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상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항상 설명을 듣고 늘 바라보고는 있지만,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것이 화폭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얼마나 더 공부를 하고 작가와의 만남에 임해야 하는 것인지,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듣고 열심히 배우다가 보면, 언젠가는 알아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다.

3월 1일. 남들은 쉬는 날이라고 좋아하지만, 이날도 작업실에 나와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 김은영(여, 41세. 서울 자양동 거주). 그저 그림이 좋고, 그림 안에서 무엇인가 해답을 얻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원색의 물감들이 화폭에 이리저리 선과 원을 그리면서,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그림은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화가 김은영의 작업실은 수원 행궁 앞 레지던시 건물 안에 자리한다. 이 건물 안에 입주한 딴 작가들이 쉬고 있는 날인데도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 집안의 살림을 맡아하는 주부이면서도, 전업화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하지만 벌써 개인전을 7회나 치러 냈다고 한다.

“개인전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거울 때도 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98년도 부터였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가 생각이 들어 더 마음이 바빴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리를 하다가 좌절을 하기도 했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은영은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아 고민을 한다. 자신의 그림의 특징을 묻는 기자에게, 참 알아듣기 어려운 화두를 하나 던진다.

“그림은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무한한 여행입니다. 제 그림은 각자가 갖고 있는 기운을 찾아 떠나는 것이죠. 색, 물감, 그리고 그 덩어리들이 갖는 기운입니다. 화면 안에 있는 기운이 그림을 보는 각자의 기운과 상충작용을 하면서, 좋은 기운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작업을 하고 있다는 김은영은, 한 남자의 부인이자 두 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뒤처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전업화가 오히려 여자가 더 힘든 작업

집안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는 않을 듯하다. 그것도 작업실이 집에서 1시간 30분이나 소요하는 거리에 있으니. 그러나 항상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경비가 필요할 텐데 어떻게 감당을 하느냐고 물었다.


“사실은 집에서 손을 벌릴 수가 없어요. 아직 제 위치가 대단히 명성을 날리는 사람도 아니니 충분한 비용을 버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가 보니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해야죠. 대개 사람들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여성화가들이 남성들보다 더 편하게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와는 정 반대죠.”

한 마디로 남자들이야 그냥 옷만 걸치고 다니면 된다지만, 여자들은 꾸며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다는 것.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작업을 할 때 구상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모든 주변의 사물과 자연에서 구상을 합니다. 어떤 때는 작업을 하다가 전율을 느낄 때도 있어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아마도 그런 것 때문에 수도 없이 좌절을 했다가도, 새로운 기운을 얻어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거의 광기를 느끼기도 하고요”

올 가을 쯤 다시 개인전을 준비를 한다고 한다. 바쁘게 생활을 하면서도, 늘 그렇게 작업에 열심인 화가 김은영. 새로운 기운을 얻으러 거리로 나간다는 그녀의 뒷모습이, 휴일 행궁 앞에서 연을 날리며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진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신임악장 한경진.

“음악은 나에게는 인생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음악과 나는 별개로 떼어놓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죠.”

우리나이로 33세. 많지 않은 나이에 수원시림교향악단의 악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한경진. 2월 2일(목) 오전,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연습실에서 만나보았다.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아 접하게 된 바이올린이 인생의 반려자가 된 셈이다.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아

“부모님들이 모두 바이올린을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하게 되면서, 스스럼없이 바이올린을 선택하게 되었죠.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크지 않은 병원이지만, 그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도 없는 작은 병원의 무대이긴 했지만, 아마도 그런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들은 칭찬이 오늘을 있게 한 듯합니다. 그 때 사람들이 ‘정말 잘한다.’, ‘감동을 받았다’ 혹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춘기에도 방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잠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외에는 음악과 함께 생활을 했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의 베를린 국립음대, 라이프치히음대를 졸업하였다.

“독일로 건너가 바로 몸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그래서 한 일 년 정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죠.”

어릴 적부터 영재로 소문이 나

한경진은 어릴 적부터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 7세 때 월간음악콩클을 비롯하여, 일본 시모노세키콩클, Nuri 바이올린 국제콩쿨, 세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부산음악콩클, KBS신인음악콩클 등을 석권하였다. 젊은 음악도의 등용문이라는 동아음악콩클까지, 이렇다 할 모든 음악콩클에서 수상을 하였다.

그녀는 9세 때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음악계에 데뷔하였으며, 그 후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부산시향, KNUA 오케스트라등과 협연하며 가는 곳마다 이슈가 되곤 하였다.

한국 최고의 명교수 김남윤의 지도하에 예원학교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입학 및 예술사를 졸업한 그녀는, 독일 베를린국립음대(HDK) Diplom 취득(최우수졸업), 라이프치히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교수 만장일치 만점 졸업하였으며, Meisterklassenexamen 을 전액 장학생으로 최우수 졸업을 하였다.

유학중 유럽의 교향악단들과의 협연기회도 많았다. 학교 내의 정기연주회는 물론이고, Jena Philharmonie , MDR(중부독일방송교향악단), Istanbul Chamberorchestra 와의 협연으로 이미 프로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24세 때는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함께한 독일 방송교향악단(Deutsches Symphonie Orchester Berlin)에서 준단원을 역임하였다.


그녀는 Leipzighochschul orchester 악장을 역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과 유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만든 Berlin Soloistkammermusik orcherster 에서 부수석 주자로, Berlin 교수협회, 학회, 대사관주체 초청연주 등 활발한 활동뿐 아니라 Mendelssohnhaus, Schumannhaus, Maarkleeberg, Jardhaus 등 초청독주회와 금호아트홀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객원단원역임, Prof.Meinel 과의 Leipzig Trio 등 수많은 실내악 연주로 탁월하고 집중력 있으며 매혹적인 소리를 가진 음악가라는 평을 받았다.

앞으로 최고의 교향악단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어

“독일에서 10년 동안 생활을 하다가, 2010년 10월에 돌아왔어요. 귀국 후에는 예술의 전당 아티스트로 발탁이 되어, 2011년 4월 8일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금호 챔버뮤직소사이어티 연주와 앙상블 pan의 리더로도 활동을 했죠. 수원시향과는 협연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연을 관람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 어느 유수한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수원시향의 악장으로 취임을 하게 된 것도 너무 기쁘다고 한다. 물론 심적인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수원시향은 이미 정상의 위치에 있는 교향악단입니다. 역사도 30년이나 되었고요. 제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쯤인 1982년에 수원시향도 창단을 하였습니다. 저와는 참 많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이곳에서 제가 지금까지 다져왔던 모든 것으로,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은 잘 어울린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한다.’고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악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한경진. 앞으로 그녀의 더 좋은 무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