

창룡문의 옹성 외벽 벽돌을 돌아본 후 천천히 걸어 남수문 방향으로 향했다. 19일의 계획은 남수문까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마치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가다가보니 밤의 광경이 마치 외국의 어느 고성처럼 보이는 웅장한 봉돈이 보인다. 전쟁 시에 봉화를 올려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봉돈 역시 외벽이 벽돌로 쌓여있다. 그런데 봉돈 외벽의 벽돌 역시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흉물스럽다. 곧 사람들이 화성을 관람하기 위해 수원 화성으로 몰려들 계절이다. 그런데 이렇게 벽돌이 떨어져 나간 모습들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이요, 수원의 대표적인 관광 동선이 아니던가?

 

훼손이 된 이유가 어려가지가 있다. 화성 창룡문의 옹성 외벽이나 봉돈 외벽의 벽돌의 훼손은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적인 훼손이다. 하지만 보기에도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벽돌들이 보기에도 흉하다. 하루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화성이기도 하지만, 수원의 상징인 화성이기 때문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길. 3년 동안 조성한 벽화 길의 총 길이는 1.7km에 달한다. 이미 지동은 벽화마을로 전국의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1순위로 떠올랐다. 낡고 퇴락하던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있다. 사람을 닮은 나비가 날아다니는가 하면, 푸르름을 잃지 않는 담장이 넝쿨이 벽에 드리워져 있다.

 

고양이들이 뛰어노는가 하면, 한 골목 벽 밑에는 다람쥐들이 굴속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시인들이 정성들여 쓴 시들이 많은 사람들을 반기는가 하면, 우리가 옛날이야기로 듣던 동화들이 그대로 벽에 그려져 있다. 내리막길 한 편에는 최신 휴대폰을 든 원시인들이 한 손에는 돌도끼를 들고 있기도 하다.

 

 

테마가 있는 지동 벽화골목

 

지동의 벽화골목은 난해하지 않아서 좋다. 비록 눈을 휘황찬란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몇 번이고 그 골목을 걷다가 보면 새록새록 정이 묻어난다. 골목 한편 담벼락에 붙어있는 담벼락 평상과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는 구름쉼터, 느티나무쉼터 등, 이름도 정겨운 쉼터들도 마련되어 있다.

 

주말이면 꼬마들의 손을 잡은 부모님들이 연신 아이들을 벽 앞에 세워놓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골목에 놓인 나무화단에 아름다운 꽃이 길손들을 반긴다. ‘화성의 동쪽마을 정겨운 곳 지동사람들은 그런 지동을 몇 번이고 찾아온다. 가끔은 골목길에서 주민들이 삼겹살 파티를 열 때 동참을 할 수도 있다.

 

 

벽화길 안내지도 나왔다

 

그런 지동에는 유명한 것들이 많다. 수원제일교회 종탑에 마련한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 그리고 되살림 발전소. 이런 것들은 지동이 아니면, 전국 어느 벽화 길을 찾아가도 만날 수가 없다. 특히 노을빛 갤러리의 전시는 아무나 접할 수 없는 최고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지동이기에 가능하다.

 

지동에는 인적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벽화골목의 처음 조성할 때부터 함께 동참을 한 삼성전자의 연구원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가족별로 와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주민들까지. 이곳을 찾아와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찾아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 자신만의 그림 벽이 하나 생겨나는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남의 벽에 그렇게 하락도 없이 그림을 그릴 수가 있을까?

 

 

이러한 지동 벽화골목을 안내하는 작은 책자가 발간이 되었다. 지동 벽화 길의 안내지도인 이 작은 책자는 창룡문에서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 찾아가기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뒤편으로 돌리면 팔달문에서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 찾아가기이다. 지동을 찾는 사람들이 어느 방향에서 접근을 하던지, 쉽게 벽화 골목을 돌아보고 노을빛 갤러리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갤러리 관람권도 겸하고 있어

 

지동 벽호골목은 지금까지 세 파트로 구분을 하여 조성을 하였다. ‘벽을 넘어 사람 속으로는 창룡문 주차장을 출발하여 게이트볼장 - 솟대 - 되살림발전소 - 쌈지공원 - 구름쉼터 등 첫해에 마련한 골목길이다. ‘동심 골목에 펼치다3년 차 벽화길이다. 시골목 - 느티나무 쉼터 - 동화골목 - 흥부놀부 - 삼성 IT골목으로 이어진다.

 

생태 골목에 심다라는 제목을 가진 벽화골목은 2년차 골목으로 어르신 수다평상 - 봉돈포토죤 - 옛 우물 터 - 희망계단 - 생태골목 - 접이식 평상을 거쳐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로 오를 수 있다. 이곳은 바로 지동에 있는 전통시장인 지동시장과 미나리광시장, 그리고 못골시장과 철마다 별별 행사가 다 열리는 지동교와 야경이 아름다운 남수문까지로 연결이 된다.

 

 

이 작은 안내책자 하나를 구입하면 이 모든 지동의 벽화골목을 남들에게 묻지 않고도 돌아볼 수가 있다. 이 안내책자는 고박사 슈퍼, 비봉상회, 지동슈퍼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3,000원에 판매를 하며 이 지도 안에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를 오를 수 있는 입장권이 부착되어 있다.

 

수원은 다르다. 수원은 무엇이나 할 수가 있다9월 행궁동 일원에서 열린 생태교통 수원2013’은 차 없이 한달 간이나 생활을 했다. 해외와 전국에서 100만 명이상이 이곳을 찾았다. 그런 수원이 다르듯, 지동도 다르다. 지동은 무엇이나 할 수가 있다.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벽화골목 조성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거기다가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다. 지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지동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책자가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북옹성은 장안문의 외성이다. 성서(城書)에는 옹성의 크기는 정성(正城)의 대소에 따르며 모양은 옹기를 반으로 나눈 것과 같다고 하였다. 문 위에 적루를 세우지 않는 것은 정성이 가로 세워져 있어 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중략)

오성지(五星池)[<실정기(實政記)>에 이르기를 모양이 구유 같고 5개의 구멍을 뚫었는데, 크기는 되()만 하다. 적이 문을 불태우려 할 때 물을 내려 보낼 수 있다]를 설치하였는데, 오성지 전체 길이는 14척 너비는 5척 깊이는 2척이고, 각 구멍의 지름은 1척이다.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 옹성 문 위에 보면 구멍 5개가 나란히 뚫려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성지로 일종의 소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는 시설이다. 이 오성지는 장안문과 보물 제40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팔달문의 옹성문에도 조성을 했다.

 

이 오성지가 장안문과 팔달문에는 있는데, 왜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에는 없는 것일까? 눈이 쌓인 창룡문을 돌아보면서 그 이유를 나름 생각해본다. 물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옹성의 형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렬로 선 옹성의 문은 군왕의 위용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은 우리나라의 성문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장안문의 앞으로는 북옹성을 쌓았는데, 그 중앙에 옹성의 문을 달았다. 옹성의 문과 장안문은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이 장안문과 팔달문의 옹성의 문이, 성문의 문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것은 위용을 보이기 위함이란 생각이다.

 

평산성인 화성에는 해자가 없다. 주변이 모두 논밭이어서 해자가 없어도 공성무기를 끌고 들어오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으로 이어를 한다거나, 행궁에서 부친인 사도세자의 능인 융건릉으로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행차를 한다면 이렇게 일직선상에 문이 나 있지 않았으면 위용이 있겠는가?

 

 

하기에 그 옹성의 문 위에 적의 공략시에 화재를 대비해 오성지를 조성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꼭 오성지가 없다고 해도 장안문이나 팔달문을 공략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장안문의 양 편에는 적대를 두어 포를 설치하고 있고, 팔달문에도 남포루와 지금은 사라진 남공심돈이 있어 막강한 화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을 튼 창룡문과 화서문

 

동쪽 옹성의 제도는 고제에서 한 쪽만을 연다는 뜻을 취하여 옹성을 쌓았다. 성문의 왼쪽에 이르러서는 원성과 연결되지 않고 외문을 설치하지 않아서 경성의 흥인문 옹성의 제도와 같게 하였다. 옹의 형태는 문의 오른쪽 63척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의 왼쪽 6 3 척 되는 곳에서 끝난다. 성과 이어지지 않는 곳은 그 사이가 41척이다.

 

옹의 높이는 96촌이고 내 면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7척이고 정문과 거리는 28척이다. 외면은 벽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1척이고 아래 두께는 115촌이며 위의 두께는 줄어서 105촌이다. 내면은 벽돌로 된 누조[각각 직경 5] 4개를 설치하였다. 평평한 여장으로 둘렀는데 높이는 3척 두께는 25촌이다. 바깥 면은 현안 셋을 뚫었다. 여장 4첩을 설치하였는데 높이는 45촌이고 원총안과 근총안 14기를 뚫었다. 옹성 위에는 회다짐을 하고, 그 남쪽 끝에는 돌층계를 설치하여 위로 원성과 통하게 하였다.

 

 

창룡문의 옹성에 대한 설명이다.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의 옹성에는 성문이 없다. 그리고 한 편을 튼 형태로 조성을 했다. 옹성의 문이 없으니 당연히 오성지도 없다. 그런데 이곳은 왜 문을 달지 않고 한편으로 성을 튼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옹성의 문이 없다면 적의 공략을 막아내는 대는 어렵지 않을까?

 

창룡문과 화서문이 공략하기가 더 어렵다

 

15일 아침. 이른 시간에 화성으로 나갔다. 1박 2일로 여행을 할 계획이었으나 여기저기 취재 요청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정이 취소가 되었다. 눈이 쌓인 화성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줄을 지어 지나간다. 요즈음 화성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창룡문을 꼼꼼히 따져본다. 굳이 오성지를 마련하지 않고, 한편을 튼 상태로 옹성을 축성했는가를.

 

창룡문을 돌아보면서 수긍이 간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은 옹성의 형태가 같다. 창룡문의 앞은 내리막이다. 공성무기를 끌고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다. 거기다가 파문(破門)을 하기 위해 공성무기를 옮긴다고 해도, 옹성을 거쳐 성문을 깨기란 날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우선은 옹성의 양편이 치와 같이 돌출이 되어있다. 그곳을 통과하는 것만도 어렵다. 어렵게 그곳을 지나 옹성안으로 들어가면, 독 안에 든 쥐가 된다. 거기다가 옹성과 성문 사이가 불과 12보 정도이다. 그 안에서 성문을 깰 수 있는 공성무기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자연을 벗어나지 않은 축성과 구조물을 조성한 화성. 그 문 하나에도 일일이 지형과 쓰임새를 보고 축성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옹성을 한 바퀴 돌아 밖으로 나왔다. 저편 동장대와의 사이에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가 보인다. 창룡문을 취하기 위해서 성문으로 다가간다면, 그곳에서 쏘아대는 화력을 당해내기도 어려울 듯하다. 화서문의 곁에도 서북공심돈이 자리를 하고 있지 않던가? 문루나 옹성에 오성지가 없어 행여 화를 미치지 않을까를 생각해 낸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괜한 걱정 떨쳐내고, 눈길을 걸어 화성의 설경에나 취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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