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디를 가나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연희 패거리들은 바로 각종 타악기를 두드리며 신나게 장단을 몰아치는 난타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헤진 모자를 쓰고 얼굴에 칠을 하고 나타나는 각설이패(혹은 품바)들이다. 그 중 장바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역시 각설이패다.

 

사실 각설이패들은 걸인집단이 아니다. 각설이는 구한말 유랑집단들의 한 유파다. 각설이가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깡통을 들고 동냥을 다니는 모습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연희 후에 받는 동냥이 아니면 일체 받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육당 최남선조차 수표교 밑의 각설이들을 보고 대단한 예인집단이라고 칭찬을 했을까?

 

 

구한말 유랑집단의 한 패거리인 각설이패

 

구한말 한창 정세가 어두웠다. 사람들은 날마다 먹고 산다는 것에 전전긍긍하던 시기였다. 이 때를 맞아 전국적으로 많은 예인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집단으로 구성된 남사당패였다. 남사당보다 먼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패는 술동이를 남정네 등에 지워 술을 팔고 다니는 사당패였을 것이다. 이들 사당패들이 있어 남사당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말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유랑집단들이 생겨났다. 주로 절의 중창을 목적으로 절에서 내준 신표를 갖고 다니면서 걸립을 하는 절걸립패로부터, 중매구패, 솟대쟁이패 등 다양한 패거리들이 전국을 누볐다. 유랑집단들이 전국의 장거리나 사대부가를 누비면서 기예를 파는 것에 비해. 각설이패는 주로 정해진 정거리에서 소리를 팔아 연명을 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백제멸망 후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인집단

 

각설이패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자, 당시 지배계층은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거지로 변장하거나 혹은 정신병자나 병신으로 위장하여 걸인 행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때 문인 계통은 광대로, 무인 계통은 백정이나 줄타기 등을 하는 재인(才人)으로 전락하여 각설이 타령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설은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각설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구전되어 오던 타령이 문자로 정착한 것은 조선조 때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조선 말기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18121884)의 변강쇠가에서 품바의 뜻이 입장고라 기록되어있고, 송순(14931583)이 지었다는 타령과,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조선조에 과거에 낙방한 선비들이 낙향하면서 걸인 행각 중 불렀다는 천자풀이 등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고대소설이나 신재효 판소리집, 강령탈춤, 가산오광대 등에서 각설이타령이 등장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많은 유형의 소리가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각설이패의 역사는 구한 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 판서의 자제로

팔도 감사를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왔네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품바하고도 잘한다

앉은고리는 돈고리 선고리는 문고리 뛰는고리는 개고리

나는고리는 꾀꼬리 달린고리는 저고리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각설이타령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

 

각설이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은 장타령이라고도 한다. 장타령이라는 어원은 ()’을 쫓아다니며 소리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1에서부터 시작한 노래가 장(10, )으로 끝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각설이 타령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장타령으로 구분하는데 그 중 장()타령은 떠르르르르르르 돌아왔소. 각설이가 먹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똘똘 몰아서 장타령……대부분 이렇게 시작되며, “1자에 한자나 들고나 봐..”로 시작하는 것은 숫자 장(=)의 장타령이 되된다. 즉 그 사설의 종류에 따라 유형이 구분이 되는 것이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추석은 이르게 찾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체공휴일>의 시행으로 토요일부터 5일간이라는 긴 연휴를 즐길 수가 있다. 수원의 전통시장이 몰려있는 팔달문 상가들도 추석대목을 맞이하기 위해 동분서주 바빠졌다고 한다. 아마 이 추석장을 볼 때쯤 지동교에 가면 각설이패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바람 나게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며 부르는 장타령 한 대목을 들으면서, 올 추석은 모든 이들이 정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그런 풍성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을은 공연의 계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축제 중 상당수가 9월과 10월에 열린다. 수원의 경우 생태교통 수원2013’이 한 달간 행궁동 일원에서 열리기 때문에, 많은 행사들이 생태교통 기간 중에 열리고 있다. ‘9회 수원예술인축제 - 예술의 맛, 한눈에 즐기다역시 92일에 개막공연을 연 후, 915일까지 곳곳에서 가을을 즐기고 있다.

 

13() 참 억세게 비가 퍼붓는 날이다. 오후 730분부터 수원국악협회(지부장 나정희)에서 주관하는 가을 우리음악여행이 수원 제2야외음악당(만석공원) 무대에 오르기로 하였으나, 그 전까지도 비가 내려, 제대로 시작을 할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한 방울씩 내리던 비도 시간이 되자 멈추어 버린 것.

 

 

가을이 되면 춤과 소리가 땅에 붙는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공부를 마치고 혼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지나던 선생님께서 연습을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직도 연습을 하고 있나?”

, 며칠 안 있으면 전공시험이 있어서요.”

그래 가을이 되면 참 중간고사가 있지?”

가을이 되면 춤도 소리도 땅에 붙는단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가을은 모든 것이 땅으로 내려앉는 계절이지. 가지에 달렸던 모든 실과도 땅으로 내리고, 나뭇잎도 꽃들도 모두 땅으로 내려앉지. 그만큼 땅이 풍성한 계절이아, 땅에사는 사람들도 풍성해지는 것이지.”

, 선생님.”

 

그 때는 그 말뜻의 깊이를 잘 몰랐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이제 그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그런 가을에 춤과 음악, 소리의 한 마당이 만석공원에 내려앉은 것이다.

 

 

1시간 반이 흥겨운 무대

 

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 고성주)의 출연자들이 첫 무대로 한오백년을 무대에 올린 뒤, 국악실내악연주로 이어졌다. 어린 꼬마들이 부르는 소리가 초가을의 밤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 비가 내린 후 한결 서늘해진 공원무대 앞에 300여명의 청중들도 함께 가을이 오는 소리를 느끼는 듯하다.

 

이효덕, 이슬 두 사람이 부르는 국악가요 쑥대머리배 띄어라를 들으면서 아주 오래 전 북 하나를 앞에 놓고 앉아 소리를 하는 제자들에게 장단을 쳐 주시던, 명창 고 박동진 선생님을 생각을 했다. 졸업 후에도 선생님과의 인연이 깊었지만, 처음으로 판소리를 접한 것이 바로 쑥대머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악가요로 거듭난 쑥대머리야 어디 깊은 판소리에 당할 수가 있으랴. 다만 판소리를 전공한 이효덕이라는 소리꾼의 성음에 귀가 솔깃해진 것이지.

 

 

이어서 무대에 오른 장타령과 재인청의 명인인 고 이동안 선생에게서 전해진 춤인 무녀도. 그리고 풍물판굿으로 무대가 달아올랐다. 하나하나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은 미숙한 면도 있었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의 밤에, 그것도 하루 종일 비가 억수로 퍼붓고 난 뒤 열린 가을이 내려앉은 무대가 아니던가.

 

한 시간 30여분 동인 관객들이 덩달아 즐거워하고, 무대에 오른 버나잽이의 재주가 사람들을 즐겁게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가을은 어디를 가나 풍요로운가 보다. 오랜만에 옛 기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 무대에, 마음 한 자락을 남겨두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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