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에 소재한 봉암사 경내, 대웅보전 곁에는 전각이 하나 서 있다.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이 전각 안에는 국보 재315호 지증대사탑비와, 보물 제137호인 지증대사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지증대사(824∼882)는 이 절을 창건한 승려로, 17세에 승려가 되어 헌강왕 7년인 881년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하였다.

은 ‘지증’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 ‘적조’라 하도록 하였다. 탑의 명칭을 ‘지증대사 적조탑’이라 부르는 이 탑은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를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다.



온전한 지붕돌의 섬세한 꾸밈

8각으로 꾸며진 지붕돌은 아래에 서까래를 두 겹으로 표현한, 겹처마 지붕으로 아름답다. 서까래까지 세세하게 표현을 한 지붕돌의 처마는 살짝 들려 있다. 낙수면의 각 모서리 선은 굵직하고, 끝에는 귀꽃이 알맞게 돌출되어 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연꽃받침 위로 머리장식이 차례로 얹혀 있다. 지붕돌의 일부분이 부서져 있으나, 각 부분의 꾸밈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품격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탑신은 8각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다. 앞뒤의 양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다. 아마도 이 탑이 지증대사의 사리를 보관한 탑이기 때문에 이런 장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양 옆으로는 불교의 법을 지킨다는 사천왕을, 나머지 두 면에는 보살의 모습을 돋을새김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조각들이 지증대사 탑의 전체에 고르게 표현이 되어있다. 전국에 수많은 사리탑을 둘러보았지만, 이처럼 화려하게 장식을 한 탑은 그리 흔치가 않다. 위서부터 아래 기단까지 고르게 조각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많은 조각이 어우러진 탑

기단은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평면 모양은 8각으로 꾸며졌다. 밑단에는 각 면마다 사자를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위단을 괴는 테두리 부분을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 금방이라도 탑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윗단에는 각 모서리마다 구름이 새겨진 기둥조각을 세우고, 사이사이에 천상의 새라는 가릉빈가를 새겨 넣었는데 그 모습이 우아하다.




가릉빈가는 불교에서의 상상의 새로, 상반신은 사람 모습이며 하반신은 새의 모습이다. 가운데받침돌의 각 면에는 여러 형태의 조각을 새겨 넣었는데, 무릎을 굽힌 천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공양을 드리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 조각은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꾸며져 탑의 조형이 남다름을 알 수가 있다.

정녕 사람이 만든 탑일까?

윗받침돌은 윗면에 탑신을 고이기 위한 고임대를 두었으며, 모서리마다 작고 둥근 기둥 조각을 세워 입체감 있는 난간을 표현한 것도 이 탑의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어울리는 지증대사 적조탑. 안정감이 있게 조형이 된 탑의 옆에 세워진 비문의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 헌강왕 9년인 883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는 문경 봉암사. 선방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께 자장을 해 드리기 위해 7월 6일에 찾아간 봉 옛 고찰. 그곳에서 만난 지증대사탑의 모습은 한참이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문경 봉암사. 일 년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 날’을 제외하고는 산문이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 곳.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절이기도 하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인 879년 지증도헌 국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하였다.

지증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의 지세를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이 날개를 쳐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흐르니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며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곳이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 라고 절을 지었다.


절의 창건을 마친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개산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니, 이것이 신라 후기에 새로운 사상흐름을 창출한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번 소실과 중건을 반복 한 봉암사는 1982년 6월 조계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고, 희양산 봉암사 지역을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절집 안 땅을 밟기도 송구스럽다

아침 일찍 출발을 하여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 봉암사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경. 들어가는 입구부터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안거 중인 스님들께 ‘스님짜장’보시를 하러 왔으니 어찌하랴. 닫힌 산문이 열렸다. 버스로 구불거리는 길을 들어간다.

경내로 들어가니 절 입구에는 통행금지 푯말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1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안거 중인데도 소리하나 없이 조용하다. 마당을 둘러본다. 조그만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하다. 세속에 묻힌 때를 갖고 이곳 땅을 밟기조차 송구스럽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 공양간으로 옮겨 놓고 절 경내를 돌아본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진 널찍한 돌들. 그저 앉으면 자리가 된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다 못해 푸르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물소리가 암반 위를 흐르면서 경쾌한 소리를 낸다. 길가에 놓인 이끼가 가득한 돌. 그대로 자연이다.

돌아다니기조차 죄스럽다. 정말 조심스럽게 절 경내를 돌아본다. 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없다. 깨끗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마도 선원에 계신 스님들의 수행으로 인해서 인가보다. 봉암사 안에는 몇 점의 문화재가 있다.




봉암사 삼층석탑, 지증대사 적조탑, 지증대사 적조탑비와 극락전이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도 죄스럽다. 오늘따라 셔텨 소리가 유난히 크게만 들린다. 금색전 쪽으로 지나다가 보니 입구 한편에 기와조각, 돌들이 모여져 있다. 돌 하나도 허투루 놓아두지 않는 곳이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나오다가 피식 웃고 만다. 이 빈틈없는 봉암사 경내에서 돌절구 하나가 마당에 쓰러져 있다. 그 모습이 정감이 간다. 아마도 마음에 한 점 여유를 느끼고 싶으셨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썩으니, 일부러 쓰러트려 놓았다는 것이다. 수행자와 속인의 느낌의 차이인지. 봉사도 정해진 시간 안에 산문을 나가야 된다는 봉암사. 3시간의 짧은 머무름 속에서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깊숙한 곳은 발도 들여 보지 못했는데.



이끼가 가득 낀 바위가 길가에 놓여있다. 바위 하나도 자연이 되기싶은 곳이다. 전각 입구에 놓여있는 돌들. 돌맹이 하나도 돌아다니지 않는 경내이다. 돌절구 하나가 쓰러져 있다. 봉암사에서 본 마음의 한자락 여유이다.  




봉암사의 전각들. 많은 전각들이 있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맨 아래 극락전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는 봉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지증대사 적조탑과 탑비를 모셔놓은 전각(문화재에 대한 글을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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