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란 예전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부도의 꾸밈은 석탑과 같이, 기단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단부와 탑신, 그리고 머릿돌로 조형이 된다. 머릿돌은 지붕을 얹고 그 위에 연꽃모양으로 만든 보주를 얹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런 일반적인 부도와는 다른 아름다운 부도가 눈길을 끈다.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세워진 국보 제53호 연곡사 동부도는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인 진평왕 6년인 545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연곡사는, 고려 초기까지도 스님들이 선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다. 그래서인가 연곡사에는 이 외에도 보물 제154호인 서부도로 불리는 소요대사부도와 국보 제54호 북부도가 있다.


천상의 반인반조인 가릉빈가를 새겨

동부도의 기단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그리고 위 받침돌을 차례로 올렸다. 이단으로 꾸며진 아래받침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모양을 각각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몰려드는 팔부중상을 새겨 넣었다.

위받침돌은 밑면을 둥글게 하여 두 겹의 연꽃잎과 기둥모양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둥근 테를 두른 안에 불교의 낙원인 극락에 산다는 전설 속의 새인 ‘가릉빈가’를 새겨 넣은 점이 독특하다. 가릉빈가는 전설속의 극락조로 하반신은 새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점이 특이한 모습이다.



자태가 아름답고 소리가 묘하다는 가릉빈가는 불가의 호법신장의 일종으로 볼 수가 있다. 일찍 고구려 안악고분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그림이 보인다. 가릉빈가는 결국 부도 안에 모셔진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호법의 기능과, 부처님을 덕을 찬양하기 위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극락조로 불리는 가릉빈가는 반인반조의 몸으로 호법과 찬양의 기능을 갖고 있다.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인 동부도

탑신인 몸돌에는 각 면에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수호신장인 사천왕상과 향로 등을 새겨 넣었다. 돋을새김을 한 사천왕상은 지금보아도 당장 호령을 하고 뛰쳐나올 듯한 기개를 보인다. 팔각으로 정교하게 마련한 지붕돌은 돌 위에 새겼다고는 볼 수 없게 화려함을 보이고 있다. 서까래와 기와의 골은 물론, 부연과 막새기와까지 표현을 할 정도로 뛰어나다.



머리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사방에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봉황을 두고, 연꽃무늬를 아래위로 새겨놓았다. 일설에는 도선국사의 부도라고도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이 부도의 아름다움에 반한 일제는 동부도를 동경대학으로 옮겨가려고 하였다는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머리장식에 새긴 네 마리 봉황의 머리가 다 잘려나갔다는 점이다.



사방에 날개를 펼친 봉황의 머리는 모두 잘려나갔다

느낌이 일부러 그렇게 잘라버린 듯 해 씁쓸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어떻게 네 마리의 머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봉황의 모습이 더욱 궁금하다. 아마 머리 위에는 또 다른 장식은 없었는지. 그리고 그 머리를 잘라낸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영원한 미궁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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