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면 양지면 주북리 825에는, 경기도 문화재지료 제49호로 지정이 된 고인돌 한기가 소재하고 있다. 이 고인돌을 찾아 몇 번을 주북리를 돌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는 했다. 그 이유는 이 고인돌이 집안에 있기 때문이다. 서너 차례를 답사 끝에 겨우 찾아 들어간 곳. 지석묘 앞에는 울타리 안인데도 몇 기의 무덤이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 집을 ‘별장집’이라고 부른다.

지석묘는 우리나라 전역에 3만 기 정도가 남아있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의 형태로, 그 종류는 세 가지로 구분을 하고 있다. 고임돌을 지상에 세우고 그 위에 덮개석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무덤의 방은 땅 속에 있으면서 받침돌에 덮개석을 올려놓는 바둑판식이 있다. 또 한 가지는 맨 땅에 덮개석이 놓인 개석식이다.


탁자식인 주북리 고인돌

주북리에 있는 고인돌을 보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에 놓인 탁자에 몇 사람이 들러 앉아 있다. 고인돌을 좀 보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친절하게 저 안쪽에 있다고 알려준다. 입구에 묘가 있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꽤 큼직한 고인돌 한 기가 자리를 하고 있다.

주북리 고인돌은 양편에 고임돌과 한편을 막음돌이 땅에 절반 쯤 묻혀있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석을 올려놓았다. 탁자식인 이 고인돌은 화강암 질 편마암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주변에는 덮개석으로 쓰였을 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마 이곳이 예전에는 많은 고인돌이 있었던 자리인 듯하다.


주북리 고인돌은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이 되어있다

주북천 주변에 놓인 고인돌, 마을이 있었다는 증거

이곳은 주북천이 가깝다. 그리고 이렇게 고인돌이 있었다는 것은, 이 주변에 물이 있어 사람들이 청동기 시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북리 고인돌은 길이가 2,8m에 너비는 2,5m 정도이다. 두께는 45cm 정도가 된다. 돌에는 성혈 등은 보이지 않으며 고인돌의 전체 높이는 1m 정도가 된다.

이 주북리 고인돌의 형태는 고임돌은 낮고, 덮개석이 크고 두터워 웅장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이런 형태의 모습을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 마을을 이루고 살던 부족 중 그래도 상당한 위치에 있던 사람의 지석묘일 것으로 추정이 된다.



고임돌 위에 덮개석을 놓은 탁자식 고인돌. 주변에는 묘가 보인다.

탁자식 고인돌이 집단으로 이루고 있는 남부지역의 것에 비해서는 단 한 기 뿐이지만, 그래도 이 주변의 옛 유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소중한 문화재라는 생각이다. 주북리는 낮은 구릉지다. 양지에서 옛 도로를 따라 용인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지나, 주북천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하기에 이렇게 넓고 낮은 구릉이라면,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돌아서야만 했던 주북리 고인돌. 비록 한 기 밖에 남지 않은 고인돌이지만, 그 고인돌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주변의 지형으로 보아 마을이 있었다고 치면, 이 인근 어딘가에는 또 다른 고인돌이 있지나 않았을까? 그리고 그 마을은 언제 쯤 사라진 것일까? 그들의 생활은 어떤 형태였을까? 한참이나 고인돌 앞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가, 질문과 답을 스스로가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질문을 반복할지는 모르지만.

주변에는 덮개석으로 사용 되었을 돌들이 있어, 이곳에 몇 기의 고인돌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주변 주북천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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