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어리다고 그래도 한 나라의 임금이었는데, 군으로 강등이 되어 길을 나섰다. 나이어린 단종은 부인과 헤어져 먼먼 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결국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길을 나선 것이지만, 아마 단종은 언젠가는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길에서 마셨다는 샘물 하나.

 

여주군 북내면 상구리에 있는 골프장에는, 단종임금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영월로 귀향을 가면서 마신 샘이 있다고 하여 찾아 나섰다. 현재 이 샘은 여주군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블루헤런이라는 골프장 경내에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낮지 않은 언덕길을 걸어올라, 블루헤런 골프장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려 어수정을 취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친절하게 골프장 전동차인 카트로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직원의 안내로 카트를 타고가면서, 몇 번이나 멈춰야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꽤 먼 거리를 돌아 어수정에 도착을 했다.

 

단종은 샘물을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수정을 찾아 나선 것은 여주군 상교리에 거주하는, 그림을 그리는 아우가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예전에 한양으로 가던 길목이었다는 것이다. 상교리는 지금도 몇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예전에 이 마을을 '주막거리'라고 했으며, 지금도 집터가 있고 그릇, 기와 등의 파편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우재라는 아우의 도자기 전시실 앞을 지난 단종임금이, 고개를 넘어 여주로 향하면서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다. 걸어보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지금도 꽤 시간이 걸리는 고개다. 고개를 넘어 여주로 가면서 만난 옹달샘. 당시에는 그저 산중에 있는 작은 샘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어수정. 남한강을 따라 이포나루를 지난 단종은, 파사성을 거친 후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이곳 상구리 어수정에서 타는 목을 축인 후에, 여주를 거쳐 원주로 길을 잡았다.

 

물론 세조 3년인 1457년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기는 했지만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이라도 타고 길을 나섰겠지만, 한양을 떠나는 마음이 오죽이나 아팠을까? 아마 정이 많은 단종은 이 샘에서 자신이 물을 마시기보다는, 걷는 사람들을 위해 행렬을 멈추었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넘느라 목이 탔을 텐데 산 속 호젓한 곳에서 만난 샘물이, 행렬의 누군인들 반갑지 않았겠는가?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종에게 먼저 물을 떠다 올렸을 테고, 그 때부터 이 샘은 '단종 어수정(御水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수정은 한 맺힌 역사를 알고 있을까?

 

이 물을 마시면서 어린 단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귀향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이 샘에서 목을 축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샘물을 마시고 떠난 단종은, 다시는 이 길을 돌아오지 못했다. 영월 땅에서 어린 단종은 이 호젓한 산길에 있는 샘물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이 샘물을 다시 마실 수만 있다면,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테니까.

 

 

 

15분 정도 카트를 타고 구불구불 골프장 길을 돌아 도착한 어수정. 현재의 샘물은 골프장 내에 석축으로 주변을 둘러 조형이 되었다. 아마 그 옛날이야 조그마한 산골짝의 옹달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은 2단 석축으로 둘러쌓아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어수정 앞에 세운 안내판이 없었다면, 아무도 이 샘이 한이 서린 샘이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샘의 너비는 약 3.3m 정도이고, 둘레는 10여 m가 된다. 샘의 폭은 2.8~2.11m 정도에 수심이 2.25m 정도이다.

 

어수정에서 어린 단종을 그려내다

 

한때 이 어수정은 사철 내내 수량이 풍부하고 가뭄에도 마르지가 않아서, 일대의 식용수는 물론 농업용수로도 사용이 될 정도였다는 것이다. 샘 안을 들여다보니 낙엽이 떠 있는 샘은 물이 한없이 맑다. 가끔 바닥에서 물이 솟구쳐 올라, 물방울이 생기고 여울이 지기도 한다. 아직도 물이 쉬지 않고 솟아나오고 있는 어수정. 이 샘에 얽힌 한 맺힌 사연들을 지나는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다음 스카이뷰로 본 어수정. 붉은 선 안이 골프장 내에 있는 '어수정'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래도 말끔하게 보존이 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어 고맙기만 하다. 비록 단종이 귀향을 가는 길에 잠시 들러 목을 축인 샘이요 물이 깊어 떠먹을 수는 없었지만, 샘 앞에 서서 타는 목을 축였을 단종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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