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들은 우리나라 숲 속 전역에 걸쳐서 살아간다. 그러나 청설모가 있는 곳에서는 다람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마도 청설모의 공격을 받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람쥐는 일반적으로 쥐목(―目 Rodentia) 다람쥐과(―科 Sciuridae)에 속하는 설치류를 가리키는 말로, 다람쥐라는 이름은 때때로 꼬리에 털이 많고 나무에 사는, 사람에게 친숙한 종들에 한정되기도 한다.

 

다람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숲이나 사막·초원·툰드라 등 다양한 서식지에 살고 있다. 약 50속 260종이 있으며, 이들 가운데는 땅다람쥐와 마못쥐, 줄무늬다람 등이 있다. 나무에 사는 다람쥐들은 민첩하며, 나무에 뚫린 구멍 또는 잎이나 나뭇가지로 지은 둥지에 살며 대개 1년 내내 활동한다. 땅에 사는 다람쥐들은 굴에 살며 대부분 겨울잠이나 여름잠을 잔다. 다람쥐는 주로 채식을 하며 씨앗이나 견과(堅果)를 좋아한다. 몇몇 종은 곤충을 먹거나, 동물성 단백질을 곁들여 먹는다. 암컷은 1년에 한 번 또는 여러 번 새끼를 배며, 한배에 1~15마리를 낳는다. 회임기는 22~45일이다.(다음 백과사전 인용)

 

 

사과를 먹는 다람쥐

 

아마도 이 다람쥐 한 마리를 찍어 놓은 것이 꽤 시간이 흐른 듯하다. 이 녀석 배가 고팠는지 절집 마당에 까지 내려왔다. 먹을 것이 없으면 가끔 절집 공양간 근처를 배회하기도 한다. 일부러 사과를 한 알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선뜩 덤벼들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리를 옮겨 놓은 사과를 찾아다니면서 먹기 시작한다. 다람쥐 한 마리를 구경하는 즐거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제격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난 ‘세월’이라는 말보다. ‘시간’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어째 세월이라고 표현을 하면, 앞으로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그에 비해 ‘시간’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들을,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벌써 추석 연휴라고 한다. 다음 뷰에 글을 보니 추석에 대한 음식이며, 글들이 부지기수로 눈에 띤다. 추석 때도 그렇고 설 때도 그렇다. 솔직히 난 이런 글들이 보이면 썩 기분이 좋지가 않다. 늘 혼자이고, 늘 방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절집을 찾아가 우울한 기분을 달래든지, 아니면 행사를 하는 곳을 돌아친다.

 

 

 

집 나오면 개고생, 정말 그랬소

 

‘명절’, 참 좋은 말이다. 오죽하면 명절이라고 했을 것인가?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리고 난 뒤,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내가 ‘이다’리고 하지 않고 ‘일 것이다’라고 쓴 것은, 벌써 이런 모습을 잊고 산지가 2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살다가 보니 어쨌든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20년 세월을 길 위에서 보냈다. 명절 때만 되면 그저 산행을 하던지, 아니면 문화재 답사를 한답시고 며칠 씩 길을 떠나고는 했다. 아마도 그런 날이 길어지다 보니, 이젠 그런 명절이라는 말에 무덤덤해 진 듯도 하다.

 

몇 해 전인가보다. 그 때도 계절이 지금쯤 되었다. 명절 전날 길을 나섰다. 그냥 방안에 쭈그리고 있는 것이 싫어서이다. 호기있게 길을 나선 것 까지는 좋았다. 잘 곳이야 돈만 주면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으려고 나갔지만, 문을 연 곳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하긴 명절 아침에 누가 장사를 하겠다고 문을 열 것인가? 아마 오후 6시까지인가 물로 배를 채우면서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을 한다는데, 그 말이 정말 명언이다. 문제는 이렇게 명절 때마다 배를 곯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개고생을 벌써 20년 가까이 했지만, 아직도 개고생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니 무슨 이런 팔자가 다 있을까 싶다.

 

 

그래도 살만하잖소?

 

엊그제인가, 지인들과 만나서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저녁이 되면 수원 지동 순대타운 안은 온통 인파로 넘치는 곳이다. 자리 하나 차지하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더구나 명절 밑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인해 통로를 다니기도 힘들 지경이다.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을 보니 무엇인가 꿈틀거린다. 비닐 안에 무엇이 들어있어서 처음에는 누가 무엇을 갖다 버린 줄로만 알았다.

 

한데 자세히 보니 비닐을 푹 뒤집어쓰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노숙자가 추위를 피해 그렇게 비닐봉지 한 장을 머리서부터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세상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남들은 명절이라고 모두 들떠서 난리인데, 저렇게 오갈 데 없이 비닐 한 장으로 쌀쌀한 밤 날씨를 견뎌내고 있다니.

 

하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제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 분 초저녁에 그곳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등이 굽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연세가 70을 넘을 듯하다. 그런 어르신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편에서 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도대체 어떤 마음이 들까?

 

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엔 이 어르신 어디로 갈 것인지? 나가서 막걸리라도 한 잔 대접을 해야 할 듯하다. 사람 사는 것이 별거 아니잖은가? 즐거운 명절에 기분 언짢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 우리 주변에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야 하는 이웃도 있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원 선원사 절집에 토끼 네 마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 녀석들 얼마나 잘 먹고 살았는지 살이 올라 토실하다. 이 녀석들이 한 녀석은 암놈인줄로만 알았다는데, 알고보니 네 녀석들이 모두 숫놈이다. 토끼는 생육이 빠르다. 임신 주기도 짧고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참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인가.

녀석들은 팬스 안 보호소에 있다. 안전하게 저희들끼리 살라고 그곳에 두었는데, 한참 혈기 왕성하게 자란 듯하다. 이 녀석들이 하루 종일 저희들끼리 이상한 짓들을 한다. 남이 보면 참으로 남사스럽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한들, 알아 들을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야! 너희들끼리 그러냐 나 여자거든"


문제는 팬스 밖에서 살고 있는 절집 봉순이다. 이 녀석이 혼자 심심하던 차에 팬스로 가려져는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숫놈들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고 있다. 아마도 제가 암놈이라서인가. 숫놈끼리 해괴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입맛만 다시는 봉순이. 이 녀석도, 저 토생원들도 짝을 찾아 주어야 할까보다.

비는 오고 짐을 싸다가 잠시 내려가보니, 그 비를 맞으면서 이 녀석들이 장난을 치는 모습을 부러운 듯 보고 있는 봉순이의 눈길이 애절하다.
 



'사람에게만 달인이 있는 것이 아녀. 우리 같은 강아지들도 달견이 있는 것이여' 남원 선원사 절집 강아지 봉순이(원래 이름은 써니라는데 난 이 녀석을 늘 봉순이라고 부른다)가 일갈을 한다. 이 녀석 심심하면 쇠말뚝을 붙들고 춤을 추워댄다. 하던 짓도 멍석을 피면 안한다고 했던가? 봉춤을 추다가도 카메라만 가까이 들이대면, 바로 먼산을 쳐다보며 딴청을 피우기가 일쑤이다.

"어이~ 봉순이 봉춤 좀 한 번 추어보지"
"됐거든 아저씨"
"그러지 말고 한 번 추어봐"
"그럼 딱 한 번만이여라"
 

심심하면 철봉을 잡고 봉춤을 추어대는 봉순이

녀석 봉을 잡고 좌우로 흔들어댄다. 이제 4개월 째인 봉순이. 이녀석이 봉춤을 추면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다음에는 몰래 카메라를 하나 설치해 놓고, 동영상으로 찍어야 할 판이다.

잘 추다가도 사람들이 보이면 딴청을 하기 일쑤다. 녀석 숫기도 없어 갖고...
    




치사하기는 조금만 보여달라고 해도 딴 청이다. 그리고 놀아달라고만 조른다. 나도 그냥은 절대 안놀지. 봉춤 한 번 보여주면 놀아줄께

아이폰으로 찍었더니 화질이 별로이다. 그래도 머 봉순이 표장은 일품이라는^^

절집을 가면 가끔 황당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속인들 같지 않으신 스님들은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하고는 다른 듯하다. 오늘 찾아간 금산사. 죽은 사람들의 천도제를 지내고 나서 제를 지낸 것들을 태우는 '소대' 옆에 불이문이 있다.

이 불이문을 나서면 다리를 건너 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런데 앞장 선 분들이 내가 소대를 찍고 있는 사이 문을 나서 사라지셨다. 불이문 앞으로 가 문을 열라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손잡이가 없다. 그리고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틈으로 보니 밖에 잠굼장치가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런에 어떻게 여길 나가신 것일까? 도를 많이 닦아 그냥 통과를 하신 것일까?

불이문. 그런데 손잡이가 보이질 않는다.


스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문은 밖에서 열고 닫게 되어있다. 선원에 계신 분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원 쪽에서 문을 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선원은 한참 먼 거리에 있어, 이곳까지 누가와서 문을 열어 불 수가 없다. 만일 선원을 나와 공양간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려면 어떻게 문을 열까? 월담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데 문에 무엇이 하나 달려있다. 흡사 표주박 같은 것이. 가까이 가서보니 위만 고정이 되어있다. 옆으로 밀어보니 밀린다. 구멍 안으로 보니 손을 넣을만 하다. 세상에 이 구멍으로 손을 넣어 빗장을 푸는 것이다. 간단한 장치 하나가 사람을 재미있게 만든다.

 


문 한편에 무엇이 달려있다. 가까이 보니 위쪽만 고정을 시킨 것이다.

이것을 밀어보니 수월하게 밀린다.

아래를 보니 빗장이 보인다. 아하~ 이렇게 문을 열고 닫았구나.

밖으로 나가보니 이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재미있다. 어디다가 서 먹어야겠다.

"스님, 오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불이문에서. 오늘은 이 장치로 선문답 하나 품고 가렵니다. 아마도 닫아도 열고, 열어도 닫는 마음이나 아닌지 모르겟습니다. 세상에 마음 닫고 사는 저 윗전나리들. 이런 구멍 하나 가슴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열어볼 수 있게. 시장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 구청장이 돼야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치시는 분들. 이렇게 구멍하나 만들어 가슴을 보이면 좋으련만. 괜한 기대는 하지 않으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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