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들어서기 전 길에서도 저만큼 커다란 석등 한 기가 보인다. 석등의 전체 높이가 5.18m나 되는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187에 소재한, 보물 267호인 용암리 석등. 그 규모만큼이나 대단한 크기에 뛰어난 조각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용암리 석등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기나 아름답기로 손 꼽힐만한 대단한 석조미술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임실군 신평면 소재지에서 좌측 운암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길가에 보물인 용암리 석등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석등은 아마도 예전에 사지가 있었던 곳 같다. 축대 위에는 몸돌은 사라진 채 덮개석만 남은 탑이 남아있고, 축대 위로 오르는 돌계단의 한편 난간과, 돌계단의 밑 부분도 예전의 석재를 이용해 복원을 해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커다란 용암리 석등이 서 있다.


뛰어난 조각이 돋보이는 석등

이 석등은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곳을 몇 번이고 들려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버스를 이용해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한 가지 문화재를 보기 위해 하루를 소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결정이다. 마침 겨울철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여 길을 나섰다. 이 석등을 보는 순간 어렵게 나선 답사길이지만, 이것 하나만 갖고도 아깝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석등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용암리 석등. 크기가 크면서도 절대로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있다. 그 앞에서면 6m에 가까운 이 큰 석조미술품의 뛰어난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발목까지 눈이 빠지는 것도 모른 체, 석등 가까이 다가간다. 눈밭에는 발자국이 찍히면서 소리를 내지만,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길 틈이 없다.
        


귀꽃을 아름답게 장신한 덮개석 밑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놓고, 그 밑으로는 3단의 받침돌로 구성이 되었다. 이 용암리 석등은 아래 받침돌에는 안상을 새기고, 윗면에는 커다란 꽃 장식을 두었다. 위에는 구름을 새겨 넣었으며, 간주석인 가운데 기둥은 장고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꽃을 새긴 마디를 둘렀다. 이와 같은 모양의 석등은 보물 제35호인 남원 실상사 석등 등에서도 보이는 제작기법이다.

보면 볼 수록 석등에 빠져들다.

한참이나 석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과연 이것이 장비조차 변변치 않던 통일신라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조형물일까? 많은 석등을 보앗지만,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석등은 흔하지가 않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장방형의 창을 내었다. 이러한 조형기법은 실상사 석등이나 보물 제111호인 개선사지 석등 등에서 보이는 제작기법이다.



화사석의 위에 올린 지붕돌은 경사가 급한편이다. 그 각 모서리에는 커다란 귀꽃을 조각하였는데, 그 귀꽃의 아름다움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리고 덮개석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머리장식의 받침인 노반과,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복발이 놓여있다. 화사석에는 별다른 조각은 하지 않았으나, 8면에 낸 창이 시원하게 보인다. 세상을 밝히는데 있어, 좀 더 밝은 빛을 발하도록 한 마음이 엿보인다.

석등 주변을 떠나지 못하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용암리 석등이다. 이 석등이 서 있는 곳은 '진구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구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편이다. 다만 고승 보덕화상에게는 법륜이 높은 11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적멸과 의융 2인이 임실에 진구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용암리 석등'은 2010년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명칭을 변경할 때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지붕에 하얀 눈을고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 도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은 석등을 조형을 할 수가 있었을까? 사람의 손으로 조각한 것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이렇게 조각을 하였을까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디 한 곳 부족함이 없다. 어디 한 곳 더 지나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 자리에 그런 조각을 해 놓아야 할 것같은 자리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돌로만든 조형물이지만 딱딱하지가 않다. 그저 흙으로 잘 빚어놓은 것처럼 부드러움이 있다. 하얀 눈밭에 서 있는 석등의 모습이, 마치 이곳이 천상인양 착각을 하게 만든다. 길을 떠나야 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아마도 이대로 이 석등 곁에서서 못난 돌미륵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