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날씨에 조그마한 짐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 하나를 끌고, 이집 저집 앞에 쌓인 박스나 신문 등을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있는 어르신 한 분. 가끔 길가에서 뵈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치기도 하지만, 제대로 인사 한 번을 하지 못했다. 날이 상당히 추워졌는데도 어르신의 걸음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다.

“날이 추운데 오늘도 나오셨네요.”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으니”
“춥지 않으세요?”
“조금 춥기는 하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 해”

추운 겨울 날 여주 5일장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김기성씨. 눈이 쌓였는데도 자신이 히야할 일이고, 남들이 불편할까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정작 김기성씨는 몸이 불편했다.


어르신에게 물을 수도 없는 인생

감히 어르신에게 왜 이렇게 추운 날 고생을 하시느냐고 물을 수가 없다. 비록 폐지를 줍고는 다니시지만, 어르신에게는 남들에게서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히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요즈음 이렇게 폐지 등을 거두러 다니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든 것인지.

“추우신데 막걸리라도 한 잔 하실래요?”
“아녀, 그런 것 먹는다고 몸이 풀리지도 않을 테고. 괜찮아”
“따듯하게 입고 다니셔야죠. 바람이 찬데. 힘드시지 않으세요?”

질문을 해놓고도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춥고, 당연히 힘이 드실 것이란 생각을 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못하는 것일까?

“아녀. 얼른 볼일 보러 가. 괜히 바쁜 사람이 늙은이 걱정일랑 말고”
“예”
“난 괜찮아. 그래도 사는 것이 슬프지는 않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 이상은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추운 날 고생을 하시면서도, 사는 것이 슬프지가 않다는 어르신의 한 마디. 그 말이 심하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으니, 힘든 세상살이가 슬플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약한 우리네들, 괜한 불평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주 5일장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장을 돌다가 만난 청소부 한 사람. 장애가 있으면서도 눈이 잔뜩 쌓인 날 눈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힘이 들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나에게 돌아 온 대답은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신이 치우지 않으면 금방 길이 눈으로 인해 막혀 사람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고.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런 분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낯 뜨거운 삶을 살지 않았는가 반문을 해본다. 아마도 세상에 불평만 늘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속 좁은 생각까지 해가면서 살아온 지난 날. 목장갑 한 켤레가 다 헤어졌는데도, 움직일 수 있으니 슬프지 않다는 어르신의 말씀.

오늘 참 나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대고 싶다. 심하게 질책을 하고, 심하게 아파하면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구부정한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 어르신이 이 세상의 선지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모습을 차마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조차 송구스러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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