絹五百 紙千年(견오백 지천년)’, 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이다. 한지의 우수성은 조선 시대에 한지로 만든 지갑(紙甲)’이라고 하는 갑옷이 있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지갑은 임진왜란 등 전쟁에서도 병사들이 착용하고 나갔다고 한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에도 지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런 우리 전통한지를 갖고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통칭 한지공예라 한다. 한지공예는 오색 색지공예또는 지함이라고 하며, 현재 박물관에 조선중기 이후의 유물들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까지 가장 성행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예의 하나이다.

 

 

15년 동안 오직 한지에만 매달린 정성

 

이혜순(, 54. 인계동거주)씨는 한지공예가이다. 200115()한지공예문화교육원에서 한지공예지도사범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도사범이란 남들을 가르치는 사범을 양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지도자를 말한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업을 하는 공방에는 땀이 맺힌 많은 작품들이 가지런히 전시가 되어있다.

 

한지공예는 두꺼운 종이나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한지를 여러 번 바르고 오색 색지를 발라서 완성 하게 됩니다. 또 그 위에 갖가지 전통문양을 오려 붙여 모양을 내고, 전체적으로 풀칠을 한 다음 마감 처리를 하여 여러 생활 용품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공정은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지만, 많은 노력을 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혜순 작가가 한지에 매료되어 공예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15년째라고 한다. 그동안 강산이 한 번 반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수원에 정착한 후, 우연히 만나게 된 한지공예가 지금은 삶의 전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결혼을 하고나서 한지공예를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올 줄은 저도 몰랐죠. 저는 90이 가까우신 시부모님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런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은 작품을 만들기보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욱 많은 사간을 할애했죠.”

 

 

한지의 매력에 빠져버린 이혜순 작가

 

한지공예는 한지를 재료로 제작되기 때문에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오랫동안 지녀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정감을 줍니다. 한지를 주재료로 하여 제작되는 한지공예는 다른 공예품에 비하여 작품 자체가 매우 가볍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여러 가지 문양의 활용과 더불어 현대 감각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로의 재구성을 통해, 전통 문화의 창조와 계승,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지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그만큼 이혜순 작가에게 한지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작품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한지공예는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몰입을 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한다.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죠. 아마 지금의 내가 바로 그런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혜순 작가는, 서예를 하다가 한지를 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약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여러 겹으로 배접하면 화살도 뚫기 어려운 질기고 견고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해 시작을 한 것이다.

 

작품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람들 아쉬워

 

한지공예는 작품 제작을 위한 재료의 구입이 용이하며, 기법 또한 어렵지 않아서 누구든지 조금만 배우면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실내장식을 위한 조형미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서의 실용성을 함께 갖추고 있어 누구나 배울 수가 있죠.”

 

한지를 만질 때마다 그 질감이나 신축성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혜순 작가. 마침 공방에 외국인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작품들을 돌아보다가 전등갓에 마음이 끌리는지 얼마인가를 물어본다. 우리 돈으로 12만원이라고 대답하자, 그냥 가버린다, 아마도 그들에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 같다.

 

 

저분들은 외국인들이라 우리 것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여기저기 싼 것들도 많거든요. 저들에게는 작품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슬픈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죠. 한지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깨달아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아가 치민다. 1m 50cm 정도의 삼단 농을 하나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가격을 이야기를 하면 한 마디로 비싸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 작품을 갖고 가격을 논하는 것도 아쉬운데, 정작 사람들은 작품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고 가격을 논한다는 것이다.

 

한지공예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한다.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도 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한지공예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죠. 우선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요. 시간과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죠. 그리고 한지공예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요하고 있어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강인해야죠.”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한지공예는 그런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작가의 땀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 한지공예가 이혜순 작가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제9회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각종 기예능 경진대회의 심사를 맡아보았다. 아직 개인전을 갖지 못했다는 이혜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날을 기대하는 것도, 누구보다 한지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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