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남들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보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는 공감이 된다. 하지만 보람 이전에 어떤 사명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온전한 보존을 위한, 두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아마 이런 것이 그 안에 함께 할 것이다.

우선 문화재답사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은, 시간과 경비의 조달일 것이다. 시간은 틈을 내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경비는 늘 발길을 무겁게 만든다. 답사지에 가서도 숙소에 컴퓨터가 있는 방을 들어가려면, 웃돈을 더 내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하고, 먹고, 자고, 거기다가 음료라도 마시는 날에는 두둑하던 주머니가 곧잘 비어버린다.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산행도 감수를 해야한다. 카메라의 무게만 해도 버거울 때가 있다.

날씨가 발길을 무겁게 해

답사를 하다가보면 가끔은 헛수고를 하는 일이 있다. 이번 답사에서도 지리산 천년송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정작 그곳으로 오르는 길은 얼음이 얼어 차량이 통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곳과 마애불을 찍기 위해 참으로 벼르고 또 별러 찾아간 길인데, 맥이 다 빠져버린다.

일기가 사람을 참으로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여름과 겨울에는 사전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서기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할 수없이 발길을 돌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내내 씁쓸하다. 거기다가 산 길을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비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인근에 커다란 바위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비를 피할 수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도 받아

카메라가 비에 젖으면 낭패이기 때문에 비가 뿌리거나 눈이 내리면, 카메라를 옷 안으로 넣고 다녀야만 한다. 그러면 불룩 나온 배가 이상하게도 보일 것이다. 몇 번인가는 불심검문을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가가 없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배에 무엇인가 불룩하니 넣어갖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우리나라 주민들의 신고정신은 가히 일품이다. 그런 날은 십중팔구는 신분을 확인시켜주어야만 한다. 그래도 요즈음은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많이 좋아진 셈이다. 그래도 중단을 할 수 없이 계속하는 것을 보면, 아마 천성적인 역마살이 맞는구나 싶기도 하다. 일기도 사람들의 시선도, 온 산과 들판을 누비고 다니는 나를 어쩌지를 못하는 것을 보면.


물 한 모금과 건강한 발은 답사의 생명이다. 이렇게 힘들게 다녀도 오해를 받는 일이 있어 맥이 풀린다.

“사진 찍고 간 후에 도둑을 맞았어요.”

어제와 오늘 답사를 하면서 정말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날씨는 바람이 불고 손도 시릴 정도였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소개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보던 보지를 않던 그런 것은 나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 보고 간다고 해도, 언제가 그곳을 들리면 ‘아! 옛날에 누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라는 생각만 해도, 난 성공을 했다고 자부를 한다.

오늘 고택답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밖에서 쫒아 들어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시면서 유심히 살펴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사시는 분이란다.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번에는 누군가가 조사를 한다고 와서 사진을 찍고 갔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다음에 도둑을 맞았어요. 집안에 있던 고서들을 잊어버렸죠.”

말씀을 들어보니, 사진을 찍겠다고 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다음에 그것을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명함을 드리고 나서, 마저 사진촬영을 마쳤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에 제일 조심하는 것이, 바로 안채의 집안 촬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집안을 찍고 나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집안의 귀중품을 찍겠다고 부탁을 하지도 않는다. 집안에 잇는 것을 찍으면, 좀 더 세세한 글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내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촬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사를 하는 것은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칫 남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날 추운 날 다녀 온 답사 길. 그래도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들고 왔으니, 당분간은 추운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서 추위에 얼고,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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