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연애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물론 ‘연애에 대한 정석이 있나, 없나?’ 에는 확고한 대답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듯, 연애에 대한 대답 또한 정답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다르고 상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룰에 적용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누군가 ‘당신 연애다운 연애 해보았어?’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과연 연애다운 연애가 무엇인가라는 해답 또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연애를 잘하기로 소문이 난 친구에게 조언을 들었다가, 괜히 망신만 당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연애의 정석은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녀사이의 애정표현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애정표현은 그야말로 ‘순수’였다면, 현재의 애정표현은 ’발랄‘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내가 연애블로거도 아닌 다음에야, 그 표현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속내를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거의 애정표현은 그야말로 순수했다? 이 순수라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하기도 한 모습이다. 가슴 속에 담아두고서 혼자만 끙끙거렸으니 말이다. 요즘 시쳇말로 하면 ‘짝사랑’에 가깝다고 해두자. 마음에 있는 말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경우가 많고, 그러다가 자신의 가슴에 있는 사람이 훌쩍 딴 사람 품으로 날아가 버리면, 술로 세월을 달래기 일쑤였다. 한 마디로 답답한 인사들이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 하나는 참으로 오래 간직하고 살았다. 그렇다고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마음에 그런 애틋한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것을 당당하게 밝힌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발랄’이요, ‘당당’이다.

그러나 그 발랄하고 당당한 가운데서도 그 애틋한 마음은 변치가 않은 것만 같다. 나름대로 한 사람에게 향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점에서 세월은 흘러도 연애의 정석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외형만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진정성이 보인다면 연애해 보아도 좋다.

그런 순수한 감정을 어떻게든지 표현을 하는 사람들. 그 표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그보다는 그 표현은 좀 어눌해도, 마음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음에 진정성을 어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상대방만 배려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눈에 항상 푸근한 감정이 실려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진다고 한다. 헤어질 때 깨끗하게 헤어지면 ‘쿨하다‘고 표현을 한다. 과연 그 쿨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보내는 것이 쿨한 것일까? 말로는 쉽게 헤어진다고 하지만, 그 속이 얼마나 탔는지는 본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지 않을까? 쿨하고 안하고는 바로 본인의 마음속에서만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제 삼자가 왈가왈부 논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족이 길면 글이 어지러워진다. 지금 이글을 쓰는 내가 그렇다. 연애박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참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 만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녀사이의 애정에는 정석이 없다. 다만 순수한 열정을 갖고 사랑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그 두 사람이 하는 연애의 정석이 된다.

만일 내 이성친구가 진정성을 보인다고 하면, 표현은 그리 멋지게 하지 못해도 꽉 잡아라. 그것이 바로 좋은 이성을 얻는 방법이다. 나중에라도 그것이 오래 세상을 살면서도 꾸준한 사랑으로 내 곁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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