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화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서예로도 사람들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애를 먹고는 했죠.”

 

올해로 서예를 시작한지 30년이 되었다. 예전에는 미술대학에 서예과가 없었다. 단지 취미생활로 시작한 것이, 서예가 좋다가 보니 어쩌다가 서예가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단다.

 

예전에 정보통신부에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서예와 접하게 되었어요. 글씨를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해, 틈이 나는 대로 서예에 몰두했죠. 취미생활을 하던 서예가, 저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죠.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좋아, 1994년에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처음에는 한문과 한글을 구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저 묵향을 맡으며 글을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체계적인 공부가 하고 싶어,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서예전공으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에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으로 서실을 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난관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직 서예에만 몰두를 했다.

 

한문과 문인화도 그렸지만, 글을 쓰다가 보니 한글에 대한 애착이 생겼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글의 서체에 많은 연구를 하게 된 것이죠. 지금 세계는 우리 한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글의 세계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원 윤경숙(, 54) 선생은 서예가 점차 침체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실을 열어 한글 서체를 연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접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생활서예에 심취하다

 

저는 생활서예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죠. 요즈음은 글씨를 갖고 캘리그래피라고 하여서 아름다운 글을 씁니다.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아름다운 글씨를 말하는 것이죠. 이제는 글씨가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어,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성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가 되는 것이고요

 

원래 캘리그래피(Calligraphy)'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캘리그래피를 멋짓글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마음이 메말라 거칠어지고요. 이런 사람들을 서에로 치유를 할 수 있습니다. 왜 음악이나 미술은 치유가 되는데, 서예는 안된다고 할까요? 저는 석사논문을 <서예치료에 관한 연구>로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칠 때 그분들이 서예를 하다가보니, 마음이 치료가 되는 듯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예를 하면서 치유가 되는 것을 느꼈고요.”

 

내면에 담고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것

 

그동안 국전초대작가가 되었지만,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현재 수원미협 서예분과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도미술대전, 전국휘호대회, 대한민국서예한마당, 공무원미술대전, 추사선생추모휘호대회 초대작가, 한국미협, 강물회, 묵향회, 서예치료학회 등에서 활동을 했다.

 

 

한글서학회는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단체입니다. 우리의 우수한 한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홍보를 하는 것이죠. 저는 단지 한지에 글씨만을 갖고 작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버티컬이나 스탠드, 스카프, 방석 등 다양하게 한글을 사용하죠. 저희 공방 명칭이 먹즐방입니다. 먹을 즐기는 방이라는 뜻이죠.”

 

수원시 팔달구 영동시장 2층 아트포라에서 만날 수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고 있다. 영동시장 2층 전시실에서는 현재 윤경숙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들려 우리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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