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이 가뭄으로 인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모처럼 집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밀려있던 CD 정리 작업부터, 여기저기 쌓였던 먼지도 털어내고. 참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답사를 다니고 신문에 올릴 기사를 정리하다가 보니 늘어나는 것은 짐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료들이 나중에 다 우리의 문화 한 쪽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작은 도움이나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리만 하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듯싶습니다.

 

모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방안에는 많은 것들 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꼭 필요한 것만정리합니다. CD와 책 뿐입니다. 3,000여장의 CD와 700권 정도의 책이 벽을 차지합니다. 책은 3,000권 정도가 되지만 삶터가 비좁은 관계로 나머지는 아우의 서재에 남아있습니다


 

블로거의 역할과 존재가치

 

세상에서 블로거라는 존재들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그 힘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블로거 한 사람은, 이 시대에 매우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각 지자체마다 블로거들을 초청해 지역의 사안을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로거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론사 혹은 대학 강단에도 블로거들이 당당하게 올라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블로거들의 존재가치는 돈으로 환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3,000장 정도의 CD입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전국을 다니면서 찍어 온 자료들이죠. 이 CD들이 가끔은 잘못 된 세상을 바로 잡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블로거의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웃 블로거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독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상당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분들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야 또한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블로거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한 것일 테고요.

 

세상이 블로거를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한 것이 한 7년 정도 되었나봅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접지 않고 계속했다면, 아마 현재 활동을 하는 블로거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 될 것입니다. 2005년 다음에 플래닛이 없어지고 블로그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의 블로거로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실은 3,000개 이상의 들을 썼습니다. 중간에 막무가내로 블로그를 접을 때,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이미 2,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1,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으니, 그 자료만 해도 참 엄청난 자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들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갖고 왔습니다. 좌측 밑에 통나무 찻상 보이시나요? 150년 정도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것을 3년간 비 바람 눈에 젖고 마르고 했던 것을 찻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기억을 떠 올려봅니다. 당시는 다음 메인창에 시사, 문화, 정치 등이 곧잘 올라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예, 요리 등등이 주가 되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문재점을 이야기를 하면, 며칠 안에 말끔히 정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신호체계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면 바로 신호체계를 바로 잡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횡단보도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틀이 안가 횡당보도가 올바르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하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합니다. 다만 그 블로거들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가끔은 곤욕을 치렀다고 이야기를 하는 블로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블로거들의 글 하나하나를 세상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공간입니다. 남은 한 면은 창이죠. 오래된 TV(그래도 나올 것은 다 나옵니다)와 오래 된 컴퓨터. 방 하나에 있는 모든 물건의 전체입니다. 물론 딴 방이 하나 더 있고 주방겸 거실도 있습니다.이 안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글을 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블러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행여 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글이 아니라, 대안까지 치밀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블로거.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로거이기 때문입니다.

옛 임금들의 능원이나 제를 지내는 전각 옆에는 우물이 있기 마련이다. 이 우물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가 없다. ‘어정(御井)’ 혹은 ‘제정(祭井)’이라고 부르는 이 우물은, 임금의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물을 긷는 곳이다.

사적 제115호인 정조 임금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에는, 운한각을 바라보고 좌측 담 너머로 우물이 자리한다. 이 우물은 일반적인 어정이 둥근 형태로 조성을 한데 비해, 장대석을 치밀하게 쌓아올려 우물을 조성하였다. 아마도 이 우물은 화령전을 축조할 당시인 1801년에 조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복원이 된 제정과 전사청

2011년 12월 10일 찾아간 화성 행궁. 날이 쌀쌀하긴 해도,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곳을 돌아보자니 등줄기에 땀이 밴다. 언제나 그렇듯 답사는 늘 발길이 바쁘다. 그저 남들은 사진 하나 찍으려고 있는 대로 폼을 잡고는 하지만, 나 하고는 거리가 멀다.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제정의 옆에는 전사청을 비롯하여 제기고와 향대청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005년도에 복원이 된 제정과 전사청만이 있다. 전사청이란 제사를 관리하는 관청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서는 젯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는 했다. 제기고는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 등을 보관하는 전각으로,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향대청은 전사청 부근에 있었으며,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초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조선조 순조 1년인 1801년에 축조된 화령전은, 순조가 아버지인 조선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재위 1776∼1800)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사지내던 건물이다. 23대 임금인 순조는 이곳에서 노인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직접 정조가 태어난 탄신일과 돌아가신 납향일에 제향을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납일(臘日)’이란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말한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그 날이 달랐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동지 이후 세 번째 미일(=양의 날)로 정한 것이다. 이 날은 궁에서는 종묘사직에 제사를 올렸고, 민간에서도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납향(臘享)'이라고 했다.



납향일은 그 해의 끝에 해당하므로, 일 년을 정리하면서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제를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순조도 이 납향일에 이곳 화령전에 와서 아버지인 정조에게 제를 지냈으며, 제정의 물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 제사는 정조의 어진이 화령전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우물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화령전에서 제를 지낼 때 물을 떠 사용을 하던 제정은, 정방향의 형태로 각 방향에 14개씩 도합 56개의 장대석을 치밀하게 쌓아올렸다. 높이는 5.5m이고 바닥에서 물이고인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우물의 밖으로 뻗어 나온 돌은 서로 반을 갈라내어 엇물려 놓았다. 장대석을 쌓아올려 우물을 만들었다는 것도 색다르다.



현재 복원이 된 화령전 안의 제정은 밑에 복원된 전사청 앞으로 물이 흐르도록 되어있다. 전사청은 ㄱ 자형으로 지었는데, 동편 끝이 한 칸 돌출이 되도록 하여 마루를 깔았다. 모두 8칸으로 지어진 전사청은 동편에 방과 툇마루를 놓고, 4칸 째에 문을 두었다. 이 문을 통하여 운한각으로 음식 등을 날랐을 것이다.

좌측 4칸은 한 칸의 광과 세 칸의 방으로 되어있다. 전사청 앞에 굴뚝을 보아 이곳은 온돌방을 꾸몄을 것이다. 납향일이면 추운 동지 때를 지나서이기 때문에, 온돌방이 아니라면 전각 안이라고 해도 추위 때문에 제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향대청과 제기고가 복원이 되는 날, 사라져버린 역사의 한 조각이 맞춰질 것만 같다. 2011년 12월 10일에 찾아간 행궁 곁 화령전은, 그렇게 하나하나 역사를 되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면 밥을 먹는 것이 큰 고민꺼리가 아닐 수 없다. 10월 10일 여수를 내려가서 먹은 점심은 음식 맛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의 정이 더 좋은 그런 음식이었다. 아침 일찍 여수로 향했다. 여수는 해산물을 살 일이 있어 내려갔는데, 지리도 잘 모르지만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여수에 사는 블로거인 임현철님께 부탁을 했다.

임현철님은 그 동안 몇 번 만나 술을 같이 한 적이 있어,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이니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볼 겸 부탁을 했다. 여수에서 만나 함께 수산시장을 들어가 수산물을 구입한 후 저밈을 먹자고 한다.

여수에 사는 블로거 임현철님이 안내해 준 식당의 상차림. 보기에도 깔끔한 것이 맛 또한 일품이다.


맛깔스런 음식, 그리고 좋은 사람.

임현철님이 안내를 해준 곳은 작은 식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몇 조가 있을 뿐이다. 미리 예약을 해 놓은 터라 상위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보기만 해도 깔끔하단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시킨 음식은 갈치조림이었는데, 준비가 다 된 듯 바로 음식을 내어준다.

“형님 막걸리 한잔은 하셔야죠”
“당연하지”

정갈하니 차려진 밑반찬. 남도답게 음식 맛은 더 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늘 만나면 그렇게 술로 회포를 푼다. 참 이 술은 어찌 그리 시도 때도 없이 술술 들어가는 것인지. 막걸리 한 주전자를 나누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보다 그 정이 더 즐거운 것이 아닐까?

마침 시간이 지나 속이 출출한 탓도 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먹는 음식 맛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음식은 간결하니 깔끔하다. 그 중에서도 오래 묵은 갓김치와 갈치내장젓갈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 까다롭기로 소문 난 내 입에 감길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듯하다

갈치조림. 이런 것 하나만 갖고도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남도였다.

원래 낮술을 않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그냥 헤어지랴. 남도의 맛있는 막걸리와 좋은 사람.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음식 맛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다가 보니 사진을 찍는 것을 잊었다. 밥을 먹다말고 생각이 나 잠시 한 장 찍고. 옆에 있는 것김치는 해묵은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글 한자 남기지 않는다면 그도 블로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준 여수 해오름식당. 전문적인 음식 소개 블로거가 아닌 나로서는 주소며 연락처 등은 항상 묻지를 않는다. 간판에 전화번호가 나와 그도 다행이라는 생각. 임현철님이 선물로 준 해묵은 갓김치와 꼬들빼기 김치. 그것을 갖고 와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는. "아우님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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