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로 우울증도 고치고, 활력도 되찾았죠.”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지동 주민센터 2층에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신바람 나는 음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동 주민센터 문화강좌 중에 목요일 11시부터 벨리댄스 초급반이 먼저 지도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고 나면, 12시 부터는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가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초급반 벨리댄스의 지도를 맡은 김민주 지도강사가 앞에서 이끄는 대로,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춤을 따라 춘다. ‘벨리댄스(BellyDance)’는 흔히 배꼽춤이라고 부르는데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 현재의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신의 다산성을 의미하는 춤으로 해석

 

벨리댄스는 통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제의의 춤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벨리댄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프랑스에서는 ‘danse du ventre’ 또는 ‘위(stomach)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리듬이기도 한 ‘cifte tell’i로 불렀다. 중동에서는 ‘동양의 춤(dense orientale)’으로, 터키에서는 ‘Rakkase’로, 이집트에서는‘Raks Sharki’로 불렀다.

 

벨리댄스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다산성의 근원인, 복부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특별한 춤이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명확하게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전통적으로 어머니 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맨발로 춤을 춘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맞춰 안무되었는데 복부 근육과 힙과 가슴의 움직임 등을 강조한다. 이 춤은 매끄러우면서 흐르는 듯 하고 복잡하면서 허리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어요!”

 

오전 11시 벨리댄스 초급반이 연습을 마친 후, 수강생인 이금애(여, 48세)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허리 통증이 유난히 심해 벨리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허리에 통증이 와서 그것을 고쳐보려고 벨리댄스를 시작했어요. 벨리댄스는 온 몸을 다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죠. 그러나 자세만 정확하게 잡으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어요.”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지고, 모든 일에 활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12시부터 초급반의 연습에 이어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아이리스’는, 이미 수원에서는 잘 알려진 벨리댄스 동아리이다. 일 년이면 거의 10회가 넘는 봉사를 하기도 하는 아이리스는, 현재 9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1998년에 아이리스라는 벨리댄스 동아리를 조직해 수원에서는 가장 먼저 벨리댄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고.

 

 

수원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춤을 올린 ‘아이리스’

 

“그 이전부터 문화강좌로 벨리댄스를 추어왔어요. 그러다가 1998년에 정식으로 아이리스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죠. 그렇게 아이리스가 동아리로 조직이 된 후, 거의 한 달에 한 번 씩은 요양원 등을 돌면서 봉사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현재 벨리댄스 동아리 아이리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미옥(여, 40세)씨의 말이다. 김미옥씨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시작을 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춤을 춘 것은 아니란다.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기에.

 

“처음 춤을 춘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이 먼저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후원자가 되었죠.”

 

화려한 의상부터가 아이리스가 남다른 것을 알려줘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의 연습은 의상부터가 다르다. 그동안 6년 동안이나 무대에 올라 많은 공연을 해서인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초급반이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노출된 부분을 가리기에 정신이 없는데 비해, 아이리스는 전혀 무관한 표정이다. 아니 자신들의 춤에 흠뻑 빠져들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지가 이제 4년이 지났어요. 벨리댄스는 여성들에게는 정말 최고로 좋은 운동인 듯해요. 벨리댄스를 추면 몸의 전체적인 균형이 알맞게 변하거든요. 거기다가 신나게 춤을 추면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또 건강도 지켜갈 수 있고요.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함께 갖게 되죠.”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감싼 채 열심히 춤을 추던 양수지(여, 39세)씨의 이야기이다. 굳이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춤을 추는데 몰입해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벨리댄스를 좋아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 한 때는 많은 노출을 꺼려 춤을 춘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한 회원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생활이 지루하거나 활력이 생기지 않으면, 벨리댄스를 추러 오라고 하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참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즐거울 수가 없다. 나이를 먹다가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마디로 무안하게 만든다.

 

“내 아이 이제 74세 밖에 안 되었어요. 그런데 아픈 곳이 한 곳도 없어요. 지금도 춤과 소리로 봉사를 하러 다녀요”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분이 부럽다. 부러운 정도가 아니다. 나도 저 어르신처럼 ‘저 연세에 답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야 그 이전에 답사에서 멀어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7월 9일(화), 오후 1시부터 두 시간 가까이 행궁동 주민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문화강좌가 열리는 곳을 찾았다. 이 날 찾아간 곳은 행궁동 주민센터가 아닌, 무용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박경현 무용학원이다. 행궁동 주민센터에 문화강좌를 할 수 있는 교실이 마땅치가 않아, 무용학원에 위탁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 40명 정도가 우리 춤을 배웠어요. 그런데 인원이 너무 많아 가르치기도 힘들고,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주민센터에 이야기를 해 15명을 정원으로 삼아 제대로 가르치고 있죠..”

 

그러다가 보니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고. 춤이란 것이 워낙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다가 보니, 더 많은 인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전문 춤꾼인 박경현 선생과 딸인 신나리 선생이 함께 춤을 가르치다가 보니, 단순한 문화강좌가 아닌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의 춤꾼을 만든다는 것.

 

“지금 이곳에서 춤을 추고 계시는 분들은 모두 3 ~ 8년 정도 되었어요. 그냥 문화강좌 수강생들이 아닌, 거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준 프로들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요”

 

 

요즈음은 춤을 배우는 문화강좌 강습생들이 장고까지 배우겠다고 아우성이란다. 행궁동 문화강좌는 모두 7 종목이 개설되어 있다. 거기다가 정원이 차지 않아 동아리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4개 팀이 있다고 한다.

 

“춤을 추면 정말 신나죠.”

 

“올 해 내 나이가 74세인데, 3년 동안 춤을 추어서인가 아직 어디가 아파보질 않았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엄청 부러워하죠. 이 나이에도 아프지 않고 춤을 추어도 관절이 아직도 부드럽게 움직여요. 요즈음은 경로당 같은 곳에 봉사를 하러 다녀요. 가서 춤도 추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행궁동에 사시는 이경례 할머니는 7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게 정정하시다. 3년 동안 춤을 춘 덕분에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올해 4년 째 문화강좌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이춘희(여, 44세)씨도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저는 딸아이가 이곳에서 춤을 배워요. 그래서 함께 춤을 추고 있죠. 제가 춤을 추어 보니 요즈음은 딸과 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어서 좋아요. 더구나 춤을 추지 않았을 때는 남편 직장 가고, 아이 학교가고 나면 할 일이 없어 하루가 길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화, 금) 이곳에 와서 춤을 추고, 집에서 연습을 하다가 보면 정말 일주일이 즐겁죠. 남편도 딸아이와 함께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요.”

 

우리 것이 좋다고 했던가? 주민센터마다 이렇게 문화강좌를 열어 많은 시민들이 그곳에 가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여 생활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 정말 바람직하다. 그래서 춤을 추는 내내 땀을 흘리면서도 행복한 표정들을 짓는 것인지.

주민자치센터 문화강좌 순례(1) - 서둔동

 

벨리댄스(BellyDance)는 흔히 배꼽춤이라고 부르는데 역사가 깊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 현재의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부터 추워졌던 춤으로 추정한다. 벨리댄스는 통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제의의 춤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벨리댄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프랑스에서는 ‘danse du ventre’ 또는 (stomach)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리듬이기도 한 ‘cifte tell’i로 불렀다. 중동에서는 동양의 춤(dense orientale)’으로, 터키에서는 ‘Rakkase’, 이집트에서는‘Raks Sharki’로 불렀다.

 

 

복부를 움직이는 여신의 다산성을 표현

 

벨리댄스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다산성의 근원인, 복부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특별한 춤이다. 오늘날 이집트에서는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할 때, 벨리댄서를 초대해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벨리댄스는 이집트에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명확하게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전통적으로 어머니 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맨발로 춤을 춘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맞춰 안무되었는데 복부 근육과 힙과 가슴의 움직임 등을 강조한다. 이 춤은 매끄러우면서 흐르는 듯 하고 복잡하면서 허리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보편화 된 벨리댄스

 

요즈음 들어서 각 주민 센터마다 문화적 향유를 즐기기 위한 주민들로 넘쳐난다. 그러한 문화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 센터마다 문화강좌라는 것을 연다. 전문성이 있는 강사를 초빙해 주민들에게 강좌를 열어주는 것이다. 강좌의 내용도 벨리댄스를 비롯하여 붓글씨. 기타, 하모니카, 노래교실, 고전무용, 스포츠댄스, 난타 등 다양하다.

 

각 주민 센터마다 많은 문화강좌를 하면서 지역에서는 얼마나 많은 행사에 참여를 하고 있는지, 혹은 그렇게 문화향유를 하면서 주민들의 실생활에는 어떤 달라진 점이 있는지 등이 궁금하다. 그러한 문화강좌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주민 자치센터에서 여는 문화강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서둔동 벨리댄스 강좌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많을 때는 12명 정도가 나와서 연습을 한다는 서둔동(동장 민완식). 요즈음은 봄철이라 그런지 많이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층 연습실에는 6명이 나와서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가무를 워낙 좋아해 시작했어요.”

 

서둔동 벨리댄스 강사인 남은경(, 40)씨는 올해로 벨리댄스를 시작한지 7년째라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아이를 낳는 바람에 다시 시작 한 것은 4년이 되었다고. 가무가 너무 좋아서 벨리댄스를 시작했다고 하는 남은경씨는, TV와 공연 등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 시작을 하였다는 것.

 

벨리댄스는 다이어트에도 상당히 효과가 있어요. 여자들이 벨리댄스를 추면 연습을 할 때나 공연을 할 때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 하나로도 상당히 아름답죠. 거기다가 복부와 가슴 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복부의 지방층을 없애주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는데, 춤이 너무 좋다보니 이제 직업이 되었어요.”

 

 

서둔동 벨리댄스 팀은 연말에 지역의 공연이나 봉사 공연 등을 주로 한다고. 10년 전만 해도 벨리댄스를 추며 살을 내놓고 하기 때문에 많이 민망해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보편화 되어 누구나 즐겨 출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제는 주부들도 망설이지 않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를 수가 있다고.

 

벨리댄스는 춤을 추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만족을 하게 되죠. 자신 스스로가 개발을 하면서 추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동작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죠.”

 

벨리댄스로 생활에 활력을 찾았어요.”

 

59세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수강생 유보희씨. 이제 벨리댄스를 춘지 5년째라고 한다. 얼굴을 보나 몸매를 보나 도저히 59세의 나이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춤이 예뻐서 시작을 했지만, 춤을 추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

 

 

저는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춤을 추면서부터 자신감이 생겼죠. 이제는 어디를 놀라가도 남들 앞에 자신 있게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고요. 또 집안에도 활력이 돌아요, 남편은 제가 벨리댄스를 시작하고 나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죠.”

 

벨리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다리도 아프고 몸도 많이 불편했지만, 음악에 맞추어 하루에 2시간씩 춤을 추다가 보니 그런 통증도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벨리댄스는 말 그대로 흥겹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

 

주민 센터에서 처음으로 만난 서둔동 문화강좌인 벨리댄스. 춤을 추는 모습과 같이 모두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다가 보면, 저절로 자신감을 얻을 듯. 남들 앞에 나서기를 망설이는 주부라면, 당장 벨리댄스 강좌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살인의 추억’이란 불명예인 영화제목으로 유명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오원춘 살인사건으로 인해 지동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동이 알고 보면,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날마다 변하고 있는 지동. 그 지동이 이제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지동’이란 명칭은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이 마을에 커다란 연못을 조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지동이란 명칭보다, ‘못골’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이 이름 안에는 지동이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일려주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문을 열어 준 '지동제일교회' 1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수원과 화성의 야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열린교회’가 주민들에게 준 선물

 

이 지동은 수원의 화성 밖에서 유일하게 성곽을 끼고 길게 늘어선 마을이다. 지동사람들은 날마다 이 화성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동사람들은 화성이 단순한 성곽이 아닌, 사람의 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건물들은 낡고 우중충하다. 거기다가 살인사건 이후 사람들이 입주를 회피하다 보니, 마을 안에는 빈 점포들까지 생겨났다.

 

이런 지동의 변화에 가장 먼저 적극적인 호응을 한 것은, 지동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교회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지동제일교회’는 지동의 가장 높은 길인 ‘용마루길’의 입구에 서 있다. 용마루길이란 지동시장을 벗어나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가는 옛 길이다. 이 길은 남수문을 벗어나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지동제일교회에서 시작해 창룡문까지, 길게 외성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된 길이다.

 

 

화성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그 중앙에 솟은 높은 곳이 종루이다. 이곳을 주민들에게 개방해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하였다.(위) 9월 15일 밤 9시에 찾아간 제일교회(아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의 종탑은 어디서 보아도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높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지표에서 종탑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47m나 된다. 사람들은 그런 지동제일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교회가 가장 먼저 지동의 변화에 문을 열어 젖혔다.

 

사용하지 않고 있던 교회 종루를 개방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방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감히 우리가 알고 있던 교회들에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노을 길 전망대’, 그 마음이 하늘에 가깝다.

 

전망대의 이름은 ‘노을 빛 전망대’라고 했다. 그리고 8층부터 10층까지는 갤러리로 변했다. 층마다 배색을 맞추어 칠을 하고, 그림도 걸고 사진도 걸었다. 그리고 13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층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경관이 달라진다. 7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천천히 꼭대기를 오르면서 즐기는 재미. 맨 위층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찔하다.

 

밤 9시에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해발 99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화성. 한 눈에 화성이 들어온다. “저기는 동문, 저곳은 서장대, 저곳은 행궁". 종루 꼭대기에서 약간은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돌아본 수원시와 화성의 야경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이 가깝다. 잠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등을 쓸어본다. ‘혹 날개라도 하나 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8층에 마련한 위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입구.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안내를 해준 기노헌 총괄팀장이다.(위) 그리고 9층에 마련된 갤러리(아래)


수원제일교회는 종탑의 7층부터 이 13층까지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화성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가 이곳에 와서 화성 인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임시로 개관을 했지만, 내년 4월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완전 개방을 한단다. 거기다가 전망대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인적자원의 지원까지 약속을 했다. 유지 및 보수관리도 교회에서 전담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다. 주민들은 물론 ‘노을 빛 전망대’를 올라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린교회’에 감사를 한다. 더구나 닫혀있는 문을 연 제일교회는 예배를 보는 신성한 공간까지,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지역을 위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런 마을이 바로 지동이다.

 

 

끝없는 변화로의 추구, 지동은 날마다 깨어난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 이 마을은 그저 골목만 들어서도 재미있다. 골목길마다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다가 보면, 그 안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린꼬마들의 함성도 들린다. 꽃들의 속삭임도 있고, 나무인줄로만 알고 기어오르다, 이마에 혹을 붙인 벌레의 불평도 들을 수가 있다.

 

이런 지동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요즈음 전보다 더 똘똘 뭉쳤다. 그 안에 훈훈한 정이 있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내 가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이나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을 바라보고 사는 지동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그 안에 수원제일교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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